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와 ㅋㅋㅋ 진짜 감탄만 나오네.]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안 사귄다며]
[진짜 진국이네. 칼 대신 맞아주는 거 남자인 나도 설렜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호연이 진짜 남자네.]
"…대체 뭐길래 이렇게 빨아줘?"
파티장에서 그렇게 멋있는 행동은 안 한 것 같은데.
영상을 재생시키자, 처음에 지지직거리는 검은 화면이 나타났다.
잠시 후 화면이 정상화되었다.
"아… 이때구나."
영상에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날 치료하는 백아영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밑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내 모습도 보였다.
물론 피를 엄청나게 많이 흘리진 않았다. 팔뚝을 베인 정도니까.
하지만 그때 베인 팔뚝에서 흐르던 피가 격렬한 전투 동안 옷에 묻으면서 마치 전신에 피를 흘린 상태 같았다.
"화질은 또 왜 이렇게 좋아. 부담스럽게."
기술이 뭐 이렇게 좋은지 나와 백아영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일단 영상을 계속 지켜봤다.
잠시 후 고통스러워하던 내 표정이 굳더니, 백아영의 몸을 잡아당기면서 등으로 백아영을 보호했다.
푸슉-
그리고, 내 등에 어딘가에서 날아온 단검이 박혔다.
"으으… 진짜 기분 더러웠는데."
온몸에 그때 감각이 떠올랐다.
날붙이가 내 몸에 박히는 소름 끼치는 느낌.
영상의 나는 객혈하며 피를 조금 내뱉었다.
몸 내부가 블러드 비트로 엉망진창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때는 너무 정신이 멍해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좀 신기하네.
단검을 맞은 내 표정이 일그러지고, 백아영의 눈이 커지는 걸 마지막으로 영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상이 끊겼다.
"… 와, 이거 멋있긴 하네."
내 얼굴이 나오는 영상을 내가 보는 데도 멋있으면, 진짜 멋있는 거다.
다른 반응을 더 보려고 댓글을 확인하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뭐지?'
백아영이 당분간 면회나 간병인 출입이 없을 거라고 하던데.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연 사람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상태가 괜찮구나. 이호연 생도."
"…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쉬는데 미안하네. 급하게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문 밖에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이사장이 서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이 왜 여기 있는거지? 급하게 할 말은 또 뭐고.
"일단 들어오세요. 이사장님."
"음, 알겠네."
이사장은 여유롭게 병실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나는 살짝 긴장하며 이사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사장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들, 그런 관계가 맞았군."
"…네?"
"백아영 말이야."
"아."
내 병실에서 나오는 걸 본건가.
엄청 행복한 표정으로 나갔으니 만약 봤다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근데 그걸 왜 말하는거야 지금?
"실은 이번 친목 파티 테러로 자네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어. 알고 있나?"
"… 아니오. 방금 일어나서 아직 확인하질 못했습니다."
순간 솔직하게 말할 뻔 했지만, 이사장이 무슨 말을 꺼낼지 모르니 내 정보는 최대한 숨겼다.
"이번에 자네의 활약으로 여론이 이쪽 편이 됬어. 지금이라면 아카데미에서 증거를 모두 보여주면서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
"자네에게 씌워진 혐의를 다 덮어줄 수 있다는 말이지. 그 대신 그만큼의 협력이 필요해."
"협력이요? 어떤 걸 말하시는지…."
"그건 자네가 협력에 동의하면 말해주지."
이사장은 팔짱을 끼고 자신있게 웃으며 날 바라봤다.
아카데미에서 내 편을 들어준다라… 나쁘지 않다.
확실히 '나쁘진' 않다.
그 말은 즉 좋지도 않다는 거다.
천상제 테러에서 발생한 일 때문에 여론이 시끄러웠던 건데….
솔직히 그날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걸 덮어주는 데에 대가를 요구하는게 맞는건가?
애초에 지들이 테러 방비를 못해서 일어난 일 아니야.
문수린의 할아버지라서 왠만하면 져주려고 했지만, 어떻게든 이득을 챙기려는 모습이 너무 꼴보기 싫었다.
애초에 지금 여론으로 봐선 아카데미의 도움이 필요없다.
하지만 아무리 멍청한 노인네라도 아카데미의 이사장이다.
아무 생각없이 행동하진 않을거다.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당장 생각나는 경우의 수는 두가지.
신영 길드에 대한 폭로를 이사장이 듣지 못한거다.
당장 실시간으로 여론을 파악하던 내가 그 정보를 안 지 10분 정도 되었으니, 이사장은 그걸 모른 채 찾아왔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아직 내가 그 정보를 모른다고 생각하는거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알기에 나는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일어나서도 상태가 안 좋아 치료를 받은 상태다.
즉, 아직 내가 여론을 제대로 모른다고 판단하고 폭로가 터지자마자 급하게 날 찾아왔을 수도 있다.
아마 두번째일 가능성이 높겠지. 면회가 안된다고 했는데도 찾아왔으니까.
어쩌면 이사장의 권력으로 억지로 밀고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첫번째든 두번쨰든 짜증나네.'
물론 이사장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다.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취하는 태도는 좋다.
하지만 그 상대가 내가 되면 안되지.
