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9화 (249/648)

*

한편.

문수린은 그제야 밀려있던 서류작업을 끝내고, 회의 내용까지 정리를 마쳤다.

"후우…."

조금 있으면 찾아올 이호연을 생각하며 최대한 빨리 일을 정리했다.

"고생하셨어요. 회장님."

"응, 고마워."

문수린은 서기가 가져다준 커피를 받았다.

그래도 오늘 일을 끝내고나니 뿌듯함이 찾아왔다.

이대로 이호연이 올 때까지 쉬다가….

"아, 맞다. 회장님. 호연이랑 엘리스 양이랑 홍보부 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크흡! 콜록! 콜록!"

"회, 회장님?!"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서기의 말에 문수린은 사레에 걸린 듯 재채기를 시작했다.

일이 끝나서 기분이 좋던 서기는 갑작스러운 문수린의 행동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떡해! 괜찮으세요? 회장님!"

"그, 그걸 왜 이제야 말해!" 

"네, 네? 그야 업무 중에 방해하지 말라고 하셔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최근 몇 번이나 문수린에게 혼난 서기는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고, 그걸 본 문수린은 정신이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으으, 알았어. 내가 갈게."

문수린은 입에 묻은 커피를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호연을 기다리게 하다니.

하면 안 될 짓을 해버렸다.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 게 많은데 왜 이렇게 일이 생기는 걸까.

문수린이 신경쓰는 건 크게 두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호연의 침대 밑에서 발견된, [섹시 서큐버스가 입고있던 음란한 옷]

처음엔 이호연에게 직접 물어보려는 생각이었지만, 곧 그게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집을 뒤졌다고 직접 시인하는 꼴이니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 보류한 상태다. 

다음은 경쟁자들.

문수린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경쟁자는 세 명.

매일같이 같이 다니는 루시루미 쌍둥이.

그리고 양호 선생님 백아영.

매일같이 어울리며 셋이 동아리를 하고 있는 루시 루미 쌍둥이는 말할 것도 없고, 백아영은 몇 번이나 전과가 있다.

TV에 나와서 마치 사귀는 것 처럼 이상한 말을 하질 않나, 칼을 대신 맞아주는 감동적인 커플같은 모습이 CCTV에 잡히질 않나.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으으."

혹시라도 이호연과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닐까.

설마, 아니겠지.

괜히 느껴지는 불안한 마음에 문수린은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이호연이 기다리고 있는 홍보부실로.

"흐으읏…."

이호연이 엘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마자, 엘리스는 흠칫하며 놀랐다.

엘리스는 남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감각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 터치 없는 삶을 살던 엘리스였기에 겨우 마사지 몇 번으로 익숙해질 수 없었다.

"괜찮아?"

"미안, 응. 괜찮아. 살짝 놀랐을 뿐."

"긴장하지 마. 마나 회로 확인만 할 거니까."

꾸욱-

이호연은 살짝 웃고는 엘리스의 어깨를 잡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손가락 끝에서 펴진 마력이 엘리스의 몸으로 파고들어 갔고, 금방 마나 회로에 자리 잡았다.

"확실히 좁아지고 있네.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아."

슬슬 마사지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스읍… 응, 하아."

"조금 더 확인해볼게."

이호연이 눈을 감고 엘리스의 몸을 확인하는 동안.

그 모습을 본 엘리스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상해. 아니 말이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엘리스의 상식으로는 이호연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그렇게 건드려놓고, 왜 이 남자는 이렇게 덤덤한 걸까.

엘리스는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처음엔 악몽인 줄 알았던 그 마사지.

이호연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마나 마사지의 행위 자체는 매우 음란했지만, 효과는 완벽했다.

어떻게 그 정도로 효과 좋은 마나 마사지가 퍼져있지 않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효과가 좋은 만큼 천박한 마사지였으니 널리 퍼지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 추잡스럽고 경박한 마사지를 실행하는 주체가 이호연이라는 것.

