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2화 (242/648)

*

"역시 능력 있는 여자가 최고야."

임솔도 그렇고 레베카도 그렇고 능력 있는 여자가 최고다.

결국 내 부탁을 들은 레베카는 다시 판데믹에 돌아가 정보를 수집해주기로 했다.

레베카도 처음 세뇌만 도와주고 그 뒤로 관심을 안 줘서 따로 조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긴 룬의 일족을 찾기도 바쁜데 굳이 사도를 신경 쓰진 않았겠지.

'... 일이 끝나면 임신시켜줘야겠네.'

물론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고마운거니까.

자세한 사정도 묻지 않고 날 도와주는 건 나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거겠지.

만난 지 얼마 안 됐어도 좋은 사람은 알아볼 수 있다.

내 씨를 이렇게 쉽게 뿌려도 될까 하는 게 고민이지만, 잘 키우면 되지 않을까? 레베카가 아동학대를 할 것 같진 않다.

살다 살다 이런 고민을 할 날이 오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오래 살진 않았구나.' 

열심히 살고 볼 일이다.

띠링-

기숙사 방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 스카웃-! 가만히 있어!

- 언니언니. 이거 예쁘다.

현관에서부터 들리는 릴리아나와 남다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거실로 걸어갔다.

"얍. 얍."

"언니언니. 힘내!"

"멋있으십니다."

거실에는 릴리아나와 남다희가 하는 이상한 놀이를 받아주고 있는 스칼렛.

부엌에는 커피를 타고 있는 남다은이 보였다.

"호연이 왔구나. 커피 마실래?"

남다은은 나를 보고 커피 잔을 꺼냈고.

"응. 단 거로."

"오오, 너도 와서 스칼렛 복근 구경할래?"

릴리아나는 엄청나게 탐나는 제안을 해왔다.

"... 아니. 괜찮아."

솔직히 엄청 하고 싶다.

스칼렛의 복근 구경이라니.

현장에서 땀나게 뛰며 천장에 붙어다니던 스칼렛이니까 몸도 좋겠지.

하지만 나까지 스칼렛을 괴롭힐 순 없다.

그냥 식탁에 앉아 남다은이 주는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 믹스커피네?"

익숙한 향과 맛.

임솔이 수 없이 타준 커피의 맛이다.

"응. 그게 싸면서 맛있어."

홀짝.

남다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커피의 향을 맡았다.

"비싸도 괜찮으니까 좋은 거로 사 먹지. 릴리아나한테 카드 있어."

"안 돼. 같이 먹는 밥도 아니고 이런 건 내 품위 유지비로 사야지. 그리고 성분도 다 보고 산 거야. 비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거든."

똑 부러지게 말하며 커피를 마시는 남다은을 보니 나중에 살림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맞다. 물어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혹시 아카데미에서 점심은 어떻게 먹어?"

"점심?"

"응. 밥은 잘 먹고 다니나 해서."

남다은은 허공을 보며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원래는 다희한테 찾아가서 같이 먹었는데... 이번에 다희가 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 그래?"

"응. 식당에서 혼자 먹고 있어."

아, 역시나.

다희랑 먹는다길래 살짝 안심했는데, 요즘은 다희가 또래 친구들하고 먹는 모양이다.

다희가 친구가 생긴 건 참 다행인데, 남다은을 커버할 수가 없네.

"… 같이 먹을까? 루시랑 루미도 있긴한데."

루시 루미 쌍둥이한테 물어봐야 될 일이긴 하지만... 남다은이 혼자 먹는다고 하니 영 가슴이 불편하다.

내 말에 슬쩍 미소를 지은 남다은이 커피잔을 잡은 내 손위로 손을 올렸다.

"다른 남자하고 안 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진짜로. 나는 그냥...."

"괜찮아. 나는 집에서 같이 먹잖아. 루시랑 루미한테도 시간을 줘야지."

싱긋싱긋.

남다은은 여유롭게 웃으며 내 손을 꾹 눌렀다.

"... 고마워."

결국 바람피우는 걸 용서받는 남편같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혼자 밥 먹는 게 아무리 익숙해도 내가 다른 여자들하고 밥 먹는 걸 보는 게 기분이 좋진 않을거니까.

사실 같이 먹자고 해도 문제다.

루시와 루미에게 얘기하기도 좀 그런 주제였다.

허락은 해주겠지만 서로 기분이 좋지 않을 거다.

"겨우 이 정도로 뭐."

근데 저 웃음은 뭘까.

어차피 자신이 앞서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저 여유로운 얼굴.

쩝.

