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화 (225/648)

"휴우."

이호연과 헤어진 후 문수린은 훈련장에 들렸다.

만남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보내줄 수도 있다고 했어.'

집에 들어가면 잘 들어왔다고 연락도 해달라고했고.

이건 사진을 줄테니 연락하라는 말 아닐까?

"후, 후훗...."

문수린은 혼자 큭큭 웃으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응? 에어컨이 켜져 있네. 음, 뭐 어때."

나갈 때 껐던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지. 

아마 까먹었을거다.

옷걸이에 겉옷을 걸어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문수린은 문득 생각했다.

"이거 그거 아니야? 썸? 지금 썸 타는건가?"

만나서 밥도 먹고 서로 사진도 보내주고. 안부를 묻고. 둘 사이에 은밀하게 흐르는 기류까지.

이건 분명히 썸이다.

문수린은 혼자 설레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였다.

이호연에 대한 호감은 첫 만남부터 있었다.

사실 얼굴이 취향이기도 했지만... 보면 볼수록 속까지 마음에 드는 남자였다.

능력도 있고 자신과 취향도 맞는다.

그런 남자와 썸이라니.

"흐흣. 흐흐."

문수린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의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곤 스마트 워치의 촬영 모드로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자기 입으로 말할 말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어디서 꿇리지 않는다.

다른 예쁜 여자들한테도 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찰칵찰칵.

꽤 만족스러운 사진을 뽑아낸 문수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보내줄 수 있다는 이호연의 말.

문수린은 놓치지 않았다.

뭐든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안부를 물으면서... 내 안부를 먼저 전달하는 거다.

잘 들어왔는지 확인시켜주는 척 자신의 사진을 보내고, 이호연의 사진도 받을 계획이다.

'잠시만, 너무 작위적인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사진을 보낸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보내는 것도 좀 그렇잖아.

"아니야. 우린 썸을 타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어."

약간 고민했지만, 곧 자기합리화를 끝냈다.

썸을 타는 남녀는 뭐든 된다고 들었으니까.

후후후.

문수린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이호연의 사진들을 집어 들었다.

컬렉션으로 모으던 것들을 오늘 버리려고 했는데... 다행히 호연이가 괜찮다고 해줬으니 다시 사진을 방에 장식할 생각이었다.

누군가 이 방을 보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사방에 사진이 붙어있을 테니까.

호연이에 관련된 사진 중에 잘 나온 것만 모을 생각이었는데, 모든 사진이 잘 나오다 보니 너무 많아졌다.

그 외에도 핸드폰으로 이호연의 목소리를 녹음하기도 했는데, 이건 스마트 워치에 보관 중이다.

"후후... 후후훗... 아, 일단 씻어야지."

계속 이호연에 관한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손도 안 씻었다.

평소 집에 오자마자 씻으며 청결에 신경 쓰는 자신은 절대 하지 않을 실수였다.

문수린은 씻기 위해 옷을 벗으려 했다.

그때.

띠링-

스마트 워치가 울리며 메시지가 도착했다.

"누구지?"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으로 도착한 메시지에는 한 사진이 담겨있었다.

자신이 집에 들어가는 뒷모습이었다.

"... 뭐야."

문수린은 순간 기분이 확 더러워졌다.

파파라치, 아니 이런 건 사생팬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사생팬 중에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사진은 그렇다 쳐도 도대체 자신의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걸까.

띠링-

문수린이 미간을 좁히며 스마트워치를 바라보고 있자 메시지가 더 도착했다.

이번엔 동영상이었다.

"...."

동영상을 재생하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문수린의 집 안 거실이 촬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문수린의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소파에 앉기도 하고 TV를 틀었다가 끄기도 했다.

꺼져있던 에어컨을 켜고 옷장에 있는 옷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았다.

"...."

꿀꺽.

문수린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 뭐야.

평범한 사생팬이 아니다.

이건, 이건... 당장 신고해야 한다.

여러 번 집을 둘러보던 남자는 욕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고, 그 상태로 영상은 끝났다.

"3시 40분?"

괴한이 욕실로 들어갈 때 비췄던 거실에 있던 시계가 가리킨 시간이다.

문수린은 스마트 워치로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 3시 43분.

"... 어?"

3분 전.

이 영상은 촬영되자마자 내게 보내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문수린은 그 즉시 방의 문을 잠갔다.

만약 자신이 이호연 생각에 빠지지 않았다면.

집에 오자마자 손 씻기를 위해 바로 욕실로 향했다간 어떻게 됐을까.

꿀꺽.

문수린은 침을 삼켰다.

"신고, 신고를 해야 해...."

이럴 때가 아니다. 다른 게 아니라 신고를 먼저....

똑 똑 똑.

문수린은 스마트 워치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방문을 두드리는 정중한 노크 소리였다.

물론, 아무리 정중하다고 해도 집안에서 들리면 안 되는 소리다.

문수린은 아카데미 보안팀에 빠르게 연락했다.

아마 5분 안에 도착하겠지.

똑 똑 똑

문제는 그 몇 분을 버틸 수 있냐인데....

"안 열어줘요?"

"... 당신 누구야."

문수린은 대화를 시도했다.

아주 잠깐.

잠깐의 시간만 끌면 된다.

그러면 아카데미의 보안팀이 와서 안전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콰득-

하지만 괴한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문의 위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괴한이 손가락으로 문을 뚫은 후에 크게 뜯어낸 것이다.

"왜, 안 열어줘요?"

"흣...."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괴한의 얼굴이 보였다.

문수린은 온몸에 올라오는 닭살을 느꼈다.

공포가 극에 달하니 작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시야에 보이는 건 박살 난 문 사이로 보이는 기괴한 해골 가면.

해골 가면...

"해골 가면?"

익숙한 가면이다.

저걸 자신이 기억하지 못 할 리가 없다.

"호연이...."

이호연을 덮쳤던 범인이 쓰고 있던 가면과 똑같았으니까.

"호연이? 아, 이호연 말이군요. 그쪽에도 한 명 갔습니다. 아마 벌써 끝났겠네요."

"...."

마인의 말을 들은 순간 문수린의 머리가 차가워졌다.

이 감정은 분노.

너무 무서우면 소리도 못 지르듯이,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

문수린은 오늘 그걸 두 번 다 경험했다.

'가야 해.'

이호연에게 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구해야 해.

문수린의 몸을 채웠던 공포와 당혹감, 당황스러움 등이 사라졌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이호연을 만나러 가는 일이다.

"크큭,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이호연이 아니라 당신의 안위일 텐데요?"

"...."

까득-

말을 이어가던 마인의 해골 가면에 금이 가더니, 반으로 쪼개졌다.

"... 어느 틈에?"

그 일련의 행위를 S급 마인인 자신이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이건 무언가가 잘못....

우둑- 두두둑-

"끄읍...?!"

사방에서 압력이 가해짐과 동시에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해골 가면에게 돌진했다.

겨우 가전제품 같은 걸맞고 다칠 내구도는 아니었지만,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마력이 문제였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마력에 물리력까지 더해진 것이다.

게다가 점점 강해지는 압박에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

문제는, 이걸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사 결과와 너무 달랐다.

이렇게 강했다면 기습을 했을 거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우선하지 않고 전력을 다했어야 하는 상대다.

"죽어."

문수린 자신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각성이 시작되고 있었다.

극적인 경험이나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수린은 원래 천재였다.

경지는 이미 충분했으나 큰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항상 몸을 짓누르던 학생회장의 압박감과 사람들의 관심.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게 생기면서 그녀는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당신들은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렸어."

이제야 썸을 타기 시작했는데.

누구 맘대로 이호연을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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