즉 '남자'라는 것이다.

'근데 이렇게 덤덤할 수가 있어? 진짜로?'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엔 뭐해도, 엘리스는 꽤 매력적인 편이다.

아니, 많이 매력적인 편이다.

그런 소리를 20년이나 듣고 살았으니까.

실제로 거울을 봐도 자신은 아름답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얼굴에 속한다.

그런데 어째서?

아무리 일이라도, 자신의 몸을 그렇게… 음란하게 만져놓고.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엘리스는 얼굴이 빨개졌다.

숨기려 노력해도 힘들 정도다. 그래서 이호연과 대화를 할 때는 얼굴에 거의 모든 집중을 다한다.

그런데 자신과 다르게, 이호연은 왜 티를 내지 않는 걸까.

'혹시 나만 신경 쓰는 거야?'

그때.

움찔-

엘리스의 마나 회로가 조금씩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이호연의 마나가 지나갔다는 뜻이다.

엘리스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도, 이호연은 계속 업무에 임하고 있었다.

혹시 잘생기면 여자한테 관심이 없는 건가?

'개소리.'

이호연의 여자관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엘리스였다.

실제로 다른 여자와 관계하는 영상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리 잘생겼다해도 남자는 남자다.

그런데.

자신을 그렇게 건드려놓고.

호감이 안 생겼다고?

"으으…."

짜증나.

뭔가 짜증난다.

자신만 이렇게 신경 쓰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

"확실히 회로가 좁아지기 시작했네. 조금만 만져줄까?"

"… 고마워."

신경 써주는 걸 보면 나름 호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엘리스는 계속 고민에 빠졌다.

한편 이호연은 엘리스의 어깨를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마나 회로를 건드리기만 해도 움찔움찔하는 게 반응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이거 아래도 좀 건드릴 수 있는 거 아닌가?'

마사지에 대한 거부감은 처음에 비해 많이 없어진 것 같으니, 약간 기대감도 심어줄 겸.

"히이익…."

이호연에 대해서 고민하던 엘리스는, 하복부의 이상한 감각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

"나쁘지 않아.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어."

내 마력이 엘리스의 몸 외부를 훑고 지나가자, 엘리스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으니 나도 그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재밌네.'

"끄흐으, 하으, 읍."

쿡. 쿡.

마력을 이용한 터치.

오랜만에 해도 어색하지 않은 게, 아무래도 천직 같다.

나는 마력을 엘리스의 허벅지 사이로 집어넣었다.

안쪽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꼬옥 닫혀있던 통통한 허벅지지만, 마력까지 막을 순 없었다.

결국 틈을 찾아내 파고들어 간 마력은 엘리스의 음부에 도달했다.

"흣, 흡?"

몸 안에서 이상한 게 느껴졌는지, 엘리스는 손으로 치마 사이를 꾹 눌렀다.

내가 붙잡은 어깨를 움찔움찔 대는 건 덤이었다.

찌걱-

흐름을 타서 몇 번이나 클리를 건드리면서 재미를 보고 있을 때.

엘리스가 가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자, 잠시만. 후. 이거 이상해. 여기 사람도 많잖아. 너무 느낌이…."

"아."

엘리스의 말과 동시에 나는 주변을 살폈다.

너무 재밌어서 여기에 학생회 선배들이 있다는 것도 까먹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린 누나의 마력이 가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똑똑똑-

"네, 네!"

나는 엘리스에게서 급히 손을 떼고 문을 열었다.

"누나. 오셨어요?"

"응. 미안해. 일이 많아서. 둘이 뭐 하고 있었어?"

"그냥 대화 좀 했어요. 누나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요."

"흐으응. 그렇구나."

수린 누나의 표정은 평범했지만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를 자주 보다 보니 느낄 수 있게된, 싸한 감각이다.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88 ]

- [ 성욕 : 50 ]

- [ 식욕 : 45 ]

- [ 피로도 : 65 ]

현재 상태 : 뭐였지. 장난? 아니면 스킨십? 아니면….

