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9화 (299/648)

EP.299 299화. 루시 & 루미 진심펀치! (2)

오후 3시의 양호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3시간이나 됐다.

바깥에서 어떤 반응이 올지 걱정을 할 정도의 시간이지만, 나는 백아영의 말에 집중했다.

"… 표식이 필요해요. 사랑의… 표식."

"응. 아니, 네…?"

격렬한 섹스가 끝난 뒤.

청소 펠라도 끝났고 수분 보충도 끝났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끝났으니 슬슬 돌아가려 했는데 백아영의 말이 날 붙잡았다.

'표식?'

표식이 대체 뭐지?

딱히 생각해봐도 안 떠오른다.

나와 연결이 되어있다는 흔적을 원하는 건가?

나는 애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백아영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반지 같은 거?"

계속 끼고 다니는 건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일단 사줄 수는 있다.

나는 능력 있는 남자거든.

"반지도 좋지만…."

백아영은 창피한 듯 몸을 배배 꼬며 내게 달라붙었다.

대체 뭔 생각을 하길래 창피해하는 거야.

반지 말고 목걸이. 이런 건 아닐거잖아.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100 ] (+ 2.5)

- [ 성욕 : 100 ]

- [ 식욕 : 60 ]

- [ 피로도 : 80 ]

현재 상태 : 역시 싫어하진 않을까….

"음."

나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백아영을 잡아당겼다.

오늘 분위기도 좋았는데, 이럴 때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줘야지.

일주일이나 못 보니까.

"여보. 말 못 하겠어?"

"반지가 좋을 것 같아요. 으응."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

이제 히로인들의 얼굴만 봐도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 수 있거든.

반지니 어쩌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나는 백아영의 진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팔을 움직였다.

꼬옥-

팔에 힘을 주고 백아영을 강하게 안았다.

내 품에 안긴 백아영은 날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보. 내가 거짓말하면 모를 줄 알았어요?"

"거짓말 아니에요. 여보…."

저렇게 말하면서도 눈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백아영은 거짓말을 할 때 티가 많이 난다.

이럴때는 좀 더 강하게 나가는 편이 낫겠지.

"음, 여보는 내 거잖아. 그렇지?"

"으응. 흐, 흐읏?!"

손을 아래로 내려 백아영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평생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 아니야?"

"마, 맞아요."

백아영은 으으 하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귀엽네.

백아영과 있다 보면 내 가슴 속 음침한 자아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성격이 안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한데… 괜찮겠지.

난 떨고 있는 백아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에요. 중요한 건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거. 전에 얘기했었죠. 여보가 제일 처음이라고. 원한다면 뭐든 해줄 수 있으니까. 숨기지 말고 말해요."

"여보…."

백아영은 자신의 가슴에 올려져 있는 내 손등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내게 안겨 날 올려다보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 아이를 만들래요."

"…?"

"우리의 사랑의 표식… 만들고 싶어요."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여기도 임신이야?

"여보. 아이는…."

당황을 감추며 백아영의 몸을 살짝 밀어냈다.

어쩔 수 없다.

지금 애를 어떻게 만들어.

아이가 생긴다는 건 그만큼 내가 챙겨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솔직히 내 자식이 생긴다는 것 자체도 아직은 거부감이 생긴다.

난 그 정도의 책임감이 없으니까.

그래서 레베카의 요구도 거절하고 있는거다.

하지만 백아영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 옷을 붙잡았다.

"제가 제일 먼저라고 했잖아요. 여보. 분명 그랬잖아요…."

"… 당연하지. 여보가 제일 먼저야."

"아이도 다른 사람보다 제가 먼저여야 해요. … 그럼 다 괜찮으니까."

"여보, 지금은 양호 선생님 일도 있잖아. 일단…."

"아이가 생기면 다 그만둘거에요."

"…."

백아영은 내 손을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강경한 태도를 보인 적 없었기에, 오히려 내 머리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좋아하는 것만큼 자신의 일에도 열중하는 백아영이었지만, 아무래도 어느 순간 마음이 역전되어버린 것 같다.

