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5화 (255/648)

*

회의가 모두 끝난 후.

나는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회의 자체가 별 내용 없었다.

그냥 내일 계획을 주르륵 읊었을 뿐이다.

학생회가 할 일이라고 해봤자 전체적인 관리정도였다.

경비를 위한 경비 병력도 착실하게 고용했고, 잡다한 준비도 완벽했다.

엘리스랑 현장 실습에 대한 대화를 좀 더 나누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저번에 문수린이 말한 것 때문에 삐진 모양이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학생회실을 나가버렸다.

'하긴 기분나쁠만 하지.'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히로인끼리 저렇게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게 걱정일 뿐이다.

'잘 하겠지?'

엘리스는 프로니까. 

문수린이 싫어도 그걸 드러내진 않을거다. 

엘리스는 그녀의 입장이 아이리스 길드의 입장이라는 점을 이해할 정도로 성숙한 여자다.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을거다.

"호연아."

"네. 누나."

회의가 끝나고는 문수린과 함께 학생회장실로 들어왔다.

엘리스의 예상대로 문수린은 나를 안 쪽으로 이끌었다.

"고생했어. 하음…. 아, 미안해."

문수린은 피곤한지 잠깐 하품을 했다가, 곧 바로 입을 가리고 내 눈을 피했다.

대놓고 하품을 한 게 창피한 모양이다.

"많이 피곤하세요?"

"… 응. 그래도 괜찮아. 이제 끝났으니까."

내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아카데미의 전 생도들이 참여하는 행사.

기말고사 기념회.

그걸 주최하는 학생회에서 할 일이 없는 이유가 바로 수린 누나의 존재 덕분이다.

거대한 줄기부터 예산 관리나 경비 고용, 심지어 현수막의 위치 같은 소소한 것들까지 모두 수린 누나가 계획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 보다 자신이 하는 게 더욱 확실하기에 아카데미의 일은 대부분 수린 누나가 직접 처리한다.

"그러니까 다른 학생회 임원들한테도 좀 맡기시지. 아무튼 고생하셨어요."

"아니야.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내가 하는 게 제일 효율적이야."

수린 누나는 살짝 웃으며 책상에 있던 서류를 차곡차곡 모았다.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매력을 느낀다는데, 정말 맞는 말 같다.

원래도 예쁘던 수린 누나가 더 예뻐보였으니까.

"제가 어깨라도 주물러드릴게요."

나는 직접 일어나 문수린이 앉은 의자 뒤로 걸어갔다.

"응, 응? 아니야. 안 그래도 돼."

문수린은 당황한 듯 내 몸을 따라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번에 했을 때도 좋아했으니 이번에도 좋아하겠지.

꾸욱-

"많이 뭉쳤잖아요. 이러다가 병나요."

"으으… 고마워."

내가 억지로 손을 올려놓자, 문수린은 반항을 멈추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손을 다소곳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머리색이 진짜 이쁘네.'

엘리스의 금발보다 훨씬 밝은 색의 백금발.

얼굴은 말할 것도 없다.

연상의 매력이 느껴지는 성숙한 외모에 귀여움까지 추가되었다.

건강해보이는 피부와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온 군더더기 없는 몸매.

특히 얇은 허리에 비해 섹시한 골반과 가슴이 매력 포인트다.

이러니까 독보적으로 많은 스토커를 보유중이겠지.

나중에 수린 누나와 깊은 관계가 되면, 모두 박멸해야 할 놈들이다.

이런 섹시한 몸은 나 혼자 가져야 하니까.

"고마워요. 항상 챙겨줘서."

"무슨 소리야. 호연이가 날 챙겨주는거지."

이런 몸으로 나랑 친하게 지내주는 것 자체가 챙겨주는건데.

중요한 걸 모르시는구나.

여러모로 감사함을 담아 어깨를 주무르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수린 누나, 이번에도 고생했어요. 기념회 끝나면 또 밥이나 먹으러 가요."

"… 응."

내 말을 들은 문수린의 목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역시 아직 이런 건 창피한가?

다른 히로인들이면 섹스해달라고 달라붙었을텐데.

가벼운 스킨십에도 부끄러워하는 순수한 모습도 너무 귀여웠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렇게 부끄러워 하실까.'

