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0화 (340/648)

EP.340 340화. 늑대와 미녀 (2) (일러추가)

방금전까지 울먹거리던 릴리아나는 눈물 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날 닦달하기 시작했다.

"빨리 나가. 스카웃 찾아가라구!"

"지금? 이따 가도 되지 않아?"

퍽- 퍽-

릴리아나는 내 대답에 조용히 주먹을 들었다.

아니, 주먹질은 왜 하는 거야. 아프잖아.

난 가슴을 때리는 릴리아나의 주먹을 막으며 고민했다.

스칼렛.

생각해보면 스칼렛과 좋은 분위기가 몇 번이나 망가지긴 했다.

아마 다른 히로인이었다면 진작 방책을 마련했겠지만….

스칼렛의 이미지가 워낙 쿨해서 신경을 안 썼을지도 모르겠다.

"스칼렛은 이해해줄거야. 괜찮아."

"… 도대체 여자의 마음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게 어떻게 여자를 만나는 거야?"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

나도 상처라는 걸 받는 사람인데.

저 정도면 치명상이다.

심지어 서큐버스에게 저런 평가를 듣다니, 인생을 헛살은 건가.

"스칼렛이 얼마나 뒤에서 열심히 해줬는데. 그러면 안 돼!"

"… 그건 나도 알지."

스칼렛이 나를 많이 도와준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녀가 없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결했을지 머리가 아파오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여자의 마음….'

그만큼 어려운 게 없긴 하지.

생각해보면 스칼렛도 그렇다.

첫 만남 때 벽을 타고 날 따라왔을 때는 뭐 이런 미친년이 있지싶었다.

 계약서를 쓰자마자 배신할 생각을 하는 진짜 이상한 여자였으니까.

그러다가 릴리아나에게 교육을 받아 순해지고, 친해진 뒤에는 어느새부터 쿨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오늘 나눴던 대화들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츤데레 쪽이란 말이야.

아니, 츤데레 느낌은 아니다.

츤데레라기보단 쿨한 척? 관심 없는 척?

쿨데레라고 표현하면 되는걸까.

쿨한 모습이면서도 가끔 감정을 드러낸다.

"으이구, 바보야…."

품에 안겨있는 릴리아나는 억울한 내 표정이 답답한 듯, 이마로 가슴을 퍽퍽 때렸다.

"아파. 야, 아파."

"넌 더 아파야돼! 나쁜 놈!"

"… 오늘은 릴리아나 너랑 있으려고 했지."

난 슬슬 아파오는 가슴 통증을 느끼며 릴리아나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다행히 릴리아나에게 아까 같은 불안증세는 사라졌지만, 혹시 몰라서 오늘 밤은 같이 있을 생각이었다.

아까의 릴리아나는 너무 불안정해 보였으니까.

"으으응… 아니."

릴리아나는 내 옷에 얼굴을 비벼 눈물 자국을 지우고, 날 올려다봤다.

충혈된 눈은 여전했지만, 표정은 밝았던 릴리아나로 돌아와 있었다.

"난 괜찮으니까. 스카웃한테 가."

"정말?"

"웅. 난 이미 힘이 났거든."

꾸욱-

릴리아나는 다리를 내 허리 뒤로 감으며 내 몸을 꽈악 압박했다.

기분 좋은 압박감과 따뜻함에 나도 릴리아나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강한 남자는 여자를 많이 거느릴 수 있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있어야 해."

"응."

"둘이 있을때는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고 꽉 안아주라구."

"릴리아나. 내 마음 알지? 사랑해."

"잘했어. 그렇게만 하면 얼마나 좋아. 여자들은 그거면 만족할 수 있어. 다음에는 꼭 먼저 말해야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릴리아나는 어린아이를 칭찬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항상 쓰다듬는 포지션이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네.

예쁜 여자가 해주는 건 뭐든 좋거든.

난 웃으며 릴리아나를 바라봤다.

"금방 올게. 릴리아나."

"참고로 난 3p도 소화할 수 있어."

"…."

