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5 265화. 춤 추기로 했잖아 (3)
촤악-
카드드득-
릴리아나는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소녀의 움직임에 눈을 크게 뜨며 남다희의 눈을 가렸다.
몰려오는 마인들을 손쉽게 두 동강 내버리는 남다은은 릴리아나와 남다희를 보호하고 있었다.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진 남다은의 검술은 이미 생도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 리, 릴리아나 언니. 우리 언니 다치면 어떡해요?"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다희의 등을 쓰다듬은 후에 손을 잡고 일어난 릴리아나는 칼에 묻은 피를 털고 있는 남다은에게 다가갔다.
"일단 도망가자."
"... 네."
"어, 언니...."
남다희를 꼭 안아준 남다은은 그대로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어쩔 수 없이 남다희의 앞에서 마인을 처리했지만, 아직 어린아이에게 이런 참상을 더 보여주기엔 너무 일렀다.
파티장을 뒤로하는 남다은의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을 텐데.'
남다은은 남다희와 파티장을 빠져나오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봤다.
자신보다 강한 이호연이 다칠 일은 거의 없을 거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이해하고 있다.
'이해'는 하고있다.
꾸욱-
하지만 남다희의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불안한 떨림.
남다희가 있기에 이호연에게는 갈 수 없었다.
"후우...."
그래.
괜찮을거야.
호연이는 강하니까.
자신보다 강하고, S급 마인 보다도 강하다.
그러니 걱정하는 게 이상한 거지만...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이호연을 찾는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감정은 막아도 막아도 바깥으로 새어 나오려 했으니까.
그때, 파티장 바깥으로 달리던 릴리아나가 걸음을 멈췄다.
"릴리아나 씨?"
깜짝 놀라 급하게 발을 멈춘 남다은은 어느새 릴리아나의 품에 안겨있는 남다희를 발견했다.
릴리아나가 발을 멈추면서 남다희도 같이 멈췄으니까.
"... 남다은."
"네, 네. 릴리아나 씨."
"다희는 내가 챙길게. 너는 호연이를 구하러 가봐."
릴리아나는 빙긋 웃으며 남다희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마도 수면 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네? 아니에요. 일단 다희를 먼저 데려다 놓고...."
"그러다 늦으면 어떡해."
"...."
확실히, 그렇다.
파티장 뒤편에 있던 남다은 자매와 릴리아나는 테러의 정확한 규모를 알지 못했다.
남다은이 처리한 마인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다른 마인도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금방 진압했을텐데, 테러가 이렇게 길어진다는 건 파티장의 앞쪽에 무언가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거다.
"고민하지 말고, 빨리 가."
"... 그렇지만."
남다은은 릴리아나의 눈을 바라봤다.
릴리아나가 이호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다희를 챙길게요. 차라리 릴리아나 씨가...."
"가라면 가."
릴리아나는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 남다희를 안고 천천히 남다은의 옆을 지나갔다.
"리, 릴리아나 씨."
"나보다 네가 더 강하잖아. 네가 가야지."
"... 다희를 부탁드릴게요."
남다은은 확고한 릴리아나의 태도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릴리아나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며, 주먹을 꽉 쥐고 빠르게 파티장으로 달려갔다.
이호연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
"... 에휴."
남다희와 둘이 남은 릴리아나는 남다희를 끌어안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남다은이 남다희를 챙기는 게 옳은 행동이다.
남다희는 그녀의 혈육이니까.
게다가 남다은이 가진 능력은 무력뿐이고, 릴리아나에게는 무력 외에도 다른 보조 마법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릴리아나가 더 도움이 될 지도 몰랐다.
문제는 사람이 많고 강한 마법사가 있는 곳에선 자신의 결계가 파훼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호연을 구하러 갔다가 더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
"나도 이호연 구하러 가고 싶었다구...."
릴리아나도 파티장을 빠져나오는 내내 남다은처럼 계속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라도 이호연이 보일까 봐.
