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7화 (337/648)

EP.337 337화. Killer Queen , 릴리아나 칼리오페 (2)

지이잉-

"…?!"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말한 케이론은 갑자기 마력을 일으켰다.

기분 나쁘고 칠흑 같은 지옥의 마력은 언제봐도 기분 나빴다.

…근데 마력은 어떻게 쓰는 거야?

"아니, 너 마력을 쓸 수 있어?"

"당연히 쓸 수 있다. 이제 힘을 다 되찾았으니."

난 놀라며 케이론에게 말을 걸었다.

마력 제어구는 아직도 작동 중이었지만, 케이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력을 뽑아냈다.

"… 그럼 왜 탈출 안 하고 이러고 있냐?"

"지옥의 Killer Queen이 찾아올 테니,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찾아온 건 Killer Queen이 아니라 이상해진 서큐버스군"

"이상하다니! 이상한 걸로 치면 네가 제일이거든?!"

"그렇긴 하지. 다리가 4개인 놈이 제일 이상한 게 맞아."

난 릴리아나의 말에 동조해줬다.

하지만 케이론은 우리의 말에 눈도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마 기억을 잃은 것 같은데, 대충 예상은 된다. 그 Killer Queen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부터 이상하긴 했지."

"… 케이론. 시끄럽고 증거나 내놔봐."

킬러퀸인지 데스 엠프레스인지 하나도 안 궁금하다.

물론 멋있긴 하지만, 입으로 듣고싶지는 않다고.

"일단 내 정체부터 말해주지."

빠득- 빠지직-

케이론의 주변을 검은 마력이 회전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이 달라졌다.

아우라라고 해야하나.

임솔이나 아이작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압도당하는 느낌이 생겼다.

"마왕의 4번째 아들이자 마왕 계승 제4순위인 케이론이다. 어떻게 보면 저 서큐버스의 동생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 아버지의 피는 같으니까."

"… 너도 마왕의 아들이라고?"

"그렇다. 비록 빠르게 벽을 느끼고 용병 계로 도망쳤지만."

"우리 집에 동생 같은 건 없는뎅…."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릴리아나에게 사정이 있는 건 대충 예상했지만, 마왕의 딸이라니.

게다가 이 이상한 새끼도 마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 너는 영어로 된 이명 같은 거 없냐?"

"인간 따위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궁금하다면 말해주도록 하지."

"안 궁금하니까 일단 증거부터 내놔봐."

"으음, 동생. 동생…."

딱 봐도 물어봐주길 원하는 것 같은데, 절대 안 물어볼거다.

릴리아나는 혼자 동생에 대해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평생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 지옥 공무원은 자식이 여러 명이면 장학금을 준다고!"

"… 너 방금 어머니가 고블린 국수집을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나…? 그럼 아마 퇴직하고 국수집을 했었나?"

생각해보니 분명 저번에도 지옥 공무원이라고 했었다.

지옥의 공무원은 다 쓰레기라고 했었잖아.

게다가 릴리아나가 인간 세계에 소환된 후의 일이니 공무원을 그만두고 국수집을 했다면 릴리아나가 기억하지 못 할리가 없다.

이거 뭔가가 이상한데.

"이걸 봐라."

우득. 우드득-.

내가 릴리아나에게 좀 더 말을 걸려고 할 때, 케이론이 가슴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칠흑 같은 색이 응축된 마력 구슬.

내 주먹과 비슷한 크기의 구슬이지만, 안에 담긴 마력의 양은 엄청났다.

"… 이건 뭐야."

나는 구슬을 손에 쥐고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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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론의 기억 구슬]

▶ 상등급

▶ 마왕의 아들 케이론이 자신의 기억을 담아 만들어낸 구슬. 조작한 이미지가 아닌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담았다.

▶ 사용 시 케이론의 기억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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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구슬?"

"그래. 내 기억을 담았으니 서큐버스와 직접 확인해라."

"여기 이상한 기억을 담아서 우리 정신에 테러하는 거 아니야?!"

"마왕의 후계자는 그런 더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확인하지 말고 나중에 확인하도록. 내가 지낼 공간에 구역질을 하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

설명만 들어도 좀 쫄리는데.

대체 뭐가 담겨있는 거야.

