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0 280화. 이호연 하렘 계획! (3)
프랑스의 아이리스 길드.
오랜만에 돌아온다는 엘리스의 소식은 길드원들에게도 퍼져있었다.
현장 실습에 엘리스 말고도 한 명의 생도가 더 온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들었어? 이번에 엘리스 아가씨 말고도 한 명이 더 온다는데? 그, 이호연이랬나."
"그건 또 누구야?"
"있어. 요즘 유명해진 천재 마법사. 너는 좀 사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니까."
"뭐라는 거야. 그걸 아는 네가 이상하다고 몇 번을…."
또각또각-
"다들 일이 편한가 봐?"
그때 사내들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여자가 있었다.
흘러내리는 금발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붉은 루비 같은 눈동자를 가진 도도한 미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지만, 그녀의 직책은 아이리스 길드의 팀장 중에서도 가장 높은 1팀장이었다.
이름은 아이린. 길드장과 부길드장의 딸인 그녀는, 아이리스 길드의 일반 길드원들에게 하늘 같은 사람이었다.
"티, 팀장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뭘 또 갑자기 그래. 편하게 있어."
아이린은 자세를 고친 길드원을 보고 웃으며 그대로 걸어갔다.
완전히 그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길드원들은 긴장을 풀었다.
"후, 후우… 깜짝 놀랐네."
"쯧쯧. 조심 좀 하라니까. 업무시간이잖아."
"그래도 1팀장 님이라 다행이야. 그렇지않냐?"
"그치. 엘리스 아가씨의 얘기만 나오면 항상 웃으시잖아. 어떻게 보면 경쟁자일 텐데… 아예 그런 감각이 없으신 거야. 가족이니까."
"뭐, 우리는 일이나 하자고."
한편.
- 흐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1팀장 업무실로 들어온 아이린은 다리를 꼬며 소파에 앉았다.
소파 앞에는 거대한 전신거울이 있었는데, 아이린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며 잔에 와인을 따랐다.
그녀는 아름다운 걸 사랑했다.
어릴 적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아주아주 많이 들은 걸 빼면, 공주 인형이나 귀여운 드레스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나서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걸 찾아버렸고, 그렇게 자신과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8살이 되던 해.
동생인 엘리스가 태어났다.
처음에는, 동생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더 완벽하고 예쁘게 꾸미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슬픈 사실은 자기자신과 결혼할 수 없다는 걸까.아이린은 아름다운 건 좋았지만, 외롭기는 싫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났다.
동생인 엘리스가 걸어다닐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 언니- 이거 봐!
"엘리스. 언니는 바쁘…."
자신에게 관심 없는 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와다다 달려와 꽃을 내미는 엘리스.
아이린은 그제야 깨달았다.
붉은 루비같은 눈동자. 아직은 귀엽지만 자라면 분명 도도한 미녀가 될 자신의 동생.
여기, 나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
그게 아이린의 어린 시절이었다.
홀짝-
아이린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TV처럼 지켜보며 와인의 향을 즐겼다.
엘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샤토 디켐이라는 와인이다.
동시에 스마트워치로 조사한 사진을 꺼냈다.
이호연과 같이 있는 엘리스의 사진이었다.
아이린은 사진을 보며 아쉬움의 한숨을 흘렸다.
"여자였다면… 완벽했을 텐데."
사진을 처음 봤을 때는 그녀도 깜짝 놀랐다.
엘리스의 옆에 서 있는 남자인 이호연.
그는 나르시시스트인 아이린이 봐도 꽤 괜찮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린의 기준에 비해 조금 모자랐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 엘리스 뿐이었다.
문제는 이호연이 잘생겼냐 아니냐가 아니다.
"흐으음…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란 말이야."
톡- 톡-
손톱으로 사진을 건드리던 아이린은 눈을 찌푸렸다.
듣기로는 엘리스의 마사지사라고 하던데, 사실 그것부터 굉장히 짜증 났다.
물론 엘리스의 성격상 아무 이유 없이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았을 테니 분명 효과가 있는 마사지사겠지.
심지어 아버지인 아이작이 직접 한국에 갔다가 시무룩해져서 돌아왔으니 확실할 거다.
그래. 다 좋다.
그런데 어째서, 저 남자가 켄타우로스 추적조에 들어오냐가 의문이었다.
아버지 아이작에게 물어도 눈을 피할 뿐 이유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일단은… 만나보면 되겠지."
엘리스나 이호연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다.
오랜만에 사랑스러운 동생도 보고 말이다.
아이린은 손에 든 와인을 마시며 스마트워치를 내려놨다.
*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병실.
"이해가 안 돼. 진짜로…."
엘리스는 병실에 누워 끙끙대며 화를 표출했다.
온몸의 마력 회로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다행히 어느 정도 조치는 받았지만, 엘리스가 앓고 있는 선천적 마력 장애는 아직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병이었기에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사실상 느껴지는 고통은 거의 줄지 않았다.
이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단 하나.
조금씩 흡수하는 자연 마력을 며칠간 몸에 녹여내는 수밖에 없었다.
즉 절대안정이다.
"… 후우."
병실에 며칠이나 더 있어야 하는 것도 짜증 났지만, 지금 엘리스의 머리를 괴롭히는 건 다른 주제였다.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세바스 찬에게 보고를 받은 뒤로 엘리스는 몸이 아니라 마음마저 불편해졌다.
대체 어떻게 문수린을 구워삶은 거지?
조금 이기적이었지만… 자신은 순수한 학생회장의 호수에 큰 돌을 집어 던졌다.
분명 엄청난 파문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호연의 병문안을 하고 나온 문수린의 표정이, 즐겁다 못해 행복한 표정이었을까.
엘리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 바람둥이의 손길에 하나하나 빠져가는지 모르겠어.'
