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5화 (335/648)

EP.335 335화. 스칼렛 라이트 (2)

"레베카 씨!"

"레이디! 마법진을!"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켄타우로스는, 아이린과 아이작의 공격에 무릎을 꿇었고, 레베카는 준비한 마법진을 전개했다.

"제압합니다!"

[크, 크으읍... 아, 아악....]

레베카는 룬의 결계를 켄타우로스의 심장에서 펼쳤다.

아주 작은 점이 커지며 구로 변했고, 그대로 팽창한 마력은 켄타우로스의 신체 전부를 훑으며 몸을 통과했다.

만들어진 결과물은, 기분 나쁜 검은 마력 덩어리들이 붙어있는 룬의 결계.

레베카는 결계에 묻은 검은색 마력을 허공에서 모아 구슬처럼 압축시켰다.

자기 자신의 세뇌를 풀었던 것처럼, 켄타우로스의 몸에 있던 마에스트로의 마력을 전부 분리해낸 것이다.

[뭐지? 크윽, 몸이....]

세뇌가 풀린 켄타우로스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레베카는 다시 룬의 결계를 펼쳐 켄타우로스의 몸을 감쌌다.

[잠시만. 인간, 내 세뇌가 풀렸다! 이제....]

"제압합니다! 모두 보조해주세요!"

켄타우로스는 자신의 의지를 전하려 했다.

마에스트로가 건 세뇌가 풀렸다.

나는 너희들과 싸울 이유가 없다.

천천히 대화로 풀어나가자.

하지만 레베카는 켄타우로스의 말을 무시하고 마력을 강하게 움직였다.

이제 막 세뇌가 풀려 힘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제압해야 했다.

세뇌가 풀렸다는 말은, 언제 도망칠지 모른다는 말이니까.

애초에 이렇게 강하게 하지 않으면, 다른 추적팀을 설득할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인간을 해친 건 사실이니까.

"마력 밧줄을 더 만들어!"

"아직 부족해! 온몸을 묶어!"

[인간! 인간...! 나는 너희를 해칠 생각이 없....]

켄타우로스는 그렇게 온몸이 묶인 채 결계에 갇혔다.

*

켄타우로스의 제압이 끝난 후.

아이작과 아이린, 레베카는 이호연에게 달려갔다.

"잠시만요."

"엘리스? 너 언제 여기...."

"호연이가 다가오지 말라고 했어요."

엘리스는 이호연의 결계 앞에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갑자기 목걸이로 변한 여자를 보고 놀라긴 했지만, 이호연이 사람들을 막아달라고 했으니 일단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 저 마력의 흐름은 뭐지?"

"자, 잠시만요! 가까이 가시면...."

"알아. 결계 안으로는 안 들어갈게. 엘리스 양."

"아...."

레베카는 엘리스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넘기며 룬의 결계 안에 있는 이호연을 바라봤다.

바깥의 공간과 단절을 위해 마력을 잔뜩 버무린 룬의 결계.

그 안에 가득 찬 시간을 감속하는 마력.

"룬의 결계를 지배하는 대신 안에 마력을 가득 채우고... 마력을 감속해 느리게 했어. 아니, 멈춘건가?"

이론상으로도 당연히 말이 안되는 마법이다.

하지만 이호연은 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동시에 치유마법까지 사용하고 있었으니 동시에 얼마나 많은 마력을 컨트롤하고 있는 건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

레베카가 놀람과 동시에 아이작도 이호연의 마법을 눈치챘다.

"치유 마법을... 쓸 수 있군. 게다가 마치 마력이 멈춘 것 같은.... 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재능.

밤의 황제라고 불리는 자신도 부러울 정도의 재능은 늙어버린 사자의 야성을 건드렸다.

어쩌면 자신의 딸의 결혼식이 예상보다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둘은 무슨 관계지?'

아이작은 레베카를 슬쩍 바라봤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호연을 보면서도, 새로운 마법에 눈을 뜨듯 영감을 얻고 있는 모습.

하지만 아이작은 켄타우로스의 공격이 이호연을 덮치기 직전 레베카의 말을 들었다.

'분명... '아빠'라고 했었지.'

다급한 전투상황이었지만 확실하게 들었다.

