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7화 (247/648)

전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다고 인정받는 최고의 교육기관.

빅토리아 아카데미.

각국의 인재들이 몰려오는 이곳은 입학경쟁부터 매우 치열하다.

모든 경쟁을 뚫고 입학한 생도들은 자신감 넘치며 자존심이 세고 혈기왕성하다.

인재들이 모이는 곳에는 당연히 문제도 따라오는 법.

그런 생도들을 관리하는 곳이 바로 학생회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학생회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커리어다.

단순히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졸업 후 웬만한 길드는 골라잡을 수 있다.

탁- 타닥 탁.

그리고 그런 엘리트 집단의 수장인 문수린은.

오늘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

사실 그녀는 일이 좋았다.

할아버지인 이사장의 감사를 받는 것도 좋았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싫지만은 않았다.

자신은 업무에 재능이 있었다.

학생회는 자신을 필요로했고, 어느새 학생회 일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일 대부분을 직접 처리했지만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불평하더라도 결국 다 처리했다.

자신이 맡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문수린의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다른 학생회 임원들이 알아 챌 정도였다.

문수린이 요즘따라 회의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갑자기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고 다니질 않나.

자신은 어디에 가든 학생회장이라면서 생도복을 고집하던 사람이 사복을 입고 다니지 않나.

그래서 문수린의 파파라치들이 한동안 난리였지만… 다행히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학생회장이 저런 이상증세를 보이는 건 뭔가 이상했다.

그렇기에 무언가 사건이 있을 거라고 모두가 지레짐작은하고 있었다.

"후우…."

문수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날의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

이호연의 집을 덮친 마인. 다행히 일은 잘 처리되었지만….

침대 밑에서 나왔던 야한 코스프레 옷을 문수린은 잊을 수 없었다.

대체 그건 뭐였을까.

"하아…."

벌써 몇 번인지 모르는 한숨 소리에 회의에 참여하고 있던 다른 학생회 임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눈길이 한 사람으로 모였다.

'야, 네가 말 걸어봐.'

'내가 어떻게 해….'

'그래도 네가 회장님하고 제일 친하잖아.'

'아, 아닌. 그, 그렇긴 한데.'

학생회의 서기. 

문수린의 비서 비슷한 일을 맡고 있는 그녀는 평소에도 문수린과 친분이 있었다.

"크흠. 큼. 그, 회장님?"

결국 등 떠밀리듯 일어난 서기는 문수린의 눈치를 살피며 서류를 내밀었다.

"이, 이거. [학생회 기말고사 기념회 계획] 서류를 배포용으로 정리한 자료입니다.'

"아…, 확인해볼게.

문수린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자비롭고 부드러운 목소리.

듣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것 같은 포근한 스타일이었다.

촤르륵-

문수린은 서류를 넘기며 꼼꼼히 살폈다.

마지막 검수는 언제나 자신의 몫이었기에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꼼꼼하게 서류를 살펴보던 문수린의 눈에 무언가가 걸렸다.

"이건 뭐야? 홍보부 엘리스. 이호연."

"후배들도 학생회라서 일단은 집어넣었는데요…."

"물어보긴 했어?"

"그, 이호연 생도가 오늘 현장 학습이라서 기숙사 앞에 서류를 가져다 놓긴 했어요. 엘리스 양한테는 이따 직접 가볼 생각이에요."

"으음… 알았어."

이호연.

그 이름을 듣자마자 문수린의 머리 속에서 음란한 코스프레 복장이 떠올랐다.

간신히 유지하던 집중력이 깨지는 것 같았다.

'피곤하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시간만 있었더라도 이호연과 밥이라도 먹으며 대화를 나눌 텐데.

쯧.

하고 혀를 찬 문수린은 다시 서류를 검토했다.

하지만 도저히 업무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건지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여긴 왜 행간이 다르지?"

"네, 네? 아, 죄송합니다…."

"이건 뭐야. 5페이지에…."

"아, 넵…."

그렇게 몇 가지를 지적하다보니 서기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고, 뒤에서 지켜보던 학생회 임원들도 문수린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척을 시작했다.

- 띠링! 사인 완료!