"… 알겠어. 여보. 마음대로 해."

"아, 아. 사랑해요. 사랑해요. 여보…."

빨개진 얼굴로 내 가슴에 안기는 백아영을 보며 난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장 질내사정 한 두 번으로는 임신이 힘들다고 쳐도,계속 쌓이다 보면 진짜 위험한데.

'여자가 눈치 못 채는 피임마법이라도 개발해야 하나.'

내 전투력보다 이 쪽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이호연이 돌아간 이후 양호실.

백아영은 소중하게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그의 아이씨가 들어 있는 곳.

드디어 허락을 받았으니 이제 당당해야지.

지금까지 몰래 피임하지 않았을 때 느껴졌던 양심의 가책도 이제 없앨 수 있다.

똑똑똑-

그때 들리는 노크소리에 백아영은 문을 바라봤다.

"네. 들어오세요."

"오늘은 치료가 오래 걸리셨네요. 성녀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양호실의 실장이었다.

백아영의 전담 비서 같은 사람으로, 이사장이 생활에 불편한 점을 해결해주기 위해 직접 붙여준 사람이다.

"이호연 생도가 성녀님의 체력이 많이 떨어지셨다고 해서, 기다리던 생도들은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고마워요. 실장님."

백아영은 실장의 배려에 감사를 느꼈다. 실제로 지금 치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몸이 많이 피곤했으니까.

"아, 그 대신 다음에 왔을 때 우선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명단을 받았습니다."

"으음…."

아까 봤을 때는 기다리던 생도들이 매우 많았던 것 같았는데.

백아영은 나중에 몰릴 생도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양호 선생님이라는 이름 때문에 열심히 해왔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호연이었다.

다른 남자들은 미리 치워야 했다.

"실장님. 그 건에 대해서 말인데요."

"네네."

"이제 양호실 영업은 안 하려고요."

"… 예?"

양호실 실장은 갑작스러운 백아영의 말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저 보러 오는 남자 생도들 뿐인데 굳이 열어놓을 필요가 없잖아요?"

"어, 어. 그렇긴 한데. 그래도…."

물론 저 말이 맞다.

진짜 환자들은 의료팀으로 가고, 양호실에는 단순한 찰과상으로 방문하는 생도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대부분이 남자생도.

 애초에 양호 선생님이라는 자리가 백아영을 영입하기 위해 하루아침에 급조한 자리라서 생긴 문제였다.

어른의 사정이라는 거다.

그래도 유지하고 있던 이유는 '양호 선생님 백아영'이 실제로 아카데미에 존재하고 있다는 명분 하나 때문이었다.

"대신 의료팀에 지원도 많이 가고, 실습수업 지원도 많이 나갈게요. 이사장님한테는 제가 직접 얘기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사장님께는 일단 제가 보고드리겠습니다. 성녀님은 쉬고 계시죠."

지금까지 이런 강경한 태도를 보인 적 없는 백아영이었기에 양호실 실장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해야할 일은 백아영을 설득하는 게 아니다.

이사장에게 빠르게 보고를 하는 것이다.

판단은 이사장이 알아서 할테니, 자신은 할 일을 해야한다.

실장이 나간 뒤.

백아영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양호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아이가 생기면 어차피 은퇴해야 한다.

다른 남자 생도들이 보러 오는 것도 이제 받아줄 필요가 없겠지.

여보의 아이를 가질 준비를 위해선 다른 남자와 접촉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양호 선생님이라는 자리보다 언제든지 빠질 수 있는 현장으로 가는 편이 낫다.

백아영은 서랍 안에 있는 수많은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했다.

사실 이제야 고백했을 뿐, 그 전부터 질내사정을 받았으니 언제 임신할지 모른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했어.'

아직까지 임신을 하진 못했지만,앞으로 열 번까지 몇 번 남지 않았다.

*

"후우."

양호실에서 나온 후에 동아리 건물로 걸어갔다.

시간이 조금 늦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겠지.

