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4화 (344/648)

EP.344 344화. 케이론

나는 아직도 올라가있는 릴리아나의 입꼬리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잘 쉬고 있을줄이야. 혹시 혼자 우는 건 아닐까 걱정했거든."

"겁날 게 없으니까! 천재 마법사가 내 편이라구!"

"그래그래. 고맙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천재 마법사라는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가 옆에 앉자 릴리아나도 웃긴 영상이 재생되던 모니터를 끄고 몸을 일으켰고, 스칼렛은 언제나처럼 내 옆에 자연스럽게 섰다.

"근데 무슨 일이야? 스카웃하고… 응?"

그때, 히히 웃던 릴리아나가 갑자기 스칼렛에게 다가갔다.

킁킁. 킁킁.

그리고는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뭐해?"

강아지처럼 스칼렛의 몸에 얼굴을 박은 릴리아나는 입을 벌리며 천천히 스칼렛의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스카웃. 너 설마…."

"… 죄송합니다. 계속 조심했지만, 마수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마수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 좋은 관계 아니였어?"

스칼렛은 릴리아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고, 릴리아나는 주먹을 꽉 쥐고 자신의 가슴 앞에 가져갔다.

"스카웃 너… 결국 선을 넘었구나!"

짝짝짝-

릴리아나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신나게 박수를 쳤다.

마치 힘들게 뒷바라지한 자식이 서울대에 붙은 어머니의 모습 같았다.

아니,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난 릴리아나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 그렇게 좋냐?"

"당연하지. 마음 같아선 처녀 파티라도 열고 싶을 지경이야!"

"그건 좋은 생각 같은데? 나도 찬성."

처녀 파티라니. 듣기만 해도 재밌을 것 같다.

특히 스칼렛의 처녀 파티는 못 참지.

"헉 그럼 아이디어를 짤까?!"

"음, 그러면…."

"… 그만해주시죠. 마음이 차게 식어버릴 것 같습니다."

"미안."

난 스칼렛에게 팔짱을 끼며 빠르게 사과했다.

더 까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다행히 스칼렛도 한숨을 쉬었을 뿐 내 팔짱을 거부하진 않았다.

"그래서, 처녀 파티가 아니면 무슨 말 하려구? 이 릴리아나 님에게 보고하러 온 건가?!"

"… 처녀 파티 얘기는 그만해. 케이론을 찾아갈까 해서."

"케이론…?"

릴리아나는 싫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을 찌푸렸다.

안좋은 기억은 아예 언급하기 싫겠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계속 피할 순 없다.

지금 우리가 풀어나갈 수 있는 방향은 그쪽 뿐이니까.

난 불안해하는 릴리아나의 손을 꼭 잡았다.

"릴리아나. 난 네 과거가 뭐든 전혀 상관 안 해. 그건 스칼렛도 마찬가지야."

"저는 사실 릴리아나 님이 서큐버스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난 순수혈통 서큐버스거든!"

"그만큼 익숙하고 편해서 그래."

"맞습니다. 릴리아나 님이 마왕의 딸이라고 해도 실감이 안 나니까요."

"으음…."

"켄타우로스 놈한테 당하기만 할 순 없잖아. 가서 정보라도 뜯어내자."

어차피 케이론은 그곳에 있겠다고 했다.

아마 기억 구슬을 보고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겠지.

우리의 기분을 망쳤으니 뭐라도 뜯어내야한다.

"그런데, 그 케이론이라는 켄타우로스가 안 도망친다는 확신이 있나요? 역시 마력 보호구가 안 통한다고 보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확신은 없지만, 아마 거기 있을 거야. 그리고 보고하면 괜히 절차만 복잡해질걸."

"하긴, 대형 길드란 놈들은 다 똑같으니까요."

"응. 뭐, 인간 세상에 오고나서 지금이 제일 편하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내 느낌상 기억 구슬을 본 릴리아나의 반응을 궁금해할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복수심도 있지 않을까.

사실 기억을 보고나니 케이론이 어째서 릴리아나를 내버려 뒀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다.

나라면 원수를 만나자마자 죽이려고 할 텐데, 케이론은 이상하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으으으! 모르겠어! 마음대로 해! 가자!"

그때 미간을 누르던 릴리아나가 소리를 질렀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모양이다.

"그래. 그 미친 켄타우로스한테 따지러 가자고. 물어볼 게 많아."

"알았엉. 나도 따지러 갈 거야."

"그래그래."

릴리아나는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잡은 손에 힘을 강하게 줬다.

