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7 317화. 대테러 지원 (4)
켄타우로스가 나타났다는 통신에 추적팀들이 다시 모이고 있었다.
위치는 당연히 우리가 있는 곳.
길드장이랑 1팀장, 그리고 엘리스가 여기 있는데 어쩌겠어.
여기로 와야지.
시간이 지나자 하나 둘 씩 익숙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꽤 멀리까지 간 길드원들이 있는 탓에 바로 모이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내게 불만이 있어 보이던 사람들도 보였는데,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니까 나는 그대로 엘리스의 옆에 붙어있었다.
아이린은 잠시 자리를 비웠고 세바스 찬과 스칼렛은 길드원들을 마중 나갔다.
내가 아는 사람은 엘리스와 길드장 뿐.
나는 그 옆에 딱 붙어서 부녀의 대화를 들었다.
"그거 이호연이 한 거야."
"오, 그래? 그 많은 마인들 시체가 이호연의 작품이라…."
"운이 좋았습니다."
둘의 대화에 내 이름이 나오길래 바로 끼어들었다.
"남자는 겸손보다 과시가 필요할 때도 있단다. 특히 여자 앞에서는… 커억-."
"제발 이상한 말 좀 하지 마."
- 저 인간은 제대로 된 수컷이네. 음!
릴리아나는 아이작에게 동의하는 것 같았지만, 엘리스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엘리스에게 옆구리를 맞은 아이작은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다며 잠시 보고 오겠다고 자리를 떠났다.
뭐야 저 아저씨.
어딘가로 달려가는 아이작의 뒷모습을 보며 엘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곧 켄타우로스를 만나러 가는데 긴장하는 건 아니지?"
"… 전혀."
"오, 진짜?"
"너야말로 긴장해야지. 켄타우로스를 쫓을 방법이 있다면서."
"엘리스, 잠시만."
나는 조심스럽게 엘리스에게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사실 그거 너 데려오려고 한 거짓말이었어."
"… 뭐?"
엘리스는 주변을 살피더니 내 팔을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진짜야? 바보아니야? 그런 거짓말을 하면 아빠가…."
잠깐 놀리려고 한 말인데, 많이 놀랐나보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엘리스의 손등을 눌렀다.
"아니. 장난이었어. 당연히 준비해놨지. 아버님에게 거짓말했다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 하아. 짜증나."
깜짝 놀란 표정이던 엘리스는 내 말에 미간을 좁히더니 날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엘리스. 농담이었다니까? 엘리스?"
"잠깐 주변 보고 올 거야. 따라오지 마."
엘리스는 새침하게 대꾸하더니 멀리 보이는 세바스 찬에게 걸어갔다.
쩝.
장난 좀 칠 수도 있지.
- 드디어 혼자가 됐구나! 심심했엉!
"… 그래."
엘리스가 가고나서야 릴리아나는 신나게 말을 걸어왔다.
아까부터 릴리아나가 계속 혼잣말을 했는데, 이제서야 대답해줬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있는데 릴리아나에게 대답해줄 순 없으니까.
- 이제 켄타우로스 보러 가는 거지? 어떻게 잡는 거야?!
"글쎄? 일단 추적팀이랑 추적해서 잡는 게 베스트지. 너랑 대화하려면 공간이 필요하잖아."
- 오. 오! 좋아! 가즈앗!
추적팀의 힘을 이용해서 켄타우로스를 생포하고, 아이작에게 협력을 받아 릴리아나와 켄타우로스를 만나게 하는 게 내 계획이다.
단순히 만나는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누려면 그 방법이 제일 좋겠지.
릴리아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안 되니까.
"일단은 켄타우로스를 만나야…."
릴리아나와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무리를 발견했다.
추적팀 멤버들이었는데, 아까부터 불만 있어 보이던 놈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천재 마법사들은 혼잣말도 하나 보네?"
"야… 하지 마. 엘리스 아가씨 손님이잖아."
"뭐? 불만 있으면 지가 따지러 오겠지."
- 저 미친놈 뭐야! 죽여버릴까?!
옆에서 말리는 길드원이 있는데도 웃으면서 날 보고 있었다.
와. 엘리스랑 길드장이 있을 때는 티도 안 내던 놈이 아무도 없으니까 바로 시비를 걸어오네?
