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5화 (235/648)

*

월요일 아침.

나는 기숙사를 나설 준비를 했다.

이제부터 다시 아카데미 생활이니까.

'아닌가?'

사실 켄타우로스를 만나려면 프랑스로 직접 가야 할 텐데.

시간이 될까 모르겠네.

"갔다 올게."

"다녀오겠습니다. 릴리아나 씨."

"언니, 집 잘 지키고 있어!"

"빠이빠이. 난 스카웃이랑 놀고 있을랭."

릴리아나에게 인사를 한 후 남다은 자매와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집을 구하면 매일 같은 시간에 등교하지 않아도 될 거 아니야.

역시 빨리 집을 구해야겠어.

'이것도 아닌가?'

어차피 갈 아카데미라면 예쁜 여자랑 같이 등교하는 게 더 좋잖아.

아니지.

사실 위험도가 너무 높다.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 안 걸렸지만… 지금은 작은 실수 하나로도 걸릴 수 있는 생활이다.

"언니! 오빠! 이따 봐!"

"학교에서 싸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고, 누가 괴롭히면 오빠한테 꼭 말하고. 알겠지?"

남다희가 부속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남다은이 옷을 다시 정리해줬다.

근데 괴롭히는 걸 왜 나한테 말해.

"응! 알았어! 갈게!"

"야, 왜 나한테 말하는데."

"다희가 괴롭힘당하면 안 도와줄 거야?"

"아니 도와줘야지."

누구든 우리 다희를 괴롭히는 건 용서못해.

"그렇지? 후훗."

남다은은 내 대답을 듣고 뭐가 그리 좋은지 후후 웃으며 나보다 앞서서 걸어갔다.

- 월요일 싫어~. 

- 오늘 그래도 임솔 교수님 수업이야.

- 오 진짜?

A클래스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남다은은 건물에 들어오기 전에 나와 헤어져서 먼저 A클래스로 들어갔고, 나는 조금 뒤에 들어왔다.

"이호연, 안녕."

"응. 안녕."

가끔씩 저렇게 모르는 생도가 인사를 해오는데, 가볍게 받아주기만 하고 있다.

남자랑은 엮이기가 싫고, 여자랑 엮이면 큰일이 나니까.

히로인들만 커버하기도 힘들다.

"호연 씨.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네. 루미."

"…."

루미는 언제나처럼 살짝 웃으며 날 반겨줬다.

그런데 루시는 이상하게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루시. 어디 아파?"

"아, 아니. 그냥…."

얘는 왜 이래 또.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99 ] (+ 0.1)

- [ 성욕 : 85 ]

- [ 식욕 : 35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진짜, 진짜 하는 거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

루시의 상태를 보고 눈을 살짝 찌푸리던 그때.

옆에 앉아있던 루미가 내 옷을 끌어당겼다.

"호연 씨."

"응?"

"오늘 수업 끝나고 오랜만에 동아리에 들러요."

"오, 동아리?"

나쁘지 않은데?

초반에 만들어놓고 쓰질 않았으니까.

사실 거기서 놀아도 별로 할 건 없지만… 그래도 하고 싶다면 해줘야지.

"알았어. 이따가 놀자."

"약속 하신 거에요. 너도 들었지 루시?"

"… 응."

루시는 여전히 내 눈을 피하고 있었고, 볼은 살짝 붉어진 상태였다.

*

- 파이어 볼...!

오전 수업은 임솔 교수님이 맡았다.

실기 수업이었고, 내용은 역시나 마법사 생도들이 마법을 사용하면 임솔 교수님이 돌아다니면서 지적해주는 수업이었다.

임솔 정도로 수준높은 마법사에게 조언을 듣는 기회는 흔치않았으니, 생도들도 모두 좋아하는 수업이다.

생도들이 일렬로 서있는 사격장에서 나는 맨 뒤에 위치해있었다.

다들 먼저 피드백을 받고 싶어 해서 이쪽은 인기가 없었거든.

