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0화 (330/648)

EP.330 330화. 켄타우로스 추적 작전 (2)

"왜 이렇게 늦었어! 이 놈!"

"미안미안. 일이 있어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릴리아나가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내 팔을 무는 걸 보니 화가 났다기 보단 그냥 심심해서 이러는 것 같다.

"어머, 애기 아빠 왔네?"

"네. 레베카 씨. 좋은 아침이네요."

"빨리 준비해! 말 잡으러 가야지! 말 달리자! 말!"

이제보니 릴리아나와 레베카는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나만 안했구나.

"미안미안. 나도 금방 준비할게. 아, 그러고 보니 레베카 씨는 어떻게 하실거에요?"

"나는 뒤에서 지원하려고. 저번에 길드장하고 안면도 텄으니 아마 봐주지 않을까?"

"으음… 그럴 거예요 아마."

만약 싫으면 싫다고 했겠지.

연락처가 궁금하니 뭐니 해놓고 다시 안 물었으니, 허락한다는 말을 가볍게 돌려서 한 거 아닐까.

단순한 바람둥이 같지만 어른인 사람이다.

"그나저나 애기 아빠는 괜찮아? 피곤해 보이는데. 어젯밤까지 안 들어오지 않았어?"

"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오늘은 직접 추적해야 하는 거 알지?"

"당연히 알죠. 걱정하지 마세요."

"으응. 난 믿어. 애기 아빠는 천재 유전자니까."

마법진을 익히는 건 잊지 않았다.

당장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마스터했으니 약간 피곤하다고 해서 못 할 리는 없다.

그 정도는 해줘야 천재 마법사지.

나는 욕실에 들어가 대충 세안을 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그 과정에서 옆에서 릴리아나가 날 재촉하는 게 피곤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감수하자.

"가자! 가자! 빨리!"

"준비하고 있잖아. 좀 기다려봐. 근데 릴리아나 너도 따라오는 거야?"

"당연하지! 당장 그놈을 봐야 해!"

"으음. 하긴, 생포하지 못 할 수도 있으니 따라오는 게 낫겠다."

켄타우로스를 생포한 뒤에 조용한 곳에서 릴리아나와 대화를 시키는 게 베스트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다.

정 안되면 반 죽이고 억지로 대화할 수밖에.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릴리아나는 데려가는 게 맞겠지.

퍼엉-

릴리아나는 연기를 내뿜으며 목걸이로 변했다.

- 가자구!"

"그래그래. 대답 못 해주니까 웬만하면 조용히 있어. 오늘은 집중해야하거든."

나는 목걸이로 변한 릴리아나를 목에 걸고 숙소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새 레베카 씨는 사라졌고, 스칼렛이 날 마중 나왔다.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저도 잊은 물건이 없나 보고 있었습니다."

"오케이. 가자."

"… 정말 괜찮으신가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스칼렛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걱정이 많네.

아마 켄타우로스가 진짜 위험한 걸 아니까 이러는거겠지.

"괜찮아. 계속 그렇게 말하면 더 피곤해진다 야."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아니아니, 사과하지는 말고. 걱정은 고마워."

걱정해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너무 걱정만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뭐든 자신감 있게 해야지.

나는 스칼렛의 안내를 따라 아이리스 길드의 본관 앞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어제부터 궁금한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길드장님은 밤에 움직여야 더 강한 거 아니야? 왜 아침부터 움직이는거지?"

"객관적으로 길드장님이 낮에 약한 건 아니니까요."

"그건 너무 설득력이 적은데. 이왕이면 강한 게 좋잖아."

"맞습니다. 사실 이건 대외용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길드장님의 능력이너무 알려져있어서, 아이리스 길드의 적들이 밤에는 움직이지 않아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프랑스의 어떤 범죄조직도 밤에 활동하지 않습니다."

"… 멋있네. 남자의 감성을 자극해."

