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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고 젊은 여자들은 시기와 질투를 받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상하게 노인네들이 많은 마법사라는 족속들.
그중에서 제일 두각을 보이는 게 젊은 여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임솔은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었다.
물론 힐러 중에서 최고인 백아영과 헌터 사회에서 또래 중 제일 잘나가는 민예지도 다를 건 없었다.
그렇기에 이 셋은 친해진 이후 자주 만남을 가졌다.
"요즘 아영이 표정이 좋다니까. 그렇지 않아?"
"평소랑 똑같아."
"에이, 너 이호연 생도 1대1 치료니 뭐니 하면서 계속 붙어있어서 그런 거잖아."
"… 아니거든?"
오늘 모임 장소는 임솔의 연구실.
임솔의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러서 시간을 내기 힘들다고 하자, 두 명이 연구실까지 직접 놀러 온 것이다.
"그래? 아니면 말고~. 근데 솔이는 아직도 연구 중이야? 연구 주제 하나를 이렇게 오래 잡고 있는 경우가 있었나?"
이호연 이전에 천재 마법사라고 불리던 임솔.
그녀가 천재 마법사라고 불린 이유는 한두 개가 아니다.
모든 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재능.
그리고 마법사들이 풀지 못하던 난제들을 순식간에 풀어버리는 명석함.
그 두 개가 합쳐져 어떤 연구든 마음먹었다하면 한 달 안에 풀어냈기에 천재 마법사라고 불린 것이다.
"이번 논문이 지금까지 준비했던 논문 중에 제일 복잡해. 호연이랑 같이 연구하는 거거든."
"엥? 천재 마법사 둘이 모였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면 얼마나 대단한 거야."
"기대해도 좋아. 정말 엄청나니까."
임솔은 이번 연구에 자신이 있었다.
마법 학회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마법 술식에 의지를 담는 개념은 지금까지 없었기에, 지금까지 마법사들이 쌓아온 연구들이 대부분 종잇조각이 될 거다.
'이걸 발견한 호연이는 대체….'
임솔은 연구를 진행할 때마다 이런 개념을 혼자 발견한 이호연에게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기쁨도 느꼈다.
평생 외로울 줄 알았다.
'너같은 괴물이 다시 태어날리 없다.'
'천 년에 한 번 등장하는 천재.'
'적어도 몇 세대 안에 임솔같은 마법사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임솔은 항상 이딴 말들을 귀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자신의 세대에서 이호연같은 마법사가 나와줘서 임솔은 정말 고마웠다.
얘기를 듣던 민예지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연구인지 궁금해하며 임솔을 바라봤다.
하지만 차를 마시던 백아영은 다르게 생각했다.
'호연이랑 같이 연구…?'
그 순간 백아영의 머릿속에서 임솔은 예비 경쟁자가 되었다.
백아영은 침을 삼키며 임솔의 표정을 살폈다.
겉으로 보이는 표정에는 티가 나지 않았다.
'설마 교수가 생도를 건드릴까.'
자신은 교수가 아니니까 괜찮지만 임솔은 교수다.
임솔이 교육자로서 괜찮은 사람인 걸 알기에 의심이 조금 덜해지다가도, 백아영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모든 걸 의심해야 한다.
우리 여보는 그만큼 위험한 남자였으니까.
"크흠. 그, 호연이가 입원 중이라 같이 연구하기 힘들겠네…? 내가 매일 확인하는데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거든."
백아영은 힐러활동을 하며 쌓아온 연기실력으로 슬쩍 임솔을 떠봤다.
"… 그렇지?"
임솔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아영의 말을 들으며 기묘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평범한 말인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백아영의 순수한 눈을 보면 다른 의도 없이 걱정해주는 게 분명한데도 그렇게 느꼈다.
"… 그래도 입원이 끝나면 나랑 약속이 많아서. 괜찮아."
"약속…?"
임솔이 여보와 약속을 많이 했다니 그런 소리는 처음 들었다
"응. 같이 연구도 해야 하고 박람회도 가야하고… 논문이 완성되면 발표도 해야 하니까."
