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2/648)

*

루시는 싱글벙글 웃으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이호연과 신나게 놀았기 때문이다.

"흐흐…."

카페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며 루시는 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가운데에 있고, 양옆에 루미와 이호연이 있는 사진이다.

이건 평생 보관해야지.

루시는 콧노래를 부르며 겉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띠링-

띠링-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루시가 속해있는 친구들의 단톡방이었다.

루시가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몇 개의 메시지들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 루시 남자친구 루미랑 놀러 간다~ ㅋㅋ

- 왜왜, 뭔데?

- 아까 골목에서 둘이 어디로 가고 있던데?

- 오늘 셋이 논다고 했잖아. 먼저 만난 거겠지.

- 아, 그런가?

루시는 메시지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오늘 셋이 놀긴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있었기에 떨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빨리 메시지 답장을 보냈다.

- 언제 봤는데? 오늘 셋이 놀긴 했어.

- 한 5분 전쯤 아카데미 3번 길에서 봤어. 오늘 어디서 놀기로 했는데?

답장을 준비하던 루시의 손이 멈췄다.

"…루미는 쇼핑하러 간다고 했는데."

그리고 이호연은 병원에 돌아간다고 했다.

그 둘이 5분 전에 만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카데미 3번 길…."

루시는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벗었던 겉옷을 다시 챙겨입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루시는 급하게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루시는 재빨리 아카데미 상가로 향했다.

'아카데미 3번 길….'

아카데미 3번 길은 넓은 대로에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위치였다.

바깥에서 보이는 골목 안은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쪽으로 처음 와본 루시는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캄캄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붉은 등과 화려한 간판들을 보며 루시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모텔촌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메시지를 보낸 친구는 분명 이호연과 루미를 봤다고 했다.

지금까지 같은 A클래스에서 생활했던 친구인 만큼 잘못 봤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 곳에 루미와 이호연이 있을 이유가 없다.

루시는 계속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주변을 돌아다녀 볼까… 아니면 조금 기다려볼까? 아니지. 루미한테 메시지를 먼저 해봐야 해.'

메시지를 보고 놀란 탓에 루미와 이호연에게 확인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기숙사에서 뛰쳐나와 모텔촌을 마주하고 정신을 차린 루시는 루미와 이호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당연히 답은 오지 않았다.

'… 답이 안 와.'

이호연은 몰라도 루미에게는 바로 답장이 왔었는데, 루미에게도 답장이 오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보고 가자."

루시는 아카데미 3번 길 주변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났다.

주변에 있는 식당이나 카페, 노래방 등을 모두 돌아다녔어도 루미와 이호연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돌아가도 되겠지.

친구가 잘못 본 거겠지.

라고 생각하려 해도, 답장이 오지 않는 스마트워치를 보며 루시는 이상하게 가슴이 따끔거렸다.

그렇게 두 시간을 돌아다니고, 결국 처음에 왔던 어두운 골목길에 돌아온 루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바보 같아."

돌아가자.

답장이 안 올 수도 있지. 겨우 그런 거로 두시간이나 거리를 배회한 자신이 한심했다.

띠링-

기숙사에 돌아가려고 마음먹자마자 루시의 스마트워치가 울렸다.

- 사랑하는 루미 : 미안해 루시. 답장이 늦었네. 마트에 들렸다가 이제 기숙사로 가는 중이야.

'다행이다. 내 오해였어.'

"휴우…."

긴장이 풀리며 한숨을 내쉰 루시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띠링-

그러나 바로 루미에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 사랑하는 루미 : 그리고 중요한 할 말이 있는데…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

"응?"

중요한 할 말이라니… 루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루미가 내일 말해줄 테니까.

기분 좋게 알았다는 답장을 보내고 뒤를 돌아 골목을 빠져나오려던 그때.

저 멀리 보이는 모텔에서 익숙한 남녀가 나왔다.

작은 체구의 흑발 여성과 훤칠하고 마스크를 쓴 남성.

멀리서 봐도 루미와 이호연이었다.

루미는 이호연의 한쪽 팔에 팔짱을 낀 채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어……?"

루시는 짧은 탄식을 뱉었다.

설마. 그럴 리가.

루시의 눈동자가 마구 떨렸고, 루시는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잘못 봤겠지.

루미는 지금 기숙사로 가고 있다고 했잖아.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루시는 심호흡을 한 뒤에 눈을 떴다.

