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0화 (230/648)

귀엽네.

그냥 귀엽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이렇게 바뀌는 걸 보는 게 재밌었다.

"읏...."

내 품에 들어온 남다은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오늘 밤도 할까?"

"... 네가 좋다면."

"어젯밤은 진짜 좋았는데. 그치?"

"몰라...."

어제는 릴리아나가 잠드는 탓에 같이 하진 못했고, 남다은이랑 단 둘이 했다.

오늘은 같이 할 수 있으려나.

부끄러워하는 남다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참 호화롭네.'

나도 내가 한 행동이 이해가 안된다.

여자를 먼저 끌어안고 이마에 키스를 하다니.

원래 세상의 나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삶을 살고 있다.

정말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긴 하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고 죽고 싶진 않다.

가까운 부동산에 찾아가기 위해 아카데미를 나오고, 상가에 들어갔다.

"이야~ 오늘 과일이 엄청나게 싸네요."

"요즘 철이라서요. 한 바구니 사가세요."

주변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정말 살아있다는 게 느껴진다.

"부동산... 이쪽이구나."

상가에는 당연히 여러 부동산이 있었다.

어차피 한 군데만 들릴 건 아니었으니 가까운 곳부터 가기로 했다.

스마트 워치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 좁은 골목길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 또야?"

나는 인식저해를 위해 열어놨던 룬의 결계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 상태로 골목을 빠져나가려 해봤지만, 무언가에 막힌 듯 골목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강해.'

전력을 다하면 뚫을 수 있을까?

확실하지 않다.

그 정도로 이번 습격자는 강했다.

체감상 레베카보다 살짝 약한 정도?

두근-

하지만 레베카보다 약하다고 안심할 건 아니다.

두근-

가슴이 뛰고 있었다. 전투 감각의 전조다.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다른 유망주들도 나처럼 매일 습격당하고 그러는 건가? 응?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고 공격을 기다릴까, 전진할까 고민했다.

'들어간다.'

레베카가 습격했을 때. 

만약 레베카가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공격을 당했을 거다.

그리고 믿는 구석도 있었다.

이 단단한 룬의 결계.

어떤 상대가 와도 뚫리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도망 못 칠거면 가까이 가야지.

나는 아주 미세하지만 느껴지는 마력을 따라 골목 안 쪽으로 들어갔다.

*

"뭐야, 이 쪽으로 오는데? 내 위치를 파악했다고...? 천재 마법사라더니 틀린 말은 아니네."

아이작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호연을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본 얼굴이었다.

"... 길드장님. 상대는 생도입니다. 역시 자중하시는 게 ...."

"설마 내가 죽이겠어? 잠깐 겁만 줄거야. 원래 사람은 기선제압을 해줘야 말이 잘 통하거든."

"...."

진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주제에 말은 잘하네.

스칼렛은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자기가 조금 더 조심했다면 이렇게 까지 되진 않았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아닌가?'

하지만 웃고있는 아이작을 보며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신이 아무 말 하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같았을거다.

저 미친 길드장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으니까.

괜히 세바스 찬이나 더 갈구다가 결국은 찾아왔겠지.

'하아.'

그래도 다행인 점은 밤이 아니라는 것이다.

밤이었다면 정말 위험했지만, 아직 달이 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스칼렛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리는 아이작을 바라보며, 최악의 상황은 몸을 던져서라도 꼭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나는 조용한 골목길로 걸어 들어갔다.

당연히 룬의 결계로 몸을 단단하게 감싼 상태였다.

언제 덮치든 반응할 수 있도록 긴장하고 있는데, 적이 보이질 않았다.

저벅. 저벅.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마력의 잔향이 진해지는 게 느껴졌다.

규칙적인 숨소리와 걷는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함 가운데에서, 나는 상대의 마력을 파악하기 위해 [마나 감응]을 최대한 활용했다.

싸움 자체는 내가 불리하다.

상대는 몸을 숨긴 채 날 습격할 거고, 나는 그 함정에 걸어들어온 입장이니까.

그때 정면에서 마력으로 만들어진 단검 하나가 날아왔다.

캉!

'정면?'

캉! 캉! 캉!

상대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날아옴과 거의 동시에 위, 오른쪽, 후방. 세 군데에서 마력이 날아왔으니까.

날아오는 마력의 검은 단순하지만 빠르고 강력했다.

단검에 붙어있는 마력의 실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해보려 해도 바로 끊어내는 탓에 제대로 추적할 수가 없었다.

'공격이 약해.'

수박이 잘 익었는지 두드려서 확인하듯, 상대는 가벼운 공격으로 내 결계의 강도를 테스트해보는 것 같았다.

캉! 캉!

내가 나아갈 때마다 마력의 단검이 날아왔고, 나는 조금 더 집중했다.

몸을 숨긴 상대의 수준은 확실히 나보다 높다.

일단 승부를 보려면 어떻게든 얼굴을 마주 해야 한다.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일단 싸울 수 있어야 가능성이 생길 테니까.

