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7 267화. 춤 추기로 했잖아 (5)
파티장의 구석에 있는 휴게실.
바깥이 난리가 났는데도 백아영과 임솔은 기절한 것처럼 책상에 몸을 엎드린 채 자고 있었다.
뚝-
그때 목 뒤에서 마력 연결이 끊어지는 감촉이 느껴졌고, 임솔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이호연이 붙여놓았던 마력이었다.
"으으음...."
아직 잠에서 완전히 각성하지 못했기에 정확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임솔은 방금 느껴진 감촉이 뭔지도 모르고 주변을 둘러봤다.
옆에는 백아영이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 쓰러져있었다.
"...."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분명 백아영과 술을 마시다가... 이호연이 와서 술 대결을 멈췄었다.
그 과정에서 약간 창피했던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은 안 났다.
그리고 휴게실에 들어온 둘은 잠시 쉬다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기억나는 건 거기까지였다.
"너무 과음했나....'
으으.
임솔은 기지개를 피며 정신을 각성시켰다.
이렇게 오래 마신 건 오랜만이다.
마시면서 바로바로 해독한 게 아니었고,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더 마셨으니 무리했을지도 모른다.
임솔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백아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살짝 흔들었다.
"아영아. 일어나."
"으, 으응....'
백아영은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반항했다.
동갑이지만 이렇게 보면 참 귀여웠다.
"누가 보면 교수가 술 먹고 쓰러졌다고 놀리겠어."
"으으아, 나 교수 아니라니까...."
백아영이 하품을 하며 깨어난 걸 확인한 임솔은 시간을 보기 위해 스마트워치를 켰다.
그리고 수 백 개의 메시지와 전화, 비상 연락망까지 작동해있는 걸 확인했다.
"... 뭐야."
순식간에 머리가 차가워진 임솔은 재빨리 내용을 확인했다.
[ 기말고사 기념회에 마인의 습격 테러 발생. 파티에 참여하지 않았던 모든 교수는 즉시 테러 진압을 위해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
가장 먼저 온 연락이었다.
그 밑으로는 다급한 상황 전파 내용이 줄줄이 써있었다.
대충 훑어보자 정면에 대규모 마인들이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아, 아영아. 빨리 일어나. 일어나!"
임솔은 일단 아직도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웠다.
방금까지도 제자를 두고 싸우면서 자존심 술 대결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왜 그래. 아직 머리가...."
"판데믹 테러라고! 빨리 일어나!"
"테, 테러?!"
테러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백아영은 고개를 팍 들었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의 임솔을 보고, 장난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나가자. 바로 합류해야 해."
"으, 으응."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백아영은 대충 옷을 정리하고 임솔의 뒤를 따라갔다.
*
한편 이호연을 찾아 파티장을 누비던 남다은은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루시와 루미 쌍둥이였다.
항상 이호연과 같이 다니는 두 명이기에 약간 기대했는데, 둘은 웬 불투명한 결계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호, 호연 씨!"
"뭐야. 이거 대체에...!"
'이호연?'
인사 없이 지나가려던 남다은은 이호연이라는 이름을 듣고 속도를 높이며 그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결계는 더욱 이상했는데,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결계였다.
유리보다는 조금 혼탁한 색이었고, 내부를 흐릿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는 남다은이 그렇게 찾던 남자가 보였다.
거대한 마인과 함께.
구체의 내부에서는 이호연과 마인의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굉장히 이질적인 싸움이었다.
둘은 서로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단순히 타격으로만 싸우고 있었는데, 구도 자체는 이호연이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속도와 기술 면에서 상대와 차이가 심했다. 마인이 손을 한 번 휘적거릴 때 이호연은 세 번 움직이며 치고빠지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리해 보여.'
문제는 체급 차이.
이호연이 타고난 전투 센스로 싸움을 컨트롤하고 있었지만, 마인에게 피해가 누적된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공격하는 이호연이 더 지쳐 보였다.