"용건이 끝났으면 돌아갔다가 생각이 정해지면 다시 찾아와라."

"… 넌 어쩔 건데."

이렇게 강한 마력 제어구가 소용이 없었다.

물론 나도 시간이 있다면 탈출했겠지만, 이건 마력 제어구의 문제가 아니다.

내게 주어진 마력에 대한 재능은 세계 최고였다.

그러니 이 세계의 기술로 날 붙잡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아마 레베카나 아이작이 이 제어구에 갇혔다면 탈출하지 못했을거다.

임솔 교수님은 워낙 괴물이라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데 이렇게 쉽게 탈출했다는 건, 아이리스 길드의 사람들이 지옥의 마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말해주지 않은 내 탓일지도 모르겠네.

"이곳에서 기다리지. 어차피 그 붉은 머리 여자의 도움이 없다면 돌아가봤자 세뇌에 걸릴 뿐이니 잠시 몸을 쉬겠다."

"하아, 그래. 뭐 마음대로 해라."

케이론을 두고 가는 게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만약 탈출하려고 했다면 진작 했을테니까.

혹시 나와 릴리아나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전략일까 생각해봐도 릴리아나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 리가 없으니 그런 건 아닐 거다.

"증거가 아니면 혼날 줄 알아!"

"확인이나 하도록. 기억이 없더라도 그 독불장군같은 성격은 변하지 않았군."

"… 일단 돌아가자. 릴리아나."

릴리아나를 진심으로 믿고 있지만, 가슴 속에서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내 상태창으로 봤을 때 케이론의 기억 구슬이 가짜일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있다는 건데….

모르겠다. 일단 확인해보면 알겠지.

"… 집 나가지 말고 잘 있어. 케이론."

"걱정하지 마라. 인간 세상에 온 이후 이렇게 편한 적은 처음이다."

난 케이론에게 주의를 준 후 목걸이로 변한 릴리아나를 데리고 수감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vip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나올 때 몸 수색 같은 건하지 않았다.

- 나 의심하는 거 아니지? 나 동생 없엉…!

"그런 거 아니야."

릴리아나를 의심하긴 싫다.

하지만 예전부터 릴리아나의 기억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

심지어 얼마 전에 자신이 말했던 것도 까먹었다면, 과거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역시 기억 구슬을 보고 생각해봐야겠어.'

모든 건 그 이후에 달려있다.

릴리아나의 정체인지 뭔지도 확인해야 하니까.

*

"오셨습니까."

"스칼렛? 몸은 괜찮아?"

"스카웃! 움직일 수 있구나!"

숙소에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우릴 맞이하는 스칼렛의 모습이 보였다.

"예. 걱정해주신 덕분에 좋아졌습니다. 아마 호연 님의 마사지 덕분이 아닐까요."

"정말… 다행이다."

혹시 후천적인 장애라도 남으면 얼마나 죄책감이 들었을까.

아니, 죄책감이 문제가 아니지.

어쩌면 나와 스칼렛이 원래 관계로 돌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릴리아나가 스칼렛의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스카웃! 마침 다행이야. 잠깐 우리 좀 지켜줘."

"… 예?"

"잠깐 봐야 할 게 있거든. 그냥 옆에 서있으면 돼."

난 케이론에게 받은 기억 구슬을 꺼냈다.

여전히 기분 나쁜 마력을 뿜어내는 기억 구슬을 보고, 스칼렛도 살짝 표정을 찌푸렸다.

"불쾌한 느낌이 드네요. 이건 뭐죠?"

"케이론에게 받은 기억 구슬이야. 릴리아나에 대한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

"… 케이론이요?"

"아, 그 켄타우로스 이름이 케이론이거든."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짓을 하셨길래 괴수와 통성명까지 하신 거죠?"

"내가 친화력이 좀 좋잖아. 환자에게 부탁하는 게 미안하긴 한데, 혹시 누가 찾아오면 말만 좀 해줘."

"…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스칼렛을 보며 마력을 일으켰다.

내 마력에 반응한 마력 구슬은, 조금씩 빛을 내기 시작했다.

"릴리아나. 너도 손 올려. 같이 봐야지."

"아, 응! 이놈이 무슨 사기를 치는 지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겠어."

"그래그래."

