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9화 (229/648)

밤의 황제.

암살자들 사이에서 유일신 처럼 군림하는 자.

'그가 말하면 행해라.'

아이리스 길드의 룰이자, 모든 암살자들의 룰이다.

그런 아이작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스칼렛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아이작을 보며 침을 삼켰다.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원하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테니까.

아이작은 소파에 몸을 완전히 맡긴 채 몸에 힘을 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빈틈이 보이진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아이작은 먼저 입을 열었다.

"엘리스는 잘 있지? 들리지도 않고 바로 온 거라서 얼굴을 못 봤네."

"지금쯤 저택에서 쉬고 계실 겁니다. 연락을 넣을까요?"

대체 왜 온 걸까.

유명한 딸 바보인 아이작이 엘리스에게 말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찾아온 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다.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니고.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이호연 알지?"

"... 예."

스칼렛은 간신히 당황을 숨겼다.

아이작의 입에서 상상하지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엘리스랑 마사지 계약을 맺었다는데... 맞아?"

"맞습니다."

"20살 남자에, 엘리스랑 동급생이고?"

"예."

"흐음...."

아이작은 고개를 까딱 까딱거리며 침음을 흘렸다.

"네가 보기에 어때. 혹시 계약 간에 마사지가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야?"

'역시 그걸 의심하는구나.'

사실 자신의 딸이 마사지 경력도 없는 20살 남자한테 엄청난 돈을 바치며 마사지를 받으러 다닌다면 스칼렛도 저것과 비슷한 반응일 거다.

심지어 이호연의 얼굴과 주변에서 나오는 소문까지 더하면 정말 불안하겠지.

물론 그건 자기 일일 때고. 지금은 남의 일이다.

스칼렛은 이호연을 변호해야 한다.

"진실은 아가씨만 알겠지만... 제가 봐온 아가씨는 그런 행동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아, 응. 그렇지. 맞아. 엘리스는 똑똑하니까... 그럴 리는 없어."

아이작은 다시 눈을 찌푸리며 고민을 시작했다.

그가 사랑하는 딸이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생각이 흐르는 곳에 있는 건 당연히 이호연뿐이었다.

"스칼렛. 내가 찾은 고급 마사지사들 보다 그 녀석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

스칼렛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전에 있던 마나 마사지사들은 잘 모르지만, 아마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었겠지.

그 사람들과 이호연을 비교하는 건 말이 안된다.

게다가 어떻게든 이호연을 변호해보려 했지만, 저 남자의 기세가 너무 무서웠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자신도 이상한 꼴을 당할 것만 같았다.

"그 마사지라는 거 말이야.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엘리스 아가씨가 말하기로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엄청난 효과라고……."

"그래? 마사지 간에 다른 흑심은 없었고? 엘리스의 말이 아니라 네 의견을 얘기해."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 잘 몰라?"

허공을 바라보며 스칼렛과 대화를 나누던 아이작은 스윽-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긴장한 스칼렛과 눈을 마주쳤다.

"잘 모른다고? 스칼렛?"

"... 일단 마사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고, 또...."

"스칼렛. "

"... 예."

'역시 안 되는구나.'

사실 엘리스가 아니라 스칼렛의 의견을 얘기하라고 했을 때 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스칼렛은 예상했다.

어떻게든 속여넘기려 했지만 역시 이 정도에 넘어갈 남자가 아니었다.

아이작이 직접 찾아온 순간, 이호연과 만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지금 나한테 거짓말 하는 거야?"

"… 아닙니다."

밤의 황제.

그는 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다.

거짓말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은 모두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정보길드에 최적화된 능력이었다.

그걸 아는 스칼렛은 최대한 돌려 말했는데… 역시 통할 리가 없었다.

"똑바로 말해. 이호연에게 흑심은 없었어?"

목숨 걸고 거짓말을 해볼까 했지만, 그래봤자 더욱 의심당할 뿐이다.

"모르겠다."라고 하든, "아니다."라고 하든 안된다.

뱅뱅 돌려서 거짓말을 안 할 순 있지만, 그 정도를 눈치채지 못할 남자가 아니다.

엄청난 술수를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괜히 자신과 이호연의 관계가 들키기라도 하면 그게 더 문제다.

결국 스칼렛은 최대한 긴장한 티를 내며 말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는 듯.

선량한 생도 한 명이 피해를 보는 게 싫었다는 듯.

"... 흑심이 없다고 하진 못하겠습니다."

"안내해. 지금 당장."

"… 예."

아이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조금 긴장이 풀린 스칼렛은 심호흡을 했다.

