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190/648)

*

토요일 오후.

 - 수린 누나 : 이따 오후에 병원에 찾아갈게. 몇 호인지 알려줄래?

점심에 백아영이 돌아간 후, 문수린에게 병문안을 오겠다는 메시지가 왔다.

이제야 메시지를 보내는 걸 보니 하던 조사가 다 끝난 모양이다.

"그냥 내가 하나 더 보낼 걸 그랬나?"

마지막으로 내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이 없길래 나도 그 이후로 연락을 안 했는데, 생각해보면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수린이 올 때 까지 스마트워치를 봤다.

"뭐야 이거."

그런데 에브리 데이가 이상했다.

신영 길드, 신동민.

불쾌한 이름들이 검색 상단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들도 엄청나게 나오고 있었다.

"… 마인이라고?"

원작에서는 없었던 움직임이다.

신동민은 단순히 신영 길드의 힘을 이용해 문수린을 스토킹한다.

그런데 마인과 엮이고, 그 덜미를 잡혀버린 것이다.

커뮤니티와 기사들을 확인해보자 아카데미와 여러 대형 길드들이 직접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원작의 기억이 있는 나는 알 수 있었다.

"… 이거 아카데미잖아."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움직였다.

성명을 발표한 길드 대부분이 아카데미와 친한 길드였다.

'혹시 이사장인가?'

아니. 그럴 리가.

이사장에게 나를 변호하는 기사를 내달라고 했지만, 그 노인네가 내가 요구한 것 이상의 일을 해줄 것 같진 않았다.

솔직히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싸가지없긴 했으니까.

'우연의 일치?'

어쩌면 우연일지도 몰랐다.

협회 친목 파티 테러를 조사하던 아카데미에서 신동민의 꼬리를 밟았고, 학생회 부회장인 신동민을 빠르게 손절하기 위해 먼저 터트렸을지도 몰랐다.

"이건 너무 좋은데… 아닌가? 안 좋은 건가?"

일이 편해져서 좋긴 하지만, 신동민은 문수린 스토커 사건의 범인이다.

물론 나랑 꼬이면서 스토커 사건이 미뤄지긴 했지만, 결국 문수린 공략의 해답이 신동민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근데 저렇게 잡혀버리면… 안되지 않나?

똑똑.

그때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너무 노크를 많이 받아서 소리만 들어도 담당 간호사인걸 알 수 있었다.

"네. 누구세요."

"이호연 환자님. 문수린 이라는 분이 병문안을 오셨어요. 들여보낼까요?"

"올려 보내주세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문수린을 받을 준비를 하며 스마트 워치를 종료했다.

'… 잠시만. 문수린?'

나는 문수린이 개인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무리 문수린이여도 이렇게 큰 규모를 움직이긴 힘들 거 같은데."

게임 설정상 이사장 손녀인 문수린의 권한이 크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다.

똑똑.

그때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될까?"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백금발의 생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단정한 이목구비에 새하얀 피부가 눈에 띄는 그녀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문수린이었다.

제복을 입었는데도 가슴과 골반라인이 저렇게 부각되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우리 수린 누나.

문수린은 내 얼굴을 보고 살짝 웃으며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호연아. 몸은 괜찮아? 늦게 와서 미안해."

"저는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수린 누나."

"그래? 그럼 연락 하나 정도 남겨주지 그랬어."

"… 죄송합니다. 저는 누나가 바쁘신 줄 알았어요."

역시 서운했구나.

히로인들을 아무리 꼬셔도 연애의 초보를 벗어나질 못하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니야아니야. 나도 연락 못 해서 미안해. 아, 맞아. 이거는 입원중에 먹으라고 사 왔어."

문수린은 가져온 음료수들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문수린이 온 길을 따라 비닐봉지와 박스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건 과자, 음료수, 심심할까 봐 게임기도 샀고, 마사지기랑 비타민…."

"잠시만요. 누나. 잠시만요. 저 금방 퇴원해요. 이건 마음만 받을게요."

나는 당황해서 손을 휘저었다.

염동력으로 저렇게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이 어딨어.

"헉, 그래? 언제쯤 퇴원하는데?"

"아마 다음 주쯤 아닐까요. 슬슬 몸도 좋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럼 퇴원 기념으로 밥 먹으러 가자."

"당연하죠. 이번엔 제가 살게요."

퇴원 기념인데 내가 사는 게 맞나 싶지만… 지금까지 많이 얻어먹었으니 괜찮다.

엘리스라는 물주를 잡았으니 이럴 때 팍팍 써줘야지.

"고마워. 누나가 고생한 보람이 있네."

"고생이요?"

"응. 혹시 이거 기억나?"

