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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철혈 병원 특실.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서 담당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퇴원은 편할 때 하시면 됩니다. 호연 생도 요청 때문에 잠깐 미뤘던 거지, 원래부터 몸은 정상이었으니까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유명인들은 자주 요청하거든요. 대중의 시각은 피곤하니까요."
남다은의 일을 처리하느라 퇴원을 미뤘었는데, 의사가 좋은 쪽으로 착각을 하는 바람에 따로 의심받지는 않았다.
"그, 백아영 씨는 뭐하고 계세요?"
슬슬 올 때가 됬는데, 보이질 않네.
"어제 긴급환자가 많이 생겨서 지금 쉬고 계실 겁니다."
"아하…."
하여튼 일 참 열심히 한다니까.
나 간호하러 왔으면 나만 간호해줘야지.
직업정신이 너무 투철해.
담당의사는 몇 가지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고 밖으로 나갔다.
"퇴원… 하긴 해야지."
사실 나가기 귀찮다.
여기 있으면 매일 백아영이랑 놀면서 누워있으면 되니까.
물론 그럴 순 없다.
아직도 공략 못 한 히로인들이 많이 남았거든.
'오늘은 글렀으니까 내일부터 아카데미에 가면 되겠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백아영이었다.
"아영 씨?"
"하으… 여보… 이제 퇴원한다고 해서 왔어요."
백아영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깊게 생겨있었고,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내게 다가왔다.
"어제 긴급 환자 때문에 밤새웠다면서요. 왜 왔어요."
"퇴원하는 거 도와주려고… 후우."
"고맙긴 한데… 아니다. 고마워요."
저렇게까지 해준다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나는 백아영의 호의을 받으며 퇴원 준비를 했다.
사실 딱히 준비할 건 없긴하지만, 도와준다니까.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야죠. 아영 씨도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거 아니에요?"
"이번 주말까지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
"으음. 그렇구나."
백아영과 잡담을 하며 퇴원 절차를 밟았다.
일주일이 넘게 지내던 병실을 나가려니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아카데미에서 기다릴게요. 여보."
"응… 여보. 곧 갈게."
토닥토닥-
백아영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철혈 병원을 빠져나왔다.
'…일단 기숙사로 갈까.'
내일부터 아카데미에 가려면 나름 준비도 해야 하고.
큰길을 지나 아카데미 기숙사로 향했다.
웅웅-
'마나 회로가 확실히 더 좋아지긴 했네.'
내 주변에 인식 방해 결계를 강하게 둘러쳤다.
인터넷에 내가 퇴원한다는 기사도 뜨고, 병원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강한 결계를 치니까 확실히 느낌이 왔다.
다치기 전보다 마나 회로의 효율이 높아졌다.
'좋다 좋아.'
무력이 강해지는 건 언제든지 환영할 일이다.
그렇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기숙사에 도착했다.
띠링-
나는 익숙한 문 열림 소리를 들으며 기숙사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아이씨. 깜짝이야."
현관문 바로 앞에 스칼렛이 다소곳한 자세로 날 맞이하고 있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스칼렛. 왜 그러고 있어?"
"호연 님. 아무래도 잠시 제 일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
"네. 박민규를 처리할 때 만난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장이 제 일탈을 눈치챈 것 같습니다."
"내 기숙사에서 놀고먹는 거 말이야?"
"맞아요."
놀고 먹는 건 부정도 안 하는구나.
나는 고맙지만 아이리스 길드 입장에서는 놀고 먹는거니까.
"한국 지부장… 강효린 말이지? 그 사람이라면 그럴 만 해. 확실히 능력이 있더라고."
"어디 가서 소문낼 사람은 아니라서 걱정은 없어도 혹시 모르니까요."
"음… 그래. 뭐 당분간 일할 것도 없어."
스칼렛은 부당계약으로 내게 묶여있지만… 이미 충분히 도와주기도 했고.
어차피 엘리스를 공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만나게 될 거다.
"감사합니다."
"릴리아나나 다른 애들한테 얘기는 했지?"
남다은은 모르겠지만, 남다희나 릴리아나는 스칼렛에게 정이 꽤 들었을 거다.
"이미 작별 인사 까지 끝냈습니다."
"역시 철저해. 알았어. 다음에 보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사사삭-
스칼렛은 거미처럼 천장을 타고 사라졌다.
"… 뭔가 이상한 기분이네."
사실 매일같이 보는 지금까지가 이상했던거지. 예전처럼 가끔 보는 게 맞다.
스칼렛이 사라진 거실에는 남다은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는 거실로 들어가며 남다은에게 말을 걸었다.
"다희는?"
"학교에 있어. 아카데미에서 지원하는 부속 학교를 알아봤거든."
"아…."
하긴 이제 학교에 다녀도 괜찮지. 바이어 길드는 망해버렸으니까.
"너도 이제 아카데미에 가는 거야?"
"응. 오늘도 갔다 왔어."
드디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구나.
나도 내일부터 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고마워."
"응?"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남다은이 입을 열었다.
"네 덕이야. 다희도, 나도…."
"내가 뭘 했다고. 너희들과 주변 사람들 덕이지."
그중에서도 스칼렛의 덕이 크다.
스칼렛이 없었으면 엄청나게 귀찮았을 거다.
"응.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맙다고 했어. 스칼렛 씨랑, 릴리아나 씨. 엘리스 씨."
"잘했어…. 잠시만, 엘리스?"
"아무것도 아니야."
"…?"
왜 남다은의 입에서 엘리스의 이름이 나오는 걸까.
남다은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고 저 먼 곳을 바라봤다.
"…."
말하기 싫다면 굳이 물어보진 않아야지.
난 스윗한 남자니까.
"… 하자."
남다은은 맥락없는 말을 꺼냈다.
"어?"
"어제 못 했던 거. 지금 하자."
"아…."
사실 어제 좋은 분위기 속에서 남다은을 데리고 슬쩍 빠져나오려 했는데… 남다희가 남다은에게 떨어지기 싫어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데려오면 안 됐는데.
- 야이, 개새끼들! 다 죽여! 아아악!
방 안에선 릴리아나의 방송 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남다희는 외출 중이었다.
"…딱 좋긴 하네."
"응."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99 ] ( + 0.1)
- [ 성욕 : 91 ]
- [ 식욕 : 55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오늘은 제대로 하고 싶어.
'이번에 호감도 100을 만들 수 있으려나.'
남다은은 호감도가 99나 되는데도 아직 성격이 비슷했다.
오늘은 그 성격을 좀 깨보고 싶네.
나는 스윗한 남자다운 생각을 하며, 천천히 남다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