후우-

안 좋은 상황이지만, 최악은 아니다.

만약 자신이 계속 이호연에게 붙어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리스 길드와 이호연 사이에서 이중 스파이를 하고 있는 걸 들켰다면....

꿀꺽.

스칼렛은 침을 삼켰다

이호연의 직감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야수의 감각인지 뭔지 해서 개소리인 줄 알았는데… 역시 될 놈은 되는 모양이다.

*

일요일 오후.

나는 노트를 펴고 천천히 다음 주의 계획을 생각했다.

"루시 루미랑 놀아야해. 아, 그러고 보니 아영 씨도 복귀하잖아."

[백아영 만나기]

[루시 루미랑 놀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나는 대로 노트에 정리했다.

- 언니. 이건 뭐야?

- ...! 그, 그건 건들면 안 되는 거야.

- 엥, 그거 내 방송용....

저쪽에서 여자들끼리 하는 대화가 들렸지만, 일단 나는 노트를 바라봤다.

"교수님하고 마법 박람회... 이건 확정. 수린 누나랑 약속은 없고... 엘리스랑 마사지도 한 번은 할 것 같은데."

[임솔 교수님이랑 박람회 가기.]

[엘리스랑 마사지 (?)]

[수린 누나랑 만나기 (?)]

진짜 몸이 3개 정도만 있으면 편할 것 같은데.

스케줄이 뭐 이리 많은지.

"레베카 씨랑도 만나야 하는데. 룬의 결계에 대해 배울 게 많잖아."

[레베카한테 룬의 결계 배우기 (?)]

- 야! 내 초콜릿 내놔!

- 언니! 나 도와줘!

- ... 릴리아나 씨. 그냥 주시면....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생각을 멈췄다.

도저히 집중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의 근원지인 주방으로 가자 들리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치킨 먹을까?"

"릴리아나 언니. 치킨 말고 다른 거 먹어!"

"... 저도 치킨은 좀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헉, 그러면 구운 치킨은?"

저 미친 서큐버스는 또 치킨에 눈이 돌아갔구나.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며 릴리아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야야. 애들 먹고 싶은 거 시켜줘라."

"쳇. 알았어."

"릴리아나. 그리고 네 방 좀 치워. 침대 밑에 네 방송용 옷이 굴러다니잖아."

"넵~ 알겠습니다!"

"... 야."

"아, 아파. 아앙...! 알았어, 알았다고!"

"애 정서교육에 얼마나 안 좋겠냐고요. 응?"

릴리아나의 볼을 꼬집으며 설교를 조금 더 이어갔다.

"흑, 흐으으...."

나는 볼을 잡고 흐느끼는 릴리아나를 내버려 둔 채 고민을 했다.

'진짜 큰 집을 구해야 하나.'

내가 집중할 공간도 없고 주방과 화장실, 식탁도 작다.

이건 다 집이 좁아서 그런 거잖아.

사람이 4명이나 되는데 언제까지 기숙사에서 살 순 없다.

최근에 습격을 당한 것도 그렇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엘리스처럼 좋은 집이나 하나 구해서 살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난 김에 나가야겠다."

지금 한가할 때 안 가면 분명히 또 미룰거다.

다음 주에는 할 일이 많으니까.

지금까지 미루다가 이렇게 됐으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

"응? 어디가?"

"기숙사는 너무 좁은 것 같아서. 집이나 보러 가려고."

"나도 같이 가!"

"안돼. 집에서 쉬고 있어."

릴리아나가 따라와봤자 도움은 안 되고 시끄럽기만 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확실하다.

"아, 왜! 나도 데려가!"

징징대는 릴리아나를 무시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릴리아나는 계속 따라오겠다고 했지만, 다행히 남다은과 남다희가 치킨을 먹어준다는 말에 진정했다. 

"고마워. 다은아."

"아니야. 잘 갔다 와."

릴리아나가 다희랑 노는 동안 남다은은 현관에서 날 배웅했다.

굳이 안 그래도 될 텐데 자기가 이러는 게 편하다고 해서 내버려 뒀다.

"갔다 올게."

"네. 다녀오세요."

"뭐야 그건?"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는거야.

"... 그냥 해봤어. 배웅하는 느낌으로."

"큭."

살짝 얼굴이 붉어진 남다은의 허리를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100 ] ( + 0.3)

- [ 성욕 : 80 ]

- [ 식욕 : 35 ]

- [ 피로도 : 45 ]

현재 상태 : 역시 이런 농담은 너무 재미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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