오늘 루시루미와 3P를 한 걸 모르니까 저런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그냥 조용히 해야겠다.

"호연님."

"아이씨. 깜짝이야."

그때 스칼렛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남다은과 대화에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나는 흠칫 놀랐고, 스칼렛은 눈을 크게 뜨고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 호연 님은 여자에게 미안해할 때 주의가 약해지는군요. 하나 배웠습니다."

"이상한 소리 하지마 제발 좀."

스칼렛의 몸 너머를 보니 어느새 릴리아나와 남다희는 TV에 집중하고 있었다.

남다희는 그렇다 치고 릴리아나는 왜 유아 퇴행 해버린 걸까.

서큐버스는 원래 저렇게 멍청, 아니 순수한 걸까?

"복근 자랑은 끝났어?"

"... 길드장님에게 연락이 와서요. 켄타우로스에 대한 건입니다."

당한 만큼 스칼렛도 놀려주려고 했는데, 스칼렛은 바로 본론을 꺼내버렸다.

하필 너무 중요한 거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 뭐라고 하셔?"

엘리스의 아버지이자 장인어른.

사람은 많이 이상하지만 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다.

"사실 켄타우로스 수색은 언제나 진행 중이라... 호연님이 편한 시간을 말하면 맞춰줄 수 있다고 합니다."

"으흠...."

일단 레베카가 정보를 가져오면 하고 싶은데.

"아무 때나 상관없어? 좀 시간이 필요해."

"상관없습니다. 그럼 길드 장님께 '생각해보고 말하겠다.'라고 전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너무 싸가지없잖아."

"그럼 정확히 전할 말을 알려주세요."

"... 너 일부러 이러는구나. 복근으로 놀려서."

"그럴 리가요. 절 그렇게 찌질한 사람으로 보시는 겁니까?"

★ 히로인 상태창

[스칼렛] 

- [ 호감도 : 57 ]

- [ 성욕 : 3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저렇게 눈치가 빠른데 여자들한테는 왜 그러는 걸까. 일부러 그러는 건가? 

스칼렛은 마음으로 내게 비수를 찔러왔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할 수도 없다.

애초에 마음을 읽는것도 비밀이고.

"... 크흠. 알았어. 미안해. 나도 개인적으로 조사하는 게 있어서 그래. 그거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려달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내가 사과를 하자 그제야 스칼렛도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는 스칼렛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건 착각이 아닐거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교직원 회의를 열었다.

초청 교수지만 직책은 교직원이었으니, 임솔도 강제로 참여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 이사장님이…."

물론 임솔 기준에서는 시간낭비였다. 말이 교직원 회의지 친목회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회의 시간은 30분 정도.

대부분 시간은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시간이다.

"아하하, 학년 부장님 진짜 재밌으시다."

"박 교수도 유머 감각이 장난이 아닌데? 허허허."

하하하.

회의실 내부로 울려퍼지는 웃음소리.

저런 분위기를 맞춰주는 교수가 있는가 하면 강효린 박사처럼 대놓고 딴짓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생각을 하진 못했다.

결국은 저 사람들이 자신들의 월급을 주고 있었으니까.

"하아…."

임솔은 그 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들 교수나 박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겨우 몇 년 앞서서 교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선배라며 비위를 맞추고 있는 꼴.

이런 문화를 임솔은 혐오했다.

그리고 사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자신은 이사장과 총장이 직접 초빙한 초청 교수였으니까.

오늘은 체험학습에 대해 건의할 것도 있어서 웬만하면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이래선 도저히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학년 부장님."

결국 임솔은 하하 호호 웃고 있는 저들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오, 예예. 임솔 교수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지요?"

"내일 체험 학습 건으로 제출한 자료를 빨리 검토해주셨으면 해서요."

"아… 급하신가 보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학년 부장은 갑작스러운 임솔의 말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뒤적뒤적-

쌓여있는 자료 중 임솔의 서류를 찾아낸 학년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아주 좋아요. 이호연 생도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자랑이죠. 임솔 교수님이 직접 지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허락해주시는 거로 알겠습니다."

"음. 당연하죠."

후우.

이 말을 들으려고 두 시간이나 앉아있던 건가.

"그럼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마법 박람회 방문 때문에 준비할 거리가 많아서요."

임솔은 회의를 주도하던 학년 부장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음음. 그래요. 편히 쉬세요. 임솔 교수님."

허허하며 웃고 있던 학년 부장은 눈을 크게 뜨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꾸벅.

학년 부장은 남의 띄워주기를 눈치 없이 받을 뿐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에 임솔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다.

