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7화 (347/648)

EP.347 347화. 의좋은 자매 (2)

또각또각.

"안녕하십니까. 레베카 님."

"응."

판데믹의 은신처.

부하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간 레베카는 퀴퀴한 냄새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세뇌에 걸린 연기를 하고 있기에 표정을 바로 돌렸지만, 이 곳에 올때마다 불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왜 부르는 거야.'

아침부터 이호연에게 쳐들어가려고 했던 레베카는 갑작스러운 소집령에 판데믹의 지부로 돌아왔다.

드디어 이호연의 일이 해결되며 아이를 만들 수 있었는데,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

'슬슬 발을 빼긴 해야 되는데… 타이밍을 언제로 해야 하지?'

판데믹에 들어온 이유 자체가 룬의 일족의 생존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그 목적을 이뤘고, 자신을 이용한 판데믹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호연에게 정보를 주기 좋은 자리라서 아쉬움이 남지만, 바로 나갈 수도 없다.

좋은 타이밍을 잡아야 하니까.

자신 때문에 이호연까지 귀찮아지는 건 안 될 일이다.

레베카는 어두컴컴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대부분의 간부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세뇌에 강하게 걸린 만큼 마에스트로의 명령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레베카는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판데믹의 간부들을 지나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오늘따라 세뇌가 강한지, 간부들끼리 사적인 대화가 한 마디도 없었다.

이 공간 안에 가득한 어색함과 불편함은 레베카만 느끼고 있겠지.

그 이질감때문에 더욱 기분나쁜 공간이었다.

다행히도 그 때 남자의 구두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아아, 죄송합니다. 오늘도 그 분께 계시를 받느라 늦어버렸네요."

미친 새끼.

또 이상한 기도나 하다 왔겠지.

레베카는 마에스트로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간부를 다 소집해놓고 몇 시간씩 늦게 들어오는 건 그의 악취미였다.

마에스트로는 상석에 앉아 유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다들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간부들의 노력 덕분에 점점 우리의 이상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미소와 함께 착한 말투로 말하고 있지만, 마에스트로는 여기 있는 모든 간부에게 세뇌를 걸어놨다.

독재자 그 자체.

판데믹이라는 조직을 혼자 이끌어나가는 것은 그 정도로 미쳐야지 가능한 일이다.

테러나 납치에 대해 말하는 쓸데없는 회의였지만,레베카는 혹시 이호연에게 전해줄 정보가 있을까 고민하며 회의를 경청했다.

"전 세계에 판데믹의 이름이 커지고 있습니다. 입단희망자도 많아지고 있고요.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군요. 바로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프랑스."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프랑스.

둘 다 이호연과 관련 있는 곳이다.

어쩌면 이호연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을까?

레베카는 귀를 쫑긋 세웠다.

"이상하게 두 곳 다 성과가 안 좋아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테러는 대부분 실패했고, 프랑스에서는 사도님이 사로잡혔습니다. 자료 좀 주겠어요?"

"여깄습니다."

마에스트로의 명령에 뒤에서 서 있던 비서가 자료를 내밀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축제 테러와 기념회 테러. 그리고 프랑스의 켄타우로스 생포 작전. 이 세 가지에 공통점이 있더군요. 레베카?"

"… 네."

레베카는 갑작스럽게 불린 자신의 이름에 순간 당황했지만, 다행히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이 작전들에 참여했던 당신은 문제점을 알 것 같나요?"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분명히 실패할 테러가 아니었어요. 전력 분석은 완벽했으니까요. 실패하더라도 큰 피해와 혼란을 줄 수 있는 테러였는데… 이상하게 그때마다 테러를 망치는 사람이 있더군요."

탁-

마에스트로는 홀로그램으로 남자의 얼굴 하나를 띄웠다.

"이호연. 천재 마법사라고 불리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1학년생도입니다."

"…!"

레베카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벌써 판데믹에서 이호연을 눈치챘다고?

