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화 (199/648)

*

철혈 병원의 병실.

"바로 다음 날 인터뷰라니, 움직임 진짜 빠르네."

"저 정도면 꽤 믿음직한 정보제공자니까요. 의심하진 않을 거예요."

나는 병실에서 스칼렛과 함께 박민규의 인터뷰를 구경하고 있었다.

내 인터뷰가 공개됨과 동시에 스칼렛이 정보를 뿌렸다.

내가 남다은을 데리고 있다는 정보다.

- 최근에 인터넷을 살펴보는데, 이호연 생도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기회만 된다면 만나보고 싶습니다.

화면의 박민규는 어색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었다.

기자가 하는 질문도 다 박민규가 유리한 방향이었다.

"저렇게 티 나게 인터뷰해도 되는 거야?"

"의외로 사람들은 그런 걸 의심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요즘 이미지도 좋으니 더욱더 그렇죠."

띠링-

지루한 인터뷰를 보고있는데, 내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 박민규 : 안녕하십니까. 이호연 생도. 저번에 나눴던 얘기를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에게 전달한 내 연락처도 박민규에게까지 전해졌다.

저번에 나눴던 얘기라고 하면 영입에 대한 얘기겠지.

- 나 : 네. 어디로 찾아가면 될까요?

- 박민규 : 주소를 찍어드리겠습니다.

"슬슬 가볼까."

나는 병원에서 빠져나와 박민규가 찍어준 주소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유흥시설이 잔뜩 모인 곳이었다.

이 새끼는 역시 유명해져도 똑같구나.

"준비는 됐나. 카메라걸?"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칼렛은 내 그림자에 숨어서 따라왔고, 그녀의 귀에는 영상을 찍는 아티팩트가 걸려 있었다.

일단 가벼운 것부터 터트려야지.

생도를 상대로 접대녀를 부른 미친놈이 여기 있어요! 동네사람들!

마도관 2층. 임솔의 연구실.

임솔의 핵심술식 연구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마무리가 완벽해야 하는 만큼, 임솔은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막힌 것 처럼 진행이 되질 않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이면 완성인데.

임솔은 이상하게 완성되지 않는 연구에 답답함을 느꼈다.

"호연이가 있었으면…"

기본 개념이 이호연에게 나온 만큼, 이호연이 도와줬다면 금방 끝났을 연구일 텐데.

계속 일이 생겨서 도움을 제대로 못 받았다.

"연구는 내가 다 하는데, 논문에 이름은 같이 올려주고. 나 같은 스승이 어딨어. 음."

임솔은 참스승인 자신의 인성을 칭찬하며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논문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빼놓은 스마트워치에는 메시지들이 쌓여있었다.

임솔은 중요하지 않은 메시지를 모두 삭제하고, 친한 사람들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 이호연 : 교수님. 저 곧 퇴원해요. 마법 박람회 일정 비워두셨죠?

- 민예지 : 대박 대박. 너 호연이 인터뷰 봤어? 제자 잘뒀네~.

"인터뷰?."

이호연의 인터뷰.

아직 보진 않았지만 민예지의 메시지를 보니 괜히 기대됐다.

물론 그 전에 이호연에게 답장은 해야지.

- 나 : 응. 퇴원하고 몸만 와. 일정 찾아볼게.

마법 박람회. 

귀찮아도 노력은 해봐야지.

제자와 함께하는 데이트는 뭐, 나쁘지 않으니까.

임솔은 이호연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에 민예지가 보내준 인터뷰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에 나오는 기자는 하영 누나라는 유명한 기자였다.

- 빅토리아 아카데미에는 천재 마법사 이호연 생도를 가르친 수많은 교수님들이 계시는데요. 제일 기억에 남는 교수님은 누가 있을까요?

- 모든 교수님들이 능력 있고 친절하게 수업을 해주셨지만,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임솔 교수님이네요. 제 개인적인 연구도 많이 도와주시고 보고 배운 점도 정말 많아요.

