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75 ]
- [ 성욕 : 20 ]
- [ 식욕 : 37 ]
- [ 피로도 : 50 ]
현재 상태 : 왜, 왜 그런 건지 물어봐야 해. 어째서 다희를 구해준 거지?
'아….'
저 주제는 다 듣는 곳에서 말하기가 좀 그런데.
이호연은 스칼렛과 눈을 마주쳤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 다 데려왔…."
최대한 혼신의 힘을 다해 눈을 움직이며 남다은과 단둘이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자 스칼렛이 반응을 보였다.
"으음… 남다희 양. 릴리아나님. 잠시 밖에 나가 있죠."
"왜요?"
"나 음료수 먹어야 하는데. 매실 먹어야 해."
"잠시면 됩니다. 음료수는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총총총.
스칼렛이 둘을 데리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역시 스칼렛이야.'
이호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에, 남다은을 바라봤다.
"음, 몸은 좀 괜찮아?"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입원해있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가?"
"…."
남다은은 입술을 우물거렸다.
물어볼 것은 너무 많았다.
왜 다희를 구해줬는지, 몸 상태는 괜찮은지, 그리고 어째서 자신을 도와주는 것인지.
하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두려웠다.
혹시나 바이어 길드처럼 자신을 속박할까 봐 두렵기도 했고, 자신을 도와주는 대가로 무언갈 요구할까 봐 겁났다.
물론 아닌 걸 알고 있다.
이호연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민규 아저씨도 한 순간에 그렇게 변하기 전까진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남다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꺼내지 못하는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바이어 길드 쪽에서 연락은 오고 있어?"
그때 이호연이 먼저 말을 이었다.
"응. 받지는 않고 있어. 네가 받지 말라고 했으니까…."
"잘했네. 그놈들 독한 놈들이니까 절대 연락받지 마. 지금 내 세력들이 바이어 길드의 비리들을 조사하고 있으니까 곧 터트릴 수 있을 거야."
"… 어째서, 날 도와주는 거야?"
남다은은 결국 참았던 질문을 꺼냈다.
자신은 이호연과 그렇게 깊은 관계를 나누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세력까지 움직이며 성심성의껏 도와줬고, 결국 다희를 구해냈다.
그 후로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뒤처리까지 도와주고 있었다.
이 정도 되니 이호연이 어떤 걸 요구할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사육사에게 교육받은 코끼리는 성체가 되어도 자기 다리보다 작은 사육사에게 반항하지 못한다.
바이어 길드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한 남다은은 다른 사람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나, 나는 아무것도 없어. 너한테 보상해줄 것도 없고, 물론 어떻게든 이 일은 갚을 거지만…."
이호연은 횡설수설하는 남다은의 모습을 바라봤다.
약하게 떨리는 어깨와 손. 굳은 눈과 입에선 긴장감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라는 감각이 어색한 거겠지.
얼마나 바이어 길드에 시달렸으면 저런 반응이 나올까 딱하기도 하다.
"그냥 별 이유 없었어."
"어?"
남다은은 이호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영 길드의 뒤를 조사하다가 너와 바이어 길드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신영 길드의 더러운 일을 맡고있는 바이어 길드를 처리하는 김에 너를 구해준 것뿐이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 그렇지만… 신경 쓰지 않기엔 너무 큰 빚을 져버렸어."
"그럼 네 말대로 언젠가 갚아. 이제 넌 자유니까 네 동생하고 같이 살면서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러다가 나한테 보답할 방법을 찾으면 보답하든가."
솔직히 별로 보답이 필요하지 않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얘가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감사만 느껴주면 된다. 난 그걸로 만족한다.
"…."
남다은은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잠시 후, 남다은은 훌쩍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이호연은 남다은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고, 고마워. 이번 일은 어떻게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갚을게."
"응, 그러고 보니 내가 다희한테 들은 게 있는데 말이야. 뭐였지? 카페 가기, 밥 먹기, 영화 보기… 언제 나랑 그런 걸 한 거야?"
파티에 참여하기 전, 남다희에게 들은 말을 남다은에게 그대로 전했다.
딱딱해진 분위기도 풀 겸, 이호연은 얼굴에 살짝 웃음기를 머금었다.
남다은은 눈에 눈물이 맺힌 채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 미안해. 동생한테 할 이야기가 없어서 지어낸 거야. 다희한테는 비밀로 해줘."
"아하… 그러셨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냥 생각나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나를 거짓말대상으로 삼은 모양이다.
"… 미안. 기분 나빴으면 제대로 사과…."
"그럼 카페 먼저 갈까?"
"응?"
"네가 말한 거 다 하면 되잖아. 그럼 거짓말이 아니게 되니까."
남다은도 20살의 풋풋한 여자아이다.
친구들과 놀거나 돌아다니거나 하고 싶은 건 많을 거다.
그러니까 저런 거짓말도 했겠지.
남다은은 눈물을 닦아내고, 무표정이 아닌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응!"
