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8/648)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응. 고마워 스칼렛."

사사삭-

스칼렛은 언제나같은 움직임으로 천장을 타고 사라졌다.

처음엔 거미같아서 역겨웠는데, 보다보니 나름 매력이 있는 것 같네.

대화를 통해 남다은의 의사는 확실히 알았다.

복수에 대한 굳은 의지가 있으니 나는 판을 깔아주기만 하면 된다.

스칼렛이 돌아간 후에 친목 파티에서 받은 기자의 연락처를 뒤져봤다.

"아니지아니지."

기자를 부르는 건 좋다.

테러 이후로 입원하고 히로인 공략에 집중하느라 나에 대한 언론들이 비교적 조용해지긴 했다.

슬슬 관심을 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근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히로인들에게 먼저 메시지를 돌렸다.

내가 곧 퇴원한다는 사실을 인터뷰로 알게 되면 그다지 기분 좋지 않을 테니까.

- 나 : 교수님. 저 곧 퇴원해요. 마법 박람회 일정 비워두셨죠?

- 나 : 엘리스. 나 이제 거의 치료가 끝났어. 마사지 준비해도 괜찮을 것 같아.

- 나 : 수린 누나. 저 곧 퇴원해요! 누나는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 나 : 곧 퇴원하는데 루미랑 같이 놀러 갈래?

- 나 : 나 퇴원하면 루시랑 같이 놀러 갈까?

"… 많네."

뭐 이렇게 여자가 많아.

릴리아나와 남다은, 백아영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많아도 너무 많다.

물론 포기할 수 없으니 다 데리고 가야겠지만.

어쨌든, 모두 연락을 돌렸으니 기자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 나 : 안녕하세요. 하영 씨. 이호연입니다. 저번에 말해주셨던 인터뷰를 해볼까 해서요.

내가 연락한 사람은 하영 누나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기자다.

예전에 백아영을 던전에서 구했을 때 나에 대한 기사를 써줘서 고마웠던 사람이다.

안그래도 고마웠는데, 파티에서 먼저 다가와 팬이라고 해줘서 기억에 남았다.

이번 기회에 좀 갚아줘야지.

- 김하영 : 네. 물론이죠. 호연 씨! 어디로 할까요. 언제든지 바로 달려갈게요!

- 나 : 철혈 병원으로 와서 이호연을 찾으시면 돼요. 제가 미리 말해놓을게요.

- 김하영 : 최대한 빨리 찾아가겠습니다. 가기 전에 연락드릴게요.

준비는 끝.

나는 인터뷰에서 어떻게 박민규를 띄워줄까 고민하며 하영 기자가 오길 기다렸다.

*

띠리링-

"스읍… 음?"

명상을 하던 엘리스는 스마트 워치에서 울리는 알람에 눈을 크게 떴다.

평소와 같은 알람이 아닌, 이호연에게 메시지가 오면 울리도록 설정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재빨리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 이호연 : 엘리스. 나 이제 거의 치료가 끝났어. 마사지 준비해도 괜찮을 것 같아.

"… 퇴원하는구나."

후우.

몸에 가득 차 있던 공기를 내뱉은 엘리스는 클린 마법으로 땀을 증발시켰다.

마음같아선 퇴원기념 이호연의 섹스영상을 다시 살피고 싶었지만….

"세바스 찬."

"네. 아가씨."

세바스 찬이 명상에서 생길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옆에 서있었다.

엘리스는 아쉬움을 거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나 마사지사. 찾았어."

"… 예? 마나 마사지는 포기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좋은 사람을 찾아서 다시 해보려고. 이미 계약까지 마쳤어."

"저한테 먼저 말씀하셨으면 길드에서 지원을 해드렸을 텐데요."

"이유가 있어. 마사지사가 남자야. 그것도 젊은 남자."

"…."

세바스 찬은 입을 다물었다.

아이리스 길드의 모든 사람들은 엘리스가 어떤 방식이든 선천적 마력 장애를 극복하기 바라고 있다.

젊은 남자에게 마나 마사지를 받더라도 고칠 수만 있다면 세바스 찬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길드장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른다.

마사지라는 단어의 어감과 젊은 남녀가 섞이면 누가봐도 의심할 상황이니까.

"길드장님이… 허락하실까요?"

"내가 괜히 계약했겠어? 효과를 확실히 봐서 하는 거야."

"당연히 아가씨의 안목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엘리스는 어릴적부터 천재였다.

그녀의 성장을 옆에서 봐온 세바스 찬은 당연히 엘리스를 믿고 있다.

길드장도 엘리스를 의심하진 않겠지.

대신 그 남자 마사지사가 위험할지도 모른다.

길드장은 엘리스와 관련된 일에는 밤의 황제 특유의 침착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단 제가 보고드리겠습니다. 마사지 사는 어떤 사람인가요?"

"… 음."

이호연의 이름을 말 할 생각으로 말문을 연 엘리스지만, 진짜로 말하려니까 좀 떨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여기서 이호연의 이름이 나오는 건 수상하기 때문이다.

"아가씨?"

"이호연이야. 새로 구한 마사지사."

"…?"

세바스 찬은 익숙한 이름에 당연히 의문을 표했다.

이호연은 자신이 직접 뒷조사를 한 생도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사를 시킨 건 눈앞의 엘리스였고, 이호연이 마사지를 배우거나 한 기록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사지사라니?

"못 미덥겠지만… 그냥 믿어.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절대 이상한 의도 아니야."

쿡쿡-

이상한 의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엘리스의 양심이 찔렸다.

'이건 치료야. 치료. 꼭 필요한 치료과정.'

