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6화 (316/648)

EP.316 316화. 대테러 지원 (3)

"… 수가 너무 많아요. 세바스 찬."

"길을 뚫어야 할 것 같아. 개체 하나하나가 A급 이상이고, 얼마나 더 충원될지도 미지수야. 게다가 뒤쪽에는 S급도 있는 것 같다."

엘리스는 스칼렛과 세바스 찬의 대화를 들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주위에는 수 십 명의 마인 들이 포위망을 만들었고, 보기만 해도 불안한 마력을 내뿜었다.

그들은 느껴지는 기세부터가 달랐다.

아카데미의 교육 시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짜 살기와 독한 악취.

엘리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오금을 최대한 컨트롤했다.

그리고 몸을 옭매는 긴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준비를 열심히 하길 잘했어.'

아빠의 말대로 보호구를 확실하게 착용하는 게 옳은 선택이다.

엘리스는 최고급 아티팩트 검을 꺼내며, 가까이 다가오는 마인들을 노려봤다.

딱 1분 동안.

눈 깜박할 사이에 꼬치가 되어버린 마인들을 보며 엘리스는 눈을 의심했다.

"음. 일단 대기할까요?"

"… 괴물이야?"

엘리스는 도로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만든 장본인을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대체 언제 저렇게 강해졌는지, 이제 자신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이게… 어떻게 이런 일이."

"믿고 있긴 했는데, 상상 이상이네요."

"크흠."

이호연은 세바스 찬과 스칼렛의 반응해 헛기침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입을 벌린 세바스 찬과 살짝 웃고 있는 스칼렛. 그리고 자존심이 꺾여버렸는지 고개를 푹 숙인 엘리스.

이렇게 반응해주니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다.

"엘리스. 이제 어떻게 할까?"

"… 왜 나한테 물어봐."

이호연은 고개를 숙인 엘리스에게 다가가 다음 작전을 물었다.

너무 놀라서 주눅 든 걸까.

보호구를 덕지덕지 찬 엘리스는 풀이 죽어있었고, 검은 바닥을 향해있었다.

"네가 지휘해야지. 아이리스 길드의 후계자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지. 여기 세바스 찬이랑 스칼렛은 너를 지키기 위해 따라온 거잖아. 그만큼 네가 중요하다는 뜻이니까 지휘권은 너한테 있는 거야."

"… 하아. 그래. 참 고맙네."

어린아이에게 실수했을 때 사탕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처럼 넘어가보려 했는데 역시 실패했다.

엘리스는 뻔한 칭찬에 속을 만큼 어린 애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계속 꽁한 상태는 아니었다. 엘리스는 고개를 저은 후에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테러가 꽤 심각해. 일단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다른 곳도 비슷할 텐데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일행은 대기하지 않고 움직이기로 했다.

이유는 우리 정도의 인력들이 대기하는 건 손해라서.

너무 합당한 이유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대답은 엘리스답네'

자신감을 잃지 않은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제가 길드장님에게 연락해놓겠습니다. 아가씨."

"응. 부탁해."

엘리스는 가까이 있는 마인의 시체를 검으로 쿡쿡 찔렀다.

물컹.

마치 썩은 음식물 쓰레기를 찌르는 감각에 소름이 돋은 엘리스는 마법으로 검 끝을 털어낸 후에, 도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 심심해. 아무 것도 없잖아.

우리는 도심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릴리아나의 말대로, 딱히 목표는 없었다.

난 목걸이를 쓰다듬으며 주위의 일행을 확인했다.

스칼렛과 세바스 찬. 나와 엘리스.

이 정도면 마인들이 조금 나온다고 해서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간부급이 나온다고 해도 내가 처리할 수 있었고, 애초에 이 셋도 약한 편이 아니다.

A급 마인 정도는 이길 수 있는 라인업이다.

돌아다니다가 혹시라도 도망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구해도 좋겠지.

아니면 마인들의 수라도 줄이든가.

난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엘리스를 슬쩍 바라봤다.

고개를 휙휙 돌리며 양옆과 앞을 계속 체크하고 있었는데, 딱 봐도 긴장한 티가 풀풀 났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엘리스에게 소리를 질렀다.

