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5화 (315/648)

EP.315 315화. 대테러 지원 (2)

비행기는 파리의 교외를 지나 도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 건물이 다 부서졌어.

"… 그러게."

나는 릴리아나의 말에 조용히 속삭이며 비행기의 창문 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곳곳에서 피어나는 연기.

도로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주인 없는 차들과 금이 간 콘크리트들.

말이 교외지 도시에서 꽤 떨어지긴 했지만, 도시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도 상태가 심각했다.

이렇게 테러의 피해가 심할 줄은 몰랐네.

"원래 이렇게 테러가 심해?"

"당연하지. 아카데미는 굉장히 테러를 잘 막는 편이야."

"… 그렇구나."

내 옆자리에 앉은 엘리스가 대답했다.

엘리스는 보호구를 열심히 껴입고,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린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누가 보면 강제징용이라도 당하는 줄 알겠어.

그나저나 아카데미가 테러를 잘 막는 편이면 바깥은 거의 지옥도 아닌가?

아카데미에서도 달에 몇 번은 난리가 나는데.

"이 쪽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야. 예전에 발생한 큰 테러 이후로 그대로 방치한 상태거든."

"아하."

도시와 가까운 곳에 사람이 왜 안 사는 지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나름 사정이 있겠지.

외국이라 나랑 마인드가 다른 건가?

아마 한국이었으면 어떻게든 수도권 주변을 개척했을 것 같은데.

"이 부근에서 내리겠습니다."

"응. 조심해서 내려줘."

조종석에 앉아있는 세바스 찬은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운전에 집중했다.

그 옆 보조하는 자리에는 스칼렛이 앉아있었는데, 그녀도 조용히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바깥에서 아는 척을 하진 않았으니까.

엘리스는 긴장했는지 정자세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 와. 저거 봐. 다 이 주변에서 내리나 봐.

결국 나는 릴리아나의 혼잣말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추적팀은 곧 파리의 착륙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려 지시를 기다렸고, 길드장인 아이작은 파리에 대기하고 있는 테러 대응팀과 대화를 나눴다.

지이잉-

"…."

그리고 내 뒤에서는 여전히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아이린의 시선이겠지.

얼마나 노려보는지 뒤통수가 따가울 정도다.

"자, 이제 일할 시간이다. 모두 준비해!"

작전에 대한 토의가 끝났는지 아이작이 지휘를 시작했다.

추적팀은 원래 나누던 조가 있는 모양이다. 익숙하게 두 세 명씩 나뉘어 뭉쳤다.

그리고 멀뚱멀뚱 가만히 있던 나와 엘리스에게는 스칼렛과 세바스찬이 다가왔다.

"아가씨. 저희는 길드 장님과 아이린 아가씨의 조에서 같이 행동합니다."

"알겠어요."

"… 그럼 저희 조는 6명인가요?"

"그런 셈입니다."

"와우."

다른 조들은 모두 2~3명씩 움직이는데, 우리 조만 무려 6명이다.

이건 뭐 어린이들 보호하겠다고 광고를 하는 거네.

엘리스는 별 생각 없어 보였지만, 나는 주변의 안 좋은 시선을 눈치챘다.

하긴 자기들은 일하러 왔는데 웬 애새끼 둘을 지키느라 길드장과 1팀장, 그리고 에이스라는 스칼렛과 세바스 찬까지 빠지면 기분이 별로겠지.

물론 일개 길드원의 기분까지 내가 신경 쓰진 않을 거다.

안전하면 나야 좋으니까.

꼬우면 인맥을 쌓든가.

"모두 위치로. 특이사항은 통신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선조치 후보고다. 우리가 맡은 구역은 남쪽과 동쪽. 숨어있는 마인들의 잔당 처리다."

할 일이 잔당 처리였구나.

하긴 이미 뉴스에도 보도되었으니 테러 현장을 막는 일은 아니겠지.

"이미 대피는 끝났지만… 혹시라도 생존자가 있다면 생존자의 구조를 우선하도록 하고, 우리가 담당한 곳에서는 절대 마인이 도망칠 수 없게 해라. 이상."

아이작의 지휘가 끝나자마자 추적팀들은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확실히 실력이 괜찮네.'

움직이는 속도만 봐도 실력이 괜찮다는 게 눈에 보였다.

길드원들이 흩어지는 걸 확인한 아이작와 아이린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도시의 안쪽에서 구조작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옙. 알겠습니다."

- 우리는 안전한 곳이네?

릴리아나의 말대로였다.

이미 테러는 와해되었고, 도망치는 마인을 잡는 임무에서 구조 작업을 돕는 건 위험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 애초에 이 라인업으로 구조작업을 하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천천히 도시 안쪽을 순찰했다.

