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시가 멀리서 마법을 뻥뻥 쏴대는 걸 보고있으니, 임솔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제자에게도 수업은 해야지. 마법 써봐."
임솔은 팔짱을 낀 채 흥미로운 듯 나를 바라봤다.
"음…."
좀 놀랄 텐데.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마법을 제대로 보여준 건 부회장과의 대련이 마지막이다.
'근데 그때보다 훨씬 늘었거든.'
나는 손가락에서 마력을 뽑아냈다.
형태는 제일 기본적인 얼음창.
표적지에 꽂기 쉬운 형태의 마법이다.
하지만 기본이 되는 마법일수록 오히려 숙련도가 드러나는 법이다.
마법진이 완성되어 갈수록 임솔은 눈을 찌푸렸다.
같은 마법진이라도 누가 사용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구성하는 속도.
말이 필요 없다. 마법의 전개는 임솔보다 빨리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리고 마력의 질.
나는 [마력 감응]으로 순수한 마력만 끄집어낼 수 있다.
불순물 하나 없는 푸르고 깨끗한 마력이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마법진의 완성도는 당연히 완벽했고, 마지막은 핵심 술식이었다.
아직 임솔밖에 모르는 분야지만… 그 임솔이 여기 있으니 진짜 가치를 알아보겠지.
"응…?"
역시 임솔은 무언가 이상한 걸 깨달았다.
핵심 술식을 채워나가는 마력들.
창의 끝을 날카롭게 벼리고, 냉기를 강화한다.
날아가는 속도를 빠르게 하고 관통력을 증가시킨다.
수없이 많은 술식이 겹쳐지는 마법진을 보며 임솔은 헛웃음을 지었다.
"… 우리 제자. 많이 성장했네."
"고맙습니다. 교수님."
임솔의 반응을 보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콰득- 콰드득-
뻗은 손 앞에서 단단히 얼어붙은 얼음창이 표적지를 향해 쏘아졌다.
카가가강!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박살 난 표적을 보며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이 정도면 꽤 잘 만들었지.
- 와, 이호연 미쳤넹.
- 그러게. 근데 천재 마법사치곤 되게 평범하지 않아?
저 뒤에서 생도들도 이 쪽을 집중하다가 감탄을 쏟아냈다.
임솔은 두번째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천재 마법사치곤 평범하지 않냐고 한 생도였다.
임솔의 찌푸린 미간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의사표현같았다.
- 히, 히익. 연습. 연습해야지.
"그게 무슨 개소…."
"교수님. 참으세요. 보통 생도가 보면 잘 모를 수도 있죠."
나쁜 말을 뱉으려는 임솔의 입을 막았다.
이 마법에 담긴 묘리를 다 알아채는 마법사가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임솔은 다행히 내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채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 도핑이라도 했어?"
"아닌 거 알면서 왜 그러세요."
"그렇긴 하지. 하아… 진짜 대단하네."
임솔은 경쟁심이 생긴 듯 호전적인 미소를 지었다.
"더 노력해야겠어. 인정할게. 확실히 내가 20살 때보다 더 강해."
"감사합니다. 근데 교수님도 8년 동안 훨씬 더 실력이 느셨잖아요."
"… 그렇긴 하지. 나는 혼자 하는 연구가 맞는 스타일이었거든. 그리고 나이 얘기는 하지 마."
임솔은 내 마력 경지가 늘어난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제자가 강해지면 자기도 좋다. 뭐 그런 거겠지.
"지적할만한 부분이… 없네. 굳이 따지자면 나한테 보여주려고 너무 과하게 마력을 쓴 점? 표적지만 부수면 되는 거잖아."
"헤헤, 그렇긴 하죠."
사실 잘 보이고 싶어서 마력을 많이 쓰긴 했다.
하지만 요즈음 마력이 많이 늘어서 이 정도론 마력에 기별도 안 간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몸에 쌓이는 마력도 많아졌으니까.
"잘하긴 했어. 아, 그러고 보니 이번주에 마법 박람회는 어떻게 할래? 네가 원하는 일정대로 맞출 수 있는데."
"마법 박람회요? 저야 언제든지 괜찮긴 한데."
"그럼 오늘은 어때? 수업 끝나고 바로 가면 될 것 같은데."
"어…."
오늘은 안 되는데.
루시랑 루미가 꼭 오라고 했잖아.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은요?"