남다은이 보기에 이호연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몇 번의 교환 이후, 결국 걱정하던 일이 발생했다.
체력이 떨어진 이호연은 빠지는 게 살짝 늦었고, 느린 손으로 발 끝을 잡은 마인은 그대로 결계를 향해 이호연을 집어 던졌다.
쾅-!
결계에 부딪힌 후 바닥에 떨어진 이호연의 몸은 누가 봐도 너덜너덜해 보였다.
겨우 한 번의 공격으로, 지금까지의 구도가 역전되었다.
"이, 이이익. 열려. 열리라고...!"
"루, 루시. 그만해...!"
남다은은 단단한 결계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시작한 루시를 바라봤다.
결계에 그슬린 자국이 많은 걸 보면, 이미 마법도 시도했으나 실패한 모양이다.
"열려... 빨리 열려. 제발...."
"루시...! 너까지 이러면 안 돼...."
루미는 결계를 때리는 루시의 허리를 잡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의 반항이 워낙 거세서 루미가 막더라도 루시의 주먹은 계속 결계를 때렸다.
물론, 마법도 버틴 결계가 가녀린 소녀의 주먹에 부서질 리가 없었다.
루시의 주먹이 까지고 피가 흐르기 시작한 걸 보고, 눈을 찌푸린 남다은도 루시를 말렸다.
"... 그만해. 잠깐 뒤로 빠져줘. 내가 해볼게."
"뭐, 뭐야. 남다은?"
"남다은양...?"
남다은은 검을 뽑았다.
그가 선물해준 검이었다.
눈을 감고 집중한 남다은은 검에 마력을 담고, 천천히 손을 내리며 공간을 베어냈다.
*
콰드득-!
마인이 소환한 괴생물체들은 엘리스의 마검에 하나 둘 씩 땅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엘리스는 빠르게 움직이는 자신의 몸에 약간의 고양감을 느꼈다.
선천적 마력 장애때문에 이런 전투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력을 다해 싸워본 적이 없으니 자신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투웅-
"엘리스!"
문수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응한 엘리스는 가까이 있는 몬스터들을 쳐내고 마인에게 쇄도했다.
마인의 발밑, 지면에 마법진이 그려지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응해 마인도 바로 뒤로 빠졌지만, 그의 등 뒤에도 마력이 모이고 있었다. 미리 예상한 엘리스가 가까이 가면서 설치한 마법진이었다.
"...!"
마인의 대처도 빨랐다.
허공에 마력을 그려 발판이 될 몬스터를 소환하고, 그걸 박차며 뛴 마인은 하늘을 뒤덮는 포격을 한 끗 차이로 피하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아쉽게 공격이 통하진 않았지만, 엘리스는 뒤로 빠지며 문수린에게 말했다.
"좋았어요. 회장님."
완벽한 합이었다.
엘리스는 의외로 잘 맞는 궁합에 만족하며 마인을 견제하기 위해 정면을 바라봤다.
"... 응. 고마워."
문수린도 방금 움직임은 정말 좋았다고 생각했다.
... 상대가 생물학적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정말 좋았을 거다.
자신의 아버지인, 마인 문성민은 갑자기 손을 내리고 마력을 갈무리했다.
마치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전투 중단에 엘리스는 더욱 긴장했지만, 문성민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린아. 정말 이렇게 하고 싶은 거냐."
"...."
문수린은 말하기 전에 엘리스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엘리스는 뜻을 이해하고 살짝 뒤로 빠졌다.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을 한 것이다.
문수린은 그제야 살짝 안심하고 말을 이었다.
"아버지.아니,아빠...언제까지복수를생각하실거에요."
당연히 문수린도 복수를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마인들을 죽인다는 불확실한 목표에 인생을 바치는 아버지를 보는 딸의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이미 죽은 사람의 복수보다는 산 사람이 더 중요했다.
