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3 333화. 지옥의 망나니 켄타우로스.
두근─
내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두근거림.
예전과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졌는데도 이런 긴장감이라니.
'근데… 할만하겠는데.'
켄타우로스의 기세가 엄청나긴 했지만, 이쪽의 라인업도 엄청났다.
세계관 상 최강자급인 밤의 황제 아이작.
그 아이작과 비슷한 강함을 가진 레베카.
아이리스 길드의 1팀장인 아이린.
그리고 나.
물론 아침이라 아이작의 전력을 발휘하진 못해도,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하지.
강자들이 이렇게나 모였는데 괴수 하나 못 잡는다면 인간은 진작 멸망했을거다.
문제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싸움에서 죽이는 게 아닌 제압을 노리고 있다는 점.
욕심일 수도 있지만… 노력은 해보기로 했다.
"F급…."
- 맞아. F급 용병패! 지옥의 징표!
나는 놈의 목에 걸려있는 F급 용병패를 확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게 F급은 아니잖아.
지옥 놈들이 영어를 쓰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등급도 제대로 못 매긴다.
"F가 왜?"
"저놈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말하는 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뭐,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잡고 나서 다 물어보죠."
나는 아이작과 아이린의 말에 대충 대답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거든.
[서큐버스…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
켄타우로스는 우리를 보며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런 중요한 말 좀 안해줬으면 좋겠는데.
혹시라도 이쪽을 의심하면 귀찮아지잖아.
- 쟤는 왜 계속 나한테 아는 척이야?
"…."
그러게 말이다.
서큐버스 타령을 하는 걸 보면 분명 릴리아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
물론 '서큐버스'라는 종족에 초점을 맞춘 건지 '릴리아나'라는 개체에 초점을 맞춘 건지 모르기에 아직 확신할 순 없다.
[느껴지는 마력의 힘도 약하고… 대체 목적이 뭐냐. 이제 와서 날 처리하려는 건가?]
"아이린 씨. 원래 켄타우로스가 저렇게 말이 많아요?"
"… 아니. 우리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야."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는데, 계속 신경이 쓰인다.
원래 저렇게 말이 많은 놈이 아니라면 말을 하는 이유가 있는 법.
'혹시 세뇌에 걸렸어도 정신은 살아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할 리가 없잖아.
"… 레베카 씨. 어때요? 쓸데없는 말 같지는 않은데."
난 세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며 레베카에게 물었다.
레베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어쩌면 힌트를 주고 있는 걸지도?"
"힌트라…."
그럴 시간에 잠깐만 우리한테 몸을 대주면 안 되나?
바로 세뇌를 풀어줄 텐데.
"저기, 그래서 이 레베카… 씨는?"
"제 지인이에요."
"믿고 싸워도 되는 거지?"
"당연하죠. 저를 믿는 만큼 믿으세요."
"… 그럼 안 믿을 건데."
쿠우웅─
[마음 같아선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군.]
켄타우로스는 말을 이으며 앞발을 굴렀다.
가벼운 발걸음에 땅이 진동했고, 검은 마력이 땅에 파고들었다.
두근─
"피해요!"
단순한 충격파가 아닌, 맞으면 어딘가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불길한 마력.
순식간에 만들어낸 마법인데도 불구하고 켄타우로스의 마력은 짙은 흑색을 띠고 있었다.
- 저 정도면… 엄청 강한 거야. 저 색이 짙을수록 지옥의 마력은 강하거든.
"지랄 났네 진짜."
땅속에서 솟구치는 어둠의 기둥은 우리들 사이에 끼어들듯 솟아올랐다.
다행히 아무도 당하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와 위력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이호연, 저거 정말 생포할 수 있어?!"
"네. 잠깐만 틈을 만들면 할 수 있어요."
나만 있다면 몰라도 레베카가 있다.
레베카는 나보다 숙련도가 높으니 순식간에 해제할 수 있을 거다.
"제압이든 제거든… 일단 반 죽이고 생각하자.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아이작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고, 그 옆에 아이린도 섰다.
"좋네요. 어차피 죽일 기세로 싸워도 안 죽을 것 같은데."
"죽일 생각으로 때리면 틈도 생길 거야."
나는 옆에 선 레베카와 같이 마력을 일으키며 손을 들어 올렸다.
*
'몸이 가벼워.'
─ 크어어억….
엘리스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검과 마법을 둘 다 쓸 수 있다는 그녀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선 많은 양의 마력이 필수였으니, 지금까지 이런 전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당연.
