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9화 (319/648)

EP.319 319화. 켄타우로스 (2)

"……."

꼴깍.

엘리스는 조심스럽게 정면을 바라봤다.

폐허가 된 공장과 거주지.

그 위에 우뚝 서 있는 켄타우로스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위압적인 거체와 파괴적인 마력.

풍기는 기세만으로 추적팀 전체를 압도하는 괴수를 보며, 엘리스는 몸이 굳는 걸 느꼈다.

화면으로만 보던 괴수를 눈앞에서 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

온몸의 세포들이 도망치라고 보내는 신호는 간신히 버텼지만, 오금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아이린이 엘리스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어, 언니?"

"가만히 있어 엘리스. 저놈은… 진짜 괴물이니까."

왠지 모르게 안심되는 목소리.

아이린은 어떻게든 엘리스를 지키기 위해 마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 [흐음.]

다행히 싸움이 일어나진 않았다.

켄타우로스는 매뉴얼대로 사라졌고, 추적팀들은 동시에 긴장을 풀었다.

"… 상황 종료. 목표물이 도망쳤다."

"후우. 뭐야. 싸움이라도 일어나는 줄 알았네."

"나도 오늘이 마지막인가 했다."

"돈을 받았으면 그만큼 일을 해야지. 이 자식아."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과 장난스러운 말들이 튀어나왔다.

"엘리스. 괜찮아?"

"으, 으응. 언니."

아이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엘리스의 상태를 확인했고, 엘리스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언니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얼굴.

'… 날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 진심이 나온다.

아이린의 진심을 본 엘리스는 낯선 감정을 느꼈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곱씹기도 전에 튀어 나가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이, 이봐!"

길드원들도 갑작스럽게 튀어 나가는 이호연을 보며 깜짝 놀랐다.

"내버려 둬라."

"길드장님! 아무리 그래도 저런 돌발행동은…."

"이호연 생도가 왔을 때부터 합의된 일이에요. 그에게 켄타우로스의 조사를 맡겼으니까요."

"… 그렇군요."

아이작 옆에서 보조하던 스칼렛의 말에 의견을 냈던 길드원도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

엘리스는 이호연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켄타우로스를 찾는 이유는 엘리스도 모른다.

연구 같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도 자신도 믿지 않았다.

이호연이 보여준 태도는 연구 따위가 아니라 더 중요한 걸 위해서였으니까.

'… 제발 잘하길.'

그 이유가 뭐든 상관없었다.

엘리스는 그저 이호연이 바라는 게 이뤄지길 바랐다.

*

"… 이건가?"

켄타우로스가 사라진 자리.

아주 적은 지옥의 마나가 흐트러진 흔적이 남아있었다.

- 응. 근데… 이 상태로 분석하기 힘들어. 적어도 내가 원래 몸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지금 변신해도 되나?

"아니아니. 뒤에서 다 보고 있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력을 일으켰다.

말하는 지금도 흩어지고 있는 마력들을 뭉치기 위해서였다.

"지금 당장 분석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 내가 분석하고 레베카가 만든 추적진에 넣기만 하면 돼!

"오케이."

릴리아나의 말대로라면 이 마력을 가져가서 분석해도 괜찮다는 뜻.

손을 들어 마력들을 조종했다.

허공에 떠 있는 불쾌한 지옥의 마력들.

그것들을 뭉쳐서 작은 구슬처럼 만들었다.

- 으음. 응.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

"오케이."

난 손안에 딱 맞는 크기의 구슬을 챙겨 추적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뭐야. 다들 날 보고 있네.

이래서 인기인은 힘들구나.

"… 결과는 어떤가?"

아이작이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마 오늘 켄타우로스가 보여준 이상행동 때문에 약간 긴장하고 있겠지.

"일단 분석을 해봐야 알겠지만… 아마 가능할 겁니다."

"그게 켄타우로스의 마력인가?"

"예. 켄타우로스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료입니다."

"호오… 알겠네."