그 미소는 여동생과 통화할 때 보다도 훨씬 밝은 미소였다.
남다은의 붉어진 눈이 진정되고 나서야 밖에서 기다리던 여자들을 병실로 불렀다.
남다희와 릴리아나는 입에 빵을 하나씩 물고 병실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스칼렛이 먹을 거로 달랜 모양이다.
"냠냠."
"무슨 얘기 한 거야?"
빵을 먹던 릴리아나가 내게 물었다.
"그냥 뭐, 별거 아니었어. 그나저나 다희랑 많이 친해졌나 보네?"
같이 빵을 옴뇸뇸 먹고있는게 릴리아나와 사이가 좋아 보인다.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그런가?
"언니들이 엄청나게 잘 해줬어요!"
"음, 다행이네."
남다희는 반짝반짝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언니랑 다르게 얘는 참 표정이 풍부하다.
"오빠오빠. 우리 언니랑 무슨 얘기 했어요?"
"응? 그냥 뭐...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인사했지."
"다희야. 그런 거 물어보면 안 돼."
내 침대에 손을 얹은 채 질문을 하는 남다희를 남다은이 데려갔다.
"언니언니. 이호연 오빠랑 사귀어?"
"아니...?"
"왜? 같이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는 거면 사귀는 거잖아."
"...."
남다은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길래 말을 꺼냈다.
"자자, 다희야. 성녀님 만나본 적 있어?"
"네? 성녀님이요? 한 번도 없어요!"
"내가 이따가 소개시켜줄게. 지금 이 병원에 있거든."
"우와... 오빠 성녀님이랑도 친해요?"
남다희의 몸을 검사해봐야 한다.
아예 병 자체가 거짓말일 확률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까.
"... 고마워. 다행이다 다희야. 호연이가 도와준대."
"응, 나 성녀님 보고싶어. 언니!"
평소에 나를 호연이라고 부르진 않는데, 동생이 있어서 친근한 척 부르는 것 같다.
남다은 자매가 서로 보듬는 동안, 빵을 먹는 릴리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릴리아나. 그러고 보니 너 답장은 안 왔냐?"
"무슨 답장?"
"너희 어머님한테 편지 보냈잖아. 그거 답장 안 왔냐고."
"아... 응. 이상하게 늦게 오네. 저번에는 하루 만에 왔는데. 편지가 오다 엎어졌나?"
지옥의 마왕에 관해 묻기 위해 보낸 편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답장이 안 오는 게 좀 이상하네.
혹시 뭔가 사정이 있나?
릴리아나의 부모님이라 목숨이 위험하고 그러면 나도 마음이 아플 것 같다.
"호연님."
"응?"
릴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고 있을 때, 스칼렛이 내게 다가와 슬쩍 귓속말했다.
"어제의 영상은 바로 엘리스 아가씨에게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 응. 바로 전달해."
어제 스칼렛 감독 주도로 찍은 영상.
엘리스가 병문안을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올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영상을 보는 게 좋겠지.
"다은아, 너 기숙사에 다희도 데려갈 수 있겠어?"
"응?"
남다희가 있으니 나도 친근하게 불러줬다.
"계속 내 기숙사에 두기엔 좀 그렇지 않아?"
물론 내가 입원하고 있으면 여자끼리 지내는 거지만... 내 생각에 릴리아나와 지내는 게 정서 교육상 좋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퇴원하면 애매해지기도 하고.
"어. 음...."
그런데 남다은이 이상하게 계속 고민을 이어갔다.
이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인가?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82 ]
- [ 성욕 : 23 ]
- [ 식욕 : 40 ]
- [ 피로도 : 38 ]
현재 상태 : 기숙사가 너무 더러워서 도저히 다희를 데려올 수 없는데... 아무것도 없고.
'....'
도대체 얼마나 더럽길래 고민할 정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건 좀 공감이 가네.
몇백 원이 모자라서 샴푸를 못 살 정도였으니 아마 기숙사에 개인용품은 하나도 없을 거다.
그만큼 남다희가 지내기에 열악한 환경이란 뜻이다.
자기 동생을 그런 열악한 환경에 지내고 싶게하진 않겠지.
"그럼 나 퇴원할 때까진 기숙사에 있을래? 어차피 여자들밖에 없기도 하고. 릴리아나도 친해졌는데 헤어지는 게 아쉬워 보이네."
"엉? 어, 그렇긴 하지."
빵을 먹던 릴리아나는 날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나도 릴리아나 언니랑 놀고 싶어."
"알았어. 다희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다행히 남다희도 릴리아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정서 교육은 뭐... 스칼렛이 알아서 하겠지.
당장 해야할 일은 정리가 된 것 같다.
우리는 그 후로 잡담을 좀 했고, 돌아가기 전에 백아영을 호출했다.
"이 아이가 호연이 친구의 동생이라고?"
"네. 어릴적부터 몸이 안 좋다고 해서요."
"아하... 잠시만."
백아영의 손에서 나온 따뜻한 빛이 남다희의 몸을 감쌌다.
