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람회장에 있는, 아니 있었던 마인들은 모두 재가 되었다.
말 그대로 빛에 삼켜져 흔적도 남지 않았다.
마법사든, 구경꾼들이든, 일반인들이든 모두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구경했다.
애인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있었고.
신기한 광경을 보며 눈치 없이 환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죽이기 직전이던 마인이 빛에 삼켜지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뜬 사람도 있었다.
입을 떡 벌린 채 오뚝이처럼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도 있었고.
마법사 중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임솔이 해낸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수준높은 마법사들이다.
나도 당연히 그 중 한 명이었다.
- 저게 천재 마법사인 임솔….
- 경이로운 마법… 크흑. 삶에서 이런 걸 볼 수 있을 줄이야.
몇몇 마법사들은 임솔을 바라보며 감상평을 내뱉었고.
- 사, 사진. 사진 찍어! 빨리!
마법 박람회를 취재하러 왔던 기자들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마 내일, 아니 당장 몇 시간 뒤부터 헤드라인에 임솔의 사진이 올라오겠지.
[천재 마법사 임솔! 박람회의 테러를 단독으로 막아내다!]
같은 싸구려 타이틀로 말이다.
임솔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마력을 갈무리한 채 하늘에서 내려왔다.
마인을 찾아내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하늘로 올라가서 직접 관측하는 거였으니, 이제 내려올 차례다.
하늘에서 내려와, 톡톡 먼지를 털어낸 임솔은 날 바라보며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다 봤어?"
"… 네."
"... 혹시 다 들었어?"
"어… 네."
난 꿀꺽 침을 삼켰다.
뭐랄까.
교수님과 거리가 생긴 느낌?
전처럼 쉽게 대할 수 없는 느낌이다.
진짜 강자라는 걸 알았으니까.
틈날 때마다 내 자지를 빨아주던 그 허당 교수님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세계에서 최고라고 꼽히는 진짜 마법사 임솔이었다.
"… 교수님."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저렇게까지 화를 낸 게 날 위한 행동이란 거였다.
★ 히로인 상태창
[임솔]
- [ 호감도 : 75 ]
- [ 성욕 : 5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50 ]
현재 상태 : 오랜만에 제자랑 좋은 기분이었는데. 다 망했어.
"음, 멋있었어요. 진짜로."
날 위해주는 마음은 정말정말 고마웠다.
물론 약간 무서웠다.
누구든지 그렇게 악에 받친 채 욕을 하는 모습을 보면 겁이 나고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이게 내 문제는 아니었다.
최대한 숨긴다고 숨겼는데, 내 감정을 임솔은 살짝 읽어낸 것 같았다.
"혹시 내가 부담스러워?"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저런 말을 해왔으니까.
"아니요아니요. 그냥 당황했을 뿐이에요."
나는 재빨리 항변했다.
임솔이 오해하게 만들 순 없으니까.
하지만 내 의도와 상관없이 임솔은 말을 이었다.
"괜찮아. 괴물이라고 해도 돼. 익숙하니까."
"교수님.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교수님이 어떻게 괴물이에요."
살짝 무서웠을 뿐이지, 괴물이라던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아니 하긴 했지.'
변명하자면 절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긍정적인 의미였다.
"그래도 너한테만은 안 보여주고 싶었어."
"… 교수님?"
임솔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벽을 치고 있거든. 내 자존심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벽. 그 벽이 사라지면 이렇게 돼. 방금 니가 본 게 내 본 모습이야."
나는 조용히 임솔의 말을 들었다.
"나도 알아. 추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증거라는 거. 겨우 고개 숙이는 것도 못 하는. 할 줄 아는 거라곤 마법밖에 없는 괴물. 그 평가가 틀리지 않아."
"…."
"그래서 너 한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 하아, 교수님."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떻게 이 사람을 설득해야 할까.
임솔 교수에게 트라우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지금까지 영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꽤 있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임솔 교수가 어떤 생각을 하든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본모습? 뭐 어때.
예쁘기만 하던데.
무슨 짓을 하든 임솔이라는 사람이 변하진 않는다.