이호연의 마사지로 마나 회로가 거의 정상화된 지금에서야 그녀의 재능이 꽃피웠다.
"흐읍!"
엘리스는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다른 손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마인의 어깻죽지에 검을 내려치며 뒤에 있는 마인은 마법으로 견제했다.
하나. 둘.
그녀의 팔꿈치가 회전하며 새로운 마인을 베어냄과 동시에 움켜쥔 마력을 검에 흘려보내 검기를 늘리고, 뒤쪽에 있는 마인의 심장을 찔렀다.
셋. 넷.
점점 엘리스에게 쓰러지는 마인의 수가 늘어났다.
예전에는 절대 펼칠 수 없었던 곡예 같은 전투.
"후우…."
엘리스는 상쾌함을 느꼈다.
싸움으로 상쾌함을 느끼다니 이런 감정은 오랜만이었다.
─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도님이 오실 때까지도 못 버티다니….
"스칼렛. 같이 상대해줘."
"네. 보조하겠습니다."
엘리스의 눈앞에는 당황한 듯 켄타우로스를 바라보는 판데믹의 간부가 서 있었다.
간부를 제외한 마인들은 대부분 도망치거나 처리했다.
2팀장과 스칼렛, 세바스 찬. 그리고 엘리스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앙─
엘리스는 달려드는 마인의 공격을 막으며 스칼렛에게 신호를 보냈다.
스칼렛의 속도와 은밀성은 길드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
그녀는 찰나의 순간에 마인의 뒤를 잡았다.
지지지직─!
날카로운 전격이 마인의 배를 찔렀고, 마인이 급하게 뒤로 팔을 휘둘렀지만 이미 스칼렛은 빠진 상태였다.
─ 크으으윽…!
스칼렛의 공격으로 생긴 빈틈을 노려 칼을 쳐낸 엘리스는 그대로 손을 휘저어 속박 마법을 만들어냈다.
─ 그만, 어째서 우리가…!
"시끄러워."
특기인 결계술로 간부를 제압한 엘리스는 주변을 살폈다.
간부급은 이미 모두 제압당했고, 남은 마인의 잔당은 대부분 도망친 상태였다.
부상자들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엘리스의 활약으로 생각보다 피해가 적었기에 꽤 만족스러운 전투였다.
그리고 부상이 얕은 추적팀들은 자연스럽게 한 곳을 바라봤다.
"와…."
"저게 켄타우로스의 힘… 확실히 우리 같은 놈들은 끼어들지도 못하겠네."
"느껴지는 기세부터 다르잖아. 이렇게 멀리 있는데 몸이 벌벌 떨리는 느낌이야. 저걸 상대하려면 대체 얼마나 강해야 되는 거냐?"
"… 나는 저 괴물들 사이에 끼고 있는 꼬맹이가 제일 무서운데."
"꼬맹이라기엔 너보다 키도 크잖아."
"닥쳐."
"그나저나 저 빨간 머리 여자는 누구지?"
"글쎄. 예쁘긴한데. 지원군인가? 길드장님이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우리편이겠지."
콰앙─! 파아아앙─!
엘리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금까지 자신이 이룬 성과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듯, 켄타우로스를 둘러싼 4명은 차원이 다른 전투를 하고 있었다.
"… 스칼렛. 저게 20세가 낼 수 있는 강함이야?"
"이호연 생도는 그냥 별종이니까요."
엘리스의 옆에서 몸을 가다듬은 스칼렛도 고개를 저었다.
켄타우로스는 그 이름값을 하듯이 위협적이었다.
한 번 발을 구르기만 하면 땅이 울리고, 수십 개의 가시가 땅에서 튀어나왔다.
그뿐이 아니다. 수백 미터는 되는 거리를 한 걸음으로 좁히고는 거대한 둔기를 휘둘렀다.
아마 자신이 저기 서 있었다면, 첫 공격에 바로 목숨을 잃었겠지.
자신이 약한 게 아니고, 저 괴수가 말이 안 될 정도로 강하다.
저런 괴물이 프랑스 전역을 헤집고 다녔으니 이런 추적팀이 만들어질 수 밖에.
그런 켄타우로스와의 전투에서 이호연은 버티고 있었다.
아니, 확실하게 1인분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켄타우로스의 공격은 대부분 이호연을 향하고 있었고, 그가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다른 인원들이 켄타우로스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야. 역시 우리 길드장님이 강하긴 해."
"그러니까. 근데 저 붉은 머리 여자도 강한데?"
다른 길드원들은 마치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는 듯 전투를 쳐다봤다.
