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648)

이호연이 면회를 받기 전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당일에 병원에 들린 루시와 루미는 간호사에게 거절을 듣고 쓸쓸히 돌아갔다. 

"루미... 이호연 괜찮겠지?" 

"호연 씨... 괜찮을 거야. 응. 분명." 

루시와 루미는 터덜터덜 거리를 걸었다. 

수업까지 빼먹으며 큰맘 먹고 온 병문안이라 쓸쓸함은 더욱 커졌다. 

"어쩔 수 없지. 오후 수업이나 듣자 루미." 

"응. 그러자." 

"... 루미. 이호연은 진짜 양호 선생님하고 사귀는 걸까?" 

루시는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저번에 이호연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최근 공개된 CCTV 영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 백아영을 구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연인의 희생이었다. 

"아닐 거야. 호연 씨가 아니라고 했잖아." 

하지만 루미는 단호했다. 

평소의 루미라면 루시의 말에 어느 정도 동조했겠지만 이호연 얘기만 나오면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하곤 했다. 

"그렇겠지?" 

"응. 호연 씨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루미도 약간은 의심하고 있었다. 

물론 시험이나 축제 같은 게 계속 이어지긴 했다. 

테러도 몇 번이나 있었다.

루미도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거다.

이호연과 만나는 빈도가 적어지고 비밀 친구 활동도 적어졌기 때문이다. 

"루미. 점심먹으러 가자!" 

"... 응." 

결국 루미는 수업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문제가 뭐지? 으으... 검색이라도 해봐야 하나." 

하지만 마땅히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때 루미의 눈에 잡지 하나가 보였다. 

루시가 저번에 놀러 왔을 때 놓고 간 잡지였다. 

잡지의 표지엔 [남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새로운 이미지 변신!]이라는 타이틀이 쓰여있었다. 

"...." 

루미는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잡지에서는 이미지 변신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미지 변신...."

하지만 루미는 이미지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었다.

루미는 잡지에 써있는 예시들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옷 스타일 변화. 이건 너무 어려워.... 헤어 스타일 변화.... 헤어 스타일 변화?"

머리 정도는 그냥 미용실에 가서 잘라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옷도 그냥 가서 사면 되지만, 수 백개나 있는 옷 중에 자신에게 맞는 옷을 고를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옷보단 머리가 쉬울 것 같았다.

결국 루미는 인터넷으로 헤어스타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화요일 점심.

임솔 교수가 병문안을 왔다.

들어오자마자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나를 보며 임솔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영이한테 듣긴 했는데, 진짜 튼튼하구나."

온몸의 마나회로가 작살이 낫는데도 건강한 나를 보고 약간 질린듯 했다.

"제자가 좀 잘났습니까. 교수님."

"그런 것 치곤 몸에서 마나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아하하… 적어도 일주일은 이 상태일 것 같아요."

마법을 못 쓰니 답답한 건 둘째치고, 룬의 결계를 못 치는 게 제일 불안했다.

아무래도 병실의 문을 잠그는 것만으로는 보안이 불안하다.

누군가 내 섹스를 훔쳐보면 안 되니까.

"그래도 다행이네. 이제 천재 마법사로서 날아오를 일만 남았잖아."

"에이. 무슨 말이세요. 천재 마법사 자리는 임솔 교수님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겸손을 떨긴 했지만, 실제로 인터넷에선 나를 추앙하고 있다.

내 마법적 경지를 임솔과 비교하는 글도 많았다.

아직 무릎에도 못 닿았는데 말이야.

"네가 고위직 인사들을 많이 구해준 덕에 여론도 좋아졌어. 여론전은 이제 거의 끝난 것 같아."

"감사합니다. 다 교수님 덕분이에요."

내가 테러에서 활약을 한 덕도 분명 크지만, 임솔이 그 전부터 판을 깔아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영이랑 민예지도 고생했어."

"아, 당연하죠."

백아영은 그렇다 치고, 민예지한테는 고맙다고 해야 한다.

근데 영 만날 일이 안 생기네.

저번에 구해준 거로 대신하면 안 되겠지?

"마법 연구도 순조로워. 이제 정말 마무리 단계야."

"오… 그럼 곧 발표하시는 거예요?"

"응. 그런데 너랑 같이 발표해야지. 천천히 하고 있을 테니까 기다려."

"으음. 감사합니다."

임솔은 방긋방긋 웃으며 마법 연구에 대한 진행도를 설명했다. 

솔직히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받아주는 수밖에.

마법 이야기를 할때는 그 무엇보다 즐거워 보여서, 차마 질리는 표정을 지을 수도 없다.

나는 최대한 흥미로운 얼굴로 임솔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 마법 박람회는 못 가겠네? 내기는 없는 거로 할까?"

생각해보니 시험 만점 내기로 이번 주 박람회에 가기로 했는데, 입원중이라 시간이 안나겠네.

"그러면 안 되죠 교수님. 다음에 가요. 다음에."

"흐으응. 알았어. 다음에 시간 비워놓을게"

이런 기회를 그냥 버릴 순 없다.

박람회는 한 번 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아마 금방 다음 박람회가 열릴거다.

"교수님 그러고보니 그 논문이요…."

그렇게 30분 정도 잡담을 나누고 나서, 임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가볼게. 아카데미 수업은 어차피 시험 끝났으니까 걱정할 거 없고… 그냥 병실에서 쉬다 오면 되겠네."

"네… 근데 교수님? 뭐 하세요?"

주물주물.

임솔은 내 아랫도리에 손을 대고 물건을 만지고 있었다.