남들이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을 임솔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야했다.
"교수님.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적어도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그럼 뭐라고 생각해?"
내 진심을 다해서 한 말에 임솔은 내 눈을 마주쳤다.
"네?"
"나를. 뭐라고 생각하냐고. 사회 부적응자에다가 괴물인 마법사 임솔을… 너는 뭐라고 생각해?"
"교수님은 교수님이죠."
"… 응. 고마워."
임솔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게 아닌데.
임솔은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런 걸로 넘어갈 수 없었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안된다고 확신한 나는 재빨리 다음 말을 이었다.
"… 교수님은 제게 임솔이라는 사람일 뿐이에요."
임솔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
수치심, 무력감, 자괴감, 창피함, 자책감 등 여러 마음이 담겨있는 그 눈에, 아직 한 줄기 기대감이 남아있는 걸 보며 나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참아왔던 말을 쏟아냈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면서 어른인 척하는 사람."
"…?"
임솔은 갑작스러운 내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모든 걸 뱉어야 했으니까.
"그러면서 아이처럼 단 거는 좋아해.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줄 알고 다른 마법사들은 다 무시하는데다가 중요한 일까지 생도한테 맡겨버리는 이상한 교수."
"지금 뭐라는…."
임솔이 화를 내기 직전. 나는 준비한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귀여워요."
"… ㅁ, 뭐?"
동시에 임솔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불쾌감이 가득 차 있던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초콜릿을 먹고 활짝 웃는 모습, 마법 연구를 끝내고 기뻐하는 모습, 다른 사람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매일같이 징징대면서도 정작 마법 수업을 할 때는 누구보다 진심인 모습. 전부 귀여워요."
"뭐라는 거야. 너, 너 진짜…!"
임솔은 당혹스러운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마법사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서 그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 괴물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누군가 보듬어주길 바라는 약한 사람. 저는 그런 임솔 교수님이 좋아요."
"그, 그만해. 제발…."
임솔은 누가 듣지는 않을까 주변을 살피며 내 입을 막으려고 손을 들이밀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큭, 크흡… 크큭."
처음 보는 임솔 교수의 흐트러진 모습에 나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너, 너. 진짜 혼날래? 장난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거고. 이건 장난이 아니라 불쾌할 뿐이고, 그… 으…."
"교수님,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임솔의 얼굴은 점점 빨개졌고, 나는 내 입을 막으려고 움직이는 임솔의 손을 꽉 쥐었다.
차가운 손은 임솔의 외로운 감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당황이 가득 찬 임솔과 눈을 마주쳤다. 얼굴에 가득찬 수치심과 글썽거리는 눈물을 보니 꽤 창피한 모양이다.
웃음을 참으며, 나는 말을 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저는 교수님이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해도 신경안써요. 그것도 임솔이니까."
평생 마법밖에 모르던 사회부적응자 임솔.
그동안 쌓아온 트라우마를 내가 부술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만들어온 우리의 거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눴던 교감을 믿었다.
그리고 다행히 내 수는 통한 것 같았다.
임솔의 처참하던 표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감정.
겨우 마법 박람회를 이렇게 즐긴 적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그 원인이 궁금할 정도였다.
물론, 원인은 알고 있었다.
예전에 왔던 박람회와 달라진 건 하나밖에 없었다.
제자인 이호연의 존재.
그래서일까, 임솔은 슬슬 다가오는 약속 시각이 두려워졌다.
제자와의 약속은 [오전동안 박람회를 보러 다니기] 였기 때문이다.
'제자도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 조금 더 시간을 늘려도 되지 않을까?'
정말 오랜만에 임솔은 살짝 숙이고 들어가기로 했다.
제자에게 숙이는 건 진짜 숙이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교육자로서 보여야 할 관용의 자세 중 하나일 뿐이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 그러면 말이야."
"네?"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끔벅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호연을 보며, 임솔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괜히 머쓱해진 임솔은 눈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살짝 뜨거워진 볼을 애써 무시한 채,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떼쓰기를 시도했다.
