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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364화 (364/648)

〈 364화 〉 364화. 복귀

* * *

"……."

"미안…."

나를 째려보는 엘리스의 매서운 눈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내 입에서 욕을 듣고 싶어서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아니면… 하아."

엘리스는 양다리를 딱 붙인 채 날 노려봤다.

내 손을 거부하는 그 모습이 마치 부끄러워하는 다소곳한 처녀 같아서 살짝 미소를 지었는데, 엘리스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는 걸 보자마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너무 심하게 하긴 했지.

제발 그만하라고 하는 엘리스의 말을 무시하면서 계속 박아댔으니까.

"설마 다른 여자한테도 이러는 거야? 여자 입장에서 얼마나 아픈지 알아?"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지. 엘리스 너니까 못 참았어. 미안해."

"…… 다음부턴 조심해."

내 말에 흠칫한 엘리스는, 입을 오물거리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얘는 왜 점점 하는 짓이 귀여워지지?

하지만 지금 웃었다가는 다시 욕 먹을 것 같아서 최대한 웃음을 참았다.

"고마워 엘리스."

"하아. 그래서말인데, 그 서큐버스가 문제인 거야?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그건 아니야. 릴리아나는 오히려 날 도와주는 쪽이야."

"릴리아나…? 그 서큐버스의 이름이야? 그러면 그 마왕이라는 놈이 문제?"

"맞아. 근데 내가 마왕하고 적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나?"

판데믹의 목표는 지옥의 지배자인 마왕을 소환하는 것.

케이론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 잠깐 흘러가듯이 얘기했는데 엘리스는 잘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기억하는 것 정도는 이상한 게 아니지만, 메인 퀘스트로 마왕을 잡아야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엘리스의 반응이 신기할 수 밖에.

"마왕 이름을 꺼낼 때 눈이 찌푸려지길래, 나한테 말 못 할 사정이 있겠다고 생각했어."

"오…."

"…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감동이다.

내 표정을 읽었는데도 캐묻지않다니 칭찬해야지.

나는 웃으며 양 팔을 벌렸다.

"항상 날 지켜봐 줬구나. 엘리스. 앞으로 허니라고 불러도 될까?"

"그래요. 허니.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말해봐."

엘리스의 차가운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장난을 치기도 쉽지가 않구나.

잘생긴 남자는 죄가 많은 법.

잠시 반성한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엘리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고마워. 정말로."

"알면 잘해. 내일도 잘하고."

"내일? 내일은 돌아가는 날이잖아."

아카데미에 돌아가는 데 잘할 게 있나?

전용기 옆 자리에서 재밌는 이야기라도 해줘야하나.

"가보면 알겠지. 내일 아침에 돌아가는 거 알지? 돌아가서 준비 끝내놔."

"응. 알겠어."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엘리스를 보니 의문이 들었지만… 뭐, 큰일이어봤자 얼마나 큰일이겠어.

항상 하던 장난 정도겠지.

그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다.

*

똑똑.

이호연이 돌아간 후.

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엘리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들어와. 세바스 찬."

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묵직한 연륜이 느껴지는 사람은 세바스 찬뿐이다.

곧 문을 열고 들어온 세바스 찬은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편히 쉬셨습니까. 아가씨."

"응. 세바스 찬도 길드에서 고생했어. 한국에 가면 다시 편해질 거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내일 일정이 궁금해서 불렀어."

"딱히 특이한 일정은 없습니다. 프랑스에 오실 때 탔던 전용기를 타고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들었습니다. 길드장 님이 아가씨에게도 전달하셨다고…."

"맞아.그거 말인데, 취소해줘."

엘리스도 전용기를 타고 돌아가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여론의 집중을 받을 수가 없다.

쥐도새도 모르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 엘리스도 원하지않는다.

"취소… 말입니까. 상관은 없겠지만, 한국으로 언제쯤 복귀하실 예정인가요? 아마 길드장님에게 보고드리면 하루 정도는 더 늦출 수 있을 겁니다."

"내일 돌아가야지. 대신 공항으로 갈 거야."

"공항.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랑 이호연이 돌아간다고 기자들한테 정보도 좀 풀어줘."

"으음. 그랬다가는 인파가 많이 몰릴 텐데요."

세바스 찬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공항으로 조용히 가는 건 괜찮아도, 미리 정보를 풀었다가는 기자나 사람들이 많이 모일거다.

프랑스에서 엘리스의 인기는 웬만한 연예인급이니까.

"걱정하지 마. 세바스 찬은 이호연이랑 내 거. 표 예약 좀 부탁해. 아빠한테는 직접 말할게."

"알겠습니다 아가씨."

세바스 찬은 별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별다른 궁금증을 제시하지 않고 표를 구하러 가는 모습은 역시 세바스 찬다웠다.

조용한 방에서 엘리스는 악동같은 미소를 지었다.

"가만히는 못 있어…."

엘리스는 아직도 얼얼한 다리 사이를 살살 문지르며 생각했다.

그렇게 당했으면 갚아줘야지.

큰 피해를 입히기는 엘리스도 싫었다.

딱 한 번.

이호연이 당황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아빠부터 설득해야겠지.

이제부터는 자신이 일할 시간이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엘리스는 스마트 워치를 들고 통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뚜. 뚜.

­ 엘리스…! 무슨 일이니. 혹시 누가 괴롭히기라도 했니?!

언제나처럼 호들갑스러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엘리스는 혀짧은 소리로 말했다.

"… 아빵. 나 부탁이 있는데욧."

*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엘리스와 나눴던 대화를 생각했다.

'확실히 똑똑한 애라 다르네.'