문수린은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사진 안에는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해골 가면이 찍혀있었다.

"이건… 테러 때 절 공격했던 마인이 쓰고 있던 가면이네요."

해골 가면.

내 몸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다.

보기만 해도 짜증 나네.

"사실, 내가 조사하던 게 이거야. 널 공격했던 해골 가면."

문수린의 품에서 자료들이 계속 나왔다.

해골 가면을 조사한 것부터, 혼자서 파티장을 수색해 브로치를 찾아낸 것.

그리고 그 브로치로 신동민과 마인의 연관점을 찾은 것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가 내 눈앞에 있었다.

"누나… 이걸 다 하셨다고요? 그럼 언론도…."

"증거를 찾았으면 바로 공격해야지. 안그래도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부회장이라 빨리 끊어내야 했거든. 아, 그래도 호연이가 공격당한 거 때문에 조사한 거야. 신동민은 그 뒤에 나온거니까."

와.

눈 앞에 문수린의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누나. 사랑해요."

"그럼 결혼할까?"

"죄송합니다. 근데 결혼은 아직 일러요."

장난스럽게 웃는 문수린을 보며 나는 멋쩍게 웃었다.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86 ]

- [ 성욕 : 45 ]

- [ 식욕 : 50 ]

- [ 피로도 : 43 ]

현재 상태 : 아직이면… 얼마 안 남았나?

자동 공략되는 것도 고마운데 알아서 귀찮은 적까지 치워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생각하는 건 좀 무섭긴 한데… 괜찮겠지.

"누나. 밥 한 번으로 안 되겠네요.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세요."

"음, 지금은 없고. 생각나면 말할게."

"네네. 얼마든지요."

문수린이 짓는 귀여운 미소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콜록콜록-

그냥 쉬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과 다르게 루미는 몸살에 시달렸다.

이호연의 병문안을 갔다 오자마자 더욱 어지러워졌기 때문이다.

쉬어야 할 때 억지로 돌아다닌 것도 원인이었다.

"… 진짜 감기를 가져가면 어떻게 해. 루미."

"다행이야. 헤헤. 나는 금방 나을 거야. 엣.. 치!"

"하아…."

그리고 거짓말같이 몸살이 나은 루시가 반대로 루미를 간호하러 왔다.

자신은 멀쩡해졌는데, 이번엔 루미가 몸져누웠다.

이러니까 정말로 동생이 몸살을 가져간 것 같아서 괜히 미안했다.

게다가 몸은 나았지만, 아직도 가슴은 착잡했다.

하지만 동생의 간호를 소홀히 할 순 없었으니, 루시는 물수건의 물을 짜고 루미의 이마에 올려놨다.

"루시… 내일은 호연 씨 만나러 갈 거야?"

"… 왜?"

"내가 못가서… 호연 씨도 심심하지 않을까?"

루시는 고민했다.

자신이 이호연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이호연을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계속 피할 수는 없었다.

루미의 남자친구라면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테니까.

"… 이호연한테 몸살이라는 연락은 했고?"

"스마트 워치가 고장 나서… 못했어."

"아…."

고민하는 루시를 보며 루미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루시는 이호연을 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원인에 자신이 연관되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쌍둥이니까.

서로의 손 끝이 움직이는 것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다.

"루시."

"응. 뭐 필요한 거 있어?"

루시는 루미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미도 루시를 걱정했다.

자신의 몸이 안 좋아서 좋은 시기는 아니지만, 지금 말을 꺼내야 할 때였다.

"루시도 호연 씨 좋아하지?"

"뭐, 뭐ㅡ.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머리 많이 아프구나. 물수건 갈아줄게. 잠시만 기다려. 우와. 뜨거운 거 봐. 아, 아니면 죽 먹을래?"

갑작스러운 루미의 기습에 당황한 티를 내는 루시는 손을 마구 흔들면서 다급하게 움직였다.

루미의 이마에 있는 물수건을 바꿔주고 데워놨던 죽을 꺼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루미가 말을 멈출 리가 없었다.

"루시. 나는 호연 씨가 좋아. 너는?"

"…."

루시는 이런 말을 하는 루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을 놀리려는 건 아닐 거다.

그러니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 나도, 나도 좋아하는 것 같아."

루시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당장이라도 루미가 덮고 있는 이불 안에 몸을 숨기고 싶었다.

"우리, 호연 씨를 공유하자. 루시라면, 아니 우리는 충분히 가능해."

"공유라니…?"

연인 사이에 나오면 안되는 단어지만, 루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루시를 바라봤다.

"말 그대로야. 이미 호연 씨도 동의해줬어."

루시는 천천히 루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