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일 아침.
나는 현관에서 남다은 자매를 배웅했다.
"먼저 가볼게. 호연아."
"오빠! 갈게!"
"응응. 이따 보자."
남다은 자매를 먼저 보낸 이유는, 스칼렛과 이사에 대해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뭘 하다 왔는지 어제 늦게 들어온 스칼렛은 오늘 아침에서야 내게 집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리고 놀랄만한 얘기를 시작했다.
"… 200억?"
"네. 좋은 조건으로 구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 응…."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구해온거냐고.
살면서 살아온 집이라곤 빌라와 원룸 그리고 아카데미 기숙사밖에 없는데 갑자기 200억짜리 집이라니 현실감이 안 난다.
"주변에서 제일 좋은 집으로 구했어요. 아카데미 주변은 원래 땅값이 비싸잖아요."
"그렇긴 한데. 어, 그래도 200억이란 돈이."
"설마 릴리아나 님과 남다은 양이 살 집인데 돈이 아까운 건 아니시죠?"
스칼렛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가렸다.
놀라는 척 하는거다.
"그럴 리가 있겠냐. 나는, 하아.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저 실실 웃는 표정을 보니 분명 뭔가 한 것 같은데,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끝까지 숨긴다.
"이상한 데 돈 쓴 건 아니지?"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스칼렛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시세보다 훨씬 싸게 구했어요. 몇 년만 살다 팔아도 시세 차익이 엄청날걸요."
"쩝. 그렇다면야."
사실 내 돈이었으면 화났겠지만, 내 돈도 아니고.
바이어 길드에게 뺏은 300억은 사실 남다은한테 다 주려 했었다.
근데 절대 안 받겠다고 거부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받은 거다.
그걸로 집을 사는 데 썼다고 하니 아깝진 않다.
"… 근데 왜 웃어."
"안 웃었, 큽. 니다."
그저 저 웃음이 불안할 뿐.
"내가 직접 확인 안 해도 괜찮아?"
"네. 걱정하지 마세요."
주소를 안 알려주는 것도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나 혼자 사는 집이면 몰라도 같이 사는 집이니까 좋은 걸 구했을거다.
조금 사치스러운 집이겠지 뭐.
설마 [100억짜리 도자기(진품)] 이런 걸 사다 놓진 않았겠지?
그러면 진짜 화낼 텐데.
"그래. 그럼 간다. 릴리아나 잘 놀아주고."
릴리아나는 이사하기 전에 더 열심히 방송해야 한다며 방에 틀어박혔다.
'어차피 일주일은 여기 있을 텐데 쟤도 참 급하다니까.'
스칼렛에게 인사를 하고 나도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아카데미에 도착하고 1학년 A클래스로 향했다.
이 곳은 항상 북적거렸다.
- 기념회에 술 가져가도….
- 나랑 같이 놀래?
생도들은 끼리끼리 모여 기념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기념회 얘기가 이렇게 퍼져있는 걸 보니 확실히 유명한가 보네.
그만큼 할 일도 많다는 거겠지.
다시 생각하니 귀찮음이 몰려왔지만, 꾸역꾸역 참았다.
자연스럽게 이미 앉아있던 루시와 루미에게 다가갔다.
"호연 씨. 안녕하세요."
"이호연, 너 진짜 튼튼하네. 그 정도면 한 번은 다쳐줄 만 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대체."
인사를 하며 루시와 루미 사이에 앉자, 루시는 날 신기한 듯 바라봤다.
"뉴스에 엄청난 규모의 테러라고 하길래… 물론 교수님이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도 봤지만."
루시는 임솔의 마법을 떠올렸는지 몸을 살짝 떨었다.
하긴 나도 놀랐으니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오는 길에 뉴스를 보니까 마법 학회에서 초청하니 뭐니 하던데, 어떻게 되려나.
"그래도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호연 씨."
"고마워. 루미."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루시루미 쌍둥이와 잡담을 나눴다.
어제 뭐 했는지부터, 마지막에는 '오늘 시간 있냐' 까지.
마지막 질문을 하는 루시의 눈에서 나오는 욕망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눈을 피했다.
"… 오늘은 학생회에 가봐야 해."
"학생회?"
"응. 기말고사 기념회 때문에."
"아, 맞아. 메시지 왔어. 사정이 있는 게 아니면 꼭 참여하라는데."
"나도 학생회 소속이잖아. 일 좀 하라고 부르더라고."