역시. 

이 누나 눈치챘으면서 모른 척 하는 거야.

침을 꿀꺽 삼킨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깨도 주물러줬어요. 요즘 피곤해 보이길래."

슬쩍 엘리스를 바라보자, 엘리스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아니, 왜 옷을 지금 고치는 건데.

누가 보면 진짜 뭐라도 한 줄 알겠어.

"응응. 일단 앉아. 빠르게 전파해줄게."

다행히 누나는 거기까지 신경쓰지 않았다.

"… 네. 회장님."

엘리스는 아직도 살짝 붉어진 얼굴로 수린 누나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일단은 엘리스와 같이 듣는 입장이기에, 나도 그 옆에 자리 잡았다.

"일단은. 그, 엘리스 양?"

"네. 회장님."

"말은 편하게 해도 되겠죠…? 호연이랑 동시에 전달하고 싶어서요."

"괜찮습니다."

둘은 아직도 존댓말이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게 문제다.

히로인들끼리 너무 거리가 멀어.

서로 좀 친해져야 하렘이 쉬워질 텐데.

릴리아나나 남다은처럼 말이다.

물론 그 둘은 좀 특수한 관계지만, 아 모르겠다.

"좋아. 그럼 천천히 설명 시작할게. 일단 처음은…."

수린 누나의 설명은 어렵지 않았다.

난 기념회라길래 며칠 내내 하는 줄 알았는데, 딱 하루인 모양이다.

물론 그날은 아카데미도 쉬면서 하루종일 노는 날이라고 하니, 스케일은 꽤 큰 것 같았다.

실제로 수린 누나가 보여준 계획표를 보니 학생회가 준비할 것도 엄청나게 많았다.

기한도 엄청나게 빡빡했다.

바로 내일 모래인 금요일이었으니까.

사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계획표를 보니 대부분이 '마법으로 준비'라고 쓰여 있었기에 납득했다.

축하 공연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학생들끼리 마시고 먹고 노는 것이었으니 리허설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들은 그날 마법으로 준비하면 된다. 그러니 준비 기간이 이렇게 짧은 거겠지.

"그렇게 되는 거야. 둘 다 이해했어?"

"네. 이해했습니다. 회장님."

"저도 대충 이해했는데요… 이 마지막에 [음악과 댄스]는 뭔가요?"

계획의 마지막.

해가 질 때 즈음에 예정된 계획이다.

내 의문에 대답하면서, 수린 누나는 작은 악마같이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말 그대로야."

"…?"

"말 그대로. 그냥 음악이 흘러나오고, 춤을 출 수 있는 무대를 만들 거야.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은 출 수 있게."

"어…."

이거 뭔가 엄청나게 불안한데.

클리셰잖아.

큰일나는 클리셰라고 이거.

"왜, 누나랑 춤추고 싶어?"

수린 누나는 바로 찔러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가 던진 미끼를 문 것이다.

"… 제가 춤을 잘 못 줘서요."

"괜찮아. 내가…."

"회장님. 이 서류에 적힌 것만 알면 되는 건가요?"

그때 엘리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 입장에선 고마운 타이밍이었다.

"아, 응. 다 이해했으면 가봐도 돼."

"… 알겠습니다. 호연아.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스는 날 바라봤다.

표정을 보니 시간 낭비하기 싫은 모양이다.

엘리스는 일정이 꽤 많을테니까.

그런데 나랑은 왜 같이가자고 하는거지?

"응? 같이 가게?"

"내가 안내해줄게. 기숙사 사감한테."

오, 엘리스가 웬일일까.

밖에서 아는 척도 안 하면서.

솔직히 위치를 알아서 안내해줄 필요는 없지만, 같이 가자는데 거절할 필요도 없다.