몸을 숨긴 상대방을 찾아내는 것이 빠른지, 아니면 그 전에 내 룬의 결계를 뚫어낼지의 대결이다.

캉!

몇 번이나 날아오는 마력의 검을 몇 십번이나 룬의 결계로 튕겨낸 후,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 이상해."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일단, 이 골목길.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나는 아카데미 상가의 구조를 전부 외우고 있다.

혹시나 습격을 당했을 때 도망칠 길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이미 20분이 넘도록 칼을 막으며 골목길을 돌파했다.

벌써 큰길로 나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앞에 있는 어두운 골목은 아직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슬슬 해도 지고 있었고, 밤이 되면 몸을 숨긴 상대가 더 유리하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골목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상대에게 느껴지는 살의는 진심이었다.

게다가 나를 압박하는 마력의 무거움은 수준급.

습격자의 경지 자체는 굉장히 높은 걸 알 수 있었다.

마력의 질이든, 수준이든…  나랑 비교할 수 없었다.

임솔과 레베카를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

몸이 익혀버린 강자를 만났을 때의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 비해 내게 날아오는 공격이 약했다.

마력의 질에 비해 마법이 너무 약하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 강자의 반열에 든 사람이 그런 밸런스 조절을 못 할 리가 없다.

그랬다면 애초에 강자가 되질 못했을 테니까.

각 지역의 1등이 모여도 경쟁하면 다시 1등을 뽑을 수 있듯이, 천재 중에서도 천재만이 임솔같은 강자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공격은 약하지만, 그 후속조치는 너무 뛰어났다.

자신의 위치를 들키지 않기위해 마력을 끊어내는 그 솜씨는 일류였다.

'봐주는 건가?'

악역들의 특징이긴 하지.

봐주다가 주인공에게 역전당하는 클리셰.

하지만 그딴 게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잖아.

"…."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상하게 강한 습격자.

내 목숨을 노린다면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할 텐데,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 점.

그렇다면 내게 원하는 게 있다고 판단해도 되겠지.

아니면 미친 쾌락 살인마일 수도 있지만… 이 세계관에 있는 쾌락 살인마들 중 이렇게 강한 놈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선 말이다.

그리고 습격 타이밍.

최근 내게 일어난 일을 되짚어보면 습격자를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다.

일단 판데믹의 해골 가면.

최근에 습격이 있기도 했고, 문수린과 날 노리는 건 명백하다.

하지만 그놈들은 이렇게 시간을 끌 리가 없다.

다음은 레베카.

물론 첫 만남은 습격이었지만… 역시 날 덮칠 이유가 없다.

'엄청난 강자면서 나와 연관점이 있는 사람….'

기억을 하나하나 뒤지던 나는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냈다.

'아이리스 길드.'

엘리스의 마사지를 맡은 게 바로 이틀 전이었다.

내가 걱정하며 스칼렛을 떼어놨던 이유.

아이리스 길드의 딸바보 길드장이 날 염탐하러 올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길드장인 아이작은 원작에서 그렇게 비중이 큰 인물이 아니었다.

강자인 건 맞지만, 히로인을 공략하는 야겜에서 나올만한 캐릭터는 아니니까.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얼굴이 나온 적도 없다.

그래서 설마 이렇게 덮칠까 싶었는데….

"…."

하, 그 사람 말고는 생각이 안 나네.

사실 워낙 지은 죄가 많아서 사실 문수린의 할아버지인 아카데미 이사장도 좀 무섭고 나 때문에 백아영을 뺏긴 협회도 좀 무섭다.

근데 그 사람들은 날 덮치러 오진 않을 거란 말이야.

"후우."

어차피 날 죽이려고 했다면 진작 제대로 된 공격을 했겠지.

암살자가 시간을 끌 이유가 없으니까.

이건 상대가 아이작이라고 가정하고 움직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나는 몸을 감싸던 룬의 결계를 해제했다.

그리고.

'블러드 비트.'

두근- 두근-

내 마력 회로를 팽창시켰다.

마력의 흐름이 원활해지고, 그만큼 내 주변에 퍼지는 마력의 농도가 짙어졌다.

이 상태라면 공격이 오더라도 바로 반응해서 막을 수 있다.

다른 상대라면 굳이 위험한 상태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만약 상대가 아이작이라면 통할 거다.

그에 관해 알고 있는 확실한 정보가 딱 두 개 있으니까.

엄청난 딸 바보라는 점.

다음은, 자존심이 더럽게 세다는 점.

물론 아이작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내 도발에 화가 나서 모습을 드러내 준다면 오히려 좋잖아.

공격을 더 거세게 하면 그 마력을 추적해서 위치를 알 수도 있고.

'나쁘지 않네.'

위험부담이 있지만, 어차피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억지로라도 상대를 끌어내야한다.

나는 날아오는 공격에 반응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며 골목길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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