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의 저택.
타닥- 탁- 탁-
아이리스 길드가 마주한 문제.
프랑스에 나타난 켄타우로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던 엘리스는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어쩌란 거야."
확실하게 정립된 몬스터가 아니다 보니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
피로감에 눈을 찌푸리던 엘리스는 책상에 놓여진 와인을 잔에 따랐다.
"흐음."
눈을 감고 와인의 향을 즐기던 엘리스는 내일이면 주말도 끝이라는 걸 깨달았다.
주말 내내 일만했는데 벌써 주말이 끝이다.
아카데미도 가야하고, 정보 수집과 공부도 다시 시작이다.
'음....'
그러고 보니 스칼렛은 또 어디 간 걸까.
수집해야 할 정보가 산더미인데.
이호연에 관한 정보라든지, 이호연 주변 여자에 대한 정보, 아니면 이호연 기숙사의 정보....
똑똑.
"들어와."
이렇게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건 세바스 찬뿐이다.
스칼렛은 이상하게 창문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엘리스는 와인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세바스 찬을 맞이했다.
"아, 아가씨."
"... 왜?"
세바스 찬은 다급한 듯 방으로 들어왔다.
요즘 따라 저렇게 다급해질 때가 많다.
원래 중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저렇게 여유가 없을 때는 항상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일이었다.
"한국 지부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길드장님이 한국에 방문했다고 합니다."
"대체 왜? 아니, 지금 어디 있는데?"
"그게... 한국 지부 인원들을 풀어서 찾는 중입니다."
"입국한 사실은 어떻게 안 거야?"
"오자마자 길을 묻기 위해 한국 지부장님께 들렸다고 합니다. 길드장님이 꼭 비밀로 하라고 당부하셨다는데 몰래 말해주는 거니까 절대 길드장님께는 말하지 말라고...."
"...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한국 지부장 강효린 박사.
같은 아카데미에서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길드장의 말을 저렇게 무시하다니.
혹시 교수로서 제자를 배려한걸까.
띠디디딕-
그때 세바스 찬의 스마트 워치가 시끄럽게 울렸다.
"응, 이봐. 어디지? 뭐라고?!"
세바스 찬은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통화 도중에 슬쩍 엘리스의 눈치를 보는 걸로 봐선 아빠가 사고를 친 모양이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세바스 찬은 조심스럽게 엘리스를 바라봤다.
"… 아가씨. 아카데미의 상가 쪽에 계신다고 합니다."
"하아, 아빠는 뭐 하는 거야. 길이라도 잃었대?"
아마 이 쪽으로 찾아오려다가 길을 잃었겠지.
엘리스가 길치인 건 유전이었다.
아버지인 아이작도 길을 자주 헷갈려했으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 이호연 생도와 같이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호연이가 왜 나와."
엘리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둘은 아무 연관 점도 없을 텐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력을 추적한 결과라고 해서... 하지만 결계가 강하다 보니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고...."
하아.
이 아저씨는 아빠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된다.
대체 현역 때 무슨 짓을 당한 걸까.
"그만. 세바스 찬. 빨리 안내해."
"알겠습니다...."
내가 절대 오지 말라고 했는데.
게다가 나한테 말도 없이 이호연을 만나러 가?
보나마나 마사지때문에 보러간거겠지.
"... 맨날 내가 좋다고 하면 뭐해."
미친 아빠 같으니라고.
엘리스는 기분이 확 상한 채 저택 밖으로 빠져나왔다.
*
"... 통과."
"...?"
'뭔 개소리야.'
아이작을 바라봤다가, 뒤에 있는 스칼렛도 슬쩍 바라봤다.
스칼렛은 나와 눈을 마주쳤다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신호를 알아듣은 나는 그대로 눈을 돌렸다.
"후우...."
도대체 뭐가 통과라는 거야.
내 힘을 테스트해본 건가?
'아니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왜?'
'자기 사위감으로 통과라는건가?'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괜히 나서고 싶지 않았으니까.
기다리다 보면 직접 말하겠지.
"...."
"...."
하지만 상대는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이미 헐떡이던 내 숨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남자 둘이 눈을 마주치고 있는 이 공간을 어색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10분 이상을 남자 둘이 마주 보고 있었다고. 이게 어색하지 않을리가 없잖아.
"... 누구세요?"
결국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인이었다면 반말을 뱉었겠지만, 차마 엘리스의 아버지에게 반말할 순 없었다.
"원래 나를 알고 있었나?"
아이작은 흥미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도 잘생기긴 했네.'