남다희는 눈을 꼬옥 감은 채 무릎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성녀를 만났다고 방방 뛰다가도 검사가 시작되니 긴장한 듯했다.
남다은은 그 옆에서 입을 앙다문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릴리아나와 스칼렛은 밖으로 내보냈다.
백아영에게 너무 많은 여자를 보여주기 싫었거든.
남다은이야 언니라 그렇다 치지만, 스칼렛같은 금발 여자는 좀 그렇잖아.
"후우...."
잠시 후 백아영이 한숨을 쉬며 머리를 넘겼다.
"어때요...?"
나는 긴장하며 경과를 물었다.
"치료 끝났어. 꽤 심한 합병증이 온 모양이야. 아무래도 오랜 영양실조나 스트레스가 원인인 모양인데, 조치는 끝났으니까 관리만 잘하면 괜찮을 거야."
아니 벌써 끝이라고?
"...?"
"...?"
남다희와 남다은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나는 재빨리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와, 와우. 역시 성녀님! 어떤 병도 순식간에 고쳐버리시네요."
"응? 아니 그렇게 대단한 병은...."
"대단해요! 대단해! 자, 얘들아. 감사 인사 하자. 고맙습니다."
백아영의 말을 끊고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성녀님!"
"감사합니다."
"어, 네, 고마워요."
별 대단한 병도 아닌 거로 입원을 시키고 있던 바이어 길드 새끼들이 야속하긴 하지만, 그걸 굳이 이 자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지.
안 그래도 슬픈데 얼마나 더 슬프겠어.
백아영을 보낸 뒤, 남다희와 남다은도 슬슬 기숙사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제 슬슬 가볼게."
"응. 조심해서 가. 다희도 조심하고 알았지?"
"오빠. 언니도 기숙사에서 같이 지내면 안 돼?"
그때 남다희가 내 침대를 붙잡고 똘망똘망한 시선을 보냈다.
"다희야. 그런 말 하지 마. 호연이가 부담스러워하잖아."
나는 남다희를 데려가려는 남다은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같이 있어. 오랜만에 봤는데 더 오래 있고 싶겠지. 나 퇴원할 때 까진 편하게 있어."
남자 기숙사에 들어가는 게 문제긴 하지만... 스칼렛이 잘 해줄거다.
"... 고마워. 다음에 또 병문안 올게."
"고마워 오빠! 사랑해!"
"응응. 잘 들어가."
남다은 자매는 손을 잡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스칼렛과 합류해서 돌아가겠지.
사람이 4명이나 있다가 훅 빠지니까 병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하아... 뭐 이런 개새끼들이 있어."
남다희를 괴롭히던 병은 그렇게 대단한 병이 아니었다.
백아영이 순식간에 치료했으니, 아마 적당한 힐러 한 명만 고용했다면 금방 치료할 수 있었겠지.
그런데 일부러 질질 끌면서 치료를 미룬 것이다.
"에휴. 지옥에서 온 건 저것들이지."
한숨을 쉬며 스칼렛이 주고 간 바나나에 손을 뻗었다.
웅웅-
그때 바나나가 올라간 책상이 순간 떨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바나나대신 강효린 박사의 손을 잡은 상태였다.
"어머, 여자친구도 있는 분이 이러면 안 되죠."
강효린은 날 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 그냥 평범하게 등장하시면 안 돼요? 그리고 여자친구 없습니다."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근데 이것도 안 놀랄 줄은 몰랐네요."
장난스럽게 웃은 강효린은 내 손을 놓고 품에서 자료들을 꺼냈다.
"바이어 길드의 비리 자료. 조사 끝났어요."
"와우."
조작된 이중장부와 바이어 길드가 처리한 일의 고객들 리스트. 그 외에도 마약 밀수나 성매매 알선 등 모든 일들의 증거가 정리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터트리는 순간 끝이네요."
"그렇죠. 제가 터트려드릴까요? 그 정도는 서비스로 가능한데."
"음... 아니요."
강효린의 서비스는 좋지만, 터트리는 건 일단 상황을 봐야 한다.
정확히는 이것도 남다은의 공략에 쓰고 싶었다.
분명 연락을 안 받고 있는 남다은에게 압박이 올거다.
남다희가 사라진 것도 금방 들통날거고... 그때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다.
"그래요? 그럼 저는 갈게요. 의뢰가 끝났으니 앞으로는 강효린 박사이자 교수로 대해주세요."
"네, 뭐. 근데 개인적인 의뢰도 안 받으세요?"
"으음. 봐서요?"
슉-
강효린 박사는 다시 책상에 빨려 들어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뭐야 저 사람."
그래도 자료는 잘 정리해놨네.
일은 열심히 하지만 이상한 사람이다.
똑똑.
"네. 누구세요."
"면회가 왔습니다. 임솔 교수님인데, 들여보낼까요?"
익숙한 간호사의 목소리다.
"네. 들여보내 주세요."
아직 내가 받을 면회는 한참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