고개를 숙인 임솔은 다른 교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임솔이 나간 뒤 잠시 소강상태가 된 회의실은, 곧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웬일이래요? 마법 박람회를 간다니? 평소라면 자기보다 수준 낮은 마법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주변에 관심도 없던 교수가?"

"사회성이라곤 일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가 교수라고… 쯧쯧."

"제 말이 그겁니다. 마법사라는 이름을 달고 싶으면, 선배한테 예의도 있어야 하고…."

대화의 주체는 대부분 마법 교수들.

임솔이 마도관의 2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것에 대해 마법 교수들은 아직도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들 기준에서 예의가 없는 임솔의 행동도 꼴 보기 싫어했다.

실상은 젊은 여자에게 실력으로 밀리고 있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은 찌질한 열등감이지만, 대부분은 그 열등감에서 눈을 피하고 임솔을 공격했다.

"…."

그리고 문밖에서 소리를 듣고 있던 임솔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녀도 처음부터 이렇게 대화를 단절한 게 아니다.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냥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일 뿐이다.

자신이 마법을 잘하는 재능을 타고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난 것 같았다.

마법사들의 사회는 굉장히 좁다.

임솔도 처음에는 마법사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임솔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순간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의 대부분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재수 없다느니, 세상의 중심이 자신인 줄 안다느니.

임솔이 말 한 적도 없는. 아니, 생각해본 적도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결국, 임솔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소통을 포기했다.

백아영과 민예지, 이호연 같은 특이한 사람들만 남기고,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수없이 많은 시도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처세법이었다.

남들에게 관심이 없던 게 아니다.

그들이 임솔을 배제했을 뿐.

물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하다.

임솔이 모든 걸 포기하는 것이다.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선배에게 고개숙이며 연장자를 대우하고 원로에게 존경심을 보이면 된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마법에 매달리는 걸 보고 '당신은 재능이 없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좋아요.'라고 말하면 안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진심을 감추고 거짓된 가면을 쓰면 된다.

하지만 임솔은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다.

임솔이 처음부터 마법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그들로부터 배제 받은 임솔이 그들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건 마법이었고, 다행히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도 마법이었다.

결국 임솔에게 남은 건 마법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법을 사랑했다.

"하아."

임솔은 오늘도 한숨을 쉬며 연구실로 향했다.

아직 끝마치지 못한 마법 연구가 남았기에.

*

"다녀오겠습니다!"

"다희야. 소리 지르면 안 돼."

화요일 아침.

현관에는 남다은과 남다희가 신발을 신고 있었다.

"고마워. 스칼렛."

"괜찮습니다. 제가 할 일인데요."

남자 기숙사에서 남다은 자매가 나가려면 필수적으로 스칼렛의 도움이 필요하다.

스칼렛이 없을 때는 내가 같이 나갔지만, 오늘은 일이 있다.

임솔과 마법 박람회를 가야 하니까.

"스칼렛. 빨리 돌아와야 해. 나 심심하거든."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집 잘 지키고 있어. 릴리아나."

나는 릴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지켰는데."

"답답하진 않고?"

"응. 괜찮아. 스칼렛도 있으니까."

"스칼렛이랑 같이 돌아다니는 건 괜찮으니까 답답하면 나가도 돼."

릴리아나는 남다은 자매와 다르게 돌아다니질 않는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까 걱정이 될 정도다.

"으음… 그닥? 밖은 별로야."

"알았어. 원하는 거 있으면 뭐든 사 먹고."

"카드는 내 거니까 가져갈 생각 하지마."

그래도 기숙사에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다.

릴리아나가 심심하거나 우울해 보이진 않으니까.

"다은이랑 다희도 잘 갔다와."

"응. 오빠!"

"이따 오후에 아카데미로 안 와?"

남다은은 인사하는 나를 보며 물었다.

"올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대충 인사를 끝내고, 츄리닝을 입은 릴리아나에게 손을 흔들며 먼저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바로 임솔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합법적으로 수업을 안 듣는 건 처음이네.'

어제 오후 수업 때 루시와 루미에게 말해놨으니 내가 없어도 걱정하진 않을 거다. 

'엘리스는… 걱정 안 하겠지?'

나는 등교하는 생도들을 구경하며 마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도관 앞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찰랑거리는 은발.

그리고 익숙한 하늘색 로브.

자주 본 옷차림으로 뒷짐을 선 채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뒤를 돌아본 그녀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 제자 왔어?"

당연히, 임솔 교수님이었다.

*

마법 박람회.