엘리스는 자기 자신도 세뇌하면서 세바스 찬과 대화를 이어갔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다행히 세바스 찬은 의심하지 않았다.

이호연이 의심스럽긴 해도, 엘리스가 신뢰를 준다면 믿어야한다.

그게 세바스 찬의 역할이었다.

"응. 흥분하지말고 진정하라고 꼭 같이 말해줘."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 빅토리아 아카데미에 오겠다, 이호연을 직접 봐야겠다, 이런 식으로 난리를 치면 나랑 끝이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세바스 찬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세바스 찬. 엘리스에게 남자가 붙는 건 네 선에서 끊어야 하지 않겠어? 그러려고 널 거기 보낸 거잖아.'

벌써부터 길드장의 잔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보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또래 남자애와 데이트 하는 정도라면 세바스 찬의 선에서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지만, 선천적 마나 장애를 치료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보고를 해야했다.

세바스 찬은 우울한 표정으로 길드장의 활동시간이 오길 기다렸다.

*

바이어 길드의 길드장실.

갑자기 바이어 길드의 규모가 커지면서 길드장의 업무가 많아졌다.

서류를 살피다가 내팽개친 박민규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하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일은 순조롭다.

하지만 남다은과 남다희 자매에 대한 소식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단순 목격담조차 없다면, 어디서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10년이 넘게 공들인 탑이 무너지는 것이다.

박민규가 눈을 찌푸리고 있을 때, 길드장실을 벌컥 열며 누군가 들어왔다.

"길드장님! 이거 보십쇼. 대박입니다!"

"호들갑 떨지 말라고 이 새끼야. 우리 이제 예전 버릇 고쳐야 한다니까? 단정하게. 응? 노크도 좀 하고. 내가 여자 한 명 끼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아, 죄송합니다!"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한 길드의 간부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쯧. 빨리 나가봐."

"예, 알겠습니다!"

길드 간부는 홀로그램 모니터를 내밀더니 그대로 문을 닫고 사라졌다.

바이어 길드가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할 때는 힘이 필요했다.

동시에 더러운 일을 하는 데에 거리낌없는 놈들도 필요했다.

그렇기에 욕망이 있으면서도 강하고, 제어 하기 쉽도록 멍청한 놈들만 간부 자리에 앉혔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규모는 커졌지만 정작 길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좀만 더 커지면 저런 새끼들은 다 갈아치워야겠어."

지금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길드를 관리하느라 그럴 여력도 없었다.

박민규는 쯧. 하고 혀를 찬 후에 길드원이 가져온 모니터를 살펴봤다.

거긴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남자 하나가 나와있었다.

- 네. 이호연 생도에 대한 인터뷰였는데요.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헌터 한 분만 말씀해주신다면 누가 있을까요?

- 아, 존경하는 헌터는 너무 많죠. 임솔 교수님이나 백아영 성녀님. 철혈 길드의 민예지 팀장님도 존경하고요. 그래도 지금 관심이 가는 사람은 요즘 뜨거운 분이 아닐까 싶네요.

- 요즘 뜨거운 분이요? 과연 천재 마법사 이호연 생도가 존경하는 분은 누굴까요?

- 바이어 길드의 박민규 헌터님이요. 신영 길드의 내부 고발자시죠? 그런 결정을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 아아! 박민규 헌터님. 맞습니다. 요즘 헌터계에서 뜨거운….

"호오…?"

박민규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신의 입지가 이렇게나 올라온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호연이라면 저번에 자신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영입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

똑 똑 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저렇게 차분하게 길드장 실에 방문하는 사람은 실장뿐이다.

"길드장님. 남다은과 남다희에 대한 목격담이 들어왔습니다."

"뭐라고?!"

박민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실장이 가져온 서류를 낚아챘다.

"제보자는 익명… 이호연과 남다은이 같이 있는걸 봤다고…? 이거 믿을 만한 거 맞아?"

익명이라면 일부를 제외하고 어딘가 문제가 있는 놈이 대부분이다.

"예. 익명이지만 그 바닥에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흐음… 그 일부인가?"

박민규는 잠시 고민하다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좋아. 한 번에 엮였어.'

믿을만한 정보통들에게만 맡겼으니 거짓 정보는 아닐 거다.

아무한테나 정보를 받는 허접한 놈들은 아니니까.

게다가 그 주인공인 이호연도 자신에게 호의를 보내고 있었다.

"실장. 기자들 불러서 인터뷰 잡아."

"예? 어떤 거로요?"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닥치고 잡아 오라면 잡아 와!"

"예, 예. 알겠습니다!"

호통 소리에 실장은 기겁하며 뛰쳐나갔고, 박민규는 다리를 꼬며 자리에 앉았다.

"이호연만 설득하면… 다 해결할 수 있어."

저번에 여자 얘기를 꺼낸 게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공식 인터뷰에서도 저렇게 나온다는 건 여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남다은도 데리고 있겠지.

자신이 공들인 남다은을 데려간 게 짜증나긴 하지만, 상관없다.

술을 먹이든 여자를 들이밀든해서 계약서에 도장만 찍게 하면 된다.

그다음에는 남다은처럼 만들 수 있다.

"이건 기회야. 하늘에서 내려준 기회…."

박민규는 서랍에서 마력으로 정교하게 조작된 가짜 계약서를 꺼냈다.

바이어 길드에는 실제로 이 계약서로 묶여있는 간부들이 있다.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남다은이든 남다희든… 다시 돌려받으면 돼. 괜찮아."

다른 남자에게 처녀를 뻇긴 여자를 조교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박민규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호연과 만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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