모텔 앞에는 그대로 루미와 이호연이 서있었다.

여전히 루미는 이호연의 팔을 잡은 상태였다.

곧 남자의 손이 올라가며 마스크가 내려지고 옆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은… 부정할 수 없는 이호연이었다.

그리고 둘은 천천히 입을 맞췄다.

"저게… 무슨…."

루시는 멍하니 둘의 키스를 지켜보다가 천천히 뒷걸음질했다.

이곳은 자신이 있으면 안 되는 곳이니까.

빨리 돌아갈 걸.

멍청하게 두 시간이나 헤매지 않고 바로 기숙사로 돌아갔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됐을 텐데.

루시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거리를 걸었다.

머리가 아팠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창을 들고 뇌를 찌르는 것 같았다.

"…."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걷다보니 어느새 기숙사 앞까지 도착했다.

띠링-

스마트워치가 메시지 도착 알림을 보냈지만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기숙사에 들어온 루시는 겉옷을 벗었다.

순간 온 몸이 차가워졌고, 그제야 자신의 온몸이 땀에 젖어있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찝찝한 감각 따위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던 루시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 으아.. 흐윽…."

시끄러운 거리에서 벗어나 조용한 기숙사의 침대에 몸을 맡기고 나서야 밀어냈던 감정들이 몰려왔다.

루시의 눈이 순식간에 젖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이불을 꽉 끌어안고, 루시는 조용히 흐느꼈다.

"어째서… 어째서 하필 그 둘인데… 왜애…."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잃은 루시와 루미는 고아원 출신이었다.

하지만 고아원에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던 루미 때문에 둘은 아직 어린 나이에 고아원에서 나왔다.

그때부터 루시와 루미는 세상과 싸우기 시작했다.

어린 여학생 둘이 살아가는 건 힘든 관문이었다.

하지만 루시는 루미에게 힘든 경험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언니니까.

부모님이 없는 만큼 루미는 언니인 자신이 보호해야 하니까.

중학교 수업을 마치고 혼자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루미가 아르바이트에 적응하지 못해 사고를 쳐서 루시가 대신 사과하며 고개를 숙일 때도.

미안하다고 울며 안기던 루미를 달랠 때도.

어떻게든 버텼다.

루미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힘을 낼 수 있었다.

둘에게 지원을 해주겠다고 다가온 지원센터의 센터장이 지원을 빌미로 루시에게 몸을 요구했을 때도, 루시는 유혹을 뿌리쳤다.

동생에게 당당한 언니가 되어야 하니까.

루시는 지원을 거절하고 아르바이트를 늘렸다. 루미의 몫도 해내야 했으니 잠을 줄였다.

동시에 루미에게 이상한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더욱 열심히 막았다.

순수한 루미라면 이상한 사람에게 금방 넘어갈지도 몰랐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능력자 적성 검사에서 둘 다 적성 판정을 받으며 아카데미까지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루시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있었고, 루미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루시와 루미는 각별했다.

서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절대 저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루미가 이호연을 좋아하는 걸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루미…."

루시는 흐느끼며 루미의 이름을 내뱉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동생 루미.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내 가족.

가끔은 티격태격하더라도 마음 속으론 누구보다 동생을 사랑했다.

그리고 이호연.

내 목숨을 지켜줬던 사람.

아무리 멍청하게 행동해도 항상 내 편을 들어줬던 사람.

남자는 모두 더럽고 추잡하다고 생각하던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해 준 사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

차라리 다른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예 이호연이 다른 사람과 이어졌다면…

자신에겐 루미가 남아있다.

하지만 저 둘이 이어진다면 루시에겐 아무도 없었다.

"아… 으, 하아악…."

루시는 힘겹게 숨을 쉬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너무 머리가 아파서 하면 안되는 생각까지 해버렸다.

루미와 이호연.

둘 다 너무 좋아하기에 더 힘들었다.

이제야 이해 안 가던 것들이 조금씩 이해가 갔다.

셋이 있을때 조금씩 느껴지던 소외감.

이호연과 루미의 거짓말.

루미의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신.

놀 때마다 같이 사라지던 둘의 모습도 기억났다.

사라질 때마다 둘이 무슨 짓을 했을까.

"아윽…."

루시는 점점 더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눈을 감았다.

지금은 단지 눈을 감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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