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6화 (246/648)

"큭."

임솔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뒤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 상황이 웃기고, 자신의 꼴이 웃겨서.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웃었다.

"… 교수님?"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 임솔을 보며 이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왜 이러실까.'

솔이 누나라는 말이 그렇게 재밌었나?

이전에도 몇 번이나 했었는데.

하지만 임솔은 이호연의 의문에 답하지 않은 채 그저 끅끅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왜, 왜 그러세요. 교수님?"

결국 이호연이 무서움을 느끼기 직전에야, 임솔은 갑작스러운 웃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하아…."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야 가슴이 시원해졌다.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알았으니까.

'당해버렸어.'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사랑스러운 제자가, 여자를 꼬시는 데 능력이 있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

친구인 백아영 뿐만 아니라 다른 여생도들과도 아주 깊은 친분이 있는 걸 알았으면서.

마법 계산은 한 번도 실수한 적 없는데, 겨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다니.

임솔은 자신의 처지가 진심으로 웃겨서 마지막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 괜찮으시죠?"

이호연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다가 잠잠해진 임솔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혹시 정신계 마법이라도 당한 걸까.

'아니,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애초에 우리 교수님이 그딴 마법에 당할 리도 없고.

흐으음.

이호연은 진심으로 임솔 교수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고민했다.

임솔은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이호연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님 혹시…."

혹시라도 임솔이 세뇌에 당한 건 아닐까 확인해보려던 그때.

"너, 이렇게 아영이도 꼬셨지."

"큽! 콜록, 콜록콜록!"

임솔의 폭탄 발언에 이호연은 사레가 들린 사람처럼 기침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대체.'

아니, 갑자기…?

그냥 놀리는 건가?

이호연은 당황한 눈으로 임솔을 바라봤지만 임솔은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침착하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빠져나올 수 있다.

일단 임솔이 왜 저러는 지 알아야 했다.

★ 히로인 상태창

[임솔]

- [ 호감도 : 88 ]

- [ 성욕 : 55 ]

- [ 식욕 : 40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아영이한테 미안해서 어떡하지.

장난기 넘치게 웃는 표정은 평범한 임솔 교수님이었지만….

급격하게 오른 호감도가 이호연의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영이한테 미안하다는 생각.

백아영이 날 좋아하는 걸 아는데 저렇게 생각한다는 건… 교수님도 나에게 호감이 생겼다는 뜻이다.

'대체 왜?'

설마 솔이 누나 한마디 했다고 반한 거야?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이호연은 대화를 이어갔다.

임솔의 말에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뜬금없이 무슨 말이세요. 교수님."

"솔직히 말해. 몇 다리나 걸치고 있어."

"… 몇 다리라니요. 저한테 여자가 어딨어요."

이호연은 임솔의 말을 들으며 고민에 빠졌다.

팩트가 너무 직설적으로 꽂혔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까지 조사한 거지? 언제부터? 설마 지금까지 모른 척한 건가?'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호연이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거짓말. 너 여자 엄청 많잖아."

"… 다 친구에요."

일단은, 이 상황을 넘어가자.

그리고 그 다음에 천천히….

"그래? 그러면 괜찮겠다."

"네?"

딱-

이호연의 말을 들은 임솔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임솔의 몸에서 푸른색 마력이 하늘로 솟아올랐고, 이호연의 눈도 마력을 따라 자연스럽게 하늘로 향했다.

마치 일부러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키려고 사용하는 마법 같았다.

펑-!

이호연이 하늘을 올려다봄과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작은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

"어, 어?"

무방비하게 서 있던 이호연은 균형을 잃고 한 발을 앞에 내디뎠고.

장난스러움과 결연함이 동시에 담겨있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임솔과 눈이 맞았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인지할 틈도 없이, 넘어지는 이호연의 몸을 자연스럽게 받은 임솔은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

*

"읍, 교, 교수님!"

나는 순식간에 닿고 사라진 임솔의 입술을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봤다.

제대로 부드러움을 느낄 틈도 없이 닿았던 입술. 그리고 남아있는 흐릿한 향기.

임솔에게 가까이 갈 때마다 느껴지는 그녀의 달콤한 체향이었다.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나와 달리, 임솔은 여유롭게 입술을 핥았다.

"왜? 상관없잖아. 다 친구라면서."

"… 교수님. 그, 이런 건 서로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뒤에 상대의 허락을 맡고…."

"방금 나한테 고백한 거 아니었어?"

"…."

할 말이 없다.

고백이나 마찬가지긴 했으니까.

사실 이걸로 호감도만 올릴 생각이었는데, 너무 과하게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임솔의 트라우마를 깬 건 좋은데….

"음…."

그래. 공략에 가까워지는 게 좋긴 하다.

다 좋은데, 이렇게 되면 너무 큰 문제가 생겨버린다.

백아영이나 루시루미 쌍둥이는 그렇다 쳐도, 임솔 교수까지 이렇게 끼어들면 너무 일이 복잡해진다.

정말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임솔 교수는 말을 이었다.

"근데 안 받아줄 거야."

"네?"

이건 뭔 미친 소리야.

나는 마음 한편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럼 뽀뽀는 왜 한 건데?

"내 미래 남편은 예전부터 정해놓은 기준이 있거든. 그걸 넘어야 해."

"기준이 뭔데요?"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임솔을 보며 나는 물었다.

뽀뽀도 하고 펠라도 하는 사이인데 기준을 아직도 못 넘었다고?

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야.

"비밀이지. 알려주면 재미가 없잖아."

"… 그럼 뽀뽀는 왜 한 거에요."

"싫어?"

"그건 아니에요. 당연히 좋죠."

당연히 좋긴 하지.

미녀의 입술은 언제나 환영이다.