예쁜 엘리스의 아버지라 그런지 외모 능력치가 충만하다.
잘나가던 금발 태닝 양아치가 나이를 먹으면 딱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
'아는 척하면 안 돼.'
애초에 아이작이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많지 않다.
정보 길드의 길드장은 비밀에 싸여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작을 실제로 아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권위가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제 막 유명해지기 시작한 일개 생도가 밤의 황제를 아는 건 어불성설이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나는 거짓말을 했다.
[뚜렷한 정신력]이라는 특전.
그 덕에 침착한 연기는 자신이 있었다.
"흐음... 그래? 하긴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인 아이작은 천천히 날 훑어봤다.
"... 그래서 누구신데요. 통과라는 말은 뭐고요?"
"통과... 내 기준을 뛰어넘었다는 말이지. 기뻐하거라.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사내가 된 걸 말이야."
"...."
이 아저씨 말투가 왜 이래.
아직 중2병이 안 고쳐졌나?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는, 비밀이다. 어둠의 밤이 널 지켜보는 동안...."
"아빠!"
목소리를 깔고 이상한 폼을 잡으며 나를 바라보던 아이작의 뒤편에서, 화가 난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분위기 잡는데 누구... 응?"
당연히 아이작과 스칼렛도 뒤를 돌아봤고, 다가오는 금발의 미녀를 확인했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에, 엘리스. 어떻게 여기...."
화난 듯 이쪽으로 다가오는 엘리스는 슬쩍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곧바로 아이작에게 다가가선, 구두의 굽으로 아이작의 정강이를 찍어버렸다.
"아, 아악!"
아이작은 딸의 발을 마력으로 막을 생각도 못 했는지, 그대로 정강이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굴렀다.
어우.
내가 봐도 아픈데. 얼마나 아플까.
"아파? 응?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오면 다신 안 본다고 세바스 찬에게 말해놨는데 아빠는 왜 그러는 거야?"
"미, 미안하다... 내가 서류를 끝까지 안 봐서...."
"아빠는 그게 문제야. 항상 내가 하는 일을...."
몇 분이나 기다렸을까.
나와 스칼렛은 그 무섭던 아이작이 엘리스에게 혼나는 걸 구경했다.
"나를 그렇게 못 믿어? 남자한테 내가 눈이라도 돌아갈 것 같아?"
"그게 아니고 아빠는 그냥...."
어이가 없기도 하고, 좀 웃기기도 하고.
참고로 스칼렛은 아이작의 뒤에 서서 진지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칼렛과 눈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스칼렛은 나를 아예 바라보지 않았다.
"미안하다. 미안해...."
"됐어. 나 삐졌어. 이제 아빠랑 얘기 안 할 거야."
"에, 엘리스. 미안하다. 아빠가 어떻게 해야...."
"나 말고 호연이한테 고개 숙여서 진심으로 사과해. 내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이야. 아빠가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됐어."
"엘리스. 아빠는 아이리스 길드장이다. 마음대로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야."
아이작은 움츠리던 허리를 펴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숙일 수 없는 자존심 같은 걸까.
"그럼 이제 아는 척 하지 마. 사과 안 하면 아빠랑 말 안 해."
"엘리스...."
아이작은 언제 자존심을 챙겼냐는 듯 다시 비굴하게 허리를 숙였다.
잘한다! 잘해!
아빠보단 남자친구지. 음음.
자존심을 부리던 아이작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엘리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터덜터덜 몸을 돌렸다.
그야말로 세상을 잃은 얼굴.
'사과 안 하면 아빠랑 말 안 해.' 라는 말이 그렇게 상처였을까.
아이작은 자존심이 다 찢긴 표정으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다... 나는 엘리스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고 아이리스의 길드장을 맡고 있다 그냥 딸과 가까이 지내는 남자가 궁금했다. 하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정말 미안하다...."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좀... 음. 뭔가 그렇네.
아이작한테 사과를 받는 지금 상황도 그렇고.
아버지로서, 아니지.
아직 아버지는 아니니까 남자로서.
저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 공감된다고 할까.
아이작은 날 바라보다가 슬쩍 엘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찌릿-
하지만 옆에서 노려보는 엘리스의 시선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하거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아니 그렇다고 다 되는 건 아니고...."
"괜찮습...."
괜찮다고 하려던 내 입을 멈췄다.
이런 기회가 생겼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잖아.
"... 그러면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아이작은 내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을 삼켰다.
"프랑스에 나타난 켄타우로스를 같이 조사하고 싶습니다."
"... 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
아이작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미소를 지었다.
살짝 무서웠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최대한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