이름만 들었을 때는 괜히 따분해 보이고, 골방에서 연구만 한 마법사들이 나올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일정 주기마다 개최되는 행사로, 새로운 마법진이나 연구 거리를 찾는 마법사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질 좋은 행사였다.

물론 그만큼 일반인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마법 박람회니까.

나와 임솔은 그런 곳에 도착했다.

사람이 북적북적하는 곳에서 나는 임솔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또 그 옷이에요?"

"또라니. 거의 매일 갈아입고 있어."

"… 거의?"

임솔은 연구실에서 항상 입고 있던 스타일 그대로였다. 오버사이즈 핑크 무지티에 검은색 레깅스라는 극도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패션이다.

거기에 하늘색 로브만 하나 달랑 걸치고 집 앞 편의점에 가듯 마법 박람회에 왔다.

물론 생도복을 입은 내가 패션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나는 오후에 수업을 받아야 하니까 무죄다.

"응. 연구가 바쁘지 않으면 거의 매일."

"…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옷을 매일 갈아입든 안 갈아입든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다. 

예쁜 게 중요하지.

"어디부터 갈까요? 마법 도구가 좋으세요? 아니면 마법진?"

"제자 좋은 곳으로 가자. 나는 별 상관없어."

"네네. 그럼 마법 도구로 갑시다."

임솔의 표정은 애매했다.

기분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 중간 어딘가 같았다.

★ 히로인 상태창

[임솔]

- [ 호감도 : 70 ]

- [ 성욕 : 50 ]

- [ 식욕 : 35 ]

- [ 피로도 : 55 ]

현재 상태 : 하아… 제자랑 온 건 좋은데. 역시 사람이 너무 많아. 늙은이들 생각하면 짜증 나.

상태창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음. 이쪽으로 가봐요."

"응. 가자."

뭔가 기분 나빴던 일이 있던 모양인데.

그래도 내 말은 들어줘서 다행이다.

잠시 후 우리는 마법 도구를 전시해놓은 곳에 도착했다.

"이건… 쓸모없는 수식을 감안하더라도 효율이 괜찮아. 특히 이쪽 설명이…."

그리고 눈을 반짝반짝이는 임솔 교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루하다면서 엄청나게 좋아하시네.'

임솔 몰래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법사라 이런 거에 눈이 돌아가는 것 같다.

나도 옆에서 [BDKS-2RDETHL] 라고 쓰여 있는 마법 도구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봐도 모르겠는데.'

물론 좋아 보이긴 한다. 근데 내가 쓰는 마법이 더 효율적이잖아.

"하지만 이건 너무 아쉽네. 마법진을 새기는 과정에서 연산능력이 떨어졌어. 나였다면 핵심 술식을… 아, 그거 아직 발표 안 했지. 그러면 서로를 공명시켜서…."

아무래도 마법사의 눈으로 봤을 때는 무언가 배울 점이 있는 거겠지.

나는 마법을 잘 쓰는 거지, 잘 아는 게 아니다.

학문적인 요소에서는 아직 임솔에게 많이 밀린다.

"교수님. 이제 다른 거 보러 가요."

혼자 중얼중얼 마법 도구의 개선점을 말하는 임솔의 팔을 잡고 억지로 이끌었다.

마법 도구를 제출한 마법사의 눈이 임솔의 말을 들으며 점점 크게 떠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귀한 정보들을 공짜로 줄 순 없지.

누구 스승님인데.

"아직 부족한데…."

교수님의 눈은 아직도 마법 도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이상하게 마법에 관련된 일에만 진심이라니까? 누가 보면 전생에 마법연구를 못해서 죽은 귀신인 줄 알겠어.

"시간은 많아요. 더운데 잠깐 카페라도 갈래요?"

마침 할 얘기도 있으니 잘 됐다.

나는 임솔의 팔을 붙잡고 낑낑 이끌었다.

사르륵-

'어?'

잠깐 시선을 돌리던 그때, 내 눈에 수상한 마력이 읽혔다.

무언가 음슴한, 굳이 따지자면 악한 느낌의 마력이었다.

'이거… 아닌가? 약간 헷갈리는데.'

회장에서 나오는 마력들이 워낙 많다 보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악한 마력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교수님. 혹시 이상한 거 못 느끼셨…."

"이건 이번에 새로 발견된 공법을 사용한 거네? 마법진의 구성이 달라졌는데도 구동 방식이…."

"아이. 진짜.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일단은 내 옆에 있는 임솔 교수를 진정시키는 게 먼저다.

임솔 교수님도 별 말 없는 걸 보면 내가 착각한거겠지.

나는 임솔 교수를 데리고 시원한 커피라고 쓰여 있는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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