예전에 호감이 있었던 것도 까먹었는지, 엘리스는 누워서 고개를 저었다.
"아얏…."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바로 그만뒀지만.
똑똑똑-
엘리스가 목에 느껴지는 고통에 눈물을 참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엘리스, 늦은 시간에 미안해. 혹시 일어나있어?"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타이밍이 무섭다.
이호연의 목소리였다.
엘리스는 자는 척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들어와."
별 이유는 없었다.
아파서 잠도 안 왔고, 무슨 얘기를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호연은 조용히 문을 닫고 침대로 다가왔다.
"몸은 괜찮아?"
그리고 자연스럽게 환자용 의자에 앉았다.
그걸 본 엘리스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보면 알잖아.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늦어서 미안. 네가 나 때문에 다쳤다고 하길래 걱정되서 찾아왔지."
"…."
그걸 알면 자신에게 찾아오는 게 일 순위였어야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엘리스는 가슴에 피어오르는 찌질한 질투심을 잠재웠다.
자신은 인정받기 위해서 이호연을 구한 게 아니다.
그저 선천적 마력 장애를 치료할 사람이 이호연밖에 없어서 노력한 것뿐이다.
"상태가 심하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대충 알겠네. 반동이구나."
이호연은 엘리스의 몸을 훑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의 몸에 있는 마나 회로들이 억지로 마나를 짜낸 탓에 쪼그라들어 있었다.
저런 상태면 엄청나게 아플 것 같은데, 의연한 표정으로 있는 엘리스가 대단할 정도였다.
아마 선천적 마력 장애의 반동이겠지.
나를 구하기 위해 한계보다 많은 마력을 억지로 끌어냈으니 이렇게 된 거다.
"그래. 반동이야. 그리고 딱히 널 구하기 위해 그런 게 아니니까… 돌아가서 쉬어. 너도 환자잖아."
엘리스는 자신이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이호연이라면 더더욱.
"내가 직접 만져서 마나라도 좀 넣어줄까? 그럼 고통이 줄어들 텐데."
"… 아니. 괜찮아."
엘리스는 눈을 감으며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사실 꽤나 고통이 심했기에 당장이라도 만져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이호연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이상한 자존심이 발동된 것이다.
하지만 이호연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75 ]
- [ 성욕 : 85 ]
- [ 식욕 : 40 ]
- [ 피로도 : 70 ]
현재 상태 : 아프지만, 짜증 나.
'얜 또 왜 이래.'
자신을 먼저 찾아오지 않은 것.
그리고 문수린과 사이가 좋아진 것.
그 외에도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이호연은 하나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또 자존심이 발동했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많이 아프잖아. 이러다가 현장 체험 실습 때도 입원하고 있으면 어떡해."
"… 그때까지는 나을 거니까 걱정 마."
"안돼 안돼. 그냥 가만히 있어."
"하, 하지 말라니까?! 아으읏…."
이호연은 그녀의 허락도 맡지 않고 팔에 손을 올렸다.
엘리스는 순간적으로 팔을 올리려 했지만,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팔을 약간 움찔거리는 게 최대였다.
"봐봐.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면서 뭘. 그냥 가만히 있어."
"아니, 하지 말라… 큽…."
엘리스의 반항에도 이호연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눌러가며 마나 회로를 풀어줬다.
"앗, 아읏…."
엘리스는 티 내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놀랐다.
이호연이 건드릴 때마다 실시간으로 고통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아주 살짝 따끔거린 후에 고통이 사라진다.
"아, 하아…."
"그래. 좋잖아. 금방 끝날 거니까 참아."
"…."
엘리스는 입술을 깨물며 이호연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마치 자신을 아이로 보는 것 같은 말투가 짜증 났다.
"너어, 아, 핫…."
하지만 손을 지나 팔을 만지고, 마나 회로가 많이 뭉쳐있는 어깨에 다다르자 엘리스는 눈을 찡그렸다.
느껴지는 고통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고통은 잠깐 이후에 영구적으로 사라졌지만, 그 고통이 너무 심했다.
"자, 잠. 잠깐… 아, 아파아…."
"아, 너무 아팠어?"
엘리스의 어깨를 누르던 이호연은 급하게 손을 뗐다.
자존심이 강한 엘리스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아픈 거일 거다.
"하아… 후우…."
"그래도 팔은 이제 안 아프지 않아?"
"… 응."
엘리스는 이호연의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이 남자가 하는 말에 동의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확실히 고통은 줄었으니까.
"너무 아프면 천천히 하자. 쉬었다가 해도 되고, 내일 해도 되고."
"… 그럼 조금만 쉬었다가 해. 반 정도는 내일."
"그래그래."
이호연은 웃으며 엘리스와 대화를 나눴다.
엘리스는 무언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은 혼자 속으로 질투나 하고 있었는데, 이호연은 순수하게 자신을 걱정하며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그 간격에서 그녀는 조금 창피함을 느꼈다.
"왜 그래? 다시 아파졌어?"
"… 아니. 하아."
엘리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우울한 감정을 날려 보냈다.
그래.
나도 개고생해서 살려줬는데 그럴 수 있지.
조금 더 자신있게 행동하자.
엘리스는 아무것도 아닌 척,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잠시 이야기나 할래? 내가 아이리스 길드에 대해서 말해준다고 하지 않았어? 당장 며칠 뒤면 아이리스 길드로 출발할텐데."
"오, 얘기해주면 나야 좋지!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고개를 마구 끄덕이고 웃으며 대답하는 이호연은, 마치 주인이 좋다고 따라오는 강아지 같았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이지만, 눈 앞의 남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즐거워졌다.
이 기묘한 감정을 가슴에 품은 채 엘리스는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