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 (224/648)

*

"아, 잠시만요. 나 방금 깨달음 얻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해. 네 아이를 낳게 해라!"

레베카는 훈련장에서 나온 이후로 계속 내게 달라붙었다.

뭔가 더 뜯어먹은 후에 섹스하고 싶은데….

룬의 결계에 있는 가능성을 더 뽑아내고 싶었다.

나는 아직 배가 고팠다.

"좋은 유전자. 잘생긴 얼굴. 완벽한 애기 아빠야. 우리 아이들은 축복받았어. 설마 이런 사람을 만나다니!"

레베카는 흥분한 표정으로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직 만들지도 않았잖아요…."

"처음에 쌍둥이를 낳으면 캐치볼은 할 수 있겠지? 노후에는 내 아이들끼리 축구를 하는 걸 보고 싶어. 룬의 결계 속에서 말이야."

"…."

이게 손 잡기도 전에 손자까지 생각한다는 건가?

실제로 보니 진짜 무섭네.

따르르르르르르-

그냥 한 번 해줘야하나. 고민하던 때.

내 스마트 워치가 엄청나게 울리기 시작했다.

"어?"

이 알림은 기숙사에 설치해놓은 마법진이 울리는 소리다.

원래 설치되어 있던 마법석은 쓰레기라서 내가 좋은 거로 갈아 끼웠거든.

'지금까지 울린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이 마법진은 좀도둑한테 울리는 게 아니다.

S급 이상의 등록되지 않은 마력이 감지되었을 때 발동하는 마법진이다.

"… 빨리 가야 해."

나는 바로 몸을 움직였다.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

"그건 뭐야. 전화?"

"잠시만요. 레베카 씨. 우리 집에 큰일이 난 것 같아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너 그렇게 도망가려는 거지."

레베카는 살짝 뾰루퉁한 표정으로 날 붙잡았다.

내가 마법도 알려줬는데 갈거냐는 얼굴이다.

"아니, 진짜 중요해요. 이거 방어 마법진이에요. 그것도 S급 이상에만 울리는 마법진."

"… 큰일 난 거야?"

"네. 빨리 가봐야 해요."

"흠… 그럼 나랑 같이 가."

"어…."

나쁘지 않은데?

어차피 릴리아나와 남다은은 다른 여자가 생겨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게다가 적이 너무 강하면 대처하기도 쉽고….

아이씨. 지금 이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

"알았어요. 일단 빨리. 최대한 빨리 가요."

"오케이. 순식간에 가자."

*

"여기인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남자 기숙사.

해골 가면을 쓴 마인은 나무의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현재 타깃인 이호연은 외출 중이었다.

빨리 끝내고 여자나 안으러 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보수를 먼저 받아버렸으니까.

이번 일은 확실하게 완수해야 한다.

이호연이 올 때까지 여기서 대기하다가 집에서 덮치는게 제일 안전하고 조용히 처리할 수 있다.

'더럽게 지루하네. 쯧.'

하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찰나. 

그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타깃의 집 앞으로 택배가 온 것이다.

현재 타깃인 이호연은 남자 기숙사에서 혼자 생활 중이었으니 택배가 오는 것 자체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도 없는 기숙사의 문이 슬쩍 열렸다는 것이다.

'타깃은 혼자 살텐데?'

해골 가면은 눈을 찌푸리곤 청각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문 사이로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 이거 드디어 왔어. 내가 시킨 거거든? 이게 얼마나 맛있냐면….

- 릴리아나 씨. 호연이가 오기 전에는 문 열지 말라고 했잖….

- 괜찮아 괜찮아. 이미 몇 번이나 해봤….

'누구지?'

해골 가면은 문에 더욱 집중해서 바라봤다.

잠시 후, 문밖으로 슬쩍 머리를 내민 여자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택배를 가져갔다.

미리 고지받은 적 없는 인물이었다.

당장 임무를 중단하고 다시 정보를 수집하는 게 맞지만… 잠깐 보였던 그 여자의 외모가 마인의 본능을 일깨웠다.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여자를 끼고 사는구먼?"

개 같은 새끼.

누구는 땡볕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잠시만.'

이미 저곳에 있는 이상 저 여자들도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이다.

이호연의 암살을 위해선 저것들도 같이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미리 정리해놓는 게 좋지 않을까?

암살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방해 요소는 최대한 없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 곧 죽을 년들이라면 미리 맛봐도 되겠지.'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고민을 끝낸 해골가면은 그대로 그림자를 타고 기숙사로 들어갔다.

*

한편, 릴리아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택배를 뜯었다.

상자 안에는 과자나 냉동식품 같은 게 들어있었는데, 확실히 맛있어 보였다.

"이거 맛있겠지? 응? 내 말 맞잖아."

"네. 그렇긴 하네요. 그래도 릴리아나 씨이…?"

기뻐하는 릴리아나의 말을 받아주던 남다은은 이상함을 느꼈다.

요즈음 훈련을 거듭함에 따라 자신의 경지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배하는 공간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창문쪽에서 익숙하지 않은 적의가 느껴졌다.

"…."

"언니언니. 이거 봐봐 이거."

"다희야."

남다은은 감자칩을 들고 다가오는 남다희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응?"