내가 아무리 들이대도 기본적으로 의심하던 엘리스는, 결국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아이리스 길드 출신이라 그런가?

기본적으로 똑똑하단 말이지.

공부도 잘하고.

역시 내 여자들은 다 에이스야.

엘리스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니까 이상한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을 거고… 일단 내일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엘리스와는 한국에 돌아가서 또 대화를 나눠봐야겠지.

어쩌면 엘리스가 하렘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아님 말고.'

그래도 사정을 아니까 애정을 준다면 방해하진 않을 거다.

그걸로 만족하자.

현재 시간은 밤 11시.

꽤 늦은 시간이지만 현대인이 잠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아마 숙소로 돌아가면 다들 깨어있겠지.

엘리스와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눈 나는 자신있게 숙소로 걸어갔다.

끼익­

조용히 숙소의 문을 열었다.

불이 켜져있길래 다들 거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건 뭐야?"

깔끔한 거실에는 사람 대신 커다란 짐가방이 보였다.

짐가방에는 귀여운 이름표가 붙어있었는데, 아마 한국으로 돌아갈 때 챙겨야하는 내 짐인 모양이다.

누가 대신 준비해준 모양이네.

거실에 놓여있던 잡동사니들도 자취를 감춘 걸 보니 돌아갈 준비는 다 끝낸 것 같다.

괜히 미안하게 또 나만 일을 안 했네.

­ 흐흠. 흐음~.

그 때, 빛이 새어 나오는 릴리아나의 방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역시 안자고 있었구나.

마침 잘 됐네.

나는 짐가방을 내려놓고 그 쪽으로 향했다.

"흠흠~ 아하~ 입술에 쪽쪽…."

"릴리아나. 뭐해?"

"응? 왔구나. 짐 싸고 있었징."

릴리아나의 방도 이미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얘도 게을러 보이는데 나름 깔끔하단 말이지.

컴퓨터는 아직까지 켜져 있었는데, 아마 마지막에 정리하려는 모양이다.

"이게 그 새로 시작한다는 동영상 사이트야?"

"응. 뉴튜브 몰라?"

"알긴 알지."

나는 릴리아나의 페이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렛과 같이 만든 걸로 아는데, 역시 잘 만들었네.

얼굴과 몸매를 강조하는 게 시청자들의 니즈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당장 나도 구독하고 싶을 정도다.

"구독자도 꽤 많네?"

"방송에서 구독해달라고 했더니 많이 늘었엉. 이제 더 열심히 해야 해."

"부담 갖지 말고 적당히 쉬면서 해. 우리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

릴리아나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것도 반은 장난으로 하는 말이다.

인재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굶어 죽겠어.

혹시 돈이 부족하면 협회의 길드 지원만 나가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안돼. 너무 쉬었더니 시청자가 줄었어."

"그건 원래 그런 거야. 하루하루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나도 예전에 게임 리뷰를 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하루하루 조회 수에 일희일비하곤 했었지.

결국 열심히 하다 보면 결과는 나온다.

"그래도… 으음, 모르겠어! 짐 싸는 거나 도와줘. 나랑 스카웃이 네 짐도 다 챙겼단 말이야. 그래서 내 짐을 아직도 못 챙겼어."

"너희는 왜 내 일을 먼저 하는 거야. 비켜봐. 같이 해줄게."

"고마워. 내 속옷이 너무 귀엽다고 훔쳐 가면 안돼?"

"… 내가 그걸 왜 훔쳐."

"혹시나 못 참을까 봐 하는 말이지. 아, 그래도 공손하게 말하면 빌려줄 수 있어!"

"부탁드립니다."

어디에 쓸지는 몰라도 기념으로 챙겨놔야지.

나는 릴리아나의 속옷을 챙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다음 날 아침.

릴리아나는 목걸이로 변해 내 목에 걸렸다. 스칼렛은 이제 전용기에 같이 탈 수 없는 몸이 되었다며 레베카 씨와 공항으로 향했다.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보였지만, 그래도 둘이 대화하는 걸 보니 꽤 친해보였다.

어차피 집에서 만날 테니까 상관없겠지.

­ 졸려….

"좀 자고 있어. 전용기를 타면 어차피 금방 도착해."

어젯 밤 늦게까지 짐을 챙긴 릴리아나는 피곤한 것 같았다.

금방 도착할테니, 잠깐 자는 것도 괜찮겠지.

하지만 약속장소로 나가자 생각했던 전용기는 없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근데 전용기는?"

나는 엘리스의 인사를 받아주고 주변을 살폈다.

그 승차감 좋던 전용기가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전용기가 어딨어. 비행기 타러 가야지."

"무슨 소리야? 우리 올 때는 전용기로 왔잖아."

"그건 그때고. 오늘은 다르지."

"…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

내가 전용기의 주인도 아니니 불만을 말하는 것도 웃기다.

없다면 없는 대로 해야지 뭐 어쩌겠어.

그래도 아쉽긴 하네.

굳이 사람들 많은 곳으로 가야 하나?

엘리스도 유명인이라 귀찮을 텐데.

여자는 많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많은 곳은 부담이다. 나도 엘리스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거다.

"너도 공항은 귀찮지 않아?"

"아니야. 지금처럼 관심이 끌릴 때는 오히려 공항으로 가야 해."

"정말?"

처음 듣는 소리인데.

"당연하지. 사소한 거 하나하나로 네 브랜드가치가 올라가는 건데."

"… 그런가?"

브랜드 가치가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있어보이는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이 분야에서는 엘리스가 전문가니까 나보다 잘 알겠지.

"가자. 공항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응. 기다리게 하면 안 되겠네."

아마 아이작과 아이린도 있을 거다.

그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다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우리는 빠르게 공항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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