겨우 고생했으니 밥이나 먹자고 한 건데 말이야.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88 ]

- [ 성욕 : 45 ]

- [ 식욕 : 30 ]

- [ 피로도 : 70 ]

현재 상태 : 이, 이런 목소리로 고생했어요라니. 또 하나 생겼어. 흐읏….

"…?"

뭐가 생겼다는거야?

마음에 드는 매력 포인트 같은 건가?

"으음… 거기 좋아."

내 생각을 중간에 끊어내듯 문수린이 살짝 어깨를 떨며 말해왔다.

어깨 마사지도 너무 세게하면 안좋다던데.

그래도 누나가 좋아한다면 해줘야겠지.

어차피 근육이 조금 뭉쳐도 치료를 받기 쉬운 세상이다.

나는 승모근 쪽을 꾸욱 누르면서 문수린의 안색을 살폈다.

"어때요. 여기? 여기가 좋아요?"

"…… 응."

문수린의 얼굴은 더욱 빨개지고, 고개도 푹 숙였다.

'역시 순수한 누나라니까.'

나는 기분좋게 어깨를 주물렀다.

*

학생회에서 나왔을 때는 슬슬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길에 돌아다니는 생도들도 얼마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남아있는 생도들은 내일 기념회를 대비해 작별을 나누고 있었다.

'바로 내일이네.'

저런 모습을 보니 진짜 체감이 된다.

사실 이 쪽 세계에 빙의한 후로 여자는 많아졌어도, 마음 편하게 속 마음을 나눌 친구는 없어졌다.

만약 이 곳이 원래 내 세계였다면, 편한 남자친구들과 기념회를 즐겼을텐데.

"후우."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왜 갑자기 감정적이 된거야."

사실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

평생 못 만날 여자들과 몸을 겹치고 있고, 명예는 물론이고 부까지 누릴 수 있으니까.

'이게 다 섹스를 못해서 그래.'

점심시간에 백아영과 깊은 관계를 나눴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불알에 담겨있는 잡념이 다 빠져나가면 시원해지겠지.

나는 임솔 교수님의 연구실로 향했다.

내일은 기념회고 주말에도 보기 힘들테니 오늘 미리 인사 드리러 들릴 생각이다.

'뭔가 긴장되네.'

교수님과 키스, 아니 입술만 겹쳤으니까 뽀뽀라고 해야겠지.

그 날 이후로 처음 보는 거다.

"후우."

이상하게 긴장되서, 심호흡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 익숙한 연구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머, 호연 생도. 오랜만이에요."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임솔 교수님의 조교님이다.

"교수님 안에 계시죠?"

"응응. 방금도 보고 왔어."

하긴 이 사람이 갈 곳이 어딨어. 연구실에서 마법 연구나 하고 있겠지.

교수님이랑 결혼하면 바람필 걱정은 절대 없을거다.

사람을 안 만나니까.

나는 똑똑 노크를 한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교수님이 마법 연구에 집중할 때는 대답을 못 하는 경우도 많으니, 그냥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을 맡았기 때문이다.

"교수님… 응?"

연구실에는 임솔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저 은발과 오버사이즈 핑크티는 임솔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데 평소처럼 마법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의자에 앉아 팔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뭐야. 괜찮으세요?"

재빨리 임솔 교수에게 다가가자, 끄으응 하는 신음을 들을 수 있었다.

"어, 어? 교수님. 교수님?"

이거 진짜 왜 이래. 어떡하지. 여보한테 전화해야하나?

고민을 멈추고 일단 백아영한테 연락하려던 찰나.

임솔이 내 손을 잡았다.

그 쪽을 바라보자, 웃고 있는 임솔의 모습이 보였다.

"놀랐어?"

"…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방긋 웃고 있는 교수님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정말 놀랐다.

매일 이상한 짓을 하는 릴리아나가 이랬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꼬리를 잡아당겼을텐데, 장난 한 번 없던 사람이 이러니까 정말 놀랐다.

생각해보니 저번에 카페에서 테이블 밑에 들어갔던 것도 그렇고, 이게 다 거리가 많이 가까워진 증거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네.

"후우, 아무튼 내일은 기념회고 곧 주말이라 인사나 드리러 왔어요."

나는 접객용 소파에 앉았다.

"잘 했네. 역시 우리…."

내 앞의 잔에 커피를 따르던 임솔은 잠시 멈칫했다가, 자연스럽게 다시 커피를 따랐다.