"어차피 오늘은… 체험학습이라고 해놨으니까. 억지는 아니고 네가 괜찮다면. 응. 할 일이 없다면 말이야…. 그 오후에도…."
나름대로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오후에 해야 할 마법 연구도 미룰 만큼, 임솔에게도 포기하는 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임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쾅! 콰과광! 쿵-!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박람회장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폭발의 연기.
- 도망쳐! 마인이야!
- 습격! 테러다! 방어팀 어딨어!
자신의 말에 집중하던 이호연도 주변에 정신이 팔렸다.
"테, 테러야. 교수님!"
정말 한 순간에 혼란스러워진 박람회장.
방금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꿈만 같았다.
그 광경을 보던 임솔의 안에서, 뚝- 하며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녀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짜증났다.
제자와 같이 보내는 시간을 방해받은 것도, 겨우 저런 버러지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설치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짜증나."
임솔이 이성을 되찾은 건, 모든 상황을 끝내고 나서였다.
자신의 기분을 망가뜨린 원인을 모두 제거했으니, 제자에게 다시 말할 생각이었다.
오후에도 같이 있어 달라고.
하지만 그건 임솔만의 생각이었다.
이런 일을 겪고도 방금 하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임솔 밖에 없었다.
땅에서 임솔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제자인 이호연도 마찬가지였다.
임솔은 살짝 눈을 감은 채 땅을 밟았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을 걸었다.
"다 봤어?"
"… 네."
"… 혹시 다 들었어?"
자신이 이성을 잃고 한 말들.
방금 일은 살짝 흐릿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수준낮은 욕설이 꽤 섞여 있었을 거다.
"어… 네."
임솔은 이호연의 말에서 조금이지만 거리감을 느꼈다.
자신의 전력을 본 사람들은 보통 저런 반응이었다.
"교수님. 음, 멋있었어요. 진짜로."
임솔은 이호연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느끼고 있었다.
제자인 이호연.
그는 연기 실력이 엄청나다.
대화하다 보면 느낄 수 있다.
이호연은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많았는데도 거의 티 내지 않았다. 정말 나이에 맞지 않는 연기실력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과 편하게 대화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거부감이 없었다.
이 모든 게 연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임솔이 너무 비참해지니까.
하지만 일부는 있었을거다.
싫어도 자신에게 맞춰준 적이, 분명 있었을거다.
방금도 그랬다.
자신이 마법을 사용한 후의 표정을 임솔은 확실히 확인했다.
이 세계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생물체를 보는 표정.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걸 보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임솔은 그런 거부감을 항상 받아왔다.
'결국 나랑 엮이는 이유는 몸, 아니면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성격이겠지.'
연기를 잘하는 우리 제자는 착해빠졌으니까.
"혹시 내가 부담스러워?"
"아니요아니요. 그냥 당황했을 뿐이에요."
임솔은 살짝… 울적해졌다.
이런 감정은 진작 다 털어낸 줄 알았는데.
아니, 분명 그랬었는데.
왜 이호연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서운해지는 걸까.
임솔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괜히 투정을 부렸다.
"괜찮아. 괴물이라고 해도 돼. 익숙하니까."
"교수님.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교수님이 어떻게 괴물이에요."
하아.
그래도 제자는 끝까지 착하게 대해줬다.
정말 고마워서 기대고 싶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참아냈다.
자신의 본모습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모든 사람이 싫어했다.
그런데 하필.
유일하게 마음이 맞다고 생각한 제자가 자신의 본모습까지 좋아해준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편의주의적 사고였다.
"그래도 너한테만은 안 보여주고 싶었어."
"… 교수님?"
임솔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는 벽을 치고 있거든. 내 자존심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벽. 그 벽이 사라지면 이렇게 돼. 방금 네가 본 게 내 본 모습이야."
이래도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나도 알아. 추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증거라는 거. 겨우 고개 숙이는 것도 못 하는. 할 줄 아는 거라곤 마법밖에 없는 괴물. 그 평가가 틀리지 않아."
이래도 나를 좋아해줄까.
"…."