"간부들은 확실히 이 사람을 주시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간부들에게 이호연의 얼굴을 주입시키는 마에스트로를 보며 레베카는 생각했다.

'… 이거 바로 도망가야겠어.'

지금은 타이밍을 잴 때가 아니다.

판데믹에서 정보를 뜯어먹는 것도 좋지만, 이호연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자신과 이호연의 관계도 들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판데믹의 인력과 눈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이제 곧 홀몸이 아니게 될 텐데 이 기회에 은퇴해야지.

레베카는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숨을 삼켰다.

*

회의가 끝나고, 간부들도 자신들의 구역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레베카도 재빨리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그 뒷모습을 본 마에스트로의 비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에스트로님의 말대로, 배신할 것 같습니다. 처리할까요?"

"내버려 두세요."

마에스트로는 마력을 일으키는 부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조용한 회의실에서 웃음을 지었다.

"재미있네… 크흐으. 너무 재밌어."

이호연.

마에스트로는 이호연의 사진을 바라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자신이 일으킨 테러를 족족이 막아대고, 판데믹의 에이스인 레베카를 빼가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드디어 자신의 대적자 후보를 찾았으니까.

마에스트로는 손깍지를 끼며 비서에게 물었다.

"당신은 운명을 알고 있나요?"

"… 죄송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것 또한 운명. 거스를 수 없기에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같은 부품은 평생 눈치채지 못해야해요. 그래야 세상은 돌아가거든요."

마에스트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은 인간을 멸망시킬 운명이었다.

그렇다는 건 인간을 구원할 운명 또한 있다는 뜻.

"역시 실제로 만나봐야겠네요."

그가 자신의 대적자일지, 아니면 운 좋게 강해진 생도일지확실하게 구분해야 했다.

'이호연….'

마에스트로의 두 눈에 욕망이 비쳤다.

그가 자신을 만족 시켜줄지는 만나봐야 알 수 있겠지.

*

엘리스와 약속을 잡은 날 점심.

난 빵을 뜯어먹으며 스칼렛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레베카 씨는 어디 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온다고 했었는데요."

나한테도 연락이 안 오는 걸 보면 바쁜가 본데.

오늘 같이 식사라도 하려고 했더니 아쉽네.

나는 빵을 반 정도 남긴 스칼렛에게 말을 걸었다.

"스칼렛, 더 안 먹어?"

"여성의 삶은 피곤한 법입니다. 때로는 배고픔을 참아야해요."

"… 그래?"

가끔 보면 스칼렛이 제일 천상여자가 아닐까 싶다.

누구보다 여성스럽게 살고 있잖아.

"빵 안 먹을 거면 나 줘!"

"릴리아나 님 드시죠."

"근데 릴리아나 너는 그렇게 많이 먹는데 왜 살이 안 쪄?"

"서큐버스니까!"

"그놈의 서큐버스는 무적이냐?"

난 스칼렛의 바게트를 가져가 앙냥냥 먹는 릴리아나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뭐만 하면 서큐버스래.

"오후에는 엘리스 님을 만나러 가시는 건가요?"

"응. 아마 며칠이나 머무를지 정할 것 같아. 길어봤자 며칠이겠지만."

"좋은 생각이시네요."

"저녁까지 안 들어올 거야? 나 맛있는 거 먹고 싶엉."

"모르겠네. 일찍 오도록 노력할게."

"릴리아나 님. 제가 맛있는 곳으로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오! 스카웃! 너도 돈 많아?"

"걱정하지마세요."

"그래그래. 새로 들어온 후배니까 선배한테 잘하도록!"

릴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파게티를 돌돌 말았다.

난 그 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게 진짜 얼굴 믿고 까부는 거지.

예쁘고 귀엽지만 않았어도 내가 혼냈을텐데.

"난 슬슬 가볼게. 그럼 저녁은 둘이 먹어."

"알겠습니다."

"구래구래. 다녀오도록!"

분위기 참 좋네.

스칼렛이 릴리아나를 커버해주니까 마음이 편하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 나 : 레베카 씨. 숙소에 아무도 없으니까 오기 전에 연락해주세요.