*

바깥은 어두웠다.

'생각보다 안 피곤하네.'

오늘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다.

엘리스 자매와 섹스 후에 바로 켄타우로스 생포 작전을 했고, 생포한 케이론과 대화를 나눴다.

케이론의 기억 구슬을 보며 릴리아나의 과거를 알았고 스칼렛과 섹스까지 했다.

사실 스칼렛이 다치기 전까지만 해도 전투에서 실수를 할 정도로 피곤했는데, 스칼렛의 부상과 릴리아나의 과거 같은 큰 사건이 계속 생기다 보니 잠이 다 사라져버렸다.

몸이 각성상태에 들어간거다.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일을 끝내는 게 낫겠지.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아이리스 길드의 본관으로 향했다.

켄타우로스를 생포해서 그런지 아이리스 길드의 분위기도 가벼웠다.

사람들의 얼굴에 여유로움이 흘렀다.

몇 시간만에 재방문한 나를 로비의 안내원이 약간 이상한 눈으로 봤지만, 다행히 말을 걸진 않았다.

- 저번에 올 때는 엄청 신났는데.

"그러게."

저번에는 무슨 질문을 할까 신나게 얘기했었는데, 릴리아나도 텐션이 높지 않았다.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케이론에게 물어볼 질문을 생각했다.

여러가지 의문 중 제일 중요한 건 세 가지였다.

지옥의 망나니들은 대체 누구인지, 릴리아나가 어떻게 해서 기억을 잃었는지, 마지막으로 지옥의 마왕이라는 놈의 정체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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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의 망나니 소환 계약서 ]

지옥의 망나니들을 불러낸 자가 당신인가?

4마리의 망나니 중 하나를 골라라.

1. 인육에 미친 정육점 사장 악마 루시퍼

2. 지옥 아카데미 아다폭격기 금태양 인큐버스

3. 20년째 F급 용병. 백전백패 노장의 저력 켄타우로스

4. 50살째 노처녀 거미줄 치기 장인 서큐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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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아나도 그렇고 케이론도 그렇고 망나니 소환 계약서에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둘도 마왕의 자식이라는 가능성이 생긴다.

혹시 내 적이 될 수도 있으니 정보를 알아놓는 게 좋겠지.

릴리아나의 정보나 마왕의 정보도 당연히 알아야 한다.

특히 마왕의 정보는 내 메인 퀘스트와도 연관이 있다.

약점 같은 대단한 건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케이론이 마왕의 자식이니까 꽤 도움이 될 정보가 있을거다.

"안에 있는 모양입니다."

"응. 다행히 안 도망갔네."

난 문 너머로 보이는 케이론을 확인하고 수감실의 문을 열었다.

케이론은 여전히 효과가 없는 마력 구속구를 쓴 채 방 안에 우뚝 서 있었다.

뭐, 이러면 도망갈 생각은 없다고 봐도 되겠지.

"의외로 충격은 안 받은 모양이군. 여자친구를 한 명 더 데려온 걸 보니."

케이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봤다.

의외로 목소리에 아쉬움이나 분함은 없었다.

"뭘 기대한 거냐."

"Killer Queen의 정부가 그녀의 실체를 알고 타락하는 것까지 기대했었다."

"… 너무 구체적인데."

퍼엉-

케이론의 말에 목걸이로 변해있던 릴리아나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이 말놈아!"

"흐음. 그래서 왜 찾아온 거지? 그 기억 구슬을 보고도 Killer Queen의 옆에 있다면 나도 해줄 말이 없다."

"물어볼 게 있어서. 릴리아나는 그 뒤에 어떻게 된 거야? 우린 정보가 하나도 없어."

"그걸 내가 알려줘야 할 의무라도 있나?"

"그럼 알려줘야지. 이 나쁜 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릴리아나 님. 진정하세요."

릴리아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스칼렛이 릴리아나를 말리는 동안, 나는 케이론의 앞에 섰다.

"… 안 알려줄 거면 왜 여기 있는데? 너도 뭔가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원하는 게 있다면 들어줄게."

케이론이 여기 있는 이유.

물론 그의 말대로 릴리아나의 멘탈이 부서지는 걸 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뿐만은 아닐 거다.

말하던 태도도 그렇고, 릴리아나에게 복수심을 불태우지 않는 것도 그렇고 이놈도 분명 숨기고 있는 게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거라면 들어줘야지.

"인간이 내 의도를 해석할 수 있는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 이상한 소리하지말고. 네가 보여준 기억 뒤에 릴리아나의 행보는 어떻게 된 거지? 주워들은 정보들이 있을 거 아니야."

