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8화 (298/648)

EP.298 298화. 루시 & 루미 진심펀치!

점심시간.

이호연이 한참 백아영과 밀회를 즐기던 바로 그 때.

루시와 루미는 학생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노릇하게 구워진 스테이크.

식욕을 돋우는 맛있는 냄새가 루시의 코를 간지럽혔지만, 루시는 음식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루미. 큰일이야."

"왜애?"

냠.

숟가락을 입에 넣은 루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는 루시를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경쟁자가… 너무 많아!"

"음… 그렇긴 하지?"

루미는 루시가 말하는 의도를 바로 파악했다.

이호연.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사랑하는 그 남자는 인기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마음 같아선 저 남자는 우리랑 사귀고 있다고 당당하게 발표라도 하고 싶지만…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에게 피해라도 줄까 봐 겁났다.

소심한 루미는 물론이고 루시도 이호연이 불편해지는 건 싫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런 배려도 끝이다.

불끈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던 루시는 루미의 팔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우리 존재감이 없어질지도 몰라. 그럴 순 없다구…!"

"으, 으으. 루시. 일단 밥을 먹고 생각하자."

"안돼. 시간이 없어."

결국 루미는 루시의 등쌀에 못 이겨 식사를 멈추고 고민을 시작했다.

식당 구석에서 소곤소곤대는 두 쌍둥이를 훔쳐보는 생도도 많았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루미.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

"… 물리적으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루시…."

"미안."

루시는 다시 진지하게 생각을 시작했다.

"분명 우리가 제일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사실 다은 양의 태도도 좀 불안하긴 했어…."

"그치. 나도 그랬다니까! 대체 다은이하고는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루미 너는 알아? 너희 같은 조였잖아."

루시는 루미의 말에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이 바람둥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걸까.

요리 수업 때 다가온 남다은의 표정.

루시와 루미는 똑똑히 확인했다.

그건 사랑에 빠진 여자의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겠어. 나랑 호연 씨랑 다은 양이랑… 나머지 한 명은 누구더라? 아무튼 같은 조였어."

"그때 뭔가 있었던 거 아니야?"

"으으음, 아니야. 오히려 호연 씨는 다은 양의 개인플레이를 싫어했어."

"흐으. 또 원점이네."

대화를 이어가던 쌍둥이는 곧 깨달았다.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것.

그게 아니라면 경쟁자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다.

"어? 루시. 저기 봐…."

"뭐가… 응?"

그때. 쌍둥이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렸다.

'스테이크는 비싸네. 호연이는 쓰고 싶은 만큼 쓰라고 하긴 했지만, 역시 싼 걸로 먹는 게….'

바로 아무 생각 없이 점심을 먹으러 온 남다은이었다.

오늘 이호연은 바쁘다고 했고, 아카데미와 달리 남다희가 다니는 부속 학교는 단축 수업이 아니었다.

집에 가봤자 스칼렛은 안 보일 때가 많고, 릴리아나는 방송시간이다.

'오늘은 훈련장에서 길게 있어야겠다.'

결국 남은 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빠르게 늘어나는 실력덕분에 더 주목을 받고있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쓰지않았다.

어디까지나 이호연이 해보라고 해서 하는 것 뿐이니까.

남다은은 훈련을 가기 전에 점심을 먹으러 학생 식당에 들렸고, 음식을 받아 조용한 자리에 혼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발견한 쌍둥이들은 다시 속삭이기 시작했다.

"… 루미. 어떻게 할까?"

"뭘 어떻게 해? 다은 양이랑 대화도 안 해봤잖아."

오늘따라 적극적인 루시를 보며 루미는 살짝 당황했지만, 루시에겐 포기할 기미가 안 보였다.

"루미. 그러니까 지금이 기회인 거야. 이럴 때가 아니면 대화할 기회도 없을 거야. … 가자!"

"… 으으응?"

루시는 다 식은 음식 판을 들더니 루미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을 했다.

"루, 루시. 왜 그래."

"왜 그러긴! 우리가 먼저 좋아했으니까 다은이가 잘못한 거잖아! 도둑고양이나 괴도 루팡같은 거라구!"

"어, 어… 그런가?"

루미는 루시의 말을 곰곰이 되짚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신들은 항상 이호연과 친하게 지내며 우애를 다졌는데, 갑자기 나타난 다른 여자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길 수는 없었다.

그건 반칙이잖아.

"루미. 가자…!"

"루시, 근데 가서 무슨 말 하려고?"

"우리가 먼저라고 말해야지! 이호연을 좋아하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해."

바람둥이 남자를 좋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우리 만큼의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

결국 루시는 음식을 들고 남다은의 자리로 향했고, 루미도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탁- 툭-

"…?"

오후 훈련 일정을 고민하던 남다은은 갑자기 합석하는 두명의 여자를 바라봤다.

"안녕. 다은아?"

"아, 안녕하세요. 다은 양?"

루시와 루미.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아카데미의 인기인들이다.

그리고 이호연과 매우 가까운 여자들이기도 하다.

아마 다가온 이유는 이호연 때문이겠지.

"안녕?"

하지만 아예 남도 아니고, 이호연과 친한 여자들이라면 대화를 안 할 이유가 없다.