"엘리스!!!"

"끼약!"

엘리스는 내 쪽을 보고 꺄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머, 뭐 하는거야!"

"너무 긴장한 거 같길래. 엘리스. 양옆은 나랑 스칼렛… 씨가 보고 있으니까 너는 앞만 보면 돼."

"… 하아. 응."

"실수만 안 하면 너도 나만큼 할 수 있어. 가자."

"… 그건 절대 아닐 텐데."

엘리스는 날 원망하는 듯 눈을 흘겼지만 다행히 긴장은 조금 풀린 것 같았다.

우리는 금방 도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나는 눈을 찌푸렸다.

- 나 이거 게임에서 본 거 같은데. 아포칼립스 게임.

"이거, 오늘 프랑스 망하는 거 아니야?"

이번에도 릴리아나의 말에 동의였다.

상황이 장난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전투 소리.

수백, 아니 수천 명의 마인과 헌터들이 뒤섞여서 싸우고 있었다.

끔찍한 비명소리와 무언가 박살 나고 폭발하는 소리는 덤이었다.

"괜찮아. 이정도로 안 망해."

"… 그래? 사람들은 다 대피한 거야?"

"응. 파리 곳곳에 지하 벙커가 있고, 대피로도 완벽해. 테러 대비팀도 몇천 명 단위로 운영하고 있어."

"그렇다면야. 뭐."

프랑스의 자세한 사정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게임이 설정이 자세하게 되어있을지도 의문이다.

테러가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 세상이면 보통은 나라가 유지되지도 않겠지.

어쩌면 국민성이 엄청 좋은 설정인가?

- 죽여버려! 인간이다!

그때, 이 쪽을 눈치챈 마인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투 준비해야겠는데."

"이호연 생도. 마나는 괜찮으세요?"

"해봐야죠."

- 스카웃! 우리는 무적이야! 무시하지마!

나는 스칼렛에게 익숙하지 않은 존댓말을 쓰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인들이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전투를 피할 수는 없다.

'혹시 몰라서 마력을 아끼고 싶긴 한데….'

켄타우로스를 만날 때 마나가 필요하긴하다.

- 그아아아아아!

하지만 마인 들이 그런 걸 배려해줄 리가 없지.

마인 수십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나는 가벼운 마법을 쓰면서 전투를 시작했다.

나와 스칼렛은 원거리에서 적들을 요격했고, 엘리스와 세바스 찬은 우리를 엄호하는 단순한 대형.

얼마나 전투가 길어질지 몰랐기에 우리는 체력을 아껴야 했다.

"그래도 아까보다 마인 들이 약하네."

"아마 강한 놈들은 의사가 확실하니까, 이미 싸우고 있을 거예요. 이것들은 남은 놈들이고."

"하긴 그렇구나. 이미 행동하고 있겠지."

강한 놈들은 이미 약탈을 하고 있거나 테러 대응팀과 전투를 하는 중일거다.

우리가 상대하는 마인들은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놈들이었기에 그리 강하지 않았다.

콰직-

나는 마인의 머리를 박살 내며 대답했다.

착실하게 마인들을 줄이다 보니 엘리스도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이놈들은 그렇게 강하지도 않았고, 속도도 느렸으니까.

그때.

- 그아아아아-!

가까이에 있던 건물의 잔해 밑에서 마인이 튀어나왔다.

그놈은 엘리스의 뒤통수를 노렸는데, 세바스 찬과 엘리스는 앞에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쯧."

빠악-

나는 가까이 있던 돌에 마력을 담아 마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 엘리스는 마인과 나를 번갈아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엘리스의 보호구 사이로 마인의 피가 튀어 그녀의 볼에서 흘러내렸는데, 엘리스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엘리스. 뒤는 내가 봐주고 있지만, 그래도 조심해."

"… 응."

- 그으으….

- 여기 강한 인간이 있다-!

- 인간! 죽여!

사방에서 마인 들이 몰려왔다.