"… 호연이."

나는 임솔의 눈을 바라봤다. 원래였다면 우리 제자라고 했을텐데.

호칭이 호연이로 바뀌었다.

"그, 커피. 커피. 더 마실래?"

어색한 호칭 변경을 자신도 눈치챘는지, 갑자기 커피를 더 권하는 임솔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솔이 누나."

"… 야. 너는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거야. 교수님 이라고 해야지."

임솔은 내 솔이 누나라는 호칭에 어이없다는 듯 따져왔다.

"그런거에요? 흐음. 교수님이 하길래 저도 되는 줄 알았어요."

나는 능청스럽게 미소지으며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능글맞은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교수님은 눈을 찌푸렸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한테 잘 해주면 안된다니까."

임솔 교수는 내 말에 기분 나빠진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에이. 교수님 왜 그러세요. 제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

나는 교수님을 달래주기 위해 비위를 맞춰주며 교수님 옆에 달라붙었다.

뾰루퉁한 미녀의 기분을 맞춰주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꽤 재밌거든.

다행히 임솔은 기분을 풀고 내게 말했다.

"… 바지나 벗어."

"오늘은 마법에 대한 탐구 같은 거 안하나요?"

"연구도 다 끝났는데 무슨 마법이야. 당 보충해야해."

"넵."

이럴거면 처음부터 '화났어요?' 라고하면서 바지를 벗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정말 화내겠지.

익숙한 듯 내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임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접객용 소파에 몸을 눕혔다.

쪽- 쪼옵-

"하아… 쌀게요. 교수님."

"읍읍."

내 사타구니에 얼굴을 박은 임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움직였다.

나는 몸 깊은 곳부터 올라오는 사정감을 참지 않았다.

위아래로 찰랑거리는 은발을 양손으로 쥐고 앞 뒤로 흔들었다.

벌써 두 번째 사정이지만 펠라 천재 교수님에게 받는 펠라는 두 번째도 기분 좋았다.

뷰르릇.

"쯔읍. 쩝… 쪽."

꿀꺽꿀꺽-

임솔은 내 사정이 끝날 때까지 쪽쪽 빨면서 정액을 맛봤다.

요도에 남아있는 한 방울까지 짜내고 귀두를 혀로 핥아준 후에야 임솔은 천천히 입을 뗐다.

"오늘도 맛있었어."

혀를 날름거리는 임솔을 보니 다시 성욕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 감사합니다."

내가 열심히 음욕을 참아내고 있을 때, 임솔은 기지개를 피며 내 맞은편 의자로 향했다.

"내일은 뭐 할 거야?"

"내일이요?"

"응. 기념회잖아."

"어… 아마 친구들하고 놀지 않을까요."

정확한 일정은 없지만, 루시 루미 쌍둥이와 만나서 놀다가…

'뭐하지?'

딱히 정해진 계획이 없다.

아마 루시 루미 쌍둥이랑 놀다가, 거기서 만나는 히로인들하고 놀아야 할 것 같은데.

학생회에서 할 일이 있다면 도와주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학생회 핑계로 빠져나올 수도 있겠네.

"으흠. 알았어."

질문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임솔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홀짝였다.

*

"그럼 이제 가볼게요."

"응. 편히 쉬어. 다음에 보자."

이호연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배웅하러 나갈까 고민하던 임솔은 그냥 자리에 앉아있기로 했다.

지금까지 마법 연구에 미쳐서 나가는 뒷모습도 안 봐놓고 오늘부터 배웅하는 건 이상하니까.

"… 눈치 못 챘겠지."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두 번이나 해줬는데.

임솔은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느껴지는 창피함 때문에 뜨거워지는 얼굴을 숨기는 건 꽤 힘들었다.

두근두근.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이 이상한 감정이 사랑인 걸까. 아니면 짙은 호감인 걸까.

"… 참을 수 있겠지."

이호연이 자신보다 강해질 때 까지 참아야 한다.

이건 마법사로서 자존심이 걸린 것이니까.

모든 걸 양보해도, 임솔이 마법사인 이상 저 명제는 절대적이다.

'제자한테 발정하는 건 백아영 같은 자제력 없는 애나 하는 거야.'

자신은 그렇지 않다.

"후우."

임솔은 천천히 남아있던 커피를 마셨다.