고층 빌딩과 건축물들이 줄지어있는 도심은 위험 따위 없어 보였고, 사람들의 표정도 좋았다.

이건 뭐 동네 마실도 아니고.

- 와, 저기 레스토랑 저번에 갔던 곳이네. 맛있었는데. 쓰읍.

릴리아나의 혼잣말이 그나마 내 심심함을 달래줬다.

그렇게 약간 실망하며 도심을 돌다가 사람이 없는 외각에 가까워졌을 때 즈음, 일이 터졌다.

지지직-

[- 여기는 3팀장. 현재 도심에서 간부급 마인 두 명이 도주 중. 위치는 1팀장과 가까움.]

갑자기 들리는 통신.

꽤나 긴박한 목소리였다.

"… 간부급?"

"판데믹의 간부급 마인입니다. 어쩌면 도주하지 못한 간부를 구하러 왔을지도 모르겠네요."

내 혼잣말에 대답한 건 스칼렛이었다.

앞에서 걷고 있던 아이작과 아이린은 통신을 받자마자 눈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봤다.

"세바스 찬. 스칼렛. 나와 아이린은 잠시 빠진다. 움직이지 말고 여기서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예. 길드장님."

일단 지원을 하기로 한 건가.

사실 저게 올바른 판단이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엘리스의 안전 때문에 간부급 두 명을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아이린과 아이작은 좌표를 확인하자마자 사라졌고,우리는 그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대기하라는 명령이었으니 기다려야지.

엘리스는 세바스 찬에게 무언가 질문을 시작했다.

나는 옆에 서있던 스칼렛에게 말을 걸었다.

"한 건 없는데 피곤하네. 사람도 너무 많고."

"사실 저도 호연 님과 엘리스 아가씨를 위해 4명이나 붙는 건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말을 좀 하든가."

"어른의 사정이니까요. 게다가 이래야 제가 할 일이 줄어들기도 하고."

"너도 참 대단하구나."

이런 스칼렛이 아직도 길드에 남아있는 걸 보면 인성이 아니라 능력으로 뽑는 기준 자체는 확실한 것 같다.

"그나저나 우리는 계속 대기야?"

"예. 아마 도심에서 테러가 다시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규모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큰 것으로 보입니다."

"… 꽤 크다고?"

"네. 길드장님이 직접 가셨으니까요."

나는 레베카가 말했던 말을 떠올렸다.

곧 테러가 일어난다는 말.

그 테러가 혹시 지금인가?

왠지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보통 이런 느낌은 틀리지가 않던데.

스르륵-

불안함을 느낌과 동시에, 내가 펼쳐놓은 마력에서 새로운 마력들이 느껴졌다.

더럽고 탁하지만 강한 마력.

마인이 뿜어내는 마력의 특징이었다.

"하아… 스칼렛. 준비해."

"네?"

"엘리스!"

나는 세바스찬과 대화를 나누는 엘리스를 큰 소리로 불렀다.

세바스 찬도 그렇고 스칼렛도 그렇고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마인이야! 전투 준비해!"

"마인…?"

내 말을 들은 세바스 찬과 스칼렛은 즉시 마력을 흩뿌렸고. 이내 그들도 알아차렸다.

"마인… 이 마력이 다 마인이라고?"

엘리스도 마인의 마력을 느꼈는지,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많긴 하네.

 적어도 몇십 개의 마력이 느껴졌다.

이렇게나 많은 마인이 나타났다는 건 제대로 된 테러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뜻.

'제일 안전하게 하려고 도심으로 왔는데 정작 위험해졌네.'

내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지는 걸 보면 내가 범인이 아닐까 싶다.

마치 안경을 쓴 탐정 꼬마가 된 기분이다.

- 인간들….

- 강한 인간… 맛있는 인간이다.

- 빨리 처리하고 다음으로 간다!

곧 눈에서 흉흉한 빛을 내뿜는 마인 들이 건물 사이사이에서 등장했다.

팔다리가 제대로 달려 있는 놈이 적었다.

언제봐도 그로테스크한 저 몸뚱아리는 볼때마다 짜증이 치솟았다.

강할수록 인간의 지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마인의 특성상, 제대로 말을 하는 놈들은 강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 S급도 있는 것 같다.

마인들이 처음부터 우리를 포위할 생각은 아니었을 거다.

도시 전역에 마인 들이 나타났고, 그중 우리 주변에 있던 마인들이 모였다. 라고 보는 게 합당하겠지.

[- 여긴 추적팀 6조! 외곽을 중심으로 마인 들이 나타났습니다!]

[- 여긴 3팀장. 남쪽에 간부급 마인 출현.]

