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6화 (226/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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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베카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기숙사에 도착했다.

룬의 결계 안쪽의 공간을 가속한다는 말도 안 되는 활용 덕에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할 수 있었다.

"... 겉으로 보기엔 이상이 없네."

기숙사는 겉 보기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가면 눈치챌 수 있었다.

릴리아나의 마력이 느껴졌다.

"결계가 쳐져 있어. 저건 나도 모르는 마력이야."

레베카도 결계를 느꼈는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네. 제가 아는 사람의 마력이에요. 빨리 들어가야 해요."

나는 최대한 빠르게 기숙사로 향했다.

띠링-

"릴리아나! 남다은!"

문을 부술 듯이 열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밖에선 결계때문에 보이지 않던 참상이었다.

처참하게 부서진 창문과 벽들.

찢어져 버린 침대와 TV,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냉장고나 옷장 같은 것도 모두 두 동강 나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거실 한 가운데에 사지가 잘린 채 릴리아나의 마력에 묶여있는 마인이었다.

마인의 옆에는 익숙한 해골가면이 떨어져있었다.

"... 뭐야."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 옆에 서 있던 둘을 바라봤다.

상대적으로 깔끔하지만 몸에 피가 튀어있는 릴리아나와, 아예 피범벅이 된 남다은이었다.

"어, 왔구나? 우리가 제압해놨어. 잘했지?"

"... 너무 보지마. 피 때문에 보기 안 좋아."

"...."

괜히 걱정한 건가?

아니, 그래도 달려오는 게 맞는 거지.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릴리아나와 남다은에게 다가갔다.

"하아, 다행이야. 진짜 걱정했어."

"후후. 내가 당할 리가 없잖아."

"피 묻었어. 안지마...."

나는 남다은의 말을 무시한채 릴리아나와 남다은을 끌어안았다.

이번엔 정말 큰일 날 뻔했으니까.

살아줘서 정말 다행이고 고마웠다.

"다희는?"

"... 너무 보기 안 좋아서 릴리아나 씨가 마법으로 재워놨어."

"음, 교육에 안 좋긴 하겠다. 아무튼, 진짜 다행이야. 잘 해줘서 고마워. 다은이도 릴리아나도."

"고마우면 오늘 밤에... 알지?"

릴리아나는 내 가슴을 콕콕 찌르며 야릇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다치지도 않았나 보네.

"... 나도."

"응. 당연하지. 다은이도."

슬쩍 끼어드는 남다은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둘을 끌어안고 안도하고 있을 때.

"오늘 밤이면 나도 껴도 되는 거지?"

뒤에서 레베카가 말을 걸어왔다.

"으악! 저건 누구야?!"

"... 호연아. 이쪽으로 와."

갑자기 나타난 레베카를 보고 둘은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릴리아나는 내 뒤에 숨었고, 남다은은 날 끌어당겼다.

하긴, 저 붉은 머리 마녀를 처음 보면 놀라겠지.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괜찮아. 얘들아. 이 사람은 내 지인이야."

"지인? 뭐 하는 사람인데?"

릴리아나는 아직도 당황한 듯 남다은의 뒤에서 말을 이었다.

레베카.

레베카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사실 나도 오늘 만난 사인데.

"어... 내 마법 스승이야."

"너희 남자친구의 정액이 필요해."

"...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좀."

기껏 어떻게 소개해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너무하네 진짜.

정액 도둑도 아니고.

"왜? 맞잖아."

하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릴리아나와 남다은에게 레베카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룬의 일족…? 처음 들어봐."

"나도 모르겠는뎅."

릴리아나와 남다은에게 레베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모르는 게 정상이야. 음, 소수 민족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사전 지식이 없는 둘에게 설명하는 걸 걱정했지만, 다행히 둘 다 큰 저항없이 받아들여 줬다.

"그 소수 민족이 네 정액은 왜 받아 가려고 하는 건뎅?"

"그게 설명하자면 긴데… 레베카가 룬의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거든. 일족을 부흥하기 위해서 마법을 잘하는 내 유전자를 원하는 거야. 그 대신 나는 마법을 배우기로 했고."

참 불친절한 설명이지만, 이것 말고 할 말이 없는걸.

"… 호연이가 좋다면 괜찮겠지."

"진짜 어떻게든 여자를 꼬시는 재주가 있다니까? 뭐, 나도 상관없어."

남다은은 내가 좋다면 괜찮다고 하고, 릴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믿음직한 여자들이야.

"역시 네 여자친구들 맞지? 딱 봐도 예쁜 게 끼리끼리 만나는 것 같더라."

레베카는 내 뒤에서 릴리아나와 남다은을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네. 제발 싸우거나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요."

"능력이 좋아서 여자가 많네. 그래도 임신은 나를 먼저 해줬으면 좋겠어."

"…."

쩝.

"이호연, 이거 어떻게 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릴리아나는 쪼그려 앉은 채 쓰러져있는 마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 글쎄. 이 새끼는 어떻게 하지."

이 해골가면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 진짜.

"고문할까? 내가 고문의 장인인데."

"… 또 스칼렛처럼 꼬리로 쑤시려고?"

"네가 원한다면? 더럽긴 하지만 꼬리로 쑤시다 보면 있는 거 없는 거 다…."

"미쳤냐? 더럽잖아. 그리고 다른 남자는 건드리지 마. 아예 생각도 하지마. 알겠어?"

