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4화 (234/648)

*

대화를 끝낸 뒤 엘리스의 저택에서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미녀와 대화는 오래해도 즐겁지만, 엘리스도 일이 있었고 나도 너무 늦으면 안되니까 적당히 끊고 헤어졌다.

"더럽게 힘드네."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알차서 문제다.

사건 좀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평범하게 릴리아나랑 놀다가 잠들던 예전이 그립다.

쩝.

천천히 걷던 나는 오늘 외출의 목적을 떠올렸다.

"아이 씨. 결국 집은 못 봤네."

이사할 집을 보러 나와서는 결과적으로 엘리스랑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물론 엘리스와 대화도 좋았지만… 집을 보긴 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보러 갈까."

그때 내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걸 말입니까."

"집 말이야 집."

"역시 놀라지 않으시네요."

"따라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

스칼렛이 내 뒤에 있는 걸 알았으니 입 밖으로 말을 꺼낸 거지, 안 그랬으면 속으로 생각했을 거다.

살짝 옆을 보자 이번에도 은신이 파악돼서 분해 보이는 스칼렛이 서 있었다.

"아이작, 아니 아이작 씨는?"

"한국 지부장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밖에 집히는 곳이 없다면서요. 아마 바로 출국하실 겁니다. 시간이 많은 분은 아니라서…."

"으흠. 다행이네."

한국 지부장이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서들 하겠지.

길드 내부 사정이니까.

아이작이 돌아간다면 이제 스칼렛도 다시 집에 합류할 수 있으려나.

"이제 릴리아나랑 다희도 자주 볼 수 있겠네. 그래도 예전처럼은 못 하겠지?"

"아니요. 이제부턴 일이 여유 생겨서 예전처럼 같이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오, 다행이네."

스칼렛이 오면 더욱 이사할 이유가 생긴다.

"그런데 그 전에…."

스칼렛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며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호연님."

"응?"

"제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얘는 갑자기 왜 이래.

"혹시 아이작 씨가 나 덮친 거 때문에?"

"… 네. 사실 제가 호연님에 대한 정보를 발설했습니다. 비록 사정이 있었지만 잘못은 잘못이니까요."

스칼렛은 반성하는 듯 몸을 더 숙이며 사과해왔다.

"됐으니까 일어나. 어차피 별 상관 없었…."

잠시만.

나는 말을 끊고 고민했다.

너무 이렇게 다 넘어가 주면 안된다고.

엘리스의 말처럼, 조금이지만 화를 낼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연습해볼까.

"미안하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 부탁 말입니까?"

스칼렛은 자신의 가슴을 살짝 가리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아니, 그런 거 아니고. 그냥 내 새집이나 구해줘. 원래 오늘 구하러다니려고 했는데 아이작 씨 때문에 못 봤거든."

"아… 의외네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의외라니 너무하네.

"나라고 항상 몸을 요구하진 않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알겠습니다."

"…?"

스칼렛은 이상하게 신경쓰이는 말을 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내가 여자만 밝혀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나?

띵-

그때 내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 히로인 상태창

[스칼렛] 

- [ 호감도 : 55 ]

- [ 성욕 : 3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예쁜 여자가 사과하면 다 받아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나?

"오…."

"왜 그렇게 저를 뻔히 쳐다보세요?"

스칼렛에게도 상태창이 생겼다.

아마 나랑 아이작, 그리고 엘리스와 더욱 깊이 관련되면서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늘었기 때문일까?

'근데 하는 생각이 좀 불순 적이네.'

누가 보면 내가 여자만 보면 달려드는 물소인 줄 알겠어.

"너무하네."

"네?"

스칼렛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쯧. 아니다. 아니야."

저런 모습도 나름 매력이지 뭐.

평소엔 계산적이지만 중요할 때는 날 도와주니까.

남다은을 공략할 때도 큰 도움이었고. 여러 잡 일도 많이 도와주고.

사기 계약으로 만난 인연이 이렇게 발전할 줄은 나도 몰랐다.

아무튼 스칼렛에게는 이미 충분히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항상 고맙다 스칼렛. 내 집도 좀 잘 알아봐 줘."

나는 고마움을 담아 스칼렛에게 인사를 했고, 스칼렛은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었다.

"네. 호연님. 저도 즐겁게 일하겠습니다."

이제와서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내 주변 금발 여자들은 다들 예쁜 것 같네.

"… 이중 스파이라고?"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동안 스칼렛에게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들었다.

나를 마음에 들어 한 아이작이 날 조사하라고 명령했다는 거다.

"다행히 우리 관계는 몰랐나 보네."

"아무래도 엘리스 아가씨에 관련된 일이니까요. 엘리스 아가씨가 개인적으로 시킨 일은 아이작 님도 모르거든요."

"오호…."

진짜 다행이네.