아빠라니?

설마 저 나이에 딸이 있는 건가?

아니, 그렇다기엔 딸이 너무 큰데....

"길드장님! 켄타우로스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너희는 부상자를 챙겨! 켄타우로스는 팀장급이 알아서 한다."

길드원의 질문에 대충 대답한 아이작은 결계를 해제하는 이호연에게 다가가며 침을 삼켰다.

'혹시 나이를 속이고 아카데미에 부정 입학을...? 아니 아카데미는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닌데….'

정보 길드의 길드장 아이작은 이호연의 정체를 다시 한번 고민했다.

*

아이리스 길드의 본관.

작전 종료 후 추적팀은 흩어졌고, 주요 멤버들만 남아 켄타우로스를 어떻게 할지 정하고 있었다.

"1팀장, 역시 지하에 넣는 게 좋겠지?"

"아니면 프랑스 정부에 맡기는 방법도 있잖아요."

"으음, 그러면 뭔가 아쉽단 말이지. 게다가 정보를 뜯어낼 수도 없어."

"제 생각에도 지하에 넣는 게 좋아 보입니다."

마력 밧줄에 미라처럼 전신이 속박된 켄타우로스는 반항을 포기한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작에게 켄타우로스와 단둘이 대화할 시간을 요구했으니, 아마 금방 마련해주겠지.

"스칼렛, 몸은 괜찮아?"

"... 예."

- 스카웃! 살았구나! 난 널 믿었어!

쓰담쓰담.

기쁜 듯 부르르 떨리는 릴리아나를 쓰다듬으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내게 업힌 스칼렛은 부끄러운 듯 눈을 꼬옥 감고 있었다.

몸은 다 회복되었지만, 강한 충격 때문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스칼렛의 성격상 창피함을 참고 업혀있을 이유는 없으니 진심이겠지.

"아직도 몸이 안 움직여?"

"... 네. 창피하게도요."

"아니야. 그럴 수 있지."

스칼렛은 추적팀에도 속해있는 아이리스 길드의 정예멤버다.

당연히 고통에 대한 훈련도 마쳤을텐데, 그런 스칼렛이 쇼크를 느낄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심한 고통이었을까.

등의 피부가 전부 녹아버리고 내장까지 타버리는 고통.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지, 스칼렛이 날 구해준 걸 모두가 알기에 내가 스칼렛을 업고 있어도 별말은 없었다.

내 치료가 끝나고 얼마 뒤에 의료팀이 도착했지만 스칼렛이 입원하기 싫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고.

"호연아."

그때, 옆에서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엘리스. 켄타우로스를 어떻게 할지는 정해졌어?"

"응. 지하에 넣기로 했어."

역시 그게 편하긴 하지.

나도 찾아가기 좋고.

"그리고 아빠가 켄타우로스랑 대화하는 거 오늘이어도 괜찮냐는데 어때?"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알겠어. 그럼 그렇게 전하고...."

엘리스는 내 목걸이를 보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하지만 내게 업힌 스칼렛을 슬쩍 흘기며 입을 다물었다.

 스칼렛때문에 말을 아끼는 모양이다.

사실 스칼렛도 다 아는데.

"... 아까 그건 나중에 설명해."

"응. 꼭 설명할게. 정말 고마워."

참.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 아프다.

릴리아나를 들킬 줄은 몰랐는데.

- 미안... 내가 나와버려서.

쩝.

뭐 어쩌겠어. 오히려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겨서 나쁘지 않을지도.

어차피 내 생각대로 일이 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엘리스는 스칼렛에게 몸 관리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작에게 돌아갔다.

"또 엘리스 아가씨에게 뭘 들키신 건가요."

"아. 넌 모르는구나. 릴리아나를 들켰어."

"... 대체 무슨 짓을 하셨길래."

"그러게 말이다. 에잉."

스칼렛이 다치고 깜짝 놀란 릴리아나가 튀어나온 거지만, 그게 다 날 구하려다 그런 거니 나는 할 말이 없다.

"슬슬 켄타우로스를 옮기려나 보네.저 거대한 몸을 어떻게 지하에 넣으려는 걸까."

"아이리스 길드만의 마법이 있습니다."

"여긴 없는 게 없구나."