"아하…."
"… 둘이 뭐해? 우리 카페나 가자."
그리고 둘 사이에서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막기 위해 민예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나는 연구가 많이 남았어. 호연이가 퇴원할 때까지 최대한 진도를 나가고 싶거든."
"나도 호연이를 보러 가야 해."
임솔은 고개를 내려 서류를 바라봤고, 백아영도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하하… 그럼 나가자. 아영아. 자자. 갑시다. 솔아, 우리 먼저 갈게! 다음에 봐!"
결국 민예지가 백아영을 억지로 끌고 나오면서 둘 사이의 신경전은 막을 내렸다.
*
토요일 오전.
금요일을 기숙사에서 불태운 후, 릴리아나와 남다희가 결국 어디로 놀러 갈지 정하지 못해서 주말 사이에 정하라고 말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바로 놀러 갈 수도 없네."
정보길드들이 남다은과 남다희를 조사하고 있을테니 함부로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
내 마력이 돌아오지 않아서 룬의 결계를 칠 수도 없으니 나야 좋았다.
다음 주에 회복되고 가면 되겠지.
스칼렛에게도 내가 신호를 줄 때 까진 일단 가만히 있으라고 전해뒀다.
내 몸이 회복하고나서 움직이고 싶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미리 말해놔야 준비를 할 수 있을거다.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루미였다.
한 번 면회를 온 사람은 그냥 들여보내라고 했더니 진짜 그렇게 해주는 모양이다.
면회를 올 때마다 간호사를 귀찮게 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하다.
근데, 문을 열고 들어온 루미의 상태가 이상했다.
얼굴은 붉었고 턱에는 귀여운 분홍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까.
"루미, 왜 그래?"
"호연 씨… 안녕하세요… 루시한테 감기가 옮은 것 같아요. 흐아아…."
엣.. 히!
특이하고 귀여운 재채기 소리를 내면서 루미는 코를 훌쩍였다.
"야, 그러면 병문안을 왜 와. 집에서 쉬어야지."
"그게… 재채기하다가 스마트 워치를 떨어뜨렸더니 고장이 나서… 주말이라 고치질 못했어요."
"… 쯧. 그래서 직접 온 거야?"
"네에…."
매일 찾아오겠다고 나한테 약속같은 걸 했으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약속이 아니라 통보지만… 뭐 그게 그거지.
"하아, 걱정되니까 그러지 마. 와준 건 고마운데, 얼굴 봤으니까 이제 가서 쉬어."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헤헤… 고맙습니다."
루미는 훌쩍이면서도 내게 옅은 눈웃음을 지어줬다.
"… 빨리 가서 쉬라니까."
내가 뭐라고 저렇게 잘해주는지 모르겠네. 쩝.
저러니까 괜히 미안해지잖아.
"괜찮아요. 금방 나을 거에요. 으, 머리가 빙빙 도는데."
"안 되겠다. 여기 병원에서 진료라도 받을래?"
백아영한테 치료해달라고 하면 한 방에 치료될 거다.
물론 여자를 치료해달라고 하는 게 살짝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아니에요. 그냥 집에서 쉴게요."
루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밖으로 걸어갔다.
그 꼴이 너무 걱정돼서 나도 침대에서 일어나 루미를 부축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옮아요…."
"알았어알았어. 갈 때 택시 타고 가. 내가 불러줄게."
"감사합니다…."
나는 루미를 태우고 갈 택시를 부르고 택시에 타고 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병실에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백아영의 정기체크를 받았다.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인지 옷을 벗기려고 하지 않고 몸 상태만 확인했다.
"금방 낫겠네… 아마 며칠이면 될 것 같아."
백아영의 손에서 따뜻한 빛이 나와 내 몸을 휘감았다.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마법이라고 한다.
마력 회로는 자연치유로 회복해야 후유증이 없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고마워요. 항상."
"… 응."
