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1화 (311/648)

EP.311 311화. 출격 준비

엘리스와 식사를 즐긴 다음 날.

금요일.

"야. 이건 진짜 아니잖아."

"우응...?"

릴리아나의 유혹에 빠져 낮부터 뜨거운 스킨십을 보내려던 나는,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지금 뭐하는거야.

프랑스까지 와서 한 게 없잖아.

나는 천천히 한 일을 되짚었다.

릴리아나와 맛집 탐방.

릴리아나와 뜨거운 밤낮을 보내기.

그리고 엘리스와 데이트 한 번.

히로인들 선물 사기.

겨우 이런 생활을 보내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

어떻게 된 게 본국에 있을 때보다 더 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그때는 쓰레기였어도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은 게으른 쓰레기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

"잠시만 릴리아나, 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럼 어떻게 할건뎅?"

"... 그러게 말이다."

나라고 이런 쓰레기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은 건 아니다.

역시 문제는 테러.

테러가 내 마음대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보니, 이런 식으로 시간이 끌려버렸다.

사실 켄타우로스를 못 찾는 것도 아니고, 아예 나오지않을 거라는 생각은 안했었는데.

일주일에 두 세번은 나타난다는 놈이 한 번도 안 나오는 게 말이 되냐고.

"쩝. 일단 주말까지 연장은 필수네."

"우와! 주말까지!"

릴리아나는 내 마음도 모르고 좋다고 꺅꺅댔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얼마나 짜여질지 벌써부터 걱정인데.

일정이 이틀이나 미뤄졌으니, 애들에게도 전해야겠지.

- 나 : 주말까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 테러 방지를 돕고 있거든.

이런 느낌으로 여자들에게 각자 연락을 돌렸다.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했는데, 다들 지금처럼 답장이 빨리 온 적은 없었다.

- 루시 : 알겠어. 대신 기말고사 내내 동아리방에서 공부하기 잊지 마!

- 루미 : 호연 씨... 항상 몸조심하세요. 꼭 건강하게 돌아오셔야 해요. 저랑 루시랑... 기다리고 있을게요.

- 백아영 : 기다리고 있을게요. 여보... 사랑해요. 흑.... 돌아오면 하고 싶은 거는 뭐든 해드릴게요. 여보... ㅠㅠ

- 문수린 :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무리하지 말고, 돌아오면 꼭 얘기해줘. 말할 게 있거든♥

- 남다은 : 다희랑 집은 잘 지키고 있을게. 너무 늦게 오지는 마. ...쓸쓸하니까.

"... 큰일 났네."

돌아가면 또 내 정기가 다 빨리겠구나.

기말고사를 잘 넘길 순 있으려나 걱정이네.

임솔 교수님은 실습기간 내내 한 번도 답장이 없었다.

아마 아직도 폐관 수련 중이겠지.

하루에 한 번씩 잊지 않고 연락했는데 아쉽다.

"하아. 그래. 일단은 지금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나는 스마트워치를 건드려 실시간 속보를 확인했다.

-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파리. 현재 파리 중심에 나타난 마인 들이 인질을 잡고...

스마트 워치에서는 테러 속보가 나오고 있었는데, 거의 매일 저런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능력을 갖춘 헌터가 그렇게 많으니 범죄자 중에도 능력자가 많겠지.

사회가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

물론 저런 테러는 우리가 나서야 할 테러는 아니었다.

아이리스 길드의 추적팀은 켄타우로스가 나타났을 때 모이는 팀이다. 저런 테러는 프랑스 정부에서 대비할 거다.

"말인간은 안 나오려나?"

"그러게. 일주일에 몇 번씩 나오던 놈이 우리가 오니까 정작 안 나오네."

"서큐버스인 나한테 쫄은 거 아니야? 후후."

나는 미소짓고 있는 릴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일 걱정이 많을 텐데 저렇게 힘든 티를 안 내주는 게 참 고마웠다.

"걱정하지 마. 못 만나면 만날 때 까지 있을 거니까."

"... 정말?"

"응. 당연하지."

물론 주말 안에 나와주는 게 베스트겠지.