물론… 이왕이면 조용한 곳에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거 또 뉴스로 퍼 날라지면 얼마나 복잡해질까.'

사실 이미 수습하기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사제간의 우애라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단순 사고라고 해야할까.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 뭐야, 방금 저기 임솔 교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 이호연 생도도 있었어. 어디 갔지?

"뭐야."

나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새 아주 얇은 마나의 막이 우리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장난친 거에요?"

"응. 우리 제자가 얼마나 진심인지 궁금해서."

황당한 듯 묻는 내 질문에 임솔은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와. 진짜. 너무한다."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여기서 정색하거나 화냈으면 진짜 큰일 났을 거다.

물론 그러진 않았겠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면 진짜 귀찮아졌을 거다.

"쩝. 그래서, 만족하세요?"

임솔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나쁘지 않네. 우리 제자."

나는 입술을 만지면서 머쓱하게 웃었다.

왠지, 저 얼굴을 마주보는 게 창피했기 때문이다.

- 어, 저기 있는데?

- 보안팀이다! 이미 다 끝났는데 뭐 하는 거야!

- 보안팀입니다! 임솔 교수님! 이호연 생도님!

어느새 우리를 감싸던 결계가 풀리고, 보안팀들과 기자들이 다가왔다.

임솔은 조금 전까지 보였던 위축된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당당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 가요. 오늘 오후 수업은 못 듣겠네요."

"후후, 그러게."

귀찮아질 조사들을 생각하며, 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

"… 쩝."

다행히 조사가 길진 않았다.

그렇다고 금방 끝난 것도 아니었다.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엔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으니까.

결국 오후 수업까지 빼준다는 임솔 교수의 허락을 맡고 기숙사로 향했다.

참고로 임솔 교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연구실로 돌아갔다.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 헷갈리긴 하는데… 아마 괜찮겠지.

그 조건인지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응? 호연 후배?"

그때, 기숙사 입구에서 학생회 선배를 마주쳤다.

수린 누나와 함께 일하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 선배.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응응. 그러게. 방금 서류를 가지고 내려오는 길인데 엇갈렸나 보네."

학생회 선배는 웃으며 서류를 흔들었다.

"네?"

"참가 서류 말이야. 아, 편의점 갔다 오는 길이야?"

"…?"

이 사람은 또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정확한 사정을 모르다 보니, 일단 맞춰줬다.

나는 내 직감을 신뢰하는 편인데,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안 된다.' 라는 직감이 왔기 때문이다.

"아… 네. 맞아요."

"그렇구나. 서류에 사인만 하고 내려갔나 보네. 하긴, 너무 일찍 오긴 했지."

"어, 서류요…. 네."

나는 아직도 이 대화의 줄기를 잡지 못했다.

서류는 뭐고 사인은 왜 나오는 걸까.

"아무튼 알았어. 나도 일이 많이 밀려있어서. 아, 택배 왔더라. 확인해봐!"

학생회 선배는 혼자 신나게 떠들다가 자리를 떴다.

"… 이상한 사람이네."

일이 얼마나 바쁘면 저렇게 되는 걸까. 쯧쯧.

그건 그렇고.

[서류]

[사인]

너무나도 불안한 단어들의 나열이다.

괜히 두려워진 나는 재빨리 내 방으로 향했고, 거기서 보고 말았다.

끼익-

조심스럽게 문에서 나오는 고운 손이 문 앞의 택배를 가져가는 것을.

"…."

쿵-

완전히 문이 닫힌 뒤에, 나는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생도가 없는 시간이라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얘기했는데.

"하아. 그깟 택배 좀 늦게 받으면 뭐 어때서."

이 시간에 기숙사에 있는 건 릴리아나 뿐이다.

띠링-

나는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 흠흠흠. 애들 오기 전에 숨겨놔야지.

그리고 릴리아나의 콧소리가 들리는 거실로 향했다.

릴리아나는 방송용 옷을 입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택배를 까고 있었다.

"이 미친 서큐버스가… 내가 나 없으면 택배 받으러 나오지 말랬지."

"응? 헉. 뭐, 뭐야! 아직 수업 끝나려면 멀었잖아."

릴리아나는 택배에서 나온 것들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나를 올려다봤다.

등 뒤에는 초콜릿, 과자, 젤리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 안 뺏어 먹어. 릴리아나 나 없을때는 조심해. 너 그러다 잡혀가서 해부당한다?"

"그렇지만! 너 있을 때 까면 남다희가 다 뺏어가잖아…. 남다은은 자기 동생 주려고 하고, 남다희는 자기가 먹으려고 한다고!"

"돈도 많이 줬는데 두 배로 시키면 되잖아."

"많이 시켰다가 걸리면 남다은한테 혼나…."

젤리 하나를 들고 시무룩해하는 릴리아나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오는 법이니까.

"아니, 하아… 됐다 됐어."

왜 저런 거로 싸우는 건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조사를 받다와서 피곤했으니까.

나는 소파에 앉으려다가, 릴리아나가 까던 택배 상자 옆에 놓여있는 서류를 발견했다.

거기엔 내 필체와 똑같은 사인이 되어 있었다.

"… 이건 뭐야?"

"몰라. 택배 사인인 줄 알았는데 학생회라고 적혀있었어."

"내 사인은 왜 적혀있냐? 난 기억이 없는데."

"… 택배 사인인 줄 알고 해버렸어."

릴리아나는 반성하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쉽게 말해도 되는 거야?"

언제 내 사인을 연습한거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택배를 몰래 받은 걸까.

'용케 걸리지 않은 게 다행이네.'

나는 진심으로 안도하며 눈을 내려서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에는 [학생회 기말고사 기념회 계획!]이라고 적혀있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