"너 때문에 단 걸 먹어도 스트레스가 풀리질 않아. 책임은 져야지."

"… 예예. 많이 드세요. 근데 혹시 모르니까 문은 잠가주세요."

"들어올 때 이미 잠갔어."

임솔은 살짝 웃으며 더욱 주먹에 힘을 주었다.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읏…."

내 물건이 적당히 단단해지자 임솔이 직접 환자복을 벗겼다.

천장을 향해 솟아있는 자지 끝에는 찐득한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오랜만은 아니지만… 이 상황은 흥분됐으니까.

"병실에 있으면 풀기도 힘들 텐데 제자한테 이렇게 해주는 교수가 어딨어."

"… 그러게요.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요. 감사합니다."

병실에서 야한 짓은 자주 했지만, 오늘은 처음이다.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임솔은 천천히 입을 열고 내 귀두를 물었다.

따뜻한 감촉이 내 자지를 감싸며 짜릿한 감각이 척추를 훑고 지나갔다.

츄릅- 쪼옵.

음란한 물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

A클래스 오전 수업.

머리를 단발로 자른 루미를 보고 여 생도들이 꺅꺅대며 다가왔다.

"우와, 루미지? 머리 자른 거 완전 어울리는데?"

"그니까그니까. 진작 이렇게 하고 다니지! 촌스러운 리본이 없는 게 더 예뻐."

"아… 그, 저…."

"야, 루미가 부담스러워하잖아. 그만해!"

갑자기 몰린 관심에 당황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루미는 루시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냈고, 루시는 생도들 사이로 들어가 손을 마구 저으며 루미를 구해냈다.

"알았어 알았어. 근데 진짜 예쁘다 루미."

"맞아… 오늘같이 카페 갈래?"

"미, 미안해요. 오늘 갈 곳이 있어서…."

"그럼 다음에라도 가자. 응?"

"야. 그만하라고 했지."

루시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여생도들을 모두 내쫓았다.

"루시… 고마워."

"아니야. 근데… 진짜 머리는 왜 자른 거야?"

루시도 오늘 아침에 처음 알았다.

루미가 어제 얘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으, 으음… 이미지 변신?"

"이미지 변신…?"

루미가 이미지 변신을 해야 할 이유가 뭘까.

루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점심시간에 찾아온 임솔이 떠난 후, 몇 시간 동안 병실이 조용했다.

그동안 나는 스마트 워치로 문수린에게 연락을 보냈다.

- 나 : 수린 누나. 많이 바쁘세요?

문수린이 병문안을 오지 않는 거로 봐서, 엄청나게 바쁜 모양이다.

- 수린 누나 : 미안. 면회를 하러 갔어야 하는데 지금 관계자들은 다 조사에 참여해야 해서 좀 바쁘네.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테러가 아닌데도 저렇게 바쁜 걸 보면, 문수린만 바쁜 게 아니라 당사자들은 전부 바쁘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어쩌면 남다희가 사라진 걸 아직 들키지 않았을 지도 몰라.'

평소 남다희를 관리하던 인원이 뛰어난 헌터가 아니라면 강효린 박사의 마법 진을 꿰뚫어보지 못할거다.

강효린 박사는 S급 헌터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졌으니까.

물론 길드장이 직접 보면 눈치챌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서 마법진이 약해지고, 술사가 멀어지면 출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조사 때문에 아직 확인을 못 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남다은이 말 없이 빠져나왔는데도 터치를 안하고 있기 떄문이다.

아무 일 없다면 남다은은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는 게 맞다.

그렇기에 건드리지 않고 있는거다.

'나쁘지 않아.'

시간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똑똑.

그때 병실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간호사가 말해준 면회겠지.

루시와 루미다.

"응. 들어와."

드르륵-

"안녕안녕! 어제 왔다가 쫓겨나서 오늘 왔지 뭐야."

"안녕하세요. 호연 씨. 몸은 괜찮으세요?"

"응응. 와줘서 고마… 어?"

루시의 뒤에 서 있던 루미가 조심스럽게 몸을 드러내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루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붉은 리본으로 묶인 머리가 없어지고 짧은 단발이 되었기 때문이다.

"뭐야. 루미 머리 잘랐네? 엄청 예쁘다."

"가, 감사합니다."

"그치그치. 아카데미에서도 예쁘다고 난리였어."

"루시… 그런 말 하지 마. 창피해."

루시는 자기 일처럼 루미를 자랑했다.

요즘 잘 못 챙겨줘서 미안했는데, 루시가 착한 건지 티를 안 내는 건지 몰라도 별말 없이 있어 줘서 참 고마웠다.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93 ]

- [ 성욕 : 30 ]

- [ 식욕 : 25 ]

- [ 피로도 : 55 ]

현재 상태 : 다행이다. 이호연도 건강한 것 같아!

'근데 루미는 왜 머리를 자른 거지?'

원작에서는 둘 다 계속 긴 머리였다.

"머리는 왜 자른 거야?"

"이미지 변신이래."

창피해하는 루미 대신 루시가 대답해줬다.

"이미지 변신…?"

"네, 네엣…."

이미지 변신이라니, 루미랑 너무 안 맞는 단어다.

그건 인싸들이 하는 거 아닌가?

★ 히로인 상태창

[루미]

- [ 호감도 : 96 ] (+0.4)

- [ 성욕 : 65 ]

- [ 식욕 : 35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예, 예쁘다고 해줬어. 다행이다. 다행이다….

'진짜 그냥 한 건가 보네…?'

예쁘니까 됐지 뭐.

우리는 오랜만에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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