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화 (201/648)

*

다음 날, 바이어 길드의 길드장실.

- 죄송합니다. 길드원을 관리하지 못한 것도 다 제 불찰입니다. 저를 믿지 않으실 국민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박민규, 일생 가슴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마약 사건과 저는 연관이 없....

"반응은 어때?"

박민규는 길드에 돌아오자마자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인터뷰와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고,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반성하며 사죄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대중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아주 좋습니다. 길드장님 인상이 워낙 좋으니 다들 사과에 진정성도 있다고 하고요."

"좋아... 이대로만 넘어가자."

평소에 인자한 인상이라는 평을 많이 듣는 박민규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얼굴의 덕을 크게 봤다.

"예. 저는 댓글 관리라도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양지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하고 버티자고...."

박민규는 아직도 벌렁벌렁 뛰는 심장을 꾹 눌렀다.

그리고, 곧 책상에 있던 편지를 발견했다.

"... 뭐야. 실장?"

하지만 실장은 이미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갑자기 편지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

잘못 본 거겠지.

피곤한 탓에 원래 있던 편지를 이제야 본 것이다.

박민규는 눈을 감았다가 뜨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렇게 정신을 각성한 후에 편지를 뜯었다.

이윽고 편지의 내용을 살핀 박민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박민규가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고 있는 사진, 그리고 예전에 저질렀던 범법행위들의 증거들이 모두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분명 모두 폐기했을 텐데."

심지어 박민규가 애용하는 업소에서는 마력을 일으킬 시 즉시 경비가 찾아오도록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내부고발인가?'

꿀꺽.

침을 삼킨 박민규는 편지에 뒷장이 있는 걸 발견했다.

[오늘 오후 5시. 이 주소로 혼자 찾아와라. 시간에 맞춰 오지 않으면 바로 증거를 공개하겠다. 여러 명이 올 시에도 증거를 공개하겠다.]

'찾아야 해. 어떤 놈이....'

박민규는 입술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차라리 예전처럼 신영 길드의 아래에 있었다면 괜찮다.

신영 길드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니까.

설령 꼬리 자르기를 당해도 어차피 밑바닥이었으니 길드원 한 두명 쯤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10년이 넘는 바닥 생활의 끝을 보고 있었다.

이제야 명예라는 걸 느꼈다.

절대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

마음 같아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범인을 잡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적의 수준도 파악할 수 없었다.

박민규에게 남은 희망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것이다.

'일단 혼자 찾아가야 하나?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해.'

거래장소에 찾아가는 건 확정이지만, 최소한의 보험은 필요하겠지.

박민규는 길드장실 구석에 있는 금고에서 어두운 검을 꺼냈다.

"하아...."

마지막에 마지막 선택지인데, 이걸 여기서 사용할 줄이야.

박민규는 품에 검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

다음날, 스칼렛이 편지를 전달한 후 우리는 거래장소에 가고 있었다.

남다은의 요청을 들어주기 위해 박민규와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이다.

"긴장하지 마."

"... 응."

남다은도 당연히 데려가고 있었다.

박민규를 보고 싶다고 했던 장본인이자 오늘의 주인공이니까.

긴장될까 봐 계속 말을 걸어도, 남다은은 심호흡을 하며 속을 다스렸다.

'엄청 긴장하고 있네.'

이럴때는 내버려두는 게 낫다.

나는 반대편에 있는 스칼렛에게 말을 걸었다.

"박민규가 진짜 혼자 오진 않겠지?"

"주변의 사람들을 잘 보세요."

"사람들?"

나는 스칼렛의 말을 듣고 눈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저희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마 박민규가 보낸 사람들이겠죠. 싼 놈들을 쓰진 않았을 텐데, 티가 나는 걸 보니 저쪽도 꽤 급했나 보네요."

"오...."

확실히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인식 저해 결계를 걸었다고는 해도 지금은 약하게 걸려있는 상태다.

내 얼굴을 봐도 이호연으로 인식하기 힘들어지는 결계지, 나라는 사람 자체가 사라지는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시 현직 정보 길드원은 다르구나.

"박민규가 알 수 없도록 뒷문으로 들어가죠."

"응. 가자."

"... 네."

우리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 어차피 혼자 올 거란 생각은 안 했어.'

그래도 우리의 힘을 모르니 단체로 끌고 오진 않겠지.

만약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원이 오면 도망가면 된다.

우리는 창고의 어둠 속에 모습을 숨긴 채 박민규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약속 시간에 가까워질 때 즈음. 끼이익- 하며 녹슨 문이 열렸다.

