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5화 (345/648)

EP.345 345화. 케이론 (2)

이호연이 태풍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던 때.

한국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는 기말고사가 한창이었고, 점심시간인 학생 식당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험 너무 싫어!"

"이제야 하나 끝난 거 말도 안 되는데…."

"김치볶음밥 먹을 사람?!"

언제나처럼 시끌시끌한 학생 식당.

학생들의 목소리가 가득찬 이곳에 1학년 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생도 두 명이 등장했다.

"너무 짜증 나...! 대체 시험을 일주일간 보는 건 누구 아이디어야?!"

"힘내. 루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미모를 가진 두 명의 쌍둥이가 식당에 들어왔다.

오전의 필기 수업을 마치고 식당에 온 루시와 루미는, 평소처럼 나란히 앉아 불평을 시작했다.

"이건 학생혐오야...!"

"그래도 우리가 호연 씨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 그건 그렇지만. 하아."

물론 대부분은 루시의 불평이엇고, 루미는 들어주는 역할이었다.

루시는 오므라이스를 숟가락으로 푹푹 찌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이호연도 안 오고, 아카데미는 시험 기간. 우린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할까. 루미."

"호연 씨도 바쁜 모양이야. 뉴스에 켄타우로스를 잡았다고 나왔던 것 같아."

"원래는 지금쯤같이 밥 먹으면서 시험문제를 물어볼 텐데."

"... 루시는 평소에 공부를 더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공부는 힘든걸. 응? 루미. 저기 봐봐."

그때 루시의 시야에 한 명의 여성이 보였다.

생도같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는 여성.

쿨하고 깔끔한 느낌이 가득한 그녀는 스마트 워치를 보며 천천히 식당으로 걸어들어왔다.

"저, 저기... 남다은이잖아."

"응? 그러게. 다은 양이네."

요즘 따라 급격히 늘어난 실력에 이제는 이호연과 함께 천재 검사라고 불리는 남다은.

그녀는 언제나처럼 혼자 식사를 하려는 것 같았다.

"다은이도 같이 먹자고 할까? 매일 혼자 먹었잖아."

"그렇긴 하지만... 다은 양이 우리를 좋아할까?"

사실 일방적으로 다가가는 건 한 번으로 족했다.

남다은은 사실 혼자 있는 게 편할 지도 모르니까.

"좀 그런가? 게다가 우리는 연적이잖아."

"그래도 친하게 지내기로 하긴 했어...."

"생각해보면 저번에 말할 때 우리를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구."

"... 으응."

루시와 루미의 생각대로 남다은은 쌍둥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운 동생 느낌으로 생각했다.

"에이, 몰라!그냥 가보자."

"... 알겠어. 루시, 화이팅!"

"왜 화이팅이야. 너도 같이 말해야지."

"아, 알았어...."

쌍둥이들은 짧은 고민 후에 남다은에게 다가갔다.

*

"... 하으음."

식당에 들어온 남다은은 하품을 참으며 뉴스를 확인했다.

[켄타우로스 드디어 생포?! 한국의 천재 마법사의 대활약]

[프랑스 정부. 이호연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적극 추천]

[천재 마법사 이호연 매직도르 수상 후보 오르다?!]

'엄청나게 난리네.'

몇몇 과장된 뉴스들이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켄타우로스를 생포했다는 기사는 사실이겠지.

그렇다면 곧 한국에 돌아온다는 뜻.

생각하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야, 이거 봐봐. 이호연이 노벨평화상 수상한다는데."

"으휴. 그걸 믿냐? 그냥 어그로잖아."

"근데 진짜 월드클래스네. 나도 졸업하면 저렇게 될 수 있나?"

"응. 아니야. 그게 되겠냐?"

남다은은 주변의 목소리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점점 유명해지는 이호연을 보니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뿌듯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나의 작은 이호연이 이렇게 커지다니.

'물론 처음부터 거대했지만.'

처음 자신을 구해줬을 때 부터 이미 너무나 거대한 사람이었다.

남다은은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으며 이호연을 생각했다.

켄타우로스를 잡은 뒤 바쁜 건지 오늘 메시지에 답장은 없었지만, 그만큼 빨리 돌아오겠지.

냠.

남다은은 제육덮밥을 입에 넣었다.