'오늘은 왜 기분이 안 좋으실까.'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100 ] (+ 1.3)
- [ 성욕 : 90 ]
- [ 식욕 : 45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경쟁자… 여보를 노리는 경쟁자가 너무 많아…
"…."
뭔지는 몰라도 보기만 해도 불안하네.
"여보."
나는 어쩔 수 없이 마법의 단어를 꺼내며 백아영에게 손을 뻗었다.
"… 하아아."
백아영은 힘없는 한숨을 뱉으며 내게 안겨 왔다.
내 몸을 감싸는 따뜻하고 하얀빛이 지속하는 상태에서 백아영이 다가오니 천사가 내게 안기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천사 같네요."
열심히 칭찬도 해줬는데, 백아영은 내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약간 부담되는 시선이었다.
"여보… 언제나 내가 1순위 맞죠?"
"당연하지."
나는 일말의 지체없이 대답하고 백아영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여기서 시간을 끌었다간 진짜 큰일날 것 같았으니까.
"사랑해요 여보…."
다행히 백아영은 내 가슴에 더욱 깊게 안겨왔다.
'….'
나는 내 품에 안긴 백아영을 보며 여보라는 마법의 단어가 언제까지 통할지 고민했다.
"길드장님! 이번엔 철혈길드와 청룡길드입니다! 계속 추가 인터뷰가 나오고 있어요!"
"막아! 인맥들 다 동원해서 어떻게든 틀어막으라고!"
신영 길드의 길드장 신영만.
그는 갑자기 신영 길드를 향해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야 했다.
아들인 신동민이 마인과 연류되었다는 소문이다.
[협회 친목 파티의 추악한 진실. 신영 길드가 엮여있었다?]
[신영 길드의 후계자 신동민. 마인과 접촉 증거]
[마인 집단의 아지트에 신영 길드의 신동민이 출입한 흔적 발견]
이제 슬슬 친목 파티 테러에 대한 관심이 식어갈 때, 다시 불을 지필 장작거리들을 기자들이 찾아낸 것이다.
하나 둘 씩 늘어나는 기사들을 막기 위해 다른 기사들도 쏟아내봤지만, 이제는 대형 길드들에서 직접 성명을 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조사팀. 신영 길드를 수사하라고 협회에 요구]
[우연의 일치? 파티와 테러의 사각에 있던 사람]
[철혈 길드의 인터뷰. 협회 테러의 뒤에는 누군가 있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갑자기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아카데미에 친분이 있는 길드들에게서 기사들이 쏟아졌다.
신영 길드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언론들이 있었지만, 그 언론들에서도 저런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길드원들이 대응하는 동안, 신영만도 연락을 돌렸다.
"네. 사장님. 저 신영만입니다. 신영 길드의 신영만이요.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안 되죠. 지금까지 쌓아온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하지만 이상하게도 외압이 너무 강합니다. 말도 안 될 정도에요.
"그런 걸 대비해서…! 당신들이 있는 거잖아요……!!!"
- 협회에서도 이제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몸조심하십시오. 제 생각엔 신동민 군이 아카데미에게 밉보인 것 같은데… 저희 수준에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신영만은 아들의 이름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테러 이후로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뚝-
"대표님. 잠시만요. 대표님! 이 씨발 새끼들이 돈을 얼마나 받아먹고 이제 와서!"
쾅!
전화기를 내팽개친 신영만은 씩씩거리며 옆에 서 있던 길드원에게 말을 걸었다.
"동민이는 뭐 하고 있지?"
"아직까지 방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하아…. 너희가 최대한 막고 있어. 내가 보고 올 테니까."
신영만은 직접 신동민의 상태를 보기 위해 신동민의 방으로 향했다.
사실 신동민의 상태가 이상한 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천상제에서 1학년 이호연에게 패배한 이후로 계속 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인과 엮이다니….
거짓말이길 바라며 신영만은 신동민의 방 앞에 도착했다.
똑똑.
"들어간다."
신영만은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이 꺼진 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기분 나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 저건?"
방 한가운데 책상 위에는 섬뜩한 해골 가면 하나가 덜렁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