남다은은 식사를 멈추고 루시루미와 눈을 마주쳤다.

눈앞의 쌍둥이들은 긴장한 듯 표정이 굳어있었다.

"음. 오늘 밥 맛있다. 그치?"

"마, 맞아."

갑자기 식사 이야기를 하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루시를 보며 남다은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쪽에 관심 없는 척하며 눈길을 돌리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역시 요리 수업때 너무 나서지 말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상하게 그 때는 나서고 싶었다.

아마도 일주일이나 못 본다는 것에 대한 반발심리가 작용한 것이겠지.

남다은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루시와 루미를 바라봤다.

"할 말 있어서 온 거지? 편하게 해도 괜찮아."

남다은은 대화 자체도 잘 못했지만, 빙빙 돌아가는 화법은 더욱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건 할 말만 하는 깔끔한 대화.

그렇기에 남다은은 루시와 루미에게 용건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

"…."

하지만 루시와 루미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화를 하기 전부터 도둑고양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남다은의 말이 도발인 줄 알았던 것이다.

쌍둥이의 눈에는 남다은이 여유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으면 해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루미는 긴장한 채 루시의 손을 꼭 잡았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언니인 루시뿐이었으니까.

루시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루미의 손을 꽉 잡았다. 이럴 때일수록 언니인 자신이 나서야 한다.

"너. 이, 이호연 좋아하지."

"…."

남다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루시를 바라봤다.

다음 말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 이호연은 내 꺼야. 건들 생각 하지 마…!"

루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남다은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고, 옆에 있던 루미는 루시의 손을 꾹꾹 잡아당겼다.

"루시… 우, 우리꺼…."

"아…! 우리 꺼야! 우리가 얼마나…."

우리가 더 좋아했다. 항상 옆에서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 아냐.

루시는 생각나는 대로 최대한 열심히 말을 뱉었다.

자신들과 이호연이 얼마나 친한지, 얼마나 깊은 관계를 나눴는 지 최대한 풀어냈다.

그리고 지켜보던 남다은은 속으로 웃음을 참아야 했다.

마치 명절 때 귀여운 친척 동생이 와서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나도 항상 같이 지낸다' 라면서 똑같이 돌려줄 수도 있지만, 남다은은 그냥 옅게 웃었다.

이호연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구원받기 전부터 이호연과 관계가 깊던 루시와 루미도 존중하기때문이다.

남다은은 그에게 인생을 바치기로 했다. 그러니 그 전부터 관계를 가지던 다른 여자를 끊어낼 권리가 없었다. 아카데미에서 직접 친하게 지내는 걸 확인한 루시와 루미같은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남다은은 루시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는 이호연을 왜 좋아해?"

"… 으응?"

"…?"

말을 끝낸 루시와 루미는 남다은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히 그를 좋아하지만, 어째서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 싫다고 했는데 내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고."

"힘들 때 친하게 놀아주기도 했어요."

"언제나 같이 있었고…."

"저희 둘을 다 좋다고 해줬어요."

루시와 루미는 이호연을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평소에 너무 가까워서 느끼지 못했던 걸 말로 표현하려니 약간은 창피했다.

그 둘의 표정은 사랑에 푹 빠진 여자의 표정이었고, 남다은도 그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같은 조 일 때 날 도와주기도 했고, 내 개인적인 일에 힘써주기도 했고. 너희가 좋아하는 이유와 똑같아."

남다은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루시와 루미가 겪은 사건과 비슷한 사건을 그녀도 겪었다.

"그렇지만. 나랑 루미가 먼저인데…."

"마, 맞아요."

루시와 루미는 귀여운 투정을 멈추지 않았지만, 루미를 보던 남다은은 문득 할 말이 떠올렸다.

"맞아. 루미."

"네, 네?

"조별 과제.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을 때였거든. 사과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게 되어서 미안해."

"아. 괘, 괜찮아요. 저는 신경 쓰지도 않았고. 호연 씨도 괜찮을 거에요…."

이 착한 소녀가 남다은은 참 고마웠다. 그때는 이호연이나 루미에게나 참 민폐를 끼쳤었는데, 아무 말 없이 넘어가줬다.

한 명이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은 안 났다.

"고마워. 루미. 앞으로도 잘 부탁해. 밥 맛있게 먹어."

"네, 네…. 네?"

"루시도 계속 잘 부탁해. 앞으로 자주 볼 테니까."

"응? 잠시만. 잠시만!"

루미에게 사과를 마친 남다은은 루시에게도 인사를 한 후에 빈 그릇을 가지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쌍둥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남다은을 보며 눈을 끔벅거리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남다은은 강적이었고, 계획은 실패였다.

"어떡하지, 루시? 우리 계획이 틀어졌어…."

"생각보다 강적이네…. 후우. 어쩔 수 없어 루미. 플랜 B로 가는 수밖에… 빨리 동아리방으로 가자."

루시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 나 밥…."

"지금 밥 먹을 시간이 어딨어! 빨리 와."

"아, 알았어. 응…."

루시와 루미 쌍둥이는 강적들을 물리칠 방법을 생각하며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의 준비뿐이었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