"아, 그리고 혹시라도 다음에 길드장님이랑 같이 만나면 절대 저랑 아는 척하면 안 돼요. 가벼운 눈인사도 눈치채는 괴물이거든요. 제가 거기서 아는 척했으면 들켰을 거에요."

"미안. 주의할게."

분명 엘리스한테 고개 숙이며 사과하는 틈에 스칼렛을 본 건데, 그걸 눈치챘다고?

진짜 방심하면 안 되겠네.

"근데 이중스파이면 내 정보를 그쪽에 계속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괜찮아요. 대충 주면 되죠."

스칼렛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양손을 드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그때는 호연 님한테 완전히 갈아타는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스칼렛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 대단하다 너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스칼렛이 알아서 하겠지.

저래보여도 능력 있는 여자니까 알아서 안 걸리게 할 거다.

"아, 그 켄타우로스에 관한 정보도 제가 전달해드릴게요. 아마 바로 되진 않겠지만 길드장님한테 금방 답이 올 거예요."

"응. 부탁할게."

릴리아나한테 말해주면 되게 좋아하겠네.

스칼렛과 잡담을 하며 걷다 보니 벌써 기숙사가 눈앞에 보였다.

띠링-

기숙사로 들어오자 침대에 누워있는 릴리아나가 보였다.

탁자에는 남다은과 남다희가 야금야금 과자 같은 걸 먹고 있었다.

"… 확실히 좁긴 하네요."

스칼렛은 꽉 찬 기숙사를 보며 살짝 질린 표정이었다.

사람이 무려 5명이다.

1인실 치고 넓은 기숙사고, 거실에 침대를 하나 놔서 망정이지 사실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건 사람의 온기 같은 걸로 포장하기엔 너무 덥다.

"그치? 네가 좋은 집으로 잘 찾아봐."

"응? 스카웃 왔어?!"

"스칼렛 언니!"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누워서 스마트 워치를 보던 릴리아나가 벌떡 일어났다.

과자를 먹던 남다희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 듯 후다닥 달려왔다.

"지금까지 뭐 했어?"

"죄송합니다. 일이 바빴습니다."

"언니, 왜 이제 왔어. 나 이제 맛있는 밥 먹고 싶어…."

"… 네?"

쩝.

오랜만에 스칼렛이 오니까 좋긴 한가 보네.

방 주인이 왔는데 눈길도 안 주고.

씁쓸한 기분으로 겉 옷을 벗는데, 내게도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집은 잘 봤어?"

그때 내 옆에 누군가 다가왔다.

"역시 너밖에 없다. 다은아."

"후훗, 다들 오랜만이라 그런 거야. 너도 반가울걸?"

남다은은 웃으며 내 겉옷을 받아갔다.

"오늘은 좀 일이 생겨서… 집은 못 봤어. 나중에 스칼렛이 보기로 했으니까 원하는 거 있으면 스칼렛한테 말해."

내 말을 들은 릴리아나는 반색하며 스칼렛의 팔을 잡았다.

"스카웃. 나는 방이 넓은 곳이 좋아."

"언니, 저는 장난감이 많이 있어야 해요."

음, 이사할 때 제일 좋은방은 다은이한테 줘야겠다.

"다희야. 오빠한테도 인사해야지."

"응? 오빠도 왔네?"

"... 그래. 나도 왔어."

"스카웃. 이거 봐봐. 너 없을 때 만든 거야."

"멋있네요. 릴리아나 님."

그래도 오랜만에 다 모이니까 보기는 좋네.

분위기도 좀 사는 것 같고.

"스칼렛. 나중에 집 보러 꼭 가야 해. 그리고 릴리아나? 잠깐 이리 와봐."

"응? 왜?"

얼마나 반가운지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스칼렛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던 릴리아나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남이 들을만한 얘기는 아니니까 문을 닫자, 릴리아나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았다.

"아직 밤도 아닌데… 주인님, 벌써요? 밖에서 얼마나 참았으면…."

"그런 거 아니거든. 할 얘기 있으니까 앉아봐."

"아, 뭐양."

히히 웃는 릴리아나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억나지? 그 지옥에서 온 켄타우로스 말이야."

"응. 당연하지. 그 말 인간."

같은 지옥 출신인 켄타우로스 얘기가 나오자 릴리아나도 내 말에 집중했다.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할 얘기 있으면 미리 생각해놔."

"헉…. 진짜?"

"응. 눈 앞에서 어버버하지말고 잘 준비해."

"… 알았어. 고마워."

나와 눈을 마주친 릴리아나는 고마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상에 앉아 무언갈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히로인 상태창

[릴리아나]

- [ 호감도 : 97 ] ( +1.9 )

- [ 성욕 : 78 ]

- [ 식욕 : 42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말인간이 우리 엄마에 대해서도 알까? 모르겠지…?

열심히 고민하는 것 같네.

음. 그래야지. 

내가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마음 같아선 좀 더 감사하라고 떵떵거리고 싶었지만, 진지한 것 같길래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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