아이작은 내 손에 있는 구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뒤에서 대화를 듣던 길드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속닥거렸다.

"방금 위치를 추적한다고 하지 않았어?"

"천재마법사라고 하더니, 저래서 데려온 거구나."

"모두, 잡담은 나중에 해라. 방금 들었다시피 이호연이 켄타우로스의 위치를 추적하면 토벌을 위해 싸울 수도 있으니 각오하고, 지금은 일단 돌아가자."

짝짝.

아이작은 손뼉을 치며 해산을 명령했다.

*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켄타우로스를 보조하기 위해 따라온 마인 캐디시.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아이리스 길드 추적팀의 대화를 훔쳐보며 침을 삼켰다.

사도님을 추적한다는 그들의 말.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실하지 않더라도, 저기서 거짓을 이야기할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가능성은 있다는 뜻이겠지.

"역시 마에스트로님이 날 선택한 이유가 있었어."

마력 감지에 걸리지 않는 그의 훔쳐보기 능력이 지금 도움이 된 것이다.

한 번 더 마에스트로님에게 감사한 캐디시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호연… 보고해야겠어. 그런 위험한 놈이었다니."

판데믹에 앞길을 막는 자는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캐디시는 자신을 둘러싼 마력을 느꼈다.

또각또각-

"이건 정말 큰 일이네… 살려둘 수 없겠어."

뒤에서 들리는 미성에 고개를 돌린 캐디시는 적색의 머릿결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 레베카. 무슨 일이지?"

"능력이 너무 좋아도 탈이야. 그치?"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 느낀 캐디시는 레베카를 노려봤다.

눈앞에 있는 레베카의 전매특허인 결계술이었다.

살짝 웃고있는 저 얼굴은 절대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네가 배신자였구나! 이 쓰레기 같은 년이…! 감히 마에스트로님을 배신해?!"

"지금 알아서 뭐 어떡하려고?"

꽈드득-

레베카의 말과 동시에 캐디시를 둘러싼 룬의 결계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압박해왔다.

"크윽?!"

"나도 바쁜 몸이라서. 빨리 끝내자. 그래도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동료였으니, 약간 미안하네."

"이, 이 걸레 같은 년이… 끄읍."

뒤에서 들리는 끔찍한 소리를 무시하며 레베카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인기 많은 남자는 참 피곤하네. 이게 어머니의 강함이라는 걸까."

레베카는 귀찮음을 느끼며 이호연의 숙소로 향했다.

이번 일이 정말 마지막이었으니, 확실하게 처리해야지.

*

"으음. 진짜 모르겠어."

"… 그래? 어쩔 수 없네."

나는 눈을 찌푸린 릴리아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켄타우로스가 중얼거렸던 말을 난 기억하고 있다.

- [서큐버스인가. 이제야 내가 인간들에게 계약당한 이유를 알겠군. 끌리게 만드는 게 있었어.]

저 서큐버스가 릴리아나란 사실은 확정.

게다가 익숙한 얼굴이라는 말도 했었지.

대체 둘은 무슨 관계인 걸까.

나는 켄타우로스의 구슬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릴리아나를 보며 생각했다.

릴리아나.

'애초에 릴리아나의 정체는 뭐지?'

[현재 공략 가능성이 높은 여성 : 임솔(98점), 레베카 (93점), 릴리아나 (85점), 아이린 (83점), 스칼렛 (70점), … ]

나는 히로인으로 만들 수 있는 여성들의 리스트를 확인했다.

원작 게임이 아닌 데도 히로인이 될 수 있는 여성들의 이름들이다.

히로인이 100점이라면, 세계에 미치는 중요성을 점수로 치환해 공략했을 때 그만큼의 점수를 얻는다고 보면 된다.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을수록 공략했을 때 보상이 늘어나는데, 98점인 임솔은 거의 히로인급. 임솔이나 아이작만큼 강한 레베카도 93점으로 높은 점수였다.

아이린과 스칼렛도 영향력만큼의 점수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릴리아나.