그가 다치면 가슴이 아플 테니까.
훌쩍.
눈이 습해지는 걸 느낀 릴리아나는 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눈물을 막았다.
이게 뭐라고 눈물을 흘려.
깜박깜박.
오늘따라, 자랑스러운 서큐버스의 피를 이은 게 아쉬웠다.
*
파티장의 정면.
안 쪽으로 침입하려는 마인과 막으려는 경비병력들의 사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콰직-!
눈먼 파이어볼에 라인하르트 옆에 있던 마인의 머리가 떨어졌다.
"... 흐읍!"
동시에 앞에 있던 인간의 머리를 부수긴 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이 상황이 굉장히 불만족스러웠다.
아직까지는 판데믹 측이 우세했지만,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는 지원군이 금방 도착할 거다.
아마 짧으면 10분. 길어봤자 30분이면 교수진들이 도착하겠지.
그 전에 이 방어선을 뚫어내고 아카데미에 들어가야 한다.
정면으로 상대가 안 되더라도 아카데미 곳곳에 마인이 숨어들어 가는 것은 상대도 굉장히 답답할 테니까.
판데믹의 간부이자 이 작전의 지휘관인 라인하르트는 마인들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확인해도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정면공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라인하르트가 무식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 작전은 안과 밖에서 양동작전을 할 생각이었다.
보안팀에 잠입한 마인이 기습적으로 꽉 닫혀있던 방어진을 열었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안으로 진입한 S급 마인 한 명.
그가 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마에스트로님이 내려주신 든든한 지원군.
그와 양동 작전을 펼치며 빠르게 경비 벽을 뚫을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작전이 시작하자마자, 보안팀에 잠입한 마인과 S급 마인이 둘 다 사라졌다.
'이 개새끼들....'
라인하르트가 화난 부분은 작전에 참여하지 않고 개인행동을 한 게 아니었다.
마에스트로님의 명령을 무시한 것이었다.
- 죽여버려! 마인 새끼들-!
라인하르트는 마인들을 죽일 듯이 쳐다보는 인간에게 흉흉한 살기를 내뿜었다.
도움이 없다면, 없는 대로.
마에스트로님을 위해.
쾅!
라인하르트의 팔에 광대한 마나가 모였고, 그는 다시 인간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
"크으...."
씨발.
진짜 상황이 개같다.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 표현이 그것 밖에 없다.
이 공간은 이질적이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마력이란 개념을 아예 사라지게 한 것 같았다.
아마 밖에서 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네.
그래도 나름대로 다행인 점은, 내 [전투 감각]은 아직 살아있다는 거다.
마력이 없으니 [마력 감응]을 비롯한 모든 스킬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지만, 특전은 남아있었다.
'개안'이 없어서 완벽하진 않지만 나쁘지 않은 동체 시력과 움직임.
거의 해본 적 없는 체술이지만, 역시 특전답게 기술적으로는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힘과 민첩 능력치를 확인할 순 없지만, 퀘스트 덕에 낮은 편도 아니었다.
이렇게만 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모든 게 있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쿠웅- 쿠웅-
발을 디딜 때마다 섬뜩한 소리가 나는 저 피지컬.
촉수를 떨어뜨렸는데도 남아있는 무겁고 단단한 저 거구를 극복할 수가 없었다.
신동민과 나는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쉬이익-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며 카운터.
남은 손이 날 잡으러 오는 걸 확인했으니 바로 후퇴.
더럽게 불공평한 싸움이었다.
적어도 열 대는 때린 거 같은데, 나는 저걸 한 대만 맞아도 끝이다. 재생력이고 뭐고 마력이 없다면 저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을 거다.
파워의 차이가 극심하니까.
'몸 쓰는 것도 연습해놓을걸.'
어차피 마법사든 검사든 위험한 건 똑같은데.
뒤늦은 후회를 해봤지만 이미 늦었다.