자신들이 맡은 임무가 끝나서 긴장감이 풀렸고, 아이작을 너무 믿기 때문이다.
"… 스칼렛. 원래 이런 분위기야?"
엘리스는 추적팀의 분위기를 보고 스칼렛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길드장님이 계시니까요. 음지의 사람들은 길드장님을 거의 신 취급합니다. 길드장님 얼굴만 보고 길드에 들어온 사람도 많을 거에요."
"… 좋지는 않네."
"맞습니다. 좋은 분위기는 아니에요."
아이리스 길드의 특징상 길드장인 아이작을 무조건 신뢰하고 있는 길드원들이 많다고해도, 아직 실전 상황인데.
'나라도 정신을 꽉 붙잡아야지.'
기특한 마음을 먹은 엘리스는 숨죽이며 이호연의 전투를 바라봤다.
온몸이 긁히고 체력이 떨어진 듯 눈에 띄게 느려진 켄타우로스는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 엄청난 양의 마력을 뿜어내 주변의 시야를 가리며 이호연에게 마법을 쏘아냈다.
"… 어?"
엘리스는 눈을 의심했다.
이호연이 지금까지 잘 막아내던 공격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살짝 휘청거리는 그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란 엘리스는 빠르게 마법진을 그렸지만, 그 전에 자신의 옆에 서있던 마력이 튀어나갔다.
*
"컨디션이 별론데."
몇 번의 공방 후에 알아챘다.
전투 감각과 뚜렷한 정신력 덕분에 싸울 수는 있겠지만, 풀 컨디션은 아니었다.
'레베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뭐, 어쩌겠어. 집중하는 수밖에.
집중 안하면 죽는데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켄타우로스와의 전투 자체는 압도적이었다.
켄타우로스가 상상 이상으로 강했지만, 전투를 조율해줄 만한 실력자인 레베카가 있었다.
짜증나는 점은 켄타우로스가 나만 공격한다는 점.
서큐버스 어쩌고저쩌고하더니, 노골적으로 날 노리고 있었다.
물론 그 덕에 전투 자체가 쉬워지긴 했다.
내가 켄타우로스의 공격을 커버하는 동안 다른 인원들이 켄타우로스의 체력을 깎는 작전이다.
혹시라도 다른 추적팀들이 너무 위험하거나 켄타우로스가 상상 이상으로 위협적이면 바로 즉살해버리기로 합의했지만, 주변의 전투는 모두 정리된 것 같았다.
쿠와아아아앙─!!!
나는 빠르게 룬의 결계를 만들어내며 켄타우로스의 공격을 회피했다.
새까만 충격파가 지면을 타고 터져나갔고, 내 급소에 파고드는 놈의 공격은 하나라도 허용하는 순간 치명타였다.
[인간.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차라리 이 몸을 죽이면 편할 텐데.]
"협조할 거면 그냥 잡히라고 새끼야…! 세뇌 풀어준다니까!"
[알고 있는 건가. 물론 나도 노력하고 있다만.]
콰드드득─
켄타우로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팔을 돌리며 룬의 결계를 부서뜨렸다.
- 저 새끼 완전 미친 놈 아니야?! 왜 말만 착하게 하는 거야!
"지옥 놈들이 다 그렇지 뭐…!"
- 저기, 그게 무슨 뜻이야?
그래도 공격의 강도는 처음보다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온몸에 상처가 난 켄타우로스의 마지막 발악 같은 느낌이었기에, 몇 번만 더 막으면 무난하게 생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마력을 막아내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고….
"… 아?"
어지러움을 느꼈다.
갑자기 찾아온 현기증에 당황할 틈도 없었다.
이미 마력은 내 앞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 피해! 뭐해? 미쳤어?!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려퍼졌고, 나는 차가워진 머리로 생각했다.
'좆된 거 같은데.'
나도 피하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는 걸 어떡해.
전투 감각은 여전해서 켄타우로스의 공격이 닿기까지의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졌지만, 몸이 반응하질 않았다.
- 이, 이건 내가 나와야….
릴리아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나는 어떻게든 팔을 허우적대며 마력을 피하려 했다.
… 저거 맞으면 진짜 죽을 거 같은데.
릴리아나의 변신 해제에도 시간이 필요했으니 저 마법을 막아주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결국 눈 앞까지 다가온 마력의 충격을 대비하며 눈을 질끈 감았고.
"호연 님은 피곤할 때도 약하시네요."
그와 동시에 따뜻한 무언가가 나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