"왜, 아영이 보러 가려고?"
"아니에요. 다른 약속이 있어요."
백아영은 점심에 만날 생각이었다.
양호 선생님의 아카데미 복귀 날인데 빠질 수는 없지.
"흐음, 그러면 내일로 할까."
"네네. 내일 수업 끝나고는 괜찮아요."
내일은 일정이 없으니 약속을 잡아도 된다.
"안돼. 수업 끝나고는 연구할 게 있어."
임솔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교수님이 내일이라면서요. 그럼 어떻게해요?"
"오전에 빨리 다녀오면 되지."
"네? 오전에는 아카데미 수업인데."
"오전 수업 빼."
"그게 교수가 할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 교수 아니야.
생도한테 채점을 시킨 것부터 말이 안 됐어.
아니, 그리고 오전 수업 시간에 할 게 없으면 그때 연구를 하면 되잖아.
아카데미 끝나고 나랑 마법 박람회를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너 어차피 출석 점수 다 채웠잖아. 그리고 영 신경 쓰이면 교수 권한을 쓰면 돼. 현장 체험학습 같은 거로 때우지 뭐."
"… 좋은데요?"
역시 능력 있는 여자가 최고다.
남이 권력을 사용하는 건 짜증 나지만 그게 내가 되면 좋은 법이거든.
*
점심 식사를 루시루미 쌍둥이와 함께한 뒤, 나는 갈 곳이 있다고 얘기를 꺼냈다.
"에엥? 어디가?"
루시가 내 팔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아침보다 힘이 난 것 같아서 다행이네.
"양호 선생님 뵈러. 나 약 받을 게 있어서."
"아… 호연 씨가 양호실에 자주 가는 이유가 있었네요."
"응. 치료하는 게 있거든."
나는 루시와 루미를 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지. 다녀와."
"이따 오후 수업 때 봐요. 호연 씨."
"응응. 이따 보자."
루시와 루미는 강의실로 돌아가고,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어쩌다 보니 내가 치료를 받는 게 되어버렸네.'
백아영이 양호 선생님으로 부임한 후에 나만큼 자주 들리는 생도가 없었으니, 그렇게 오해하는 생도가 꽤 있었다.
엘리스도 그 때문에 내게 선천적 마력 장애가 있다고 오해했었으니까.
뭐, 이게 제일 넘어가기 편하니까. 백아영만 비밀을 지켜주면 괜찮겠지.
양호실에 점심시간 팻말이 걸려있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문을 열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쉬고 있던 직원들이 나를 발견했고, 그중 막내로 보이는 남자가 뛰어왔다.
"죄송합니다. 점심시간은 쉬는 시간이라…."
"야! 야!"
"네, 넵?"
동시에 뒤에 앉아있던 직원이 내게 다가온 남직원을 호출했다.
"그냥 보내드려. 양호 선생님이 직접 관리하는 환자야. 시간이 오래 걸려서 보통 쉬는 시간에 찾아오셔."
"아, 앗… 죄송합니다!"
막내 직원은 내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편히 쉬세요."
'백아영도 여기에 그렇게 말해놨구나.'
하긴 그게 제일 편하겠지.
- 그럼 양호 선생님은 언제 쉬시는 거예요?
- 나도 몰라. 그러니까 대단하신 분이지.
직원들 사이에서 들리는 백아영의 칭찬을 보니, 역시 평판도 좋은 모양이다.
우리 여보 최고다 최고.
나는 백아영이 있을 업무실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선생님. 저예요. 이호연."
"아아, 응. 들어와."
문을 덜컥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업무복을 입고 휴식을 하고 있던 백아영을 볼 수 있었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 미니스커트. 검정 스타킹까지.
이게 백아영의 업무 복장이다.
저러니까 치료를 받는 남자들이 안 미치고 배기겠냐고.
딸깍-
문을 꽉 닫고, 확실하게 잠갔다.
"아카데미에서 보는 건 진짜 오랜만 같아요."
"여보오… 보고 싶었는데…."
문이 잠기고 나서야 백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어른스럽게 앉아있던 모습과는 정 반대 모습이었다.
포옥-
내게 안겨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백아영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보고 싶었어. 사랑해. 여보."
"으응... 저도요."
여보를 두고 애기 아빠가 되어버린 게 양심이 조금 찔리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