단 한 명의 사람 때문에 한 나라의 밤이 안전해지다니 뭔가 신기하다.

역시 보기보다 엄청 대단한 사람이구나.

본관 앞에는 아이작부터 저번에 봤던 추적조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인원을 모아놓고 체크하고 있는 아이린의 옆모습도 보였는데, 표정이 괜찮았다.

'아이린은 괜찮아 보이네.'

어젯밤, 첫 경험인데도 실신 당할 때까지 당했는데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아마 저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반강제로 처녀를 가져가긴 했지만 엘리스의 알몸도 봤고, 같이 즐겼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만큼 미친 여자거든.

"이호연."

그때,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길드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자네는… 눈빛이 안 좋은데. 아침에 약한 타입인가?"

"어젯밤 늦게까지 켄타우로스 추적 마법진을 점검해서요. 컨디션은 별로지만 마법은 완벽합니다."

"참 열심이구만. 오늘 작전의 중심은 자네니까 뭐든 해야 할 것이 생기면 부담 갖지 말고 말하게. "

"예. 알겠습니다."

뭐랄까.

오늘의 아이작은 이상하게 날 대우해주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생도 취급했는데, 생도를 붙이지도 않고 말이야.

켄타우로스 추적 마법진으로 날 고평가하는 건가?

"그리고 말인데. 이호연 군."

"네. 길드장님."

아이작은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러나 싶어서 나도 아이작의 말에 집중했다.

"크흠. 혹시 오늘도 그 붉은 미녀가 오시나?"

"… 뒤에서 지원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바쁘니까 찾아가시면 안될 거에요."

"아, 그렇겠지. 음.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작전에 애로사항이 생기면 안 되니까. 알겠네."

- 이 남자 눈이 수상해. 마치 너 같은 눈이야…!

"…."

나도 릴리아나의 말에 동의한다.

이 사람은 절대 레베카랑 만나게 하면 안 되겠네.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평가도 한 단계 낮췄다.

레베카는 전혀 마음이 없어 보이던데 왜 이러는거야.

… 혹시 레베카 때문에 날 고평가하는 건 아니겠지?

"길드장님"

"아, 1팀장. 인원 체크는 끝났나?

"엘리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엘리스도 데려갑니까?"

"당연하지. 엘리스도 아카데미 시험에서 빠지기로 했으니까."

아이작은 다가온 아이린과 대화를 나눴다.

엘리스가 아직 안 왔다니.

혹시 어젯밤에 너무 심하게 했나?

- 아니, 출발은 언제 하는 거야! 이래서 사람이 많으면 안된다니까!

"흐음."

나는 릴리아나를 쓰다듬으며 둘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니까 제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대체 왜 엘리스를 데려가려는 건데요!"

"… 우리 딸. 그건 이미 끝난 얘기잖아. 크흠! 너무 늦으면 안되니 내가 엘리스를 데려오마. 1팀장은 여기 이호연 군에게 작전 설명이라도 듣고 있어."

"길드장님. 아니, 아버지! 엘리스 방에 막 들어가면 안 돼요!"

아이린은 아이작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찌푸렸지만, 아이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이린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돌렸다.

"…."

"…."

나와 눈을 마주친 아이린은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색한 침묵.

서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하, 죄책감은 있는 모양이네?"

아이린은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기분 나쁘다는 건 아니라는 뜻.

미친 사람의 심리 부문에서 이미 전문가의 영역에 이른 나는 방금의 짧은 대화만으로 어떻게 해야 아이린과 대화를 이어나갈지 감을 잡았다.

"저도 그렇고 아이린 씨도 그렇고 어른이잖아요. 공론화시켜봤자 서로 손해만 보는데 굳이 크게 벌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쵸?"

"… 그래. 아이리스 길드에게 큰 손해겠지. 협박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설마요. 그냥 하룻밤의 뜨거운 추억으로 잊어버리면…."