'내일 기념회나 나가볼까.'

교수는 보통 교수들끼리 술자리를 가지는 게 룰이지만... 임솔은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홀짝-

임솔은 고개를 젓고 커피를 마셨다.

요즘따라 쓸데없는 잡념이 너무 많아졌다.

하지만 입안에 남아있는 달콤함은 계속 그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

"역시 호감도가 많이 늘었어."

원래 임솔은 한 번 이상 안 해주는데, 오늘은 특별한 일도 없이 두 번이나 빨아줬으니까.

'그래도 좀 아쉽네.'

임솔의 펠라치오는 정말 좋다.

자지를 넓게 전체적으로 자극하는 릴리아나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교수님은 내 반응을 바로 살피며 기분 좋은 곳을 핥아온다.

확실히 임솔의 펠라치오는 서큐버스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기분좋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다는 점.

여자의 몸을 끌어안으며 체온을 느끼고, 부드러운 살갗에 비비며 직접 내 허리를 움직이고, 상대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교감하는 것.

그런 행위를 못 하는 게 너무 아쉽다.

'릴리아나랑 해야겠다.'

그래도 집에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서큐버스가 있으니 다행이다.

길거리에는 노점이나 커다란 천막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미리 다 준비해놨네.'

아마 내일 사용할 목적이겠지.

진짜 축제처럼 진행되는 모양이다.

띠링-

곧 기숙사에 도착하고, 익숙한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안 쪽 거실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흐음, 이건 뭐야?"

듣다 보면 홀릴 것 같은 매혹적인 목소리와.

"최면술인데? 처음 봐?"

익숙한 변태 서큐버스의 목소리였다.

"아하, 근데 넌 몇 살인데 반말을 하는 거니?"

"나? 50살."

"… 50살이라고?"

재빨리 거실로 향하자 익숙한 붉은 머리의 여자가 릴리아나와 남다희 앞에 앉아있었다.

"뭐 하세요. 레베카 씨."

"아, 애기 아빠 왔구나. 애기 아빠 여자 친구들하고 인사 좀 하고 있었어. 친해지면 좋잖아."

"미리 연락 좀 하고 오지 그랬어요. 연락처도 받아가놓고서."

물론 와도 상관은 없는데… 이럴 거면 연락처는 왜 가져간 거야?

"그럼 재미가 없잖아."

레베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슬쩍 릴리아나와 남다희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 예전처럼 무서워하진 않았다.

아마 내가 없는 사이에 대화를 좀 나눴겠지.

"그나저나 아이 아빠 집이 너무 작은 거 아니야? 내가 하나 사줄까?"

"괜찮아요. 곧 이사할 거거든요."

"좋은 생각이네. 여자 4명하고 같이 살면서 여긴 너무 좁아. 아, 맞아. 쟤는 새로운 여자친구?"

레베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스칼렛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레베카가 처음 왔을 때, 스칼렛은 엘리스 쪽에 있었다.

내가 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얘기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일거다.

저래보여도 레베카는 엄청난 강자니까, 스칼렛도 꽤 놀란 모양이다.

"아, 둘은 처음 보는구나. 스칼렛. 이쪽이 내가 말한 레베카야. 나를 지원해주고 있어."

"… 예. 인사는 이미 나눴습니다."

"말하는 걸 보니 아직 여자친구는 아닌 거 같네. 그럼 여자친구 후보?"

"아, 아닙니다…!"

뭐야. 둘이 왜 이리 친해.

레베카 이 사람 의외로 친화력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럼 여자친구 후보 안 할 거야?"

"… 용건만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칼렛은 저렇게 막 나가는 사람한테 약하구나.

릴리아나한테도 약한 걸 보면 맞는 것 같다.

나도 다음부터는 막 나가볼까.

레베카가 놀릴 때마다 반응하는 귀여운 스칼렛을 잠시 구경하다가 테이블로 향했다.

이 집에서 제일 평화로운 공간이다.

"시끄럽지? 아까부터 저랬어."

커피를 마시며 다희를 바라보던 남다은은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레베카 씨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거실 한 가운데에 나타났거든. 스칼렛 씨가 그렇게 당황한 건 처음 봤어.'

"그걸 못 봤네. 쓰읍…."

진짜 너무 아쉬운데?

남다은이 큭. 하고 소리내어 웃을 정도면 진짜 재밌었던 모양이다.

