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3 273화. 학생회장 문수린 (5)
문수린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째서…?'
갑자기 이호연이 자신의 몸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얼굴은 가까워졌고 이호연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보게되었다.
순진한 아이같이 앳되면서도 성숙하고, 우아하면서도 퇴폐적인 분위기.
신께서 얼마나 공 들였는지 모를 작품.
길을 걷다 눈에 보이는 순간 고개가 돌아갈 정도의 미모였다.
그런 남자가 자신의 손을 잡고,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다.
어느 여자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호, 호연아."
문수린은 당황하며 시선을 좌우로 돌렸다.
이호연은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감싸왔다.
당연히 문수린의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가, 갑자기 왜 그래. 응?"
"항상 얘기했잖아요. 저만 믿으라고."
"응응. 그랬지. 근데…."
이호연의 눈동자 안에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멍청한 표정으로 벌벌 떨고있는 모습.
그 모습은 문수린에게 점점 다가왔다.
"좋아해요. 수린 누나."
"너, 너… 호연아…?"
문수린은 이어지는 이호연의 말에 흡-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두근- 두근-
아니, 진정하자.
이건 뭔가 이상했다.
갑자기 고백이라니.
문수린은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정면을 바라봤다.
"누나."
하지만 겨우 한 마디. 아니 한 단어.
그녀의 결의는 이호연의 숨 한 번에 깨져버렸다.
"왜, 왜…?"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이호연은 문수린의 눈을 바라봤다.
두근- 두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문수린의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뛰기 시작했다.
"누나는 어때요?"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묻는 이호연의 말에 문수린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어떠냐니.
당연히 기쁘다.
너무 기뻐서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이 이렇게 이호연을 좋아했나, 신기할 정도로 황홀했다.
손을 잡았을 때도, 자신의 허리를 감쌌을 때도, 얼굴이 가까이 갔을 때도 모두 좋았다.
"… 너, 너한테는 다른 여자애들이 있잖아."
다른 여자들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그야말로 완벽했을 거다.
문수린의 집안사정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성적인 관념을 잘못 배운 건 아니다.
그녀는 엘리스처럼 뒤틀린 성 관념을 지니지 않았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균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그만하자…. 지금이라면 괜찮아."
그러니 안 된다.
문수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마음을 다잡은 이유는 그에게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녀관계는 당연히 1대1.
순서가 늦었다면 늦은 사람이 빠지는 게 맞다.
이렇게 수라장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마음을 다잡을 필요도 없었다.
"왜 그만해야 하는데요?"
"그, 그거야… 너한테는 다른 여자들이 있잖아!"
문수린은 눈을 질끈 감고 반발하듯 말했다.
그녀는 왜 이호연이 이런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데."
"…어? 읏…."
이호연은 허리에 올렸던 손을 올리며 문수린의 등을 훑었다.
너무 당당한 그의 태도에 문수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해서 이호연을 밀어내려다가도, 차마 그러지 못한 문수린은 입술을 벌벌 떨며 말을 이었다.
자기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당연히 버, 법이나 도덕 같은…."
"누나는 저보다 그런 게 더 소중해요?"
"그, 그건 아닌데… 아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어느새 문수린은 이호연과 양손을 맞잡은 상태였다.
그녀가 당황한 사이에 이호연이 움직인 것이다.
"저는 누나 좋아해요. 누나도 저 좋잖아요."
문수린의 머리는 더욱 뜨거워졌다.
왜 이호연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지, 왜 이호연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건지, 왜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는지.
대화의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하나도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이렇게 넘어가면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는 거다.
문수린은 놓고 싶은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만약 문 앞에서 마음을 다잡지 않았다면 분명 이대로 이호연에게 안겼겠지.
"호, 호연아… 너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잖아."
"하아. 누나 엄청 답답한 소리 하네요."
"어, 어어?"
이게 답답한 소리였나?
문수린은 의지를 다잡자 마자 눈을 꿈벅거렸다.
혹시 자신이 1학년일 때와 연애의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그, 다른 애들의 마음이나…."
"저는 누나를 좋아하고, 누나는 절 좋아하고,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의견이 뭐가 중요해요?"
"호, 호연아…."
문수린은 이호연의 고백 같은 말에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다른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이대로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궤변이야.'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았다. 이호연을 막을 말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문수린은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자신에게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설령 다른 여자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다 해도…
"누나…."
이호연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받아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연약한 목소리였다.
결국 문수린은 그대로 이호연에게….
'아… 안 돼.'
문수린은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이호연의 얼굴에 가까이가던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 순 없다.
자신이 다른 여자들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까.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도 힘들게 만들면 안 되는 거다.
'학생회장' 문수린의 신념과 맞지 않는 행동이다.
"아, 안돼. 그래도, 안 돼…."