저번에 확인했을 때 보다 점수가 올랐다.

원작 스토리에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데 85점이라니, 70점인 스칼렛과 비교하면 엄청나게높은 점수였다.

심지어 처음과 비교하면 훨씬 높아졌다. 마치 점점 릴리아나의 비밀에 가까워질수록 점수가 오르는 것 같았다.

암시장에서 산 계약서 한 장이 이렇게 중요하게 작용할 줄이야.

"호연님."

"응?"

내 고민을 끊는 건 스칼렛의 목소리였다.

"걱정이라도 있으신 모양이네요."

"그냥. 좀 고민이네."

"릴리아나 님 때문인가요?

"그렇지."

릴리아나는 아직도 눈이 빠져라 구슬을 쳐다보고 있었다.

귀엽긴하지만 저런다고 뭐가 나오진 않을 텐데.

"… 그래도 오늘은 꽤 멋있었습니다."

"내가?"

"네. 이제 다른 길드원들도 호연님을 무시하진않을거에요. 게다가…."

스칼렛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녀의 마력을 느낀 거겠지.

나는 허공에서 나타나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보며 말했다.

"레베카 씨. 오셨어요?"

"응. 애기아빠 안녕? 여자친구들도 안녕."

"안녕하십니까. 레베카 씨. 저는 잠시 음료라도 준비해오겠습니다."

스칼렛은 빠르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쟤는 항상 저러더라.

나는 피곤한 듯 하품을 하는 레베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를 보조하러 오셨다면서요. 어쩌다 들키신 거에요?."

"으음, 길드장이 의외로 강하더라고. 켄타우로스의 마력을 직접 추출하려고 결계에 마나를 적게 썼더니 바로 들켜버렸어."

"아하…."

"결국 못해버렸지만. 그래도 켄타우로스 옆에 있던 간부는 잡았어."

"감사해요. 역시 레베카 씨."

어쩐지. 레베카가 걸렸다길래 뭔가 했다.

룬의 결계가 얼마나 사기인데, 밤도 아닌 낮의 아이작한테 들킨 게 이상했거든.

"일단 저기 릴리아나가 가지고 있는 게 지옥의 마력이거든요."

"으응. 고마워. 릴리아나랑 분석해볼게. 이리 와보렴. 릴리아나."

레베카는 릴리아나가 들고 있는 지옥의 마력 구슬을 같이 확인했다.

"웅. 근데 레베카. 오늘은 먹을 거 안 사 왔어?"

"미안해. 다음에는 꼭 사 올게."

릴리아나도 내 말을 듣고 레베카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다들 화기애애하구나.

그래. 다들 저러면 얼마나 좋아.

나는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오늘 내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문자들이 쌓여있었는데, 당연히 히로인들에게만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거기 임솔 교수님의 메시지도 있었다.

- 임솔 교수님 : 우리 제자 잘 지내? 연구가 지금 끝나서 답장이 늦었네. 미안해.

"이 사람은 무슨 연구를 일주일씩 해."

이러면서 단 거만 먹으니까 몸이 망가지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장을 보냈다.

- 나 : 교수님. 그러다가 몸 망가져요.

잠시 후, 릴리아나가 죽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아. 머리아파!"

"왜 그래. 많이 힘들어?"

"이게 의외로 복잡해. 아마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으으음. 그래요? 시간이 애매하네."

분석을 빨리 끝내더라도 켄타우로스를 추적하고 잡는 시간까지 필요했다.

게다가 릴리아나와 대화까지 해야하니, 장난이 아니었다.

당장 내일이 일요일이고, 월요일부터는 기말고사 때문에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한다.

주말까지 시간을 쓴 것도 나름 투자를 많이 한건데 기말고사까지 빠질 순 없었다.

시험 성적도 꽤 중요하니까.

'이걸 여기까지와서 포기해야한다고?'

그건 진짜 싫은데.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스칼렛?"

그때,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은 스칼렛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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