"내일 기념회인 거 알아?"

남다은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살포시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응. 다희랑 놀러 가는 거 아니었어?"

"맞아. 너는 루시랑 루미?"

"그럴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달라붙으면 어떡해? 회장님이나, 엘리스나."

"… 글쎄."

그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그런 일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내일 마지막엔 춤추는 이벤트가 있대."

"그렇다고 하더라."

춤은 어떻게 해야할까.

여러 명이 내게 말하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 고민하던 때.

맞은 편에 앉아있던 남다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살짝 내 손을 잡았다.

"나도 춤추고 싶은데. 너하고."

"… 그래?"

"호연이랑 단 둘이 밥도 먹고 싶고, 술도 마셔보고 싶어."

남다은은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약간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하긴 그렇겠지.'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남다은은이미 호감도 100을 넘어 공략이 끝났다.

그 말은 나한테 사랑 이상의 호감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여자를 만나러 다니거나 대놓고 섹스를 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약속도 했었는데.

"그래도… 참을게"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에 남다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애초에 호연이 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평화로운 삶도 없었을 테니까. 다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멋쩍은 웃음.

평소의 남다은이랑 다른 태도인 만큼, 진심이 느껴졌다.

"밖에서는 상관없으니까, 집에서는… 좀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

남다은은 부끄러운 듯이 내 가슴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릴리아나 씨만 예뻐해 주면 슬퍼."

"… 미안."

이 모습을 보니 진짜 원망스러웠다.

나 자신이.

공략이 끝났다고 히로인들은 인형이 되는 게 아닌데.

알면서도 항상 이렇게 실수를 한다.

나는 남다은의 어깨를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다은아. 난 네가 좋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응… 고마워."

쩝.

오늘 밤은 다은이랑 보내야겠다.

해는 이미 져버렸으니, 달이 떠 있을 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사하고 나서 같이 장 보러 갈까."

"곧 마트가 세일하니까, 같이 가자."

"나중에 칵테일 바도 데려가줄게."

200억짜리 집에 들어가면서 마트 세일을 챙기는 게 뭔가 아이러니했지만, 그게 또 남다은의 매력이니까.

남다은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따스한 마음을 느끼고 있던 그 때.

짝짝짝-

뜬금없이 박수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레베카 씨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감동적이네… 우리 애기 아빠."

그리고 그 뒤에는 스칼렛이 고개를 저으며 서 있었고.

히죽 웃고 있는 릴리아나 뒤에는 남다희가 입을 가린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 야. 구경났어?"

스칼렛과 릴리아나를 바라보며 어이없는 듯 웃었는데, 대답은 다른 쪽에서 돌아왔다.

"어, 어, 어. 어… 언니. 언니…?"

"다, 다희야."

사랑하는 언니가 '여자'일 때의 모습을 처음 본 남다희는, 충격을 먹은 듯 벙찐 표정을 지었다.

남다은은 당황한 표정으로 남다희를 끌어안았고, 그 옆에서 스칼렛과 릴리아나가 다 들리도록 귓속말을 했다.

"… 호연 님의 기술은 언제봐도 대단하시네요."

"인큐버스의 피가 흐르고 있다니까? 저 정도면 순혈일지도 몰라."

"제발 닥쳐줘…."

나도 이번에는 조금 부끄러웠다.

생각해보면 부엌의 바로 옆이 거실인데, 테이블에서 꽁냥대고 있으면 바로 볼 수 있겠지.

아니, 그래도 좀 모르는 척해줄 수 있잖아.

다 아는 사람들끼리 왜 그러는 거냐고.

내 못마땅한 시선에 대답하듯 스칼렛이 입을 열었다.

"저와 릴리아나님은 다희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레베카 씨가 시간이 없다고 하셔서요."

"맞아. 사실 할 얘기가 있어서 왔는데 애기 아빠 여자 친구들하고 놀다 보니 이제 생각났어."

레베카가 미안한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 뭔데요."

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기만 해봐.

진짜 룬의 일족이고 뭐고 없어.

"켄타우로스에 대한 정보하고, 내일 기념회 테러에 대한 정보야."

"… 그렇게 중요한 걸 왜 까먹는데요."

이 사람 분명 일부러 이러는거야.

나는 어쩔 수 없이 레베카의 말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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