참 무서운 세상이구나.
"할 것도 없는데 잘 됐네."
- 진짜 가는거야? 그래도 돼?
"응."
나는 내 이름을 꺼낸 놈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다가갔다.
진짜 다가올지는 상상도 못 했는지 약간 흠칫하더니 이내 자신만만하게 웃는 놈의 얼굴을 보니,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강해지고 나서는 만나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 있는데, 바로양아치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 때 내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던 나쁘지 않은 친구들.
사실 한 번쯤 더 시비를 걸어주길 원했는데, 내가 강해진 뒤로는 눈도 안 마주치려 해서 아쉬웠다.
그런데 돌고돌아 멀고 먼 타국에서 양아치를 다시 만나는구나.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은 채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한테 불만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딱히? 천재 마법사님이 무슨 일이시지?"
음.
아쉽게도 내게 더 시비를 걸어오진 않았다.
이제 이런 사람들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이 적당한 재능을 타고나서 꽤 괜찮은 아이리스 길드에도 들어왔지만, 진짜 천재들과 비교하니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거다.
그렇다고 실제로 무언가 일을 벌일 용기는 또 없는 전형적인 찌질한 인생.
- 이런 인간은 불쌍해. 자기 주제를 모르잖아.
"그러게. 그냥 열등감 덩어리지."
"… 뭐라고?"
"아, 미안해요. 실수로 입 밖으로 나왔네."
남자는 내 말을 듣고 우락부락한 표정을 지었다.
보는 사람이 없어서 덤비는 모양인데, 사실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거든.
"애새끼가 봐주니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야야, 좀 그만하라니까!"
자존심을 자극받았는지, 놈은 마력을 일으켰다.
내 생각대로였다.
보통 이런 인간들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의 시선은 더욱 신경쓰거든.
'조금은 싸워도 되겠지?'
아이리스 길드의 사람이 내게 시비를 거는 상황.
잠깐 불편해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저쪽이 손해다.
오히려 쿨하게 넘어가면 내 이미지 쪽이 이득아닐까.
나도 맞춰서 마력을 일으키려던그때.
"크흡!"
쿠웅-!
내게 다가오던 남자의 머리가 순식간에 바닥에 처박혔다.
"… 응?"
*
엘리스에게 갈비뼈를 맞은 아이작은 절뚝거리며 엘리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어우. 우리 딸은 엄마를 닮아서 주먹이 많이 아프네."
아이작은 근처에 있는 건물의 옥상으로 가볍게 뛰었다.
탁-
"으음."
동시에 근처에 있는 건물에 마력을 흘렸다.
'분명히 마력이 느껴졌는데.'
자신이 잘못 느꼈을 리는 없다.
몇십 년이나 현장에서 뒹굴며 만들어낸 감각에 실수 따위 없으니까.
엘리스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이 근방에서 낯선 마력을 감지했다.
아이작은 조금 더 면밀히 마력을 조종했고, 이윽고근처의 옥상에서 아주 얇은 마력을 감지했다.
가까이 가서야 그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결계였다.
아이작 정도의 강자가 눈치채는 데 이렇게 힘들었다면, 안쪽에는 꽤 강한 결계술사가 있을 거다.
작전을 실행하는 곳 근처에 위험 요소를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아이작은 결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결계 내부에는 매력 있는 붉은 머리를 가진 여성의 옆모습이 보였다.
살짝만 봐도 꽤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크흠.
아이작은 목을 가다듬었다.
미녀에게 실례를 범할 순 없는 법.
아이작은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레이디, 이런 곳에 무슨…."
뚝-
"어머, 결계를 너무 약하게 했나?"
미녀의 마력을 느낀 아이작은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 당신은 누구지?"
아이작의 감각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호연의 전투 감각과 비슷한 그것은, 실전에서 쌓아 올린 야생의 감이다.
아이작은 평생 쌓아온 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제자리에 우뚝 선 아이작을 보며, 레베카는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같은 입장이면서 왜 그래요. 저도 보호자거든요."
"… 이호연인가?"
"응. 그러니까 대쉬는 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할 일이 많아서."
"…."
아이작은 침을 삼켰다.
아직 바깥은 밝았고, 밤이 되기는 멀었다.
상대와 지금 싸워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젠장, 너무 성급했나….'