학생 식당에서 가장 싸고 맛있는,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은 메뉴다.

릴리아나와 이호연이 돈을 잘 벌기도 하고, 먹고 싶은 걸 얼마든지 사 먹으라며 카드까지 받았지만 그녀는 항상 싼 메뉴를 돌려가며 식사를 때웠다.

자신이 번 돈이 아닌데 낭비하는 습관을 가질 순 없으니까.

다희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일이다.

"... 언제 오는 거야."

남다은은 오랜만에 외로움을 느꼈다.

그를 만나고 신영길드에게서 벗어난 이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이호연이 없어지고 나자 외로움이 다시 찾아왔다.

그때는 매일같이 느끼던 감정이라 오히려 괜찮았는데, 있다없으니까 더욱 힘들었다.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날부터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희가 있으니 외로운 티를 낼 수도 없고, 남다은은 가슴 속에 외로움을 삭힐 뿐이었다.

"밥 같이 먹을래?"

"다, 다은 양. 같이 식사하실래요?"

그때, 남다은의 앞자리에 익숙한 얼굴들이 앉았다.

루시와 루미였다.

"이호연도 없고... 심심하잖아. 같이 먹자."

"맞아요... 시, 시험은 잘 보셨나요?! 크흠."

긴장했는지 말끝에서 음이탈을 내버린 루미를 보며, 남다은은 어이없게 웃어버렸다.

이 쌍둥이는 언제 봐도 귀여웠다.

자신의 경쟁자라고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 그럼 같이 먹을까?"

때로는 이런 것도 좋겠지.

그를 위해서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가끔은 자신을 위해서.

남다은은 새 친구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

"...."

"...."

나와 스칼렛은 케이론을 멍하니 바라봤다.

케이론이 뜬금없이 마에스트로를 찬양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인간이 마에스트로를 왜 못 이겨."

"그는... 다른 인간과는 다르다."

케이론은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마 판데믹에서 있었던 일이겠지.

"뭐가 다른 건데? 잠시만, 이놈 혹시 세뇌가 남아있는 거 아니야?"

나는 룬의 결계로 케이론의 몸을 훑었다.

하지만 남은 세뇌는 없었다.

근데 왜 개소리를 하는거지?

"세뇌는 아니다. 그래. 굳이 비교하자면 마왕에게 느꼈던 기운과 비슷했다."

"마왕...?"

갑자기 마왕은 왜 나오는 거야.

"지옥의 지배자. Ruler of the Hell. 그는 처음부터 지옥의 지배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자다. 점지를 받았다고 표현해도 좋겠지."

"... 무슨 소린지 나만 이해가 안 되냐?"

"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점지니 뭐니 하는 건 유사과학이잖아.

스칼렛도 이해가 안된다듣 표정을 짓고 있었고,릴리아나는 아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 나도 그냥 돌아가서 잠이나 잘까.

"야. 근데 마왕은 네 아빠잖아. 왜 남처럼 말하냐."

사실 어제부터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왕이라도 자신의 아버지인데, 왜 남처럼 부르는거지?

"마왕은 내 어머니의 몸만을 원했다."

"... 혹시나 해서 묻지만 너희 어머니도 켄타우로스였겠지?"

"당연하지. 어머니는 일족 최고의 미녀였으니."

서큐버스 퀸과 켄타우로스를 동시에 취하는 마왕이라.

지옥은 참 무서운 곳이구나.

"게다가 어머니 말고도 수많은 여자를 거느렸다. 그런 자를 아버지라고 부를 순 없다."

"...."

왠지 옆에서 스칼렛이 날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케이론과 눈을 마주쳤다.

"크흠. 그래서 그 기운이니 운명이니 하는 게 뭔데. 설마 그냥 네 감이야?"

"... 아니. 마왕에게서 느꼈던 그 운명을, 마에스트로 그 인간에게도 느꼈다. 그에게는 운명이 흐른다. 세상이, 아니 하늘이 그를 도와주고 있다."

"그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요."

"느낌이다."

"...."

결국 개소리야?

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원작 게임에서 보던 악역들이 계속 악역이고, 착한 사람들은 계속 착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겠지.

마에스트로도 어쩌면 그런 운명을 타고난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못 참아! 빨리 가자!"