결국 문수린은 눈을 질끈 감고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엄청난 아쉬움이 몰려왔고,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설마 자신이 직접 이호연을 거절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걸 보던 이호연은 입꼬리를 올렸다.
"싫다고 하면서도 몸은 솔직하네요."
이 귀여운 누나는 각오만 한다고 되는 줄 안다.
'결국 속이지도 못하면서.'
"무슨 소리야…?"
의문스러운 듯 묻는 문수린에게, 이호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저를 진짜 거절하고 싶었으면, 이 손부터 놨겠죠."
툭-
이호연은 위아래로 팔을 살짝 털었다.
문수린은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어느새 자신의 손이 이호연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다는 것을.
손톱이 살에 파고들어 갈 정도로 강하게 쥔 주먹은, 옷자락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구기고 있었다.
"안된다고 했으면서 손이 떨어지는 건 싫나 봐요."
화아아악-
문수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노… 놓을 거야."
놔.
놓자.
손에서 힘을 빼자.
제발….
문수린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뇌어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손은 결국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아무리 힘을 빼려 해봐도, 손가락을 하나 씩 떼려 해봐도 소용없었다. 문수린은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그제서야 인정했다.
문수린은 도저히 이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좋으면서."
"그, 그치만. 흐읏…."
문수린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 혼자 좋아하고. 나 혼자 슬퍼하고. 나 혼자 상처받으려 했는데.
내가 찾을 때는 안보이다가도, 슬퍼하고 상처받고 나서야 안아주는 사람.
너무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다.
이호연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는 그를 포기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좋아해요. 누나. 제가 지켜줄게요. 어떤 놈이 오든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저한테 조금은 짐을 맡겨요."
"… 너, 너무 이기적이야."
문수린은 볼에 흐르는 눈물을 느끼며, 이호연의 가슴에 고개를 박았다.
쿵. 쿵.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화가 풀릴 때까지 고개를 박았다.
그 투정을 받아주던 이호연은 곧 문수린의 턱을 잡고 고개를 위로 올렸다.
입에 힘을 주고, 눈을 깜박거리며 최대한 눈물을 참으려고 하는 문수린의 얼굴이 보였다.
"누나. 그거 알아요?"
이호연은 남은 손으로, 대답하지 않는 문수린의 눈가를 훔쳤다.
"화가 날 때 나오는 눈물은 짜대요. 슬플 때 나오는 눈물은 신맛이고요.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은 단맛이 난대요. 신기하죠?"
손가락을 핥은 이호연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누나가 흘린 눈물은… 엄청나게 달아요."
"… 이 멍청아. 흑. 흡…."
문수린은 간신히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 다시 흐르는 걸 느꼈다.
어금니가 깨지도록 이를 악물어도 참을 수 없는 눈물이었다.
결국 그녀는 이호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흘리는 눈물을 보여주기 싫었으니까.
이호연은 문수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끌어안았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는데.'
문수린이라는 여자가 쉽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조금만 더 빠르게 행동했다면 이 연약한 누나가 상처 받을 일이 없을 텐데.
사람은 항상 후회를 한다지만 루시와 루미 때도 그렇고, 남다은 때도 그렇고 나라는 놈은 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정신 나간 하렘을 만들려면 오히려 나 같은 놈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당장 있는 여자만 해도 손가락을 가득 채울 정도다.
정상적인 놈은 절대 버티지 못할 거라고, 이호연은 생각했다.
"앞으로… 절대 잊지 말아야 해."
이호연의 가슴에 얼굴을 박고 있는 문수린은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문수린은 고개를 들고 이호연을 바라봤다.
아직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이 눈가에 맺혀있었지만, 그녀는 확실하게 말했다.
"나랑 추기로 한 춤은 절대 잊지 말아줘."
"… 당연하죠. 절대 안 잊어요."
수린 누나에게 춤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어렵지 않은 부탁이다.
어차피 문수린을 잊을 생각 따위 없다.
"그리고…."
문수린은 긴장되는지 후우후우- 심호흡을 하고,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다른 여자들하고 어디까지 했는 지… 솔직하게 말해줘."
"…."
결국 이 질문이 오긴 하는구나.
하렘을 만들면서 이런 질문은 정말 받기 싫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생각했던 위기랑은 전혀 다르다.
"누나."
"으, 으응…?!"
의미심장한 눈을 하던 문수린은 이호연이 몸을 가까이하자마자 놀란 듯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지금부터 알려주려고 했어요."
이호연은 순식간에 문수린의 목덜미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을 크롭티 밑의 틈으로 집어넣었다.
차가운 손이 옷 안으로 들어갔고, 문수린은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동시에, 열린 입과 이호연의 입이 맞닿았다.
"으아, 흡, 흐읍…!"
입 안으로 파고들어 오는 축축한 무언가.
곧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호연을 본 문수린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리저리 자신의 안을 헤집고 얽혀오는 혀에, 그녀는 곧 익숙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