"대단하네요. 호연 씨…."
"쯧. 알았어. 오늘은 패스! 아, 그나저나 기념회 끝나면 바로 기말고사인데, 어쩌지."
루미는 내 옆에서 날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고, 루시는 귀찮은 듯 팬을 돌렸다.
"벌써 그렇게 됐어? 기말고사 공부 해야겠네."
시간 참 빨라.
아니, 느린 건가?
하루하루 스케줄이 꽉 차 있으니 할 게 너무 많다.
"호연 씨는… 공부 잘하시잖아요."
"그니까. 왜 맨날 놀기만 하는데 공부를 잘하는 거야?"
"미리미리 해놔야지. 미리미리."
부러운듯한 쌍둥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수업을 준비했다.
사실 내 성적은 특전 때문이지만, 완벽한 거짓말을 위해 나는 나까지 속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양심에 찔리지 않고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럼, 저희도 공부 알려주세요…. 동아리 방에서."
"그거 좋다! 오늘은 안되니까, 내일부터?"
변태 쌍둥이는 누가봐도 음흉한 속셈으로 내게 권유했다.
"너희들 공부 안 할 거잖아…. 쩝. 약속 없으면 알려줄게."
물론 거절하진 않았다.
*
"우와 유명인이다! 유명인!"
"… 조용히 해."
임솔은 자신을 보고 놀라는 민예지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아영아, 솔이 마법 봤어? 막 하늘에 떠올라서, 빛을 딱. 하니까 마인 들이 다 녹아버리더라."
"너, 아영이까지 끌어들이지 마."
"봤어. 멋있긴 하더라. 왜? 창피할 일이 아니지 않아?"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을 보며 임솔은 한숨을 쉬었지만, 한 편으론 고마웠다.
그런 능력을 보고도 평소와 같이 대해줬으니까.
하지만 똑같이 자신을 지지해주더라도, 이호연에게서 느껴지던 두근거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 중증이네.'
쪼옥-
임솔이 잡념을 지우기 위해 커피를 빨아 먹는 동안, 민예지는 다음 타깃인 백아영을 놀리기 시작했다.
"하긴, 생도 좋아하는 교수도 있는데. 그렇지?"
"나, 나는 교수 아니고 양호 선생님이라 상관없거든? 양호 선생님은 직원이야 직원."
"솔아. 솔아. 아영이 말하는 거 봐. 응? 보라고."
"아, 미안. 딴 생각 하느라. 뭔데?"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호연을 생각하던 임솔은 민예지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양호 선생님은 교수가 아니래. 그래서 생도를 좋아해도 된다잖아…!"
꺅꺅-
민예지는 신랄하게 백아영에게 장난쳤고, 백아영은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음료를 마셨다.
셋이 만나면 항상 이런 대화가 오간다.
백아영을 놀리는 민예지, 그리고 민예지를 말리는 임솔.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 서로 좋아한다면 다른 조건은 상관없지 않을까?"
임솔은 아무것도 아닌 척하며 커피를 쪽 빨았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자마자 테이블은 정적에 휩싸였다.
임솔을 오래 봐온 둘은 알고 있다.
이 여자가 이렇게 여성스러운 대답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 솔아?"
"겨, 경쟁자…."
민예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임솔을 쳐다봤고, 백아영은 마시던 음료를 뿜을 뻔했다.
"제발 이상한 눈으로 보지마. 그냥 내 의견일 뿐이야."
임솔은 자기방어를 위해 의견을 피력했지만, 민예지가 그런 걸 들어줄 리가 없었다.
"이, 이호연. 이 나쁜 놈이. 내 친구들을 다 훔쳐 가려고 해…."
민예지는 슬픈 듯 눈을 질끈 감았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재밌는 일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으니까.
"아니 아직 안 훔쳐 갔어… 진정해."
"아, 아직…."
백아영은 임솔의 말을 듣고 혼이 빠져나간 듯 입을 벌렸다.
임솔도 자신의 경쟁자라고 확정짓는 말이었으니까.
"솔아. 똑바로 말해. 너 왜 그랬어!
"하아…."
민예지는 먹잇감을 찾은 사자처럼 임솔에게 달라붙기 시작했고, 임솔은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리고 있는 백아영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언젠가 들킬거라면 미리 들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싶어서.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루시와 루미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오늘 오후에는 학생회에서 회의를 하기로 했으니까.
'엘리스도 가는 건가?'