"저기 호연아."

그때, 수린 누나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그거 급한 일이야? 나도 할 얘기가 있는데."

"아, 어…."

급한 일이냐고 물으면, 아니긴 하다.

사감실은 밤에도 열려있을테니, 다 끝나고 가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면 먼저 제안해준 엘리스에게 미안해진다.

"… 저는요?"

내 생각대로, 엘리스가 약간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수린 누나를 바라봤다.

"아, 엘리스 양은 가봐도 괜찮아. 개인적인 일이거든."

"회장님. 호연이 일이 꽤 급해요. 언제 이사를 할 지 몰라서…."

"그, 엘리스? 사감님이라면 기숙사 바로 뒤에 있잖아. 굳이 안내까지 해 줄 필요가 있을까?"

"…."

엘리스도 지지않으려고 바로 대답했지만, 정론을 이기기 힘들었다.

사실 저 말이 맞다.

나도 사감 건물은 지나가면서 몇 번이나 봤거든.

솔직히 기숙사에 사는 사람 중에 그 건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수린 누나도 기숙사에 살고 있으니, 누구보다 잘 알거다.

"… 하."

엘리스는, 아주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내 앞에 앉아있던 수린 누나는 듣지 못했는지, 싱긋 웃은 상태였다.

미소가 너무 시원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 이호연."

"응?"

내 옆에서 일어나있던 엘리스는 그 상태 그대로 말했다.

어딘가가 굉장히, 얹짢은 표정이었다.

"나도 할 말 있으니까 끝나면 연락해."

"…? 알았어."

갑자기 무슨 일일까.

혹시 뭔가 중요한 말을 하기 위해 날 안내해준다고 한 건 아니겠지?

그러면 조금 큰 일일지도.

'끝나고 말해도 될 정도면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닌가?'

아무튼, 엘리스는 그 말만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평소보다 발걸음이 약간 못마땅해보이는 건, 내 착각이 아닐 거다.

'조금 화났나.'

하긴 먼저 저런 말을 했는데 끊기면 조금 짜증 나겠지.

그래도 여기서 엘리스를 따라갈 순 없다.

"호연아. 나 할 말이 있어."

그러면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우리 수린 누나를 무시하는 거니까.

*

학생회실에서 빠져나온 엘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불쾌해."

학생회장.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우쭐한 표정을 짓는 게, 굉장히 꼴 보기 싫었다.

나중에 인맥으로 쓸 수 있는 사람한테는 절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 어쩐지 오늘은 굉장히 짜증 났다.

솔직히 말하면 [되지도 않는 견제]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호연과 친하게 지내는 자신을 견제해서 하는 행동일 텐데, 기분만 나쁠 뿐이었다.

이호연과 자신은 그저 비지니스 관계였다.

견제따위를 해도 불쾌할 뿐이다.

혹시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해서 아이리스 길드에 문제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프랑스의 국력을 낮추려는 속셈이었다면 확실하게 성공이다.

"불쾌해불쾌해불쾌해불쾌... 후우…."

엘리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 심호흡을 했다.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에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세바스 찬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을거다.

엘리스는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탔다.

세바스 찬은 언제나처럼 웃으며 엘리스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응. 집에 가자."

"바로 집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저녁 식사나 칵테일 바에 들리실 줄 알았는데요."

"됐어. 기분이 별로네. 오늘은 쉴래… 아."

생각해보니, 이호연에게 기다리라고 말했었지.

문수린이 하는 짓이 같잖아서 생각없이 말해버렸다.

이호연이랑 친하게 지내는 자신을 질투하는 게 너무 눈에 보였으니까. 

사실 할 말은 없었다.

단순히 문수린이 기분 나빠지라고 한 말이다.

"… 음."

엘리스는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라고 생각했다가, 그냥 스마트 워치로 메시지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할 말이 없네. 나중에 봐.]

"이거면 되겠지."

엘리스는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