"그래서 너한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28년간 한 번도 남에게 얘기한 적 없는 자신의 트라우마.
그걸 오늘 이호연에게 고백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되었는지, 임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말할 기회가 지금 밖에 없어서.
혹은.
정말 괜찮지 않을까.
한 명 정도는 날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담아서.
"… 하아, 교수님."
임솔은 입을 다물고 이호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기대하지 않기로 했는데.
분명 남에게 기대지 않기로 했는데.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원망했다.
"교수님.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적어도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그럼 뭐라고 생각해?"
"네?"
"나를 뭐라고 생각하냐고. 사회 부적응자에다가 괴물인 마법사 임솔을… 너는 뭐라고 생각해?"
말을 뱉은 임솔은 곧바로 후회했다.
멍청한 짓이었다.
너무 다급했다.
제자 입장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재밌게 마법 박람회를 즐기다가 테러가 일어났는데, 웬 미친년 하나가 테러를 혼자 막아내더니 발작을 일으키는거다.
할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예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됐는데.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게 제일 좋았을 텐데.
임솔은 이호연을 바라봤다. 우물쭈물하던 이호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다.
"교수님은 교수님이죠."
"… 응. 고마워."
옅은 미소를 지은 임솔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 끝이구나.
이호연에게선 흔해빠진 대답이 돌아왔다.
대답을 들은 임솔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칭찬을 원하는 사람에게 너 착하잖아. 라고 말하는 건 오히려 모욕감을 준다.
답답하겠지.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자신이.
그만큼 칭찬할 구석이 없다는 거니까.
이런 찌질한 사람을 계속 교수라고 따라다닐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결국 제자도 똑같았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자도 '정상'이었던 거다.
'비정상'인 자신과 다르기 때문에, 그는 '정상'이다.
임솔은 차라리 이호연이 빨리 떠나가줬으면 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배려하는 제자가 너무 미우면서 고마웠다.
"… 교수님은 결국 제게 임솔이라는 사람이에요."
임솔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호연의 눈은 긴장감이나 경계가 없이, 모든 걸 내려놓은 것 같았다.
거의 사라져버린 기대감을 안고, 임솔은 제자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면서 어른인 척하는 사람."
"…?"
임솔은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이상한 말을 내뱉는 제자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이처럼 단 거는 좋아해.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줄 알고 다른 마법사들은 다 무시하는 데다가 중요한 일까지 생도한테 맡겨버리는 이상한 교수."
"지금 뭐라는…."
임솔에게 불쾌감이 몰려왔다.
자신을 저렇게 생각해왔으면서 친한 척하던 제자가 너무 미워졌다.
모두 연기였던 걸까?
정말 자신만 편했던 관계였던 걸까?
화를 내려던 임솔은,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귀여워요."
"… ㅁ, 뭐?"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불쾌감이 사라진 얼굴에는 당황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초콜릿을 먹고 활짝 웃는 모습, 마법 연구를 끝내고 기뻐하는 모습, 다른 사람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서도 정작 마법 수업을 할 때는 누구보다 진심인 모습. 전부 귀여워요."
"뭐라는 거야. 너, 너 진짜…!"
임솔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대는 제자가 너무 익숙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마법사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서 그에 부담감도 느끼는 사람. 괴물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누군가 보듬어주길 바라는 약한 사람. 저는 그런 임솔 교수님이 좋아요."
"그, 그만해. 제발…."
혹시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
손으로 제자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큭, 크흡… 크큭."
저래놓고 혼자서 웃음을 터트리는 이호연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임솔은 화를 내려 했다.
"너, 너. 진짜 혼날래? 장난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거고. 이건 장난이 아니라 불쾌할 뿐이고, 그… 으…."
하지만 이상하게 화도 나지 않았다.
이 순간 느껴지는 건 부끄러움, 뜨거워진 얼굴, 그리고 뛰는 가슴.
심지어 이호연은 임솔의 어버버 거리는 손을 꽉 붙잡았다.
"교수님,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빙글빙글.
세상이 도는 것 같았다.