아카데미 이 개새끼들이 나한테 뭘 해줬다고?
뭐 사건만 일어나면 덮으려던 놈들이 이번에도 이딴 식으로 나오니까 나도 참기 싫어진다.
결국 나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사실 굳이 아카데미의 도움까진 필요없을 것 같아서요."
"… 뭐라고?"
"도와준다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솔직히 아카데미 잘못인데 제가 협력을 해주는 것도 싫고…. 그냥 알아서 할게요. 제가 안정을 취해야해서,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구만."
이사장은 기분나쁜 듯이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명백한 내 축객령에도 병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이사장에게 한 마디 하려는데, 이사장이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이 있지. 경찰이 있어도 사람들은 항상 범죄의 공포에 떤다… 자네는 그 이유를 알고 있나?"
"…."
이사장은 마력을 끌어올리지도 않았고, 위협적인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그저 내 눈을 바라봤다.
그것만으로 맹수에게 쫓기는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경찰은 결국, 모든 일이 끝나고 나타난다네. 피해자가 받은 피해와 트라우마는, 영원히 남게되지."
수 십년간 관록을 쌓아온 주름진 얼굴에서 나오는 위압감만으로 나를 제압하려 했다.
시도는 좋았다.
확실히 조금 긴장감이 올라왔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나인데?
이쪽은 감정 조절의 대가 이호연이다.
"이사장님. 뭐라도 하시려구요? 여기서?"
나는 오히려 피식 웃으면서 이사장을 바라봤다.
아무리 이사장이라도 여기서 날 건드릴 순 없다.
"… 못할 건 없지."
이사장도 슬쩍 입꼬리를 올렸지만, 이미 허세인 게 들킨 이상 소용없었다.
"스리슬쩍 죽이고 묻는 거야 이사장님 전문이겠지만, 저도 덮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성녀 남자친구인 이호연을?"
이사장이 오해를 하고 있는 만큼, 그걸 이용해야 했다.
현재 여론은 내 편이다. 사건의 중심인 나를 죽인 후에 숨길 수 없다.
게다가 백아영이 있는 건물에서 나에게 피해를 준다?
내가 아무 저항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절대 덮을 수 없는 일이다.
"… 역시 내 손녀가 관심을 가질만한 놈이긴 하구나."
"…."
이사장은 나와 눈싸움을 이어가다가, 진지한 표정을 풀었다.
그리곤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이제 백아영과 사귀는 사이라고 하니, 내 손녀를 건들진 않겠구나. 오늘 일은 미안했네. 욕심에 눈이 멀어서 생도에게 이득을 보려고 했으니."
"아, 네…."
너무 맥없이 사과를 받아서 나도 약간 기운이 빠졌다.
이사장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병실에서 나가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억울해.'
이대로 끝내기엔 억울하다.
뭔가 당하기만 하고 끝난 것 같잖아.
카운터 펀치를 못 날린 기분이다.
그리고 저 말하는 꼴을 보니, 문수린한테 쫄랑쫄랑 달려가서 이호연이란 놈은 백아영하고 사귀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할 것 같단 말이야.
그러면 얼마나 귀찮아질지 머리가 아프다.
나는 밖으로 나가려는 이사장의 뒤통수에 대고 입을 열었다.
"구라에요."
우뚝-
이사장의 몸이 멈추고, 로봇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봤다.
"방금 뭐라고… 했지?"
"아영 씨하고 사귀는 거. 구라라고요."
나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왜 나한테 와서 시비를 걸어. 상황 복잡해지게.
"수린 누나하고도 계속 연락할 거에요. 혹시나 잘 되면… 처조부(妻祖父), 아니 장조부(丈祖父)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허허… 세상에 이런 싹수없는 새끼가 있나."
이사장은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다가왔다.
몸에서 새어 나오는 마나에 병실에 있는 물건들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나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저를 챙겨주시면 이사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수린 누나를 대할 텐데… 어떻게 하실래요?"
"…."
이사장의 눈은 '뭐 이런 새끼가 있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는 진짜 상식적인 것만 요구합니다. 당장 생도 보호를 위해 제 입장 변호해 주시고, 아카데미 간판 생도한테 아티팩트도 좀 챙겨주시고, 지원도 좀 해주시고, 하면 얼마나 좋아요. 윈윈이잖아요."
"하, 생도 주제에 이사장과 협상을 요구하는 건 네가 처음 일거다."
"그래서 안 해주실 거에요?"
"… 오늘 바로 입장발표에 들어가마. 썩을 놈 같으니라고."
마치 화난 해태처럼 변한 이사장의 얼굴을 구경하는 건 꽤 재밌었다.
나이는 노인네여도 겉으로 보기엔 중년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이제 안녕히 들어가세요."
"…."
이사장은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늙은이 놀리는 것도 꽤 재밌네.
나는 머릿속에 버킷리스트 하나를 작성했다.
문수린을 꼬신 후에 이사장에게 가서 [열심히 키운 손녀딸은 제가 잘 받아갑니다! 라고 말하고 튀기] 였다.
노발대발 화를 내는 이사장을 문수린이 막아주면 베스트다.
"음음. 재밌겠네."
그 날을 기약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