그때 서기의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서류에 사인이 완료되면 알림이 오는 마법이었다.

서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 호, 호연 생도가 사인을 했나 봐요. 제가 직접 가져올게요. 회장님."

"아니야. 내가 전화하면 돼."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는데, 서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쉬세요. 회장님. 금방 갔다 올게요!"

"어…. 알았어."

문수린은 서기의 기세에 압도되어 고개를 끄덕였고.

서기는 자리에서 도망치듯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눈을 돌리자 일하는 척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임원들을 보였고, 문수린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회의는 여기서 끝내자. 오늘 컨디션이 영 별로네. 미안."

회의가 끝나고 학생회 임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문수린은 죄책감을 느꼈다.

방금 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화를 푸는 행위였으니까.

"못 볼 꼴을 보였어."

나중에 꼭 개인적으로 사과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스마트 워치를 켰다.

생도들의 의견을 파악할 때 사용하는 에브리데이라는 커뮤니티.

이슈가 생기면 여기만큼 빠르게 퍼지는 곳이 없기에, 문수린은 자주 애용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호연의 사진도 자주 올라온다.

'그러고 보니 그냥 메시지 하면 보내준다고 했었는데.'

사인을 했다는 건 집에 왔다는 소리인데… 메시지나 보내볼까.

여러 생각을 하며 추천글을 보던 문수린은 눈을 찌푸렸다.

[섹시 서큐버스 옷은 언제봐도 레전드다. 쥬지가 웅장해진다.]

제목만 봐도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글.

평소라면 들어가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왠지 누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낚시인 걸 알아도 확인하고 싶은 날.

문수린은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옷을 발견했다.

"… 어?"

그 옷이다.

이호연의 방에서 나왔던 그 옷.

'아니, 코스프레겠지.'

일반인이라면 일단 저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저 섹시 서큐버스가 이슈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빅토리아 아카데미 생도라는 것이다.

예전에 학생회 회의 주제가 된 적도 있었다.

여생도 중에 기숙사에서 야한 옷을 입고 방송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여생도 기숙사를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으나, 사생활 문제로 실행하진 않았던 계획이다.

에브리 데이에서 의문의 반대가 많기도 했고.

"… 이상한데."

코스프레 옷이라기엔, 너무 똑같았다.

마감이나 조금 늘어진 가슴 쪽 천 같은 디테일한 부분.

미세한 것까지 잡아낼 수 있는 그녀의 눈에는 확실하게 보였다.

"…."

하지만 고민만 해서 나오는 건 없었다.

문수린은 이호연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스마트 워치를 종료했다.

어차피 서류에 사인했다면 앞으로 자주 만날 테니… 물어볼 기회가 생길거다.

*

"학생회 기말고사 기념회… 와, 진짜 귀찮아 보이네."

쉽게 말하면 기말고사를 기념하는 파티 겸 생도들끼리의 친목 도모였다.

이런 건 즐기는 사람은 재밌어도, 준비하는 사람은 아주 미칠 노릇이다.

고려해야할 게 한 두개가 아니니까.

"… 나 혹시 큰 실수 한 거야?"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내 옷자락을 잡았다.

날 올려다보는 모습이 마치 비 맞은 강아지같았다.

"그런 건 아닌데. 쩝, 아니야. 어차피 했을 거야."

또 저렇게 나오니까 마음이 약해지네.

하긴, 문수린 공략이 너무 지지부진하긴 했으니까.

나를 불렀으면 엘리스도 올 테니 영 나쁘지만은 않다.

레베카가 켄타우로스의 정보를 가져오는 시기와 겹치지 않을까가 문제인데… 그건 그때 생각해봐야지.

며칠 더 미룬다고 큰일이 나진 않을 거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었넹."

릴리아나는 내가 괜찮다고 하자마자 고민 없이 죄책감을 털어버렸다.

그 모습에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니 이제는 나도 적응했다.

"그래그래. 그러고보니 스칼렛은 어딨어?"

이제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한 스칼렛이 보이질 않았다.

"스칼렛, 아니 스카웃… 아니 스칼렛은 집 보러 갔어."