[- 파리 전역에 테러가 발생했다. 모든 조는 현장에서 판단해 움직이도록. 제일 우선순위는 구조와 안전이다. 이상.]

통신기에서 들리는 소리도 꽤 살벌했다.

이쪽만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 수가 너무 많아요. 세바스 찬."

"길을 뚫어야 할 것 같아. 개체 하나하나가 A급 이상이고, 얼마나 더 충원될지도 미지수다. 게다가 뒤쪽에는 S급도 있는 것 같아."

세바스 찬과 스칼렛은 길을 뚫어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엘리스는 옆에서 작전을 경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 도망은 무슨! 다 죽여버려! 가라 이호연!

릴리아나는 목걸이가 움찔거릴 정도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평소라면 화를 내겠지만, 오늘은 동의다.

'도망칠 정도인가?'

마인들의 수가 많긴 하지만, 해볼 만한 것 같은데.

사실 요즘 너무 강한 사람들이랑 붙다 보니 자신감이 살짝 떨어졌다.

한창 아카데미에 있을 때는 시비 거는 양아치들을 양학할 수 있었는데, 최근 승부를 겨뤘던 사람이 하필이면 더럽게 강해서 문제였다.

레베카

아이작

임솔

혼자서 대형 길드 하나를 작살낼 수 있는 인간병기들하고만 상대했었다.

그러니까 자신감이 떨어지지.

'최근 상대했던 임솔 교수님에 비하면 마인들 정도는….'

할만하잖아.

결국 나는 도주 루트를 짜는 세명에게 다가갔다.

"그냥 싸우는 게 낫지않을까요?"

"… 수가 이렇게 많은데?"

"이 마인들은 우리를 노린 게 아니잖아. 길을 뚫고 간다고 해도 다른 마인들을 또 만날 거야."

"하지만…."

"으음. 그 말도 틀린 건 아닙니다만."

엘리스는 자신 없어 보였고, 세바스 찬은 내 말에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인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고민할 시간 따위 없었다.

그때, 스칼렛이 내게 다가왔다.

"호연 생도. 할 수 있어요?"

마치 아침은 먹었냐는 듯 가벼운 말투.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그럼 해요."

문답은 빨랐다.

스칼렛은 내 말을 듣자마자 마력을 끌어올리며 전투 태세를 갖췄고,세바스 찬은 깜짝 놀란 듯 물었다.

"스칼렛. 정말 싸울 생각인가?"

"이길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니까요."

"호연아. 괜찮아?"

나는 엘리스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주변을 살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데, 그냥 보여주는 게 낫겠지.

내 눈에 들어온 건 붉은 색 소화전.

실제로 사용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 자동차가 소화전을 박으면 분수가 올라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딱 좋네.'

혹시라도 켄타우로스를 상대할 걸 대비해서 마력을 아껴놔야 한다.

나는 손에 마력을 일으켜 소화전의 옆 부분에 강한 충격을 줬다.

콰지직-!

끔찍한 소리를 내며 꺾인 소화전에서 물기둥이 치솟았다.

다가오던 마인들은 잠시 주춤했고,나는 분수처럼 뿜어지는 물기둥에 마력을 입혔다.

생각하는 건 단순한 마법이었다.

하늘로 치솟는 물을 송곳처럼 얼린 후에, 내려오는 힘을 이용해 마인들의 몸을 꿰뚫는다.

물론 말이 쉽지 꽤나 많은 마력과 수고가 들어가겠지만.

싸아아아아아아아악-!

- 으아아아악!

- 피해! 맞으면 죽어!

- 이런 마법을 어떻게 순식간에…!

얼음송곳 하나하나를 마력으로 감싸 마인들에게 쏘아냈다.

강해 보이는 놈한테는 훨씬 많은 송곳을 때려 박았는데, 강한 놈들이 작전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마인들의 특징상 제대로 된 합동작전을 펼칠 수 없었고, 그나마 지성을 가진 강한 놈들이 명령을 못 하면 그 밑의 마인들은 혼비백산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더욱 처리하기 쉬웠다.

- 무, 뭉쳐! 무시하고 다가가면! 크헉.

마지막까지 마인들을 뭉치려고 했던 놈의 머리를 꿰뚫고 나자, 마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자기보다 강한 자의 명령이 없으면 지성이 없는 마인은 그저 짐승에 불과하니까.

몇 분 후.

도로가 마인들의 시체로 가득찼다.

"… 미친 사람."

나는 스칼렛의 칭찬을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스칼렛은 질린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세바스 찬과 엘리스는 입을 벌린 채 날 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싸우자고 말하고서는 내가 다 처리해버렸구나.

나는 도로를 덮은 마인들의 시체를 보며 머쓱한 듯 말했다.

"음. 일단 대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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