난 히히 웃는 릴리아나를 보며 방을 빠져나왔다.

*

똑똑-

스칼렛의 방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스칼렛. 나야. 안에 있어?"

부스럭- 부스럭-

방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실 방 안에서 스칼렛의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으니, 방 안에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의를 지켜서 들어가야지.

"안에 없나? 스칼렛? 문 연다?"

"자, 잠시만. 아니, 잠시만요. 안에 있습니다."

부스럭거리기만 하고 대답이 없길래 문고리에 손을 올렸더니 그제서야 대답이 왔다.

스칼렛은 내가 찾아올줄 몰랐는지, 꽤 당황한 목소리였다.

덜컹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

안쪽에서 스칼렛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스칼렛. 있었구나."

"무슨 일이신가요. 릴리아나 님과 대화는 끝나신 건가요?"

"응. 아, 들어가도 되지?"

"어, 어… 네."

스칼렛은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는데, 오래 보다 보니 저것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살짝 기분 나쁜 표정.

★ 히로인 상태창

[스칼렛]

- [ 호감도 : 90 ]

- [ 성욕 : 75 ]

- [ 식욕 : 40 ]

- [ 피로도 : 60 ]

현재 상태 : 릴리아나 님은 어떻게 된 거지? 이 사람이 왜 벌써 온거야? 혹시 릴리아나 님을 버리고 온건가?

스칼렛은 언제나와 같이 마음속으로는 날 욕하고 있었다.

그래. 얼마든지 욕해라.

"나가려고 하던 참이야?"

"… 네."

난 스칼렛의 옷을 확인했다.

스칼렛은 외출복을 차려입고 있었는데,집에서 입을 옷은 아니니 아마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었겠지.

"숙소로 돌아가려고?"

"맞습니다. …호연 님은 릴리아나 님을 보러 간 거 아니었나요?"

"빨리 끝내고 왔지. 너랑 얘기하려고"

털썩-

난 스칼렛의 침대에 주저앉았다.

"하아, 왜 오신 거에요? 릴리아나 님을 더 위로해주셔야죠."

"… 너 보려고 온거야. 스칼렛. 여러모로 신경 쓰게해서 미안해."

얘들은 서로 위로해주라고 난리네.

착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러다가 속으로 다 곪는거다.

사람은 이기적으로 살아야해.

"갑자기 말입니까?"

"응. 내가 네 입장을 신경 못 써줬잖아. 너도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 기껏 구해줬더니 이상한 짓거리나 하고있으니."

"… 알긴 아시네요."

"아무튼 릴리아나는 걱정하지마. 진정시킨 후에 재우고나니까 네가 생각나서 바로 온거야."

난 미소를 지으며 스칼렛을 바라봤다.

총총총 내 옆으로 다가온 스칼렛은,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릴리아나 님이 시켰죠?"

"… 무슨 말이야. 릴리아나가 왜 나와."

"호연님이 이렇게 센스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릴리아나 님을 재우다니 섹스하다가 같이 잠드는 게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어요."

"난 대체 너한테 무슨 취급을 받고 있는 거냐…?"

"상당히 나쁜 새끼요."

"그래? 아까는 무슨 일을 벌여도 해결할 수 있다는 패기와 자신감…."

"… 조용히 하세요."

스칼렛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꽉 쥐었다.

더 말했다가는 저걸로 맞겠네.

뭐, 놀리려고 찾아온 건 아니니까.

"스칼렛."

"네."

스칼렛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와 허리 밑까지 내려간 금발.

약간 서운해 보이는 눈매.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왜 실망했는지도.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저한테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릴리아나 님이 괜찮다고 했다면요."

"아니, 난 릴리아나만큼 너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지금까지 도와줬던 일도 그렇고, 날 구해준 것도, 정신을 차리게 해준 것도 모두 고마워. 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 절 부끄럽게 만들려고 오신 건가요."

난 침대에서 일어나 스칼렛의 앞에 섰다.

나보다 조금 키가 작은 스칼렛은, 자연스럽게 날 올려다봤다.