이미 백 단위가 넘어간 마인들은 하나하나가 약했지만, 그 중에서도 조금씩 강한 놈들이 섞이고 있었다.

"… 호연님. 지금은 빠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마나를 아끼셔야 할 텐데."

스칼렛은 엘리스와 세바스 찬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니. 이제 괜찮아."

"네? 읏…!"

이제는 스칼렛도 느끼지 않았을까.

쿠웅-

갑작스럽게 주변에 엄청난 압박감이 휘몰아쳤다.

한 명의 사내가 연기처럼 등장한 순간, 나는 세상이 멈췄다고 느꼈다.

- 인간! 죽….

- 그, 그르….

털썩- 팍- 쿵-

모든 마인 들이 동시에 두 동강 나며 쓰러졌다.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일행들 사이에서, 나는 정면을 바라봤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금발의 사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걷고 있는 것 만으로 공간을 꽉 채우는 것 같은 존재감.

저게 아이리스 길드장의 위엄이구나.

"… 우리 따알!"

- 엄청 멋있게 등장해놓고 이상한 인간이네.

"…."

릴리아나는 신랄하게 아이작에게 딜을 넣었는데,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

꺼낸 첫 말이 저런 거만 아니었다면 진짜 멋있었을텐데.

아무튼, 아이작은 그대로 엘리스를 끌어안았다.

"아, 아빠…?"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에게 당황한 듯 엘리스는 말을 더듬었다.

아이작은 엘리스를 꽈악 끌어안았다가, 살짝 떨어져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니? 하아.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 아니야. 이제 걱정 안 해도 돼요. 나도 잘 싸웠거든."

"으응. 그런 것 같구나. 우리 딸이 다 커버렸어. 너무 자랑스럽다. 엘리스."

엘리스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게 기쁜 듯 살짝 눈시울을 붉혔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녀와 눈물이 어울리지는 않았다.

"아버지. 저도 같이… 어머, 엘리스!"

그때, 뒤늦게 아이린도 나타났다.

주변에 있는 마인의 시체를 확인한 아이린은 화가 난 듯 엘리스에게 다가왔다.

"엘리스…!"

"… 언니."

엘리스에게 다가온 아이린은 엘리스의 보호구를 벗기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엘리스는 살짝 눈을 감았는데, 아이린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볼을 손으로 훑으며 피를 닦아냈다.

"내가 이러니까…! 하아. 다행이야. 엘리스.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언니…."

아이린은 눈시울을 붉히며 엘리스의 몸을 끌어안았다.

엘리스는 양옆에서 아버지와 언니에게 안긴 채 서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왜. 귀엽기만 한데.

"아버지. 우리 엘리스 어떡해요. 볼에 피가 묻었어요."

"… 젠장. 당장 구조팀을 불러!"

"둘 다 그만해. 창피하니까…."

나는 어머어머 하는 아이린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아이린이 엘리스를 아끼는 건 확실하구나.'

미친 년이라 문제지, 동생을 애지중지하는 건 맞는 것 같았다.

단지 그 마음이 많이 삐뚤어졌을 뿐.

아이린은 엘리스의 얼굴을 구석구석 살폈고, 아이작은 스마트 워치를 건드렸다.

저거 진짜 구조팀을 부르는 건 아니겠지?

"감동적인 모습이네요. 세바스 찬."

"그러게 말이다. 아가씨를 오랫동안 봐왔지만, 저렇게 기쁜 얼굴은 자주 보이지 않는데."

"… 근데 저거 진짜 신고하는 건 아니죠?"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얼굴에 피가 묻은 거 가지고 신고하는 건 좀 그렇잖아.

"아닙니다. 방금 통신기에 모든 추적팀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세바스 찬은 통신기를 살피며 내게 말해줬다.

추적팀이 왜 모이지?

"추적팀이 모인다고요?"

"추적팀이 모이는 이유는 딱 하나뿐이죠. 이호연 생도."

내 질문에는 스칼렛이 대답했다.

"본래의 임무를 수행하는거에요."

"본래의 임무라면…."

이제는 나도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찾던 목표.

"네, 켄타우로스가 나타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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