"좀, 하나만 정해라. 나까지 헷갈리잖아."

대체 스칼렛과 스카웃이 무슨 관계인걸까.

스라는 단어 빼고는 같은 게 없는데.

"으음, 스카웃이 좋긴 한데. 아무래도 바깥에 오래 있다보면 스칼렛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릴리아나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고 고민했다.

왜 스칼렛을 스카웃이라고 부르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이사를 빨리 가야하는데."

사실 집을 살 돈은 충분했다.

엘리스에게 마사지로 꽤 많이 받기도 했고, 남다은을 구해주면서 300억이나 벌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아무 집이나 골라잡아도 될 거다.

"너는 가고 싶은 곳 없어?"

남다은 자매와 릴리아나에게 의견을 들으라고 말했지만, 영 불안하다.

"몰라. 나는 방송만 할 수 있으면 돼. 아, 배달시킬 가게가 많은 곳으로 해달라고 스카웃한테 말하긴 했어."

"그 정도면 무난하네."

릴리아나가 이상한 말을 안했다면 걱정없다.

비싼 집도 문제는 없을 거다.

바이어 길드에게 뜯은 300억을 전부 스칼렛한테 맡겼으니까.

어차피 전부 불법 자금이라 세탁이 필요한데, 우리 일행 중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스칼렛 뿐이었다.

'좋은 곳으로 준비하겠지.'

스칼렛이 일을 못 한 적은 없으니까.

"나도 과자 좀 줘봐."

나는 릴리아나가 정리하던 과자에 손을 뻗었다.

"아, 안 먹는다며!"

"아니 많이 안 먹을게. 하나만."

"이 미친 도둑이! 꺄아악!"

집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고, 주섬주섬 과자를 챙기는 릴리아나를 데리고 놀기 시작했다.

*

"이야, 젊은 아가씨가 능력이 좋네요."

빅토리아 아카데미 주변 땅은 가격이 높고 거래가 적다.

어차피 오를 땅이란 걸 알기 때문에 급한 일이 아니면 주인이 팔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급한 일이 생기는 땅 주인이 없을 리가 없다.

딱 한 번.

한 번의 거래면 몇 년 치 수입이 생긴다는 마인드로 부동산을 운영하던 사장은 오늘 귀중한 손님을 모셨다.

"바로 계약하면 언제쯤 입주 가능할까요?"

"일주일이면 입주 가능하지요. 제가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주 큰 건을 잡고 기분이 좋아진 부동산 사장은 차를 내오며 스칼렛을 바라봤다.

"여기가 완전 노른자 땅 인 건 아시죠? 사면 무조건 올라요. 세상이 망해도 여기는 안 떨어질걸요?"

"당연히 알죠."

스칼렛은 사장의 말을 대충 받아주며 서류를 확인했다.

릴리아나의 바람대로 배달시킬 곳이 많으면서, 남다은의 요청대로 아카데미와 가까운 곳.

아카데미 상가 주변에 있는 소위 부자 동네.

스칼렛은 운 좋게 매물이 나온 그 곳과 바로 계약했다.

"가족이 아카데미에 다닌다고 했지? 저기 누구더라, 그 동네에 외국에서 온 유명한 생도가 사는데…."

쓰으읍. 하며 텅빈 이마를 톡톡 치는 사장을 보던 스칼렛이 살짝 웃었다.

"엘리스 생도요?"

스칼렛의 말에 부동산 사장은 그제서야 기억났다는 듯 무릎을 내려쳤다.

"아아, 맞아 맞아. 엘리스 생도도 있어. 그 곳이 아카데미에 다니기에 딱 좋거든."

"네네. 감사해요."

스칼렛은 이호연의 얼굴을 떠올렷다.

'그 바람둥이는 좀 정신을 차려야해.'

대체 여자를 얼마나 늘리려는 거야.

사실 전 직장 상사인 엘리스가 너무 불쌍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들과 몸을 굴리고 다니는 걸 아는데도 가만히 있다니. 스칼렛으로선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이야 같이 사니까 기회가 많지만… 엘리스는 기회도 적었다.

그리고 보기보다 소심한 아가씨라 이대로 가다간 밀릴 게 분명해보였다.