"그럼 나 도넛 먹을랭."

"그래. 많이 먹어라."

갑자기 왜 도넛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릴리아나가 좋다면 그걸로 됐다.

릴리아나는 설탕 시럽이 발린 도넛을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고, 나도 하나 집어먹었다.

"호연 님."

"뭐야, 언제 온 거야?"

그때, 뜬금없이 스칼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호연님은 여자를 챙겨줄 때 주의력이 약해지시거든요."

"... 그래서 왜 왔는데?"

이 정도면 내 목숨을 제일 위협하는 건 스칼렛이 아닐까 싶은데.

약점을 몇 개나 알고 있는 거야.

"내일 추적조가 출격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냠."

도넛을 먹던 나와 릴리아나는 스칼렛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네. 길드장님이 호연 님의 의사를 물어보고 오라고 하셨거든요. 혹시 하루 더 있을 생각이 있냐고."

"오... 나야 좋긴 한데, 갑자기 출격이라고?"

어차피 주말까지 있을 생각이라 일정은 괜찮지만,평범한 테러에는 관여 안 하는 거 아니었나?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마 엘리스 아가씨의 실전 경험을 챙겨주려는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그때 말했던 게 효과는 있었구나.

그건 다행이네.

"뭐, 나는 괜찮아. 어차피 주말까지 있을 생각이었어."

생각해보면 나도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은 없다.

테러를 막다가 강제로 생긴 것뿐이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팀플레이를 해보는 것도 꽤 기대되네.

게다가 그렇게 멋진 척을 해놓고 엘리스 혼자 보낼 순 없지.

"알겠습니다. 길드장님께 전하겠습니다."

"응. 부탁해."

스칼렛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그대로 현관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스칼렛은 길드장에게 나랑 무슨 관계라고 설명했으려나.

그것도 궁금하네.

"으으음… 아예 말인간을 못 보는 건 아니겠지."

"괜찮을 거야."

도넛을 손에 들고 벌벌 떠는 릴리아나를 양 팔로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여체가 가슴으로 파고들어왔다.

"으응... 주인님."

나는 내 품에 안기는 릴리아나를 보며 침을 삼켰다.

... 일단 한 번 하고 생각할까?

이 번뇌를 좀 지우고나서 다음 할 일을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애기 아빠. 너무 뜨거운데?"

"어?"

"히이익...!"

분명 아무도 없던 소파에, 붉은 머리의 미녀가 앉아있었다.

"레베카 씨!"

"으응. 오랜만이야. 좀 늦었지? 본부에서 일이 있어서 시간을 빼는 게 힘들었거든."

레베카는 평소보다 텐션이 낮아 보였다.

꽤 힘든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 히로인 상태창

[레베카]

- [ 호감도 : 73 ]

- [ 성욕 : 55 ]

- [ 식욕 : 30 ]

- [ 피로도 : 70 ]

현재 상태 : 아직 상태가 안 좋아. 애기 아빠를 잘 보조할 수 있으려나.

'상태가 안 좋다니?'

나는 조금 더 집중해서 레베카의 몸을 살폈다.

이제 보니, 목에 연하지만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레베카 씨. 혹시 다쳤어요?"

나는 릴리아나의 몸을 놓고 레베카에게 다가갔다.

레베카는 내 시선을 눈치채고 쑥스러운 듯 목을 가렸다.

"별 거 아니야. 다치는 건 매일 있는 일이니까."

"그래도 조심하셔야죠. 힘들면 굳이 지원 안 하셔도 돼요. 저도 나름 강하잖아요."

"후후, 뭐야. 애기 아빠 오늘 좀 멋있네. 하지만 쉴 순 없어. 꽤 중요한 정보를 가져왔거든."

레베카는 한 손으로 스마트워치를 조작하며 정보를 찾았다.

침대 위의 이불을 돌돌 말아 숨어버린 릴리아나를 보고 어이없이 웃고 있을 때, 레베카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일단 애기 아빠가 찾고 있는 켄타우로스가 곧 테러에 나올거야."

"정말요? 언제쯤인데요?"