양호실 앞에서 서 있던 긴 줄은 백아영이 힘들다는 내 말 때문에 모두 흩어졌다.

아파서 찾아왔으면서 의료팀으로 안 빠지는 걸 보니 역시 다 꾀병인 놈들이었다.

수린 누나한테 이르던지 해야겠어. 저 나쁜 놈들.

단축 수업이라 그런지 아카데미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평소보다 적었다.

아마 기숙사에서 내일 실습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놀고 있을지도 모르지.

천천히 걷다보니 동아리 건물에 도착했다.

'뭔가 오랜만이네.'

동아리 방에 침대도 들여놓고 정작 쓰질 않았다.

가끔은 들려야하는데 너무 바빠서 힘들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2층에 있는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이 방 하나를 구하려고 예전에 참 고생했었는데.

생각해보면 나름 추억이 담긴 곳이다.

아마 루시루미 둘 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지.

똑똑-

- 네. 들어오세요!

활기찬 루시의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문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루시의 얼굴이 보였다.

"당신이 신입 부원이야? 여기 앉아."

"… 뭐라고?"

"면접이야. 여기 앉으라구."

루시는 내 팔을 잡아당기며 의자에 앉혔다.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뒤에 있던 루미도 루시의 옆에 딱 붙었다.

"흐음. 루미. 이번에 면접을 보러 온 신입 부원은 상태가 좋아."

"안녕하세요. 신입 씨."

"… 얘들아? 상황 설명이라도 해 줘."

잘난 듯이 날 내려다보고 있는 루시와 그 뒤에 붙어있는 루미.

뭔가 설명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서 루시의 얼굴을 뻔히 바라봤다.

"보면 몰라?"

"면접이에요."

루시는 팔짱을 낀 채 진지한 표정이었고, 루미는 그 옆에서 쭈뼛거리고 있었다.

"… 네네."

아직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귀여우니까 일단 어울려주기로 했다.

루시와 루미는 진짜 면접처럼 종이같은 걸 넘기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넘기는 종이를 훔쳐보니 아무 내용도 써있지 않았다.

"첫 번째 질문은 빅토리아 아카데미 생도 중에 제일 예쁜 두 명을 고르는 거야!"

"힌트는 쌍둥이라는 거에요!"

루시와 루미는 자신만만하게 날 바라봤다.

제일 예쁜 두 명.

그래. 무슨 대답을 바라는 지는 알겠다.

사실 히로인들간의 우위를 나눌 순 없다. 다들 너무 예쁘니까.

모두가 공동 1등이라고 치면, 루시와 루미도 1등이지.

"당연히 루시와 루미지."

"정답!"

짝짝짝-

루시는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고, 루미는 기쁜 듯 웃으며 입을 가렸다.

"호연 씨… 저희를 그렇게나."

"루미. 호연 씨가 아니라니까."

"아, 신입 씨… 정답이에요."

루미는 뒤늦게 정정하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 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루시와 루미 중에서는 누가 더 기분 좋을까?"

"… 그건 무슨 소리야?"

무슨 창의적인 질문이 올까 했는데, 창의적이어도 너무 창의적이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잖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심지어 '누가 좋냐'도 아니고 '누가 기분 좋냐'라니 이딴 면접이 어딨어.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루미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힌트를 쓰시면 체험을 하실 수 있어요."

"체험?"

"네. 누가 더 기분 좋은 지… 체험이에요."

아.이게 목적이었구나.

이제야 쌍둥이들의 목적을 깨달은 나는 실소를 지었다.

사실 굳이 상황극을 했어야 했나 싶었지만, 재롱잔치를 보는 것 같아서 귀여웠다.

나는 최대한 진심인 표정으로 루시와 루미를 바라봤다.

"그럼 체험해봐도 될까요? 꼭 이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은데."

"당연하지. 준비한 게 많으니까 이쪽으로 와."

"저, 저도 노력했어요."

루시와 루미는 내 양팔에 팔짱을 끼고, 안쪽에 있는 침대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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