- 이야, 천재 마법사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걸까요? 

- 진짜 천재 마법사는 임솔 교수님이죠. 저는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했지만, 교수님은 혼자서 이뤄내셨잖아요.

- 스승과 제자의 멋진....

임솔은 인터뷰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도움... 정작 도움을 받은 건 난데."

처음은 임솔의 실수로부터 비롯된 만남이었다.

그리고나서 발견한 빛나는 마법의 재능.

물론 그 재능에 반해서, 어떻게든 자신과 함께 일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임솔의 실수로 이호연이 사고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면, 그런 야한 일까지 허락하진 않았을거다.

양심의 가책까지 합해져서 만들어진 관계인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

그런 관계덕분에 임솔도 이득을 많이 보고 있으니까.

이호연을 만난 그 날이 임솔의 인생에선 터닝포인트였다.

처음 보는 마력 운용을 연구해보기도 하고, 이호연이 발견한 새로운 개념을 논문으로 작성하기도 했다.

마력 연구의 스트레스를 풀던 초콜릿보다 더 단 것도 찾았고, 이제 제자의 유명세는 자신의 발밑까지 따라왔다.

임솔은 평생 마법적으로 의견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또래보다는 너무 뛰어났고, 임솔의 마법을 이해하는 노인들은 어린 임솔을 배척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호연은 임솔에게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자신보다 어리면서 마법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임솔에게는 필요했으니까.

백아영이나 민예지와 친해지더라도 마법에 대한 임솔의 욕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제자였다.

"... 마법 박람회나 찾아봐야겠네."

마법 박람회.

마법밖에 모르는 자신과 같이 가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자가 원하니까.

임솔은 연구 자료를 내려놓고 마법 박람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

"어둡네…"

박민규가 찍어준 주소는 골목 안쪽이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붉은 조명이 많아졌고 헐벗은 여자들도 종종 보였다.

밴에서 내린 여자들이 우수수 한 건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있는데, 내 그림자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쉿."

"제 목소리는 호연 님 빼고는 안 들릴 겁니다."

"…"

어쩐지 목소리에 마력이 담겨있더라.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여러 건물 중에서도 제일 거대한 건물이 박민규가 찍어준 장소였다.

'몸 팔이를 무슨 이런 데서 하냐.'

너무 떳떳하니까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어쨌든, 나야 인식 저해 마법을 걸고 있으니 자신 있게 건물로 들어갔다.

안쪽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운터에서 실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어서오세요. 손님, 예약하고 방문하시는 건가요?"

"박민규 씨 일행입니다. 안쪽에 있나요?"

"아아, 알겠습니다. 야, 여기 민규 형님 쪽으로 모셔라."

실장은 웃으며 손을 비비다가 뒤쪽에 있는 남자에게 명령했다.

"옙. 알겠습니다. 손님. 이쪽으로 오시죠."

실장의 뒤에 서 있던 덩치의 안내를 받아 방 하나에 들어가자, 전에 봤던 인자한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바이어 길드장인 박민규였다.

"이호연 생도. 오랜만입니다."

"파티장에서 본 이후로 처음이네요."

이런 곳은 처음이다.

물론 떨리진 않지만, 긴장한 척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근데 저 아저씨는 날 영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인데도 당연한 듯 상석을 차지하고 있네.

겉모습이 인자하면 뭐해. 저런 자세부터 글러 먹었는데.

똑똑-

박민규와 인사를 나누는데, 아까 그 실장이 살짝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어, 김 실장. 여기 내가 아끼는 동생이니까 물 좋은 애들로 데리고 들어와."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영상을 찍는 스칼렛을 의식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자자, 이호연 생도는 가만히 있어요."

"그럼 항상 하던 풀코스로 하겠습니다."

"응응. 그렇게 해."