"잘 다녀오십시오."

제발 이상한 일은 아니길 바라면서, 나는 내 몸을 덮는 암흑을 받아들였다.

*

스윽- 스르륵-

눈을 뜬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잠깐 조는 것처럼 육체와 정신이 내 간섭을 벗어났다고 느끼자마자, 세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 여긴 어디야."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혼잣말을 했지만, 느껴지는 어색함과 동시에 깨달았다.

이건 실제 세상이 아니었다.

케이론의 기억 중 일부.

내가 끼어들 수도 없었고, 영화처럼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릴리아나는 없는 건가?'

나와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마 똑같은 광경을 다른 곳에서 보고 있는걸까.

주변을 둘러보자 처음 보는 세상이 펼쳐졌다.

하늘에 해가 떠 있는데도 밝지 않았고, 모든 공간에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예전에 꿈도 희망도 없는 다크판타지 배경의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물론 실제로 보고 있는 지금이 훨씬 기분 나빴지만.

저벅- 저벅-

눈앞에는 한 마리의 켄타우로스가 보였다.

이게 케이론의 어렸을 때 모습인 걸까.

몸의 크기는 비슷했지만, 얼굴에서 약간 앳된 티가 났다.

단단해 보이고 고급스럽게 치장되어있는 갑주.

전쟁이라도 하는 듯 무장을 단단하게 한 케이론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 젠장. 정말 모두 죽은 건가?"

깡-

케이론은 커다란 대검으로 바닥에 있던 해골을 후려쳤다.

배경이 지옥이니 사람은 아닐 테고, 아마 인간형 괴수의 뼈겠지.

자세히 보니 주변 땅의 곳곳에 뼈가 즐비했다.

언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뼈와 살점으로 만들어진 무언가라는 걸 알아챘을 때는 기분이 꽤 더러웠다.

케이론은 겁이 나지도 않는지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아마 전쟁에 익숙한 지옥출신이니까 그렇겠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뼈 무더기는 늘어났고 시체 썩는 냄새가 풍겨왔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케이론은 결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언덕 하나를 넘었고, 그와 동시에 섬뜩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삐걱대며 움직이는 뼈와 시체들.

인간형의 뼈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짐승의 뼈, 거대 괴수의 뼈, 케이론과 같은 켄타우로스의 뼈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가마를 움직이듯 의자 하나를 받치고 있었다.

죽고 나서도 안식을 취하지 못하는 원망의 감정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불길한 느낌의 마력이 공기 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뼈들이 받치고 있는 의자 위에는, 여자 하나가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케이론은 그 여자를 보고 화가난 듯 소리치며 마력을 일으켰다.

"Killer Queen…!"

"흐음, 너는 이름이 뭐지? 말인간들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단 말이야."

"마왕 계승 제4순위, Wild Gladiator. 케이론이다."

"아항… 들어도 잘 모르겠네? 미안."

"… 그 입을 언제까지 놀릴 수 있을지 궁금하군. …Killer Queen."

"난 그 이름 싫다니까. 릴리아나 칼리오페라는 예쁜 이름이 있잖아. 지금이라도 릴리아나라고 부르면 살려줄게."

"닥쳐라!Killer Queen!"

케이론은 대검에 마력을 끌어올리며 전투 태세를 취했고, 의자에 앉아있던 여자는 지루한 듯 하품하며 손을 휘저었다.

손가락 끝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마력을 보며 난 생각했다.

'끝에 영어를 붙이는 건 케이론만 하는거구나.'

다행히 지옥 전체가 이상한 놈들은 아니었어.

안도한 나는 케이론이 Killer Queen이라고 부르는 여자를 자세히 살펴봤다.

"저건…."

분명 내가 아는 릴리아나와는 다른 모습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나이가 어린 듯 앳된 몸이었고, 귀는 마치 마족처럼 뾰족했다.

머리에는 악마의 불길한 뿔이 솟아있었다.

전체적으로 밝게 웃는 상인 지금과 다르게 입을 꾹 다물고 감정이 실려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특유의 보라색 눈동자와 꼬리.

몸의 선과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까지.

릴리아나는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녀와 내 관계는 그 정도로 깊었으니까.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 릴리아나?"

저 여자는, 릴리아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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