"네가 그랬잖아. 3분 카레 취급할 생각이냐고. 난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그건 참 감사하네요."

"혹시라도 그런 마음이 남아있을까 봐."

"… 그건 저도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그래도 제 말에 귀 기울여줬다니 기분이 좋네요."

"응. 네 말대로… 욕심을 좀 부리려고. 어떻게 수습할지는 일단 일을 벌이고 생각할 거야."

"그게 무슨…."

"스칼렛 라이트."

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스칼렛이 항상 말하던 대로.

내가 리드해줘야지.

물론 그녀가 바라는 남자의 리드가 얼만큼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남자답게 먼저 움직이라고 말하던 스칼렛이잖아.

불만은 없겠지.

"좋아한다. 스칼렛 라이트. 너 내꺼해라."

"… 지금 바로 말하는거에요?"

"당장 말하고 싶었어. 거절은 거절이야. 스칼렛."

"하아…."

내 말을 들은 스칼렛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마에 손을 얹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놈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는 요리사 같았다.

사실 멋지고 분위기있는 고백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진심을 담았다.

잠시 조용히 입을 우물거리던 스칼렛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남자는 다 늑대라는 말이 있잖아요."

"응."

스칼렛은 평소같은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남자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직업상 이상한 놈들을 많이 만나기도 하고… 남자는 늑대라는 말에 극히 공감하고 있거든요."

"그렇구나."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살면서 늑대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특히 당신같이."

"…."

툭─

스칼렛은 검지를 들어, 내 가슴을 꾸욱꾸욱 눌렀다.

"사실 그런 늑대들에게 넘어가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멍청하다고 생각했어요. 인생을 왜 저런 곳에 낭비하는 걸까하고. 어차피 남자들은 새로운 여자에 눈을 돌리기 마련인데."

"…."

"하지만, 이 남자가 늑대인 걸 알아도 속아주고 싶을 때가 생기네요. …지금처럼."

"스칼렛…!"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내 가슴을 누르는 스칼렛을 보며, 난 조심스럽게 스칼렛을 품에 안았다.

내게 안긴 스칼렛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를 다른 멍청한 여자처럼 만들지 않을거죠?"

"당연하지. 스칼렛.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거니까."

내 것으로 만들면, 포기하지않는다.

그렇게 마음먹은 이상 해내야겠지.

대답을 들은 스칼렛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안겼다.

그리고 서운한 말투로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고백이라는 게 서로 좋아하는 남녀의 마지막 확인작업이라고 하지만… 조금은 로맨틱한 걸 원했는데, 로맨틱이랑은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미안. 솔직히 그런 건 잘 못 하겠더라."

"하아, 그래요. 어차피 기대도 안했어요."

"다음엔 어떻게든 준비해볼게."

"그럼 오늘만 넘어갈 테니까….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어요."

쪽-

스칼렛은 내 멱살을 잡아당기며 상체를 당겼고, 그대로내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버드키스.

스칼렛에게서는 여성스러운 체향이 확 풍겨왔다.

섬유유연제와 살내음이 섞인 기분좋은 향.

섹시한 여자의 매력이 느껴졌다.

난 키스를 이어가며 스칼렛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혀라도 집어넣고 싶었지만, 스칼렛의 말대로 그녀에게 맞췄다.

꽤 길었던 키스가 끝난 후, 입을 뗀 스칼렛은 나를 보며 말했다.

"왜, 왜 아무것도 안 하는거에요."

"네가 가만히 있으라며."

"…."

스칼렛은 답답한 듯 눈을 찌푸렸다.

이것도 내가 잘못한 거야?

스칼렛은 내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은 살짝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그녀의 손은 마치 스칼렛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 처, 첫 경험은 완벽하게 하고 싶은걸요. 이 다음은 경험이 많은… 당신이 리드해줘야지."

자신이 말하고도 부끄러운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는 스칼렛의 모습은… 너무 귀여웠고, 내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참을 수가 없잖아.

"스칼렛!"

"아, 아읏…."

난 그대로 스칼렛을 끌어안고 침대에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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