이호연이 잡은 손이 너무 뜨거워서 데일 것 같았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저는 교수님이 이상한 짓을 해도 신경 안 써요. 그것도 임솔이니까."
"나, 나는…."
두근. 두근.
입안에서 돌고 도는 단어들이 제대로 붙질 않았다.
숨이 막히는 것 같고, 가슴이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분명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말하고 싶은데.
가슴이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입술을 옴싹달싹 하는 임솔을 보며 이호연은 살짝 웃었다.
"언제나 최고일 필요 없어요.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한다고, 이를 갈면서 마법을 연구해서 괴물이 뭔지 보여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어요. 가끔은 놀러 다니기도 하고 휴식도 취해야죠. 사회 부적응자면 어때요. 저보다 부족한 사람밖에 없는 집단이라면 저라도 버릴 거에요."
머쓱한 듯 웃는 이호연의 말을 들은 임솔은 생각했다.
제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가 당해온 일을.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인간 이호연은 아무것도 모른다.
힘들게 살아온 사람의 삶을, 편하게 살아온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응원할 수 있는거고, 언젠가 잘 될테니 힘내라고 말할 수 있는거다.
지금까지 부서진 그 사람의 감정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임솔은 그런 사람들을 혐오했다.
그런데… 이호연은 탓하고 싶지가 않았다.
임솔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입을 열었다.
"나, 나한테는 마법뿐이야… 난 평생 그것밖에 몰랐어."
이호연은 임솔의 대답을 듣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생각대로 흘러갔다.
평생 마법밖에 몰랐던 여자를 설득하는 건 어려웠지만, 우리는 그만큼 감정을 많이 나눴으니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임솔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건 쌓여있는 호감도가 증명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설득할 수 있겠지.
"제가 있잖아요."
"…."
"도와드릴게요.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도록."
이호연의 말을 들은 임솔은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고민하듯 허공을 바라봤다가, 다시 이호연을 바라보고, 다시 허공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이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임솔은 몸의 떨림을 참기 위해 최대한 노력 중이었다.
두근. 두근.
'뭐, 뭐야. 나 왜 이래.'
가슴의 두근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저 말에 대답해야 하는데,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임솔은 예전에 백아영과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아영아. 어떤 사람과 같이 있을 때마다 두근대고 그 사람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리는 건, 사랑이야.'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두근거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린다는 백아영을 놀리며 대답했던 말이다.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다.
이호연을 바라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호연의 말에 대답할 생각을 하면 너무 긴장된다.
절대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듯 뇌가 꽉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만,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잖아. 정말로.'
임솔은 최후의 마지노선을 지키고 싶었다.
자신은 교수고, 이호연은 생도였다.
백아영은 양호 선생님이라고 우길 수 있지만, 임솔은 정말 교수였다.
몇 년이나 교직에 몸을 담고 있었고, 교내 평가는 항상 만점인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는 교수였다.
임솔도 이호연과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거리를 두기 위해 '제자야.'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으로 부르는 건 정신적으로 너무 가까워지는 것 같았기에.
임솔이 정한 상한선이었다.
더이상 가까워지면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어버릴테니까.
결국 머릿속에서 자신과 싸움을 이어가던 임솔이 결국 내뱉은 말은 굉장히 멍청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나, 나는 교수고. 너는 생도야."
'망했어.'
임솔은 눈을 질끈 감았다.
대화의 흐름과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해버렸다.
얼마나 나를 멍청하게 볼까.
한 편 그런 임솔을 보던 이호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어넘겼다.
이 사람은 또 이러네.
교수가 뭐라고.
교수라고 힘들지 말라는 법 없고, 생도라고 다 교수의 아래라는 법도 없다.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면서 말이야.'
누가 보기엔 진짜 나이 많은 사람인 줄 알겠어.
이호연은 임솔의 이상한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어쨌든, 다신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알겠죠. 교수님? 아니, 솔이 누나."
항상 하던 것 처럼.
서로를 놀리거나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쓰던 솔이 누나라는 장난기 넘치는 애칭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임솔은 눈을 크게 떴고.
펑-
그녀의 안에 있던 무언가가 터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