그래서, 전 상사에 대한 예우 겸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스칼렛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과연 이호연이 집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고.

이호연이 마법 박람회에 갔던 화요일 오후.

아카데미 정규 수업이 끝난 엘리스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결국 끝까지 안 왔네.'

엘리스는 이호연의 빈자리를 슬쩍 흘겼다.

왜 저 남자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질까 고민하면서.

현장 학습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임솔 교수와 갔던 마법 박람회에서 테러에 휘말렸다고 한다.

'혹시 이호연이 흑막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뉴스에 나오는 빈도가 점점 늘어간다.

쯧.

이상한 생각을 하던 엘리스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럴 리는 없으니까.

'완벽하게 막았다니까 다치진 않았겠지?'

테러에 대한 뉴스는 단 몇 시간 만에 인터넷은 물론 외신까지 퍼졌다.

사실 테러가 큰 문제긴 하지만, 전 세계에서 마인의 테러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일어난다.

그렇기에 순식간에 외신까지 퍼질만한 이슈는 아니었다. 진짜 이슈가 된 건 막아낸 임솔 교수의 마법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절대 교수님의 수업에서 잘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마법이었다.

그 외에도 임솔 교수를 재평가해야 한다느니 마법 학회의 성명문이니 여러 뉴스가 있었지만 엘리스에게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기에 찾아보진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이호연.

그가 다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드디어 마나 회로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마나 마사지가 다시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이호연의 도움이 있어야한다.

"시간이… 언제가 괜찮더라."

엘리스가 스케줄을 되짚어보던 그때.

"저기, 엘리스 양?"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 기말고사 기념회 때문에 찾아왔어요."

"… 기말고사 기념회? 아, 서기 선배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떠올랐다.

눈앞의 선배는 학생회의 서기였다.

워낙 학생회에 들린 지 오래돼서 살짝 헷갈렸다.

"응응. 이거 계획서인데 한 번 봐줘. 홍보부도 일단은 학생회라서…."

서류를 확인한 엘리스는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학생회 기말고사 기념회 계획!]

딱 봐도 귀찮아 보이는 계획서다.

사람도 많이 모일 것 같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엘리스의 스타일과는 너무 달랐다.

만약 이게 중요한 파티라면 꾹 참고 나가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잠시만, 홍보부라고 했으니까 이호연도 오는 거 아니야?'

예의바르게 거절하려던 엘리스는, 이호연의 존재를 떠올렸다.

이호연은 성격상 이런 친목회를 빠질 남자가 아니다.

"그게 보기보다 복잡해 보여도 사실 1학년은 크게…."

"이호연은 참여하나요?"

엘리스는 서류를 살펴봄과 동시에 서기에게 물었다.

"응? 아, 당연히 호연이도 참여하지. 아무튼 1학년은…."

"그러면 할게요."

이호연이 참여하면 해야지.

엘리스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서류에 사인했다.

"어, 엥?"

"한다고요. 선배님."

그리고 눈을 끔벅이는 서기에게 내밀었다.

서기는 잠깐 놀랐다가도, 이내 일이 끝났다는 생각에 웃으며 서류를 받아 갔다.

"고마워. 엘리스 양은 호연이랑 많이 친한가 보네?"

"… 어, 그런 건 아니에요."

"호연이가 참여한다니까 고민도 없이 사인해주고. 다행이야. 후배끼리 친해서. 선배들의 우애는 박살 났으니 너희라도 잘 해줘." 

"…."

학생회의 망신인 부회장을 디스하며 유유히 사라지는 서기를 보고도 엘리스는 아무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왜 자신은 이호연의 참가 여부로 사인을 한걸까.

다행히 고민은 길지 않았고, 이내 결론을 낼 수 있었다.

"… 마사지 얘기를 해야 하니까."

켄타우로스 얘기도 해야 하고, 할 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음음.

물론 전화나 메시지로 해도 되는 얘기지만, 엘리스는 진실에서 눈을 피했다.

"마사지, 켄타우로스, 사업… 응. 이런 건 직접 얼굴을 봐야 해." 

그저 같은 말을 계속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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