또각또각-

익숙한 구두소리.

켄타우로스의 처우에 대한 대화를 마치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레베카의 모습이 보였다.

난 먼저 레베카에게 말을 걸었다.

"레베카 씨. 고생하셨어요."

"아니야. 애기 아빠가 고생했지. 아, 나는 먼저 돌아가 있을게?"

"네. 고마워요."

레베카도 오늘 굉장히 고생했다.

정체를 캐물을 때마다 나랑 같이 입을 맞춰줬고.

켄타우로스 잡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해줬다.

"응. 그러고 보니... 켄타우로스 생포했으니 중요한 일은 다 해결한 거지?"

"음, 그렇죠?"

"후후후...."

레베카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 무서운데.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좋은 유전자를 보니 웃음이 나와서. 흐흣. 아까 결계는 너무 멋있었어. 나도 배울 점이 있을 정도야. 우리 애기한테도 좋은 영향이 있을거야."

"... 과찬이신데."

그래. 결국 때가 왔구나.

이제 미룰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나는 웃으며 레베카에게 대답했다.

"일단 천천히 얘기해요. 안 도망갈 테니까."

"응응. 알겠어. 아, 애기 아빠 여자 친구도 몸 관리 잘해?"

"... 감사합니다."

레베카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돌아갔다.

뭐, 사실 섹스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여자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

"여자가 점점 늘어나는군요."

"...."

내게 업힌 스칼렛에게서 가시 같은 말이 날 찔러왔다.

사실 나도 약간 무섭긴 하다.

여자를 이렇게 늘려만 가도 될까.

루시, 루미, 남다은, 백아영, 문수린, 엘리스, 아이린, 릴리아나, 임솔, 레베카, 스칼렛.

'아니, 11명?"

아직 공략 안한 여자들까지 세긴했지만,이거 너무 많잖아.

퀘스트인지 내기의 신인지는 힌트도 안 주고 사라져버리고.

여자를 많이 공략하면 점수를 준다고 해서 일단 이러고 있는데, 이러다간 끝도 없겠다.

- 괜찮아. 강한 남자는 여자가 많아야지!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역시 서큐버스랑은 말이 통하는구나.

지옥을 그렇게 욕했지만 지옥으로 이사가야할지도 모르겠네.

"... 이상한 사람들."

스칼렛은 우리의 대화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스칼렛에게 할 말이 있었지.

"스칼렛."

"네?"

"구해줘서 고마워."

"... 뭘요."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처음 내 뒤를 미행한 스칼렛에게 지옥의 계약서를 내밀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깊은 관계가 되는 거로도 모자라 내 목숨까지 구해줄 줄이야.

"됐어요. 이미 지난 일인데."

"나중에 꼭 보답할게. 스칼렛. 아니, 스칼렛 라이트."

"... 풀 네임은 중요할 때만 부르는 거예요."

"그래? 예를 들면?"

"뭐, 공식 석상이나 결혼식 같은 곳이죠."

"흐음...."

"절대 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 절대!"

"알겠어알겠어."

레베카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거로 놀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봐줄까.

"이호연."

"아, 길드장님!"

어느새 켄타우로스를 지하로 옮긴 아이작이 내게 다가왔다.

"작전은 정말 고생했네. 아, 스칼렛. 너도 고생이 많다."

"감사합니다. 길드장님.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네의 용기는 대단하더군. 맞아. 이호연. 엘리스에게 들었겠지만, 켄타우로스는 아이리스 길드의 수감실에 넣어놨다. 마력 봉인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면회가 가능할 거야."

"감사합니다. 오늘 안에 꼭 가볼게요."

길드에 수감실이 있다는 사실이 걸렸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내게 도움이 되는 건 이용해줘야지.

"그래. 그리고 그. 레베카.... 음, 아니야. 오늘은 고생했네."

"네. 감사했습니다."

아이작은 '설마...'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떠나버렸다.

레베카의 이름이 나오길래, 이번에도 집적대면 확실히 끊어내려고 살짝 미간을 찌푸린 탓일까.

혹시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

"켄타우로스를 보러 가셔야죠."

"일단 널 눕혀놓고 가야지."

"... 감사합니다."

난 스칼렛을 업은 채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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