기약 없는 기다림이 드디어 끝나는 건가?

"글쎄.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고. 확실한 건 곧 나올 거라는 거야. 판데믹의 간부가 지원에 들어갔으니까."

"오... 그래요?"

아니, 좋아할 게 아니지.

"그러면 대비를 해야겠네요. 혹시 어떤 간부가 참여하는지 아세요?"

"응. 캐디시라는 놈인데, 꽤 귀찮은 놈이야."

"으음... 그 이름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나라고 모든 간부를 아는 건 아니다.

원작에 안 나온 간부라면 알 방법이 없다.

"으음. 뭐,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처리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몸을 혹사하진 마시고요."

"당연하지. 아이를 가지려면 산모가 건강해야 하거든."

"... 네. 그런 거죠 뭐."

이제 진짜 눈앞까지 다가왔네.

사실 백아영 덕분에 임신에 대한 부담이 줄긴 했는데, 그래도 뭔가 내 새끼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불편하단 말이야.

내가 이상한 건 아니잖아.

보통 다 이렇게 생각할 거라고.

"으으음! 아무튼 나는 다 전했어. 애기 아빠. 슬슬 가볼게."

"네? 같이 밥이라도 먹고 가요."

레베카랑은 항상 제대로 대화도 못 한 것 같단 말이야.

이 사람 바빠도 너무 바빠.

"그게... 지금도 결계를 뚫고 간신히 들어온 거라서. 여기 길드장이 꽤 강한 모양이더라고. 슬슬 어두워지면 들킬지도 모르겠어."

"아...."

생각해보면 아이리스 길드의 본관에 방비가 안 되어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밤이 되면 더욱 강해지는 아이작의 특징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더욱 위험하다.

"그럼, 일을 다 끝내고 한국에서 같이 식사라도 해요. 세뇌도 풀었겠다, 켄타우로스만 잡으면 판데믹에서 나와도 괜찮잖아요."

"그럴까? 나야 언제나 환영이지."

쪽쪽-

레베카는 활짝 웃더니, 입술을 움직이며 키스 흉내를 내고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저렇게 좋은 사람이 또 없는데."

요즘 레베카한테 너무 도움을 받고 있었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저렇게 열심히 해주면 정말 미안하잖아.

역시 임신시켜주는 것밖에 없나?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리 집에 방이라도 하나 내줘야겠다.

그 고아원 아이도 데려와도 괜찮겠네.

'아닌가? 남자가 들어오는 건 좀 별로같다. 폐기.'

아무리 어려도 남자는 남자니까.

난 침대로 다가가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릴리아나를 발로 쿡쿡 건드렸다.

"야. 릴리아나. 레베카 씨 갔어. 이제 나와."

"흐으...."

릴리아나는 아직도 레베카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저번에 레베카가 사 온 음식을 먹고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음식이 없으면 무서운 건가?

"레베카 씨 착한 사람이야. 겁먹지 마."

"응. 아는데, 다은이가 없으면 무서워...."

"그래도, 실례잖아. 켄타우로스 찾는 걸 도와주는건데."

"알았엉...."

난 시무룩해하는 릴리아나의 볼을 꼬집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테러가 터진다는데, 명상이라도 해야지.

띠링-

그때, 내 스마트워치에 알람이 울렸다.

- 엘리스 : 내일 출격이라는 말 들었어? 혹시 오늘 내 방으로 와줄 수 있을까?

"출격 대비 마사지인가?"

하긴, 실전을 치르기 전에 마나를 채우는 것도 좋겠네.

나는 준비하던 명상을 멈추고 릴리아나에게 말했다.

"릴리아나.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놀고 있어. 곧 스칼렛이 올테니까."

"으응. 알겠어. 스카웃이랑 놀게."

어제 스테이크 포장 사건 때문에 밤 내내 괴롭혔더니, 다행히 릴리아나도 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 나 : 지금 바로 갈게.

'오늘은 조금 긴장되네.'

엘리스의 태도가 바뀐 이후로 마사지는 처음이라 괜히 긴장된다.

난 엘리스에게 답장을 보내고 숙소 밖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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