자신을 이길만한 강자는 얼마 존재하지않고, 그런 사람들의 마력은 당연히 다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은둔고수가 이호연의 뒤에 있었다니.
이미 자신은 그녀의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강한 결계술사의 결계 안에 들어온 이상, 도망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레베카는 아이작의 의도가 보인다는 듯 웃었다.
"걱정 마세요. 싸울 의도는 없거든요. 그냥 애기, 음. 호연이 뒤를 봐주려고 할 뿐이니까."
"당신을 어떻게 믿지?"
레베카는 아이작을 보내려고 했지만, 아이작도 이렇게 후퇴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딸들이 있는 곳에 위험요소를 남겨둘 순 없었으니까.
적어도 그녀의 목적을 확실히 알아야했다.
"으음, 그쪽을 노렸으면 지금쯤 그런 질문도 못했을 테니까. 믿어줄 만하잖아요."
"…."
지잉-
아이작의 뒤쪽 결계가 열리며 틈을 생성했다.
"정 못 믿겠으면 호연이한테 물어보고 다시 와도 되니까, 이제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레베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다.
당신이 덤벼도 상대할 수 있으니, 그냥 조용히 나가라는 뜻이었다.
"…."
아이작은 조용히 결계의 틈으로 빠져나왔고, 결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닫혔다.
"… 나 참."
자신이 이렇게까지 약한 모습을 보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결계 바깥으로 나온 아이작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얼굴은 예뻤으니. 음. 이호연한테 물어볼까."
하지만 역시 미인이다 보니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신경 쓰이는 건 두가지.
대체 어디서 저런 강자가 나왔고, 왜 그녀가 이호연의 뒤를 봐주고 있는지.
머릿속에서 이호연의 평가를 한 단계 더 높인 아이작은, 추적팀이 모이는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호연을 보며 마력을 일으키는 길드원을 발견했다.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후에, 길드원의 뒤통수를 잡고 바닥에 처박았다.
"커헉-."
"… 응?"
이호연은 갑자기 나타난 길드장을 보고 눈을 끔벅거렸다.
뭐야. 이 사람 언제 도착했어.
자신을 상대로 노렸으면 [전투 감각]이 발동하면서 기습을 막았을 텐데, 길드원이 상대다 보니 다가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이작은 길드원의 머리를 붙잡은 채 날 바라봤다.
"미안하다. 호연아. 이 자식은 당장 아이리스 길드에서 제명시키마. 상대도 모르고 덤비는 놈은 필요 없지."
"… 어, 네. 감사합니다. 저도 불편한 상황이 싫었거든요."
- 뭐야! 어차피 덤벼도 이겼을 텐데.
'아쉽네….'
오랜만에 화풀이할 곳이 생겼었는데.
이호연은 아쉬움을 숨기며 끌어올린 마력을 다시 잠재웠다.
보통은 자초지종이라도 물을텐데, 그런 것도 없이 머리를 박아버렸으니 화를 낼 수도 없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작은 손을 털더니 나를 바라봤다.
"이호연. 이번 일은 미안하지만 물어볼...."
"… 무슨 일이야!?"
"기, 길드장님! 무슨 일입니까?!"
그때, 엘리스와 세바스 찬이 멀리서부터 뛰어왔다.
그 뒤에는 스칼렛도 따라오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온 세 명은 길드원의 머리가 바닥에 찍혀있는 걸 보더니 동시에 날 쳐다봤다.
"아니, 왜 날 쳐다보는데요."
너희 길드장이 한 거라고.
*
- 사람이 너무 많아졌어! 으으.
난 불쌍한 릴리아나를 쓰다듬었다.
기껏 대화를 할 시간이 사라졌으니, 쓰다듬기라도 해줘야지.
"또 한 건 저지르셨군요."
"내가 한 거 아니라니까."
그러면서 옆에 서있는 스칼렛을 째려봤다.
이쪽은 피해자라고 피해자.
피해자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 건가?
엘리스와 세바스 찬은 길드원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바닥에 박혀있는 놈을 쓰레기처럼 바라보는 걸 보니 엘리스도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자신이 데려온 손님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나라서 그런 걸까.
'후자면 좋겠네.'
슬쩍 엘리스의 상태창을 확인하러 가까이 가려는 순간.
길드장이 내게 다가왔다.
"이호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