스칼렛은 여자니까 괜찮지만 남자 새끼랑 릴리아나의 몸이 닿게 할 순 없다.

"헤헤… 알았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지만 릴리아나는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냥 저기 뭐야… 아카데미에 넘기면 돼. 거기서 고문해줄 거야."

길 스티븐을 고문했던 아카데미의 고문 담당자가 있을 거다. 그쪽에 맡기면 되겠지.

"그럼 이건 어떻게 해? 방도 치워야 하잖아. 우리가 직접 치워야 하는 거 아니야?"

"음…."

난 쓰러져있는 마인을 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이 해골가면.

분명 문수린이 조사했던 적이 있다.

전 부회장인 신동민이 연관된 일이라고 했었지.

'수린 누나한테 말하면 되려나?'

해골가면을 조용히 묻는 방법이 있고, 사건을 키워서 문수린에게 도움을 받는 방법이 있다.

레베카가 있으니 조용히 묻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때 시야의 한구석에서 유리 조각을 쓸고 있는 남다은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집도 치워야 하는구나."

박살난 가전제품이나 창문. 

마인의 시체는 숨겨도 이건 숨길 수 없다.

아이 씨 귀찮네 진짜.

콱!

"끕…."

쓰러져있는 해골가면의 배를 발로 차고 남다은에게 다가갔다.

"다은아. 조금 이따 같이 치우자."

남다은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열심히 빗자루를 움직였다.

중요한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이거 클린 마법으로 치우면 되는데…."

슥- 슥-

'뭐 하는 거야?'

멍때리며 빗자루를 움직이는 남다은의 상태창을 열었다.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100 ] ( + 0.2)

- [ 성욕 : 84 ]

- [ 식욕 : 40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임신시키는 걸… 원하는 건가?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을 텐데. 그럼 다희는 어떡하지…?

"…."

아, 두통이 오는 것 같다.

잠시만.

상황을 좀 정리해야겠어.

너무 복잡하다.

먼저 해골 가면부터다.

"일단 이 해골가면을 처리해야 하는데, 레베카 씨. 처리해줄 수 있어요?"

나는 사지가 잘린 채… 피를 쏟고 있는 마인을 가리켰다.

마인답게 생명력이 강해서 아직도 살아있다.

"뭐, 치워줄 순 있지. 겸사겸사 방도 좀 치워줄까?"

"방을요? 클린 마법은 저도 쓸 수 있어요."

"애기 아빠의 여자친구들이랑 친해질 겸… 보여줄게. 룬의 결계를 극한까지 단련하면 가능한 일."

레베카는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룬의 결계를 펼쳤다.

"네? 룬의 결계…?"

난 갑자기 룬의 결계를 펼친 레베카를 바라봤다.

레베카는 자신감있는 표정으로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잘 봐. 애기 아빠 정도 재능이면 언젠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레베카의 손에서 나온 마력이 룬의 결계와 합쳐지고, 공간 안쪽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무언가... 오래동안 버스를 탄 듯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툭. 투둑.

타다닥.

그리고 곧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바닥에 있던 유리 조각들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박살 난 TV 화면이 지지직거리고, 냉장고 안에서 흘러나온 음식들이 떠올랐다.

"어, 으응?"

남다은은 당황한 듯 빗자루를 놓았다.

쓸어 담았던 유리 조각이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쓰레받기에 모여있던 잔해물들도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게… 뭔…."

지직- 지직-

지이잉-

냉장고가 두 동강 나면서 빠져나온 음식물들이 다시 빨려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달라붙은 냉장고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탁- 타닥- 탁-

바닥에 위험하게 떨어져 있던 유리 조각들이 되감기를 하듯 창문으로 날아갔다.

한 조각 한 조각 정교한 퍼즐처럼 다시 맞춰진 창문은 작은 금도 없이 깔끔했다.

그 외에도 벽지에 나 있는 흠집이나 부서진 벽, 옷장도 모두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와, 와… 뭐야?! 이런 마법 들어보지도 못했어! 너 대체 어떤 스승을 구한 거야?"

"엄청… 대단하네."

릴리아나와 남다은도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구경했다.

물론 나도 그 옆에서 놀라고 있었다.

아니, 놀란 건 내가 제일 놀랐다.

'도대체 나는 룬의 결계를 왜 이렇게 못 쓰고 있던거지?'

잠시 후, 가운데에 쓰러져있는 마인을 제외한 거실이 전부 원래대로 돌아왔다.

평범한 기숙사에 덩그러니 사지가 잘린 마인이 쓰러져있는 광경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 레베카 씨?"

"하아… 오랜만에 하려니까 힘드네. 나도 늙었어."

레베카는 지친 듯 땀을 흘렸다. 

"아니,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거에요?"

이거 너무 사기 능력이잖아.

"너무 놀라지마. 살아있는 건 돌릴 수 없어. 마력이 담겨있지 않은 것들만 돌릴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보기보다 어려워."

"딱 봐도 말이 안 되는데요."

시간을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아예 감이 오질 않는다.

대체 어떻게 시간을 돌리는 거야?

"그러니까.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지만 훨씬 어렵다는 거야. 나중에 나한테 배워."

"… 감사합니다."

레베카랑 아이를 낳으면 노후 걱정은 없겠네.

자식들이 얼마나 강할지 무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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