사람이 없어서 혼자 쓰기 좋다.

"근데 넌 왜 왔어."

내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루시를 쳐다보자, 루시도 살짝 입을 내밀면서 나를 올려다봤다.

"... 같이 있고 싶어서. 안 돼?"

"미안. 농담이었지."

루시도 마법사였으니 나와 같이 이 수업을 들었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너도 저기서 싸우고 있었잖아."

피드백을 받기 위해 앞에서 줄을 서고 있는 생도들.

평소에는 루시도 저 무리 안에 있었다.

"어차피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너랑 대화하려고."

"쉽게 말하면 마법과 나, 둘 중에 날 선택한 거구나?"

"제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팍 팍!

루시는 붉어진 얼굴로 내 팔을 마구 때렸다.

맞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네.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후우. 또 이상한 얘기 하면 진짜 갈 거야."

자기가 직접 와놓고 놀리니까 창피해하는 모습이 귀엽다.

슬쩍 임솔이 어디까지 왔나 확인해보니 어차피 우리 차례가 되려면 멀었다.

"교수님 오려면 멀었으니까 내가 봐줄게. 한 번 마법 써봐."

"... 네가?"

"나 이호연이야. 천재 마법사 이호연 몰라?"

"흐음. 그렇긴 하네. 그럼 잘 봐!"

화르륵-

루시가 마법진을 그리자, 그녀의 장기인 날카로운 불화살들이 몇십 개나 허공에 떠올랐다.

슈웅- 콰드득!

이윽고 표적지에 마법이 꽂히는 것까지 주의 깊게 관찰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문제점을 알 것 같았으니까.

"어때?"

"다 좋은데 마법의 끝 처리가 아쉬워. 마법진을 그릴 때...."

내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대충 보기만 해도 부족한 점 정도는 짚어줄 수 있다.

아마 웬만한 마법 교수보다 잘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도 마법을 보자마자 문제를 파악할 순 없으니까.

루시는 내가 지적해준 문제점들을 의식하며 다시 마법진을 그렸다.

당연하게도 전에 사용한 화살보다 훨씬 뜨겁고 위협적인 불화살이 만들어졌다.

"와, 와. 너 진짜 천재구나."

"당연하지."

예쁜 여자가 띄워주니까 또 기분이 좋아지네.

"이 정도면 임솔 교수님보다 잘 가르치는 것 같아...."

"야, 그런 말을 하면...!"

나는 루시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러면 제 수업을 안 들어도 될 텐데요. 루시 생도."

"응? 네? 헉. 임솔 교수님...."

아까부터 임솔 교수님이 루시의 뒤에 서서 내가 지적해주는 걸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시는 마법에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나를 보며 '역시 내 제자는 못하는 게 없어.'라는 듯 훈훈한 눈빛을 보내던 임솔은 루시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그게 아니라요. 교수님을 비하하는 게 아니고, 이호연을 칭찬하려고...."

루시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임솔의 표정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아, 루시 생도는 저쪽으로 가서 혼자 연습하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결국 임솔이 먼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고, 루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도망가는 속도가 범상치 않은데?

임솔은 저 멀리 도망친 루시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내 제자들까지 뺏어가려고 하는 거야?"

"워낙 재능이 넘쳐서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하아, 이제 교수랑 맞먹으려고 하네?"

임솔은 어이없다는 듯 내게 다가와 꿀밤을 날렸다.

물론 그 입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

백아영은 일요일, 철혈 병원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끝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양호실에 출근했다.

병원같이 시끌시끌한 곳에 있다가 조용한 일터로 돌아오니 확실히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여보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만으로 백아영은 콧노래가 나왔다.

철혈 병원에서 사람을 돕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이호연이 더 중요하니까.

"흐흥. 아, 의료팀이나 가볼까?"

의료팀 사람들에게 복귀를 알리고 인사도 할 겸.

그리고 물어볼 것도 있었다.