"우리 밥 먹기 전에 씻을까?"

"갑자기?"

"응. 깨끗이 먹어야지. 언니는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너 먼저 씻어."

"으음, 알겠어!"

"깨끗이 씻어야해. 알았지?"

"응응!"

남다희가 욕실 들어간 후.

남다은은 거실에 있던 검을 들었다.

이호연이 퇴원하면서 준비해준 검이다.

"… 릴리아나 씨. 혹시 누굴 만나기로 약속하신 건 아니죠?"

과자를 보고 기뻐하던 릴리아나도 어느새 표정을 바꾼 상태였다.

그리곤 귀찮은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여기 집주인이 적이 좀 많거든. 같이 살려면 네가 이해해야 해."

"호연이라면, 그 정도는 안고 갈 수 있어요."

"그렇지? 이호연 정도면 적이 많아야 밸런스가 맞잖아."

두 여자는 살짝 웃음을 지은 후에 창문을 바라봤다.

"어쩔 수 없는 거죠. 꽃 주변에는 나비가 모이니까."

"쯧. 과자 먹고 싶었는뎅."

릴리아나가 혀를 차며 택배 상자를 내려놓자마자, 기숙사 안으로 마력이 쏟아졌다.

쩌걱- 쩍-

쨍그랑!

엄청난 마력의 폭포에 기숙사의 창문이 터져나갔고, 유리 조각들이 릴리아나와 남다은을 덮쳤다.

"안돼!"

촤아악-

"괜찮아요."

남다은은 가벼운 횡베기로 날아오는 유리 조각을 제거했다.

"저거 부서지면 춥단말이야!"

"호연이가 다시 만들어주지 않을까요?"

저벅저벅-

깨진 창문으로 해골 가면 쓴 남자가 걸어왔다.

"… 당신 누구야?"

"미안해. 아가씨들. 남자친구를 죽이고 싶은 분이 계시거든."

해골 가면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릴리아나와 남다은의 얼굴을 감상했다.

"아, 결계를 쳐놨으니 소리쳐도 아무도 안 와요~."

"역시 이호연이 문제라니까. 또 누구한테 원수를 진 거야."

"그러니 줄을 잘 탔어야지. 아가씨. 지금이라도 나한테 올래? 잘 빠는 사람 한 명은 살려줄게."

"… 쓰레기 같은 마력. 당신, 마인이네요."

"으흐, 알아챘다면 어쩔 수 없고."

해골 가면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자신이 마인인 걸 알아챈 것도 그렇고, 방금 공격을 막은 것도 그렇고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봤자 S급 마인인 자신에게 닿지는 못한다.

무표정한 여자의 마력은 약했고, 그 옆에 있는 꼬리가 살랑거리는 여자의 마력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쓰읍. 예뻐. 큭. 과연 신음소리도 그렇게 예쁠까? 응?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너희 같은 상등품은 오랜만이거든."

"흐음…."

남다은은 조용히 해골가면을 바라봤다.

틈을 찾기 위해서.

"응? 왜 그래. 내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죽어야하는데?"

"이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서…."

서걱-

"그게 무슨… 응?"

남다은이 허공에 검을 휘두렀다.

그와 동시에.

철푸닥-

해골가면은 찰흙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따라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뜯겨나간 어깻죽지와 떨어져있는 왼 팔을 발견했다.

"… 어?"

공간참.

공간을 뛰어넘는 베기.

남다은의 권능을 이용한 기술이었다.

"나를 욕하는 건 몰라도 호연이를 욕 하는 건 안돼."

"끄흐으으윽?!"

팔이 없음을 인지하자마자 고통이 몰려온 해골 가면은 나머지 팔로 피가 뿜어지는 어깻죽지를 붙잡았다.

"와, 너 진짜 세구나."

짝짝.

릴리아나는 상황에 맞지 않게 손뼉을 치며 남다은을 칭찬했다.

"보조 부탁드려요. 릴리아나 씨. 피해가 방 밖으로 안 나가게 도와주세요."

"오케이."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아직 여기 있는 걸 들키기도 싫고.

"이, 이 씨발련들이… 큽?!"

릴리아나의 검은 마력이 해골가면의 발을 휘감았다.

"씨발련이 뭐야. 이 못생긴 새끼야. 욕설 플레이는 이호연밖에 못 하거든?"

지옥의 계약서로 인해 릴리아나의 마력은 이호연보다 약간 적은 상태로 유지된다.

반대로 말하면 이호연이 강해질수록 릴리아나가 사용할 수 있는 마력도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호연의 경지가 오를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뭐야, 나 왜 이렇게 강해졌지?"

릴리아나는 화풀이로 쓴 마법에 강해보이는 상대가 당황하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무슨… 창년들주제에…."

해골 가면은 당혹한 듯 주변을 살폈다.

S급 마인인 자신이 겨우 여자 둘에게 몰리고 있으니까.

"창녀라는 말… 막상 이렇게 들으니까 나쁘지 않네요."

"우리 업계에서는 창녀가 칭찬이야~."

스릉-

"빨리 끝낼게요. 릴리아나 씨."

웅웅-

남다은의 검은 마력을 잔뜩 머금은 채 공간을 가를 준비를 했다.

"다희가 나오기 전에 끝내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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