"진정해. 릴리아나. 일단 목걸이로 돌아가 있든가."

"서큐버스도 시끄러워졌군. 이제 돌아가라. 틈날 때마다 인간들이 와서 정보를 물어대는 것도 피곤하다."

케이론도 나가라는 의사를 보였다.

아마 아이리스 길드의 인원들이 심문을 꾸준히 하는 모양이네.

나는 마지막으로 케이론에게 물었다.

"케이론. 너는 릴리아나한테 복수심이 들지 않아?"

계속 궁금했던 점이다.

만약 내가 케이론이라면 릴리아나를 보자마자 죽이고 싶을 것 같은데.

그 기억에서 느꼈던 비참함은 아직도 내게 남아있었다.

"네가 본 기억. 그게 인간의 기준으로 벌써 40년 전이다. 감정도 많이 희석되었지."

"... 그럼 넌 대체 몇 살이야?"

릴리아나보다 동생이라고 했잖아.

설마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나이에 그런 기억을 겪은건가?

"여자의 나이를 물어보는 건 실례인데, 역시 무례한 인간이구나."

"너 여자였어?!"

말도 안 돼.

내가 케이론의 발언에 충격을 받아 입을 벌림과 동시에, 나와 케이론 사이을 두 여자가 가로막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개수작을!"

"가까이 오지 마! 당신도 거리를 유지하세요!"

"...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인간이 좋다고."

나는 내 앞을 막은 릴리아나와 스칼렛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릴리아나는 방금까지 졸고 있던 주제에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나한테 왜 이러는건데.

"거짓말이다. 내가 여자라면 Killer Queen에게 복수심이 남아있었겠지. 암컷끼리는 질투심이 심하니까."

"... 그래. 뭐 알아서 해라."

이제 귀찮아졌다.

그냥 빨리 나가야지.

더 여기 있다가는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아.

"게다가, 저건 내가 아는 Killer Queen이 아니다. 이미 모든 걸 잃은 서큐버스 하나를 죽인다고 내 마음이 개운해지지는 않는다. 내 힘으로 직접 Killer Queen을 무릎꿇리는 게 아니라면 복수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 그것이 Wild Gladiator. 나 케이론의 긍지다."

"...."

자신 있게 소신을 얘기하는 케이론을 보며 생각했다.

'지랄하네.'

킬러퀸이랑 와일드 어쩌고만 안했으면 참 멋있었을 텐데.

*

"애매하네요."

"... 응. 결국 릴리아나의 과거에 대한 것도 별로 못 얻었어."

우리는 케이론을 내버려 두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시원한 해답 같은 게 없었다.

물론 나름 소소한 정보를 많이 얻고, 지옥에 대해 궁금해하던 릴리아나의 향수병도 고쳐줬다.

고생에 비해 아쉬운 게 문제지, 결과 자체는 괜찮았다.

'이 정도면 괜찮네. 정보통도 하나 생겼고.'

언제든지 마왕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창구가 생긴 것도 좋은 일이다.

판데믹의 사도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케이론은 어떻게 할 거죠?"

"일단 내버려 둬야지. 괜히 갈구지 말고 부드럽게 물어보면 다 말해준다고만 보고하자."

"알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케이론을 직접 관리하는 것도 좋을텐데.

강한 전력이기도 하고, 지옥에 대해 아는 게 많으니까.

이건 아이작에게 한 번 말해봐야겠다.

- 빨리 가서 자고 싶어.... 하으.

"나도 졸리다."

릴리아나의 하품 소리를 들으니 나도 피로가 쏟아졌다.

이제 진짜 쉴 시간이다.

"벌써 자려고요? 이제 저녁인데."

"... 자게 해 주면 안돼? 오늘 스케줄이 너무 빡셌어."

"저도 한 번 같이 자보고 싶어서요."

"... 같이 자자."

스칼렛은 내 옆에 몸을 딱 붙이며 날 올려다봤다.

여우같은 요망한 미소를 짓고있는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 예상이 된다.

"혹시 진짜로 자기만 할 생각?"

"...."

난 미소를 짓는 스칼렛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스칼렛은 그제서야 내 옆에서 떨어졌다.

그래.

피곤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좀 늦게 잔다고 설마 뒤지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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