"엘리스는? 설마 엘리스까지 그렇게 넘어가려고 할 생각이야?"

그래. 예상한대로다.

 결국 아이린이 꺼낼 말은 엘리스.

아이린의 입장에서는 어제 일이 나쁘지 않았겠지만, 동시에 내가 마음에 들지는 않을거다.

그러니 자신이 아니고 엘리스로 트집을 잡으려는 거다.

"엘리스랑은 합의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엘리스가 싫다고 하는 걸 내가 못 들은 줄 알아? 그렇게 힘들어하는 애를 몇 시간이나…."

"에이. 아이린 씨도 싫다고 하다가 좋아했으면서."

"닥쳐."

"그리고 엘리스가 쓰러져서 아이린 씨도 좋았잖아요."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이해를 못 하겠는데."

"거짓말. 저는 다 아니까 저한테 안 속이셔도 돼요. 어제 일 다 기억하시잖아요."

"… 엘리스에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당연하죠. 저는 아이린 씨 편이에요."

아이린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에 손을 얹었다.

자신이 동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켰으니 머리가 안 아플 리가 없지.

말하는 걸 보니 내가 몰랐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기대했나 본데, 그럴 리가 있겠냐고.

"아무튼 엘리스도 괜찮을거에요. 못 믿겠으면 이따가 엘리스의 반응이라도 한 번 보세요."

"… 그래. 혹시라도 엘리스가 싫어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걸."

아이린은 그 말만을 남기고 길드원들 쪽으로 향했다.

뭐, 사실 칼을 안 맞은 것만으로 나는 만족이다.

- 저 사람이 네가 말했던 여동생을 좋아하는 언니?

"응. 네가 봤을 때 어때?"

- 방금 대화만 보면 이상한 사람 같은데.

"… 그런 말 하지 마."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들 준비해라!"

잠깐 릴리아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 아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뒤에는 총총 걸어오는 엘리스도 보였다.

엘리스는 저번보다 확실히 경량화된 방어구를 입고 있었는데, 아마 충신 중 한 명이 건의하지 않았을까.

그래. 솔직히 움직일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방어구는 너무 과하긴 했어.

아이작의 도착에 모든 추적조들이 아이작을 바라보며 정갈하게 섰다.

틈을 타서 엘리스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는데, 아이작의 말이 이어졌다.

"모두 전달받았겠지. 오늘은 마법사 이호연의 주도로 켄타우로스를 추적한다. 긴급 상황에는 내가 명령하겠지만, 추적상황간에 명령권은 이호연에게 있으니 말대답 따위 하지 말도록."

저렇게 믿어주시니 참 고맙네.

아이작은 나를 보며 나오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아이작의 옆으로 나와 추적팀이 보는 앞에서 준비해온 마법진을 펼쳤다.

켄타우로스의 마력을 압축한 마력 구슬.

그리고 그 마력의 흔적을 추적하는 마법진.

흔해빠진 구성이지만 그 매개체가 지옥의 마력이되면 전혀 다른 마법이 되어버린다. 아마 마법진을 보더라도 다룰 수 있는 마법사가 거의 없을 거다.

물론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

잠시후 마법진이 가동되고, 추적조 인원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눈덩이가 녹듯이 없어진 켄타우로스의 마력 구슬은 연기처럼 변해 천천히 공중에 떠올라 빠르게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 저 검정 연기는 뭐지?"

"아마 추적마법의 일부겠지. 나도 저런 건 처음 봐."

연기가 얼마나 멀어졌는지는 내가 느낄 수 있었기에,지도를 보며 연기가 어디까지 멀어지는지 표시를 시작했다.

위치는 파리의 교외.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이었다.

"여기네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상대가 추적을 눈치챌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눈치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끝까지 상대를 따라가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

"바로 출발하지."

내 옆에서 지도를 바라보던 아이작의 명령에 추적조들은 각자의 비행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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