레베카한테도 메시지를 보내놨다.

스칼렛과 릴리아나가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했으니, 숙소엔 아무도 없을 거다.

아무도 없는 숙소를 보고 당황하기전에미리 말해놔야지.

"그러고 보니 엘리스한테 할 말이 많네."

릴리아나에 대한 것도 말해야 하고, 켄타우로스에 대한 것도 조금은 설명해야 한다.

일정에 대한 것과 마사지에 대한 것….

시간이 부족하긴 하겠네.

"여기인가."

난 아이리스 길드의 의료팀으로 향했다.

로비에서 엘리스의 병문안 목적으로 찾아왔다고 말했더니 바로 엘리스의 병실 위치를 알려줬다.

엘리스가 미리 언질을 준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엘리스가 입원한 병실 앞에서 노크를 했다.

똑똑.

"엘리스. 나 왔어."

"열려있으니까 들어와."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환자복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엘리스가 보였다.

병실이라기엔 너무 호화로웠지만 엘리스라면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지.

"몸은 괜찮아?"

"… 너는 볼때마다 몸은 괜찮냐는 말 밖에 안 하는 것 같아. 다른 인사도 좀 해봐."

그런가.

생각해보면 항상 마사지 후에 상태는 괜찮냐는 말만 했던 것 같다.

오늘은 스윗하게 가볼까.

"헬로, 레이디."

"……."

"미안. 장난이잖아."

정색하며 쳐다보는 엘리스에게 사과하며 자리에 앉았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귀여운 토끼 모양으로 깎여있는 사과가 놓여있었다.

"이건 뭐야? 예쁘게 깎았네. 네가 한 거야?"

"아니. 언니가."

"언니? 아. 아이린 씨. 신기하네. 이런 재주도 있고."

"그러게. 대단한 사람이야."

엘리스는 고개를 끄떡이며 사과를 입으로 가져갔다.

뭔가 아이린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느낌이네.

켄타우로스 추적 작전 때 잘 대해준 게 크게 작용한 걸까.

"근데 정말 몸은 괜찮은 거지? 갑자기 입원이라길래 깜짝 놀랐어."

"… 응. 그냥 아빠 때문에 억지로 들어와 있는 거야."

"다행이네."

"흐음.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은 준비해온 거지?"

혹시나 그냥 넘어가 주지 않을까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난 최대한 여유로운 척 대답했다.

"궁금한 걸 말해봐. 대답해줄게."

"스칼렛이 다쳤을 때 튀어나온 그 여자는 누구야. 너랑 무슨 관계고, 정체가 뭐야?"

역시 그걸 물어오는구나.

사실 릴리아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엘리스라면 솔직히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엘리스는 이성적인 판단을 잘 해줄 테니까.

게다가 아이리스 길드의 딸이라서 정보도 많고, 똑똑해서 쉽게 속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엘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엘리스는 내 입이 열리길 기다리며 가만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켄타우로스부터 이야기해야겠네. 이 세상엔 지옥이라는 곳이 있어."

"… 지옥? 천국과 지옥이야? 아니면 단체의 이름?"

"네가 아는 천국과 지옥이야. 켄타우로스는 지옥에서 온 괴수고, 네가 본 그 여자도 똑같아. 지옥에서 온 서큐버스지."

"……?"

엘리스는 눈을 끔벅거리며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해가 안 되겠지.

어차피 한 번에 이해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애초에 굉장히 복잡한 관계다 보니 처음부터 속일 생각도 안 한 거고.

"미안,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해. 그럼 판데믹 부터 설명해야 하나…. 으음, 얘기가 좀 길어지겠네."

"잠시만,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물어봐."

워낙 낯선 요소들 투성이일 테니 엘리스의 질문을 받으면서 설명하는 편이 좋다.

"네가 바람둥이인 이유가 그 서큐버스때문인거야?"

"…."

나는 순간 릴리아나를 팔아먹어야하나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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