항상 보던 인자한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창고에 들어오는 박민규의 모습을 확인한 후, 나는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박민규 씨."

"... 이호연 생도?"

박민규는 갑자기 나타난 내 얼굴을 보고 살짝 눈을 찌푸렸다가, 곧 이를 악물었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처음부터 노렸던 거구나."

내게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폈다.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일단 상황 파악 먼저 하시죠?"

박민규가 마력을 끌어올리는 걸 보고, 나는 주머니에 있던 서류를 꺼냈다.

바이어 길드의 이중장부였다.

"자, 잠깐... 원하는 걸 말하게. 이호연 생도도 원하는 게 있으니 날 부른 거 아닌가?"

박민규는 끌어올리던 마력을 제어하며 손을 휘저었다.

"의뢰인이 있거든요. 나와봐. 다은아."

"다은? 잠시만, 설마...."

뚜벅. 뚜벅.

나와 같이 어둠 속에 숨어있던 남다은이 내 옆에 섰다.

"... 민규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우리를 바라보는 박민규의 표정은 모욕감과 굴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 다은아."

박민규는 나란히 서 있는 이호연과 남다은을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까지 오니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남다은이 이호연에게 모든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한 거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박민규는 남다은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그녀의 성격이나 말투를 완전히 파악했기에, 행동을 모두 예측할 수 있었다.

남다은은 절대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성격이 아니었다.

차라리 혼자 끙끙 앓고 마는 성격인데, 도대체 무슨 수를 사용한 거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박민규는 잡생각을 지웠다.

원인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느냐다.

어떻게든 요구를 들어주며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한다.

그때 박민규를 바라보던 이호연이 입을 열었다.

"박민규 씨. 최근에 한 인터뷰를 봤는데 사과를 참 잘하시더라고요. 앞으로 사과할 일 많을 텐데 다행이네요."

"… 뭘 원하는 거냐."

이제야 간신히 마약 유통으로 떠들썩하던 언론을 잠재웠다.

아직도 일부에선 시끌시끌한데 여기서 더 터졌다간 커버하기가 힘들다.

"뭐, 원하는 거야 많죠. 글쎄요. 돈?"

"얼마를 원하지? 아직 길드의 규모가 작다 보니 많지는 않더라도…."

"전부."

"… 으응?"

이호연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약 사건이라도 하나 터트리고 나니까 확실히 조금은 동요가 보였다.

한 번 얻은 명예를 놓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당신이 더러운 짓 추한 짓 다 해가며 모은 돈. 전부 달라고."

박민규는 담담하게 말하는 이호연을 보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게… 무슨."

"박민규 씨. 어차피 돈은 다시 벌면 되잖아요. 근데 이 증거들이 퍼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돈 벌 기회도 없어진다니까? 약속할게요. 내가 요구하는 건 돈뿐이에요."

"…."

 박민규는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말을 들어주는 것 빼고는 답이 없었다.

무력을 사용해볼까 했지만, 설령 저 둘을 이기더라도 증거가 안 퍼진다는 확신이 없었으니까.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이호연은 손에 있는 서류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 길드 건물에 보관 중이다. 일단 시간을 주면…."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니까, 길드 건물에서 어디 숨겼는지 말해보세요."

"기, 길드장실에 금고가 있다."

"비밀번호는?"

"…."

"비밀번호는요?"

"4856…이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열 수 없게 설정이 되어있어."

박민규는 금고의 비밀번호를 말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개인금고는 비싼 마법 아티팩트였기에 박민규의 생체정보가 확인되지 않으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누군가 길드장실에 잠입했더라도 문이 열리지는….

"응. 들었어? 4856이라는데, 열려?"

- 네. 열었습니다. 아티팩트와 현금이 50억 정도는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세계 최고 정보길드의 일류 정보원에게는 통하지 않는 술수였다.

"50억이라…."

들려오는 통화 소리에 박민규는 식은땀을 흘렸다.

블러핑이라고 생각하기엔 50억이라는 금액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마, 말도 안 돼."

"민규 씨. 이게 끝이에요?"

"끄, 끝이야. 50억이라고. 내가 일평생 모아온 돈이야…."

박민규는 부들부들 떨며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한 듯, 폐에서 숨을 빼내며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호연은 그런 박민규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민규 씨. 제가 바보인 줄 알죠?"

"무, 무슨…."

"모은 돈이 겨우 50억일 리가 없잖아요."

이호연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추하고 뻔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내가 바보도 아니고, 바이어 길드의 자본력을 모르고 이런 일을 할리가 있나.

그리곤 손가락으로 서류를 톡톡 건드리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나머지 돈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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