실장이 고개를 숙이고 나간 후에, 나는 당황하는 척하며 내 그림자를 바라봤다.

보이진 않지만 스칼렛의 마나가 살짝 느껴졌다.

스칼렛이라면 알아서 잘 하고 있겠지.

나는 계속 연기를 이어갔다.

"바, 박민규 길드장님. 이건 무슨 상황이죠?"

"응? 이호연 생도는 이런 곳이 처음인가 보네요?"

"저는 계약에 대해 얘기를 하러 온 건데요…"

나는 불안한 연기를 하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너무 호구 같나?'

연기를 하는 내가봐도 찐따 같았지만, 나쁘지 않다.

사람들은 순수한 이미지를 좋아하기도 하니까.

특히 잘생긴 사람이 순수하면 그렇게 좋아하더라.

찐따남인지 뭔지 하면서 말이야.

똑똑.

"처음엔 다 그래요. 근데 웃긴 게 뭔 줄 알아요? 나중에는 빼던 놈들이 제일 신나서 온다니까. 어, 김 실장. 애들은?"

"데려왔습니다. 자. 사장님들 옆에 자리 잡아."

실장의 뒤에서 룸 복을 입은 여자들과 웨이터 복을 입은 남자들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오빠."

"형님. 동생이 복분자 타왔습니다."

"네, 네? 왜 그러세요."

미친 년놈들.

여자들은 내게 달라붙어 왔고 남자들은 술을 따라주며 형님형님 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웨이터들은 월급이 없이 팁만으로 생활한다.

그러니까 자기보다 어린 나한테도 형님형님 거리면서 달라붙지.

물론 나는 모르는 척했다.

"어,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형님. 동생이…"

"오빠, 오빠는 무슨 일 해요?"

어떻게든 팁을 받아내려는 웨이터들과 인식 저하 결계 때문에 날 못 알아보는 룸녀들.

그 사이에서 나는 당황하는 연기를 계속 이어갔다.

"어, 어…"

혹시라도 구설수가 나오지 않도록 여자의 몸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자자, 술이나 따라봐."

박민규는 술이 들어가면 해결될거라고 생각하는지, 여자들에게 술을 따르라고 시켰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이 이상 자리가 진행되면 나도 의심받을 거 같은데.

양옆에 앉은 여자들이 내게 술을 따라주며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더러워.'

돈만 주면 대주는 년들이 내 몸에 손을 올리니까 소름이 끼쳤다.

그때.

톡톡.

그림자에서 나온 손가락이 내 발목을 건드렸다.

스칼렛의 신호겠지.

"자, 잠시만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나는 그 신호를 받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입구를 나오자 실장이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알 바 아니다.

가속까지 사용하며 유흥거리와 멀어진 이후,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땠어. 잘 나왔어?"

"네. 누가 봐도 이런 데 처음 오는 찐따 같았습니다."

"... 고맙다."

"역시 호연 님은 연기도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맞아. 다 연기였어. 응."

사실 엄청나게 떨리거나 긴장되진 않았다.

그냥 호구 같아서 쪽팔렸을 뿐이다.

여자들도 나름 괜찮긴 했지만... 주변에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아서 평범한 여자들은 눈에 안 들어오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럼 이 영상을 적당히 편집해서 터트릴까요?"

"어... 아니. 일단 작은 것부터 가자. 꼬리 자르기가 가능한 걸로."

처음에는 꼬리 자르기로 어떻게든 수습하려 하겠지만 소용없다.

점점 더 큰 게 터질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응. 최대한 빨리해줘."

스칼렛은 그림자에 들어간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니 그림자로 돌아다닐 수 있으면 진작 저렇게 하지.'

그럼 천장에서 기어다니는 스칼렛을 안 봐도 됐을 텐데.

스칼렛이 사건을 터트리면, 나도 다음 준비를 해야한다.

나는 병원으로 돌아가며 어떻게 순수한 척을 해야 사람들이 믿어줄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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