"그냥...제곁에와주세요. 지금이라도 괜찮아요...."
"... 그러기엔 이미 많은 길을 걸어왔구나."
슬픈 눈으로 문수린을 바라보던 문성민은 씁쓸하게 웃고는, 마법진을 펼쳤다.
그의 앞에 일렬로 나열되는 마법진을 본 엘리스는 문수린의 앞에 섰다.
"저런 미친 새끼...."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부녀만의 사정이 있겠구나 해서 빠져있었는데, 갑자기 기습을 한 것이다.
"잠시만. 엘리스, 공격이 아니야."
마법진을 자세히 관찰한 문수린은 엘리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건... 방어용 마법진들이었다.
그리고 그걸 눈치챔과 동시에 뒤에서 수십 개의 속성마법들이 날아왔다.
콰앙-! 팡-!
엄청난 위력에 술사를 확인한 문수린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지원군을 확인했다.
임솔과 백아영.
한 손으로 술식을 펼치고 있는 임솔의 마력이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 수린아."
"아, 아빠...!"
마인 문성민이 펼친 방어 마법진은 꽤 잘 버티고 있었지만, 급조한 마법진이었기에 그것도 곧 한계였다.
"다음에는 꼭...."
콰아앙-!
문수린은 아버지의 말에 집중했지만, 뒤이어 들리는 폭음에 가려져 완벽하게 듣지 못했다.
하지만 슬쩍 보인 텔레포트 마법진에, 문수린은 안심의 한숨을 쉬었다.
아카데미를 습격한 마인이 도망쳤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자신이 웃겼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단 둘 밖에 남지 않은 혈육이었으니까.
"도망쳤네. 쥐 새끼 같은 마인이였어. 나름 마법은 괜찮던데."
"하아... 하아... 천천히 달려줘...."
임솔과 백아영은 엘리스와 문수린에게 다가왔다.
"둘은 괜찮아? 학생회장하고... 엘리스 생도였지?"
백아영은 익숙하게 둘의 상태를 확인했다.
현장에서 활동했던 그녀였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왔나보네.'
둘의 산만한 머리를 보고 엘리스는 속으로 감사했다.
"... 저도 괜찮아요."
문수린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10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공방을 나누는 건 절대 좋은 경험이 아니었으니까.
결국은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했다. 무려 10년만에 만났는데, 안부도 묻지 못한것이다.
"다행이네. 아영아. 가자. 저쪽에 아직 마인 들이 많아. 부상자도 있을 거야"
"마, 맞아요. 분명 아직 전투 중일 거에요."
문수린은 임솔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하게 자리를 비웠으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때.
캉! 캉! 카가가가강! 카아아앙!
가까운 곳에서 정체불명의 쇳소리가 들렸다.
마치 단단한 칼로 바위를 때린 것 같은 소리였다.
"... 솔아.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어쩌면 전투 중일지도 몰라요."
문수린은 중간중간에 마인들이 빠져나온 사실을 알고있다.
그 말을 들은 임솔은 빠르게 판단했다.
"너희 둘이 가봐."
방금 텔레포트로 사라진 마인이 테러의 중요 인물이었을 거다.
이미 정면에 강한 마인이 하나 있다고 보고받았다. 그러면 이미 강한 마인이 둘. 저 정도의 강함을 가진 마인이 셋 넘게 이 곳에 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보다 약한 마인이라면 학생회장과 엘리스 둘이 처리할 수 있을 거다.
"정면에는 나랑 아영이가 갈게."
"... 예. 감사합니다. 교수님."
문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같아선 자신이 가고 싶었지만, 정면에는 저 둘의 힘이 필요할거다.
문수린은 엘리스를 바라봤고, 조용히 지켜보던 엘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도 저기서 일어나는 일이 궁금했다.
문수린과 엘리스는 정체불명의소리가들린곳으로달려갔고,둘이움직이는걸확인한임솔과백아영도전투에합류하기위해정면으로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