홍보부인 나를 불렀으니 엘리스도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스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어차피 갈 거면 같이 가도 좋을 텐데.
밖에서 아는 척하기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엘리스는 유학파면서 인재 중에 인재니까.
대중이나 언론의 관심이 부담일지도 모르고.
'물론 그렇게 따지면 안 유명한 히로인들이 없지만.'
성녀인 백아영과 천재 마법사인 임솔.
1학년 중에서도 강하기로 유명한 남다은, 그리고 유망주면서 미녀 쌍둥이인 루시루미.
학생회장인 문수린은 말 할 것도 없다.
스칼렛이나 릴리아나, 레베카처럼 남들이 존재를 모르는 게 아니면, 다들 유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수린 누나도 있지.'
수린 누나와 나는 참 신기한 관계다.
비유하자면 내가 이름을 한 번만 불러도 쪼르르 달려와 내게 안기는 강아지 같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히로인이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일단 게임에서 문수린 공략의 핵심인 스토커 사건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원작의 정보로 히로인들을 공략하던 내게 큰 걸림돌인 것이다.
단순히 호감도만 올린다고 공략되는 게 아니니까.
특정한 사건이 있어야 호감도가 100이 되면서 완전 공략을 할 수 있다.
근데 문수린은 그걸 모르겠다.
'일단 부딪혀봐야하나.'
사실 여러가지 남아있긴하다.
원작에서 스토커 사건 이 후에도 문수린에게 이벤트가 있으니까.
사라진 아버지나, 아카데미의 이사장 같은 떡밥이 남아있다.
아마 그 쪽으로 유도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동아리 건물로 걸어갔다.
'너무 오랜만인데?'
꼭대기인 17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며 생각했다.
홍보부라고 이름을 올려놓고 이렇게 활동을 안 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일을 안 했다.
혹시 누가 알기라도 하면 신고를 해도 무죄다.
띵동-
17층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학생회실과 회의실이 보였다.
퇴원 기념으로 들렸던 걸 제외하면, 거의 한 달만에 온 곳이다.
심지어 그때도 일은 안 하고 수린 누나 얼굴만 보고 나왔었지.
애초에 일이라고 해봤자 홍보부 일인데, 처음이자 마지막 촬영으로 일이 끝나버렸다.
그때 몇 시간 내내 찍은 사진들이 모두 잘 나와서, 아직도 다 못썻다고 하니까.
학생회실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모니터를 보며 눈을 찌푸리는 선배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인력난때문에 바쁜 모양이다.
나는 문을 열면서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응? 어, 후배님!"
"오, 오랜만!"
나는 다가오는 선배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내 대외용 이미지는 좋은 편이라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다.
게다가 학생회에 남은 선배들은 다 수린 누나의 편이니까 나도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회의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일이니까 제대로 해야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회의에 참여하려는데, 내 앞에 있던 선배가 눈을 꿈뻑거렸다.
"응? 아, 회의는 끝났어."
"… 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수업 끝나자마자 온 건데 늦었다고?
"회장님이 회의는 우리끼리 하고 1학년들한테는 그냥 전달해주자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 왜요?"
"글쎄? 회장님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 나도 잘 모르겠네."
나도 학생회 회의 하고 싶었는데.
[홍보부 이호연]으로서 일 좀 하려 했더니 도와주질 않는다.
아쉽네.
아마 수린 누나 나름의 배려겠지.
고맙게 받기로 했다.
"아무튼, 지금 회장님이 업무 중이라서 잠시만 기다려줄래? 홍보부 부실에 가면 엘리스 양도 있어."
"어, 그래요?"
뭐야, 먼저 온 거였구나.
나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홍보부 부실로 들어갔다.
마주 보게 설치되어있는 책상.
화려한 조명과 드레스룸까지 준비되어있는 모델을 위한 방.
이 곳이 홍보부 부실이다.
물론 단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은 없다.
이 시설을 만드는데 들어간 돈을 생각하니 양심이 쿡쿡 찔리는 것 같았다.
안 쪽 휴식용 소파에는 엘리스가 앉아있었다.
"엘리스?"
나는 자연스럽게 들어가면서 엘리스를 불렀고.
다리를 꼰 채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고 있던 엘리스는 날 보더니 흠칫하고 놀랐다.
"뭐야, 왜 놀라고 그래."
"… 아니, 그냥. 오랜만이네."
"아까도 강의실에서 봤잖아."