"하아, 하아...."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죽여주마. 고통스럽게. 최대한 고통스럽게...."
아예 눈이 돌아간 신동민은 날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지친 기색도 보이질 않았다.
당연하겠지. 나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기를 수 십 번이나 반복했지만, 저 미친 새끼는 그냥 걸어와서 주먹질하는 게 끝이다.
내 쪽이 체력 소모가 훨씬 심했다.
타다닥-!
신동민은 땅을 박차며 내게 주먹을 내려찍었다.
쾅!
나는 손바닥으로 주먹의 경로를 살짝 틀어내며 가까이 접근했다. 주먹을 살짝 빗겨내는 데도 살갗이 벗겨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닥에 꽂힌 공격으로 자세가 무너진 신동민의 틈을 타 관절 부위에 무게를 실은 발을 내려찍었다.
탁-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내 체중을 모두 실은 공격이었는데도 신동민은 아무 타격도 받지 않았다.
공격이 안 통했다는 걸 파악하자마자 뒤로 뛰면서 사정거리에서 이탈했다.
여전히 신동민은 힘이 넘쳐 보였다.
"... 그래. 누가 이기나 해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왕이면 저 얼굴을 직접 박살 내고 싶지만... 정 안되면 버티는 수밖에.
시간은 내 편이니까.
*
정면에 도착한 문수린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마인과 경비 병력들이 모여서 피튀기며 싸우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운 좋게 가까이 있던 교수나 생도들도 조금씩 보였다.
전세는 반반보다 살짝 불리.
'하지만,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이 정도로 무너지지는 않을 거다.
지원이 올 때 까지 버티는 건 충분하다.
"오른쪽에 병력 비지 않게 해요!"
콰드드득-
병력의 빈공간을 뚫고 나온 마인.
문수린은 주변에 있던 조각상을 염동력으로 들어 올린 후 마인에게 집어던졌다.
"끄아아아악-!"
"... 살아있어."
마인은 거대한 조각상에 직격당하고도 비틀거리며 파티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수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인을 쫒았다.
"... 금방 처리하고 올게요."
"예, 예! 회장님!"
여유 병력이 없었으니, 자신이 빠르게 처리하고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본래 지휘를 맡은 인원은 절대 하면 안 되는 판단이지만, 경비 대장이 있으니 잠깐의 틈 정도는 괜찮다고 판단했다.
"끄, 끄르륵. 끄르릅!"
콰직-!
도망친 마인은 금방 잡아낼 수 있었다.
그때. 빠르게 자리에 복귀하려던 문수린의 눈앞에 웬 사내가 나타났다.
몸 전체를 로브로 두르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내였다.
"... 누구야."
상대는 마력을 숨기고 있었지만, 문수린은 눈 앞의 사내에게서 마인 특유의 더러운 마력 향을 느꼈다.
게다가 새어 나오는 마력이 이 정도라면 본래의 마력은 그 이상일 터.
이런 전력이 정면에서 마인들과 합류했다면, 이미 아카데미는 아비규환이 되었을 거다.
꿀꺽-
문수린은 갑자기 튀어나온 강한 마인에 긴장하며 상대를 관찰했다.
"수린아."
"...?"
그리고, 들려오는 자상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어디서 들어본 듯 한... 상냥한 목소리였다.
사내는 로브의 후드를 뒤로 넘겼다.
"오랜만이구나."
눈 앞에 있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문수린은 눈을 크게 떴다.
잊으려해도 잊히지 않고 가슴에 박혀있던 얼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
그녀의 혈육이었다.
"... 아버지?"
"강해졌구나. 우리 딸."
사내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1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던 아버지의 미소였다.
다만 달라진 점은, 얼굴 곳곳에 마기의 흔적인 보라색 반점이 생겼다는 거 겠지.
"... 어, 어떻게."
문수린의 머릿속이 절망으로 가득찼다.
그녀가 10년만에 마주한 진실은, 마인으로 변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