케이론이 흘러가는 말로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언급했지만, 그것 말고도 정보가 분명히 있을 거다.

"나도 모른다. 그때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던 때니까. 처음엔 Killer Queen에게 복수할 마음만으로 구질구질하게 살아남았지. 마왕의 후계자 자리를 내려놓고 용병단에 들어갔다. 힘과 세력을 키워 마왕의 자리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지만 Killer Queen은 빠르게 세력을 불려 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지배하는 영역을 넓혀갔다고 해야겠지. 계승 1순위인 루시퍼와 승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Killer Queen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아예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증발해버렸다. 그때부터 내 삶의 목적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 어."

"그때가 F급 용병 패를 처음 받았을 때의 일이었지. 그저 조용히 힘을 키울 생각이었어. 하지만 …."

나는 끝없이 말을 이어가는 케이론을 보며 슬쩍 옆에 있는 스칼렛을 바라봤다.

스칼렛도 마침 날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정보를 풀겠네.

*

"강해질수록 느꼈다. 내 재능으로는 절대 Killer Queen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마왕의 자리가 공석이 된다고 해도 애초에 그 자리를 탐내는 것 자체가 내게는 욕심이었다. 단순히 젊은 혈기에 불과했지."

약 한 시간 정도 케이론의 인생 일대기를 듣다 보니 나도 슬슬 졸려왔다.

"… 하으, 이거 언제 끝나는 거야?"

"쉿. 내버려 두면 우리가 궁금한 걸 다 알 수 있을 거 같아."

난 하품을 하는 릴리아나의 엉덩이를 톡톡 쳐줬다.

케이론은 아직도 말을 하고 있었는데, 이놈 알고 보면 혹시 외로웠던 거 아닐까.

사실 대화 상대를 원해서 여기 있던 거 아니야?

"… 쉽지 않군요. 이런 상대는 상대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정보는 잘 주잖아."

"대부분이 쓸모없는 정보잖아요. 마치 당신이 하는 여자 얘기 같아요."

"나 상처받는다?"

스칼렛은 후후 웃으며 내 새끼손가락에 손가락을 걸었다.

약간 상처였지만 귀여우니까 봐줘야지.

"…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이상한 소환 마법진이 떠오르더군. 평소였다면 절대 걸리지 않았을 수준 낮은 마법진이었는데, 무언가 끌림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넣었더니 인간 세상에 소환되어있었다."

"아, 그래? 그 뒤에는 세뇌에 걸려서 테러를 도운 거고?"

"그렇지."

드디어 끝났다.

난 엄청난 정보의 홍수 중에서 쓸만한 정보들을 취합했다.

이럴때는 기억력이 좋아지는 특전이 참 도움이 많이 된다.

"그래서, 릴리아나는 하루 아침에 사라졌고. 마왕은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1년간 휴식기에 들어갔고. 인큐버스와 루시퍼도 마왕의 후계자인 거 맞아?"

"맞다. 인간, 어떻게 지옥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거지?"

"…."

네가 다 말해줬잖아.

꽤 시간이 걸렸지만, 나름 쓸만한 정보들을 얻었다.

마왕이 1년의 휴식기에 들어갔다면 판데믹에서 무슨 짓을 해도 1년은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나는 머리속에 있던 원작 게임의 멸망 루트를 지워냈다.

"나 이제 여기 있기 싫어… 다 들었으면 가자. 살려줘…."

"잠시만. 케이론, 판데믹에서 마에스트로라는 놈 본 적 있냐?"

"마에스트로라. 확실히 그렇게 불리는 인간이 하나 있었지. 인간치고는 이름이 멋있는 놈이었다."

"… 그 인간에 대한 정보도 있어? 사소한 거라도 괜찮아."

마에스트로와 판데믹은 결국 스토리에서 마왕을 소환하는 주체.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없애야 하는 적이다.

지금은 정보가 너무 부족했으니 뭐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는 너의 적인가?"

"응?"

케이론은 내 질문에 즉답했다.

게다가 쓸데없는 말이 아니라 확실한 대답이었다.

"그 마에스트로라는 인간이 너의 적이냐고 물었다."

"…맞아. 어떻게든 죽여야하는 놈이야. 소중한 것들이 많이 걸려있거든."

"다른 정보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말해줄 수 있다."

"뭔데?"

케이론은 불쾌한 기억이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날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포기해라. 인간은 절대 그를 이기지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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