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걸까.
오늘 내내 수업을 같이 들어놓고.
"…."
부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렇게 된 김에 왜 사람들이 있을 때는 아는 척을 안 하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그건 좀 더 공략하고 나서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거든.
엘리스는 내가 들어온 이후로 스마트 워치도 보지 않고 슬쩍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여기서 처음 만났을 때는 대화를 하기 위해 내가 매달렸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된 것 같아서 꽤 기분이 좋았다.
엘리스에게 배운 잘 생기면 막 나가도 된다를 잘 써먹기도 했고.
여러모로 좋은 걸 배웠다.
이대로 엘리스가 먼저 말 걸기를 기다려도 되지만, 그랬다가 일을 끝낸 수린 누나가 들어올 수도 있다.
모처럼의 단둘의 대화 기회를 놓치긴 싫어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맞다. 엘리스. 나도 기숙사 말고 집을 구하려고 하는데, 어디에 말해야 해?"
"집?"
"응. 너처럼 기숙사에서 나가려고."
"그건 기숙사 사감한테 얘기해야지. 관리인 건물 있잖아. 거기 로비에 가면 알려줄 거야."
"오, 땡큐땡큐."
사실 알고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그런 것도 조사하지 않았을리가 없잖아.
그냥 대화의 물꼬를 틀기 위해 모르는 척 했는데, 잘 통한 것 같다.
"크흠."
엘리스가 헛기침을 시작했다.
말을 하려는 것 같길래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77 ]
- [ 성욕 : 83 ]
- [ 식욕 : 50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사업, 아니 켄타우로스 얘기를 하고, 자연스럽게 마사지 얘기로 이어가면 돼. 응….
'저게 목적이었구나.'
어쩐지 내 눈치를 보더라.
저번에 마사지 얘기를 했다가 거절당해서 이번에는 확실히 준비한 모양이다.
"그, 켄타우로스 관련 말인데."
"켄타우로스가 왜?"
"… 아ㅃ, 아니 길드장님이 나한테는 진행을 안 알려줘. 너랑 단둘이 진행한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
난 엘리스도 파악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응.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일정이 정해지면 나한테 알려줄 수 있나 해서. 나도 때에 맞춰서 가고 싶거든."
"아아… 음, 뭐 상관없겠지? 알았어."
아이작 씨가 화를 낼까 살짝 두렵긴 한데, 설마 딸이 보러오는 걸 싫어하겠어.
딸바보니까 괜찮을 거다.
"근데 왜 오려고?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 언젠가 내가 할 일이니까. 배우고 싶어. 아빠는 날 보호한다면서 절대 그런 곳에 날 안 데려가거든. 너랑 같이 가면 데려가 주겠지."
"…."
저런 이유라면 혼날지도 모르겠네.
아이작 씨는 엘리스 과보호가 심하니까.
"크흠, 그리고. 그, 그거. 요즘 몸이 좀 뻐근해."
"몸?"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참았다.
그냥 말하면 될 텐데, 자존심 때문에 돌려 말하는 엘리스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아예 모르겠다는 내 표정을 보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직접 말해야 하는 게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다.
"그, 마사지를 받았으면 해서."
"아, 마나 마사지?"
"그래. 응."
확실히, 이제 슬슬 약발이 떨어질 때도 됐다.
일주일 정도 버텼으면 오래 버텼지.
엘리스는 고비 하나를 넘은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안도한 표정이었으니까.
그런 엘리스를 보고 있자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확인해봐도 돼?"
"… 뭐?"
살짝 눈을 찌푸린 엘리스가 오해를 하기 전에,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널 못 믿는 건 아니고, 마나 회로가 얼마나 줄어들었나 직접 체크하려고. 그래야 확실한 날짜를 잡을 수 있으니까."
"그런 거라면야… 근데 옷도 내려야 해?'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스는 조심스럽게 날 바라봤다.
"어? 아니. 그냥 하자. 맨 살이 좋긴하지만 임시니까."
예쁜 여자의 몸을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여기는 좀 위험하다.
언제 수린 누나가 올지도 모르고.
게다가, 사실 옷이 있든 없든 마사지 효과는 비슷하다.
어디까지나 변명이었으니까.
"그, 그럼 확인해봐."
엘리스는 어느새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똑바른 자세로 손을 무릎에 얹고 있는 게,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응. 긴장하지 말고 힘 빼."
꾸욱.
나는 천천히 엘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