백아영은 짐만 푼 뒤에 바로 의료팀으로 찾아갔다.

바로 옆 건물이었으니 걸어서 금방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안 쪽에 들어간 백아영은, 좀비처럼 퀭한 눈으로 일하던 의료팀들을 발견했다.

"… 여러분들 뭐 하세요?"

이제 월요일 아침인데 저렇게 퀭한 눈이라는 건, 밤샘 업무라도 한 걸까?

백아영이 궁금해하던 찰나.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의료팀 한 명이 천천히 고개를 백아영을 향해 돌렸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서, 성녀님. 드디어…."

"뭐? 성녀님?"

그리고 안쪽에 있던 의료팀 팀장이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팀장의 충혈된 눈을 보며 백아영은 살짝 흠칫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백아영에게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복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녀, 아니 양호 선생님…!"

"… 네?"

이 사람이 대체 왜 이럴까.

백아영이 당황하던 때, 팀장이 말을 이었다.

"망할 이사장… 아니, 상부에서 백아영 씨가 의료팀과 함께하게 됐다면서 일을 대폭 늘렸는데, 백아영 씨가 출장 갔는데도 줄여주지 않아서… 크흑."

"…."

협회든 아카데미든 의료팀은 고생이 많구나.

그래도 자기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으니 백아영은 나름대로 아카데미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호연이랑 가까이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괜찮아요. 팀장님. 제가 왔으니까요."

그래도 혹사당하는 사람들은 조금 불쌍하네.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일해줘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아영은 감사하는 팀장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후에, 하고싶었던 질문을 했다.

"지금 1학년 마법사들은 실기 수업이죠? 의료팀 지원 나갔나요?"

이미 이호연의 스케줄은 꿰고 있다.

백아영은 의료팀이 피로하니까 대신 해주겠다는 핑계로 현장에 나갈 생각이었다.

생도복을 입은 여보를 보는 건 오랜만이니까.

"네? 아아, 아니요. 오늘은 안 왔습니다."

"… 안 왔을 리가요. 실기 수업 때 의료팀 지원은 필수 아닌가요?"

백아영이 조사한 바로는 모든 실기 수업마다 의료팀의 지원이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기대했는데….

"그게, 정확히 말하면 필수는 아니에요. 물론 관행 같은 거라 안 하는 교수님은 없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안 들어왔네요. 이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다 책임지셔야 할 텐데."

"그 수업 담당 교수가 임솔 교수 맞죠?"

"잠시만 확인을…. 아, 네. 맞습니다. 임솔 교수님인 걸 보니 실수는 아닐 테고, 아마 사고가 나지 않겠다는 자신이 있으신 것 같아요. 어쩌면 수업 내용을 공개하기 싫으신 걸 수도 있고요."

그럴 리는 없다.

임솔의 수업은 그냥 생도가 마법을 쏘면 임솔이 평가해주는 아주 단순한 수업이기 때문이다.

어디 유출되어도 전혀 문제없는 건전한 수업이다.

"… 알겠어요. 일단 저도 업무를 보러 가야 해서."

"네네. 부탁드립니다."

백아영은 의료팀을 빠져나왔다.

안쪽에서 '드디어 해방이다-!' 같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양호실까지 돌아왔다.

조용한 양호실 안의 업무 책상에 앉은 백아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이가? 마법 빼고 다 귀찮아하는 애가 사고가 나면 자기가 처리하려고 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큰 이유는 실수겠지만… 백아영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오늘 돌아오는 걸 알고 견제한 건 아닐까.'

임솔은 가능성 높은 경쟁자 후보였으니까.

"에이, 설마."

백아영은 자신의 뺨을 챱챱 때리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오랜만에 현장에서 일을 열심히 했더니 정신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

친구인 임솔이 그럴리가.

어차피 아카데미에 왔으니 여보를 볼 기회는 많다.

"이따가 찾아오겠지. 안 오면 내가 연락하면 되고."

백아영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양호실에 쌓인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힘들어하는 의료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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