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오물.
"… 그래서 결국 남다희 양을 구하게 된 거에요."
스칼렛은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서 변명했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활동한 경험과 들은 얘기들을 적당히 엮어 존재하지도 않는 이호연의 세력을 만들어냈다.
이호연이 무슨 의도로 남다은을 구해냈는지 듣지 못한 스칼렛은, 혹시나 이호연의 계획이 틀어질까봐 이호연이 직접 말할 수 있도록 말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스칼렛 씨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시는군요."
오물오물.
남다은은 치킨을 뜯으면서 스칼렛이 방금 지어낸 이야기를 경청했다.
"네. 저희도 이호연 님의 명령을 들은 것 뿐이라… 어, 저기. 그런데 왜 눈물을…?"
대화 도중 남다은의 눈이 촉촉해지고, 말을 이어가던 스칼렛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죄송해요. 치킨을 먹어본 게 처음이라…."
스칼렛은 훌쩍이며 치킨을 먹는 남다은을 보고 왜 이호연 주변 여자들은 다 이상한지에 대해 고민했다.
"언니… 나 때문에 치킨도 못 먹고…."
"괜찮아. 다희야. 사랑해."
"흐으이잉…."
서로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는 자매와, 그 옆에서 치킨을 뺏기지 않기 위해 열심히 치킨을 뜯던 릴리아나.
스칼렛은 잠시 혼미해진 정신을 붙잡고 남다은에게 물었다.
"이호연 님은 어디 계시죠? 같이 테러에 휘말렸다면 오는 김에 같이 왔으면 더 설명이 편했을 텐데…."
남다은을 기다리기 위해 아카데미 중앙 분수에서 대기하던 스칼렛은 확실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테러가 끝나자마자 남다은이 도착했으니 조사를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 병원에 있을 거예요. 저도 정확하게 알진 못하지만, 헌터들이 이호연 생도의 희생을 엄청나게 칭찬했거든요."
남다은은 테러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결계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모든 마인들을 처리한 후에야 슬쩍 파티장을 빠져나와 바로 이곳으로 향한 것이다.
그렇기에 자세한 사항을 알지 못했다.
"…!"
"스, 스카웃! 빨리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아봐 줘."
대화에 관심을 주지 않고 식사하던 릴리아나도 이호연의 이름을 무시할 순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스칼렛은 즉시 개인적인 정보통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친목 파티에 테러가 일어난 사실이 이제야 보도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칼렛도 남다은에게 대충 들은 게 끝이라 어디서 정보를 모아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쪽 계통에 관심이 많은 정보통들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바로 연락들이 속속 도착했다.
"뭐래? 살아있대?"
릴리아나가 스칼렛의 팔을 잡고 흔들어댔다.
"지금은 혼수상태고, 병원에 입원해있다네요. 성녀님과 여러 치료 능력자들이 붙어서 집중적으로 치료하느라 일반인들에겐 공개되지 않았고, 면회도 금지라고 해요."
"제발…."
남다은은 양 손을 기도하듯이 잡고 눈을 꼭 감았다.
아직 물어볼 게 너무 많았다.
다희와 자신을 왜 구해줬는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너무나 막막했다.
"아, 뭐야. 괜히 놀랐넹."
릴리아나는 이호연이 죽지 않았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그 질긴 목숨이 쉽게 끊기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릴리아나는 다시 치킨에 몰두했다.
*
"흠…."
백아영이 돌아간 후, 고민을 거듭했지만 영 괜찮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임 잘하자고 대놓고 말하는 건 좀 그렇다.
물론 그게 제일 좋은 해결방법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100까지 쌓아놓은 호감도가 떨어질까 겁이 난다.
호감도 100을 처음 달성하다보니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서 행동 방침을 정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어차피 간호를 위해 또 올 거다.
그때 슬쩍 떠보든가 해야지.
'아직 꼬실 여자가 한둘이 아닌데… 임신은 좀 그렇잖아.'
백아영을 공략하면서 어떻게 해야 내가 덜 쓰레기가 될까 생각해봤다.
히로인들을 다 공략하려면 이런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될 테니까.
처음엔 '내가 게임 세상에 들어왔고, 너희를 공략해야 한다.' '하렘이 필수적이다.' 뭐 이런 것들에 관해 솔직히 얘기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만약 여자라면 그딴소리를 하는 남자랑 절대 안 사귈 거다.
애초에 믿질 않겠지.
물론 인증할 방법이 있긴 하다.
히로인 상태창.
마음을 바로바로 읽어버리면 인증할 수 있겠지만… 마음을 읽는 게 내 입장에서나 읽는 거지, 남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기분 나쁠 거다.
공개하는 게 오히려 공략에 방해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이 허구라는 상실감 같은 문제도 있을거고… 뭐, 어쨌든 재고할 가치가 없다.
고민을 끝낸 나는 스마트 워치로 사람들의 여론을 확인했다.
내가 쓰러지고 하루가 지났다고 했으니 오늘이 테러 다음 날이라면, 이미 뉴스고 뭐고 다 나왔을 거다.
에브리데이에 들어가자 역시나 인기글들은 모두 친목 파티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주 난리가 났네."
하긴 갑작스러운 테러에 나도 당황했는데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원작에도 없던 테러라서 대응하기가 좀 힘들었다.
그 중에서 정리 글로 보이는 글에 들어가서 내용을 확인했다.
---------------------------
[협회 주최 친목 파티와 테러 뉴스 정리.]
오늘 친목 파티에서 마인의 습격이 있었다고 함.
파티장 전체를 덮어버리는 결계가 갑자기 나타나서 한 명도 빠져나가질 못했대.
나도 당사자는 아니니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인터뷰 몇 개 보니까 파티장 내부에서도 헌터들을 나누는 결계가 수십 개 펼쳐졌다고 했음.
동시에 수백이 넘는 마인의 습격까지 있었으니 완전 아수라장이었겠지.
근데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망자가 한 자릿수에 그쳤잖아.
심지어 일반인들도 있었는데, 이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수치거든.
그 이유가 이호연이라고 함.
현역 A급 헌터 세네 명이 모여서 10분 넘게 역산해야 풀리는 결계를 혼자서 30초 만에 뚫고 다니면서 헌터들 대부분을 구했대.
심지어 자신을 도우려는 헌터들도 거절하면서 서로 뭉쳐서 살아남으라고 말함….
헌터들을 거의 구한 후에 혼자서 마인 수십 명을 격파하고 성녀님을 구한 뒤에 혼수상태에 빠졌음.
그 중에서는 엄청나게 강한 마인도 있었다고 함.
이호연이 쓰러뜨린 강한 마인의 무력 수치는 최소 A급 이상, 최대 S급까지 보고 있음.
진짜 미친 거지;
이호연 올려치기라면서 구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테러 생존자들 인터뷰 보셈.
거짓말할 라인업이 아님.
애초에 그 사람들이 거짓말해서 아카데미를 띄워줄 필요도 없고 ㅋㅋ
[영상]
[영상]
[영상]
이건 내가 참고한 인터뷰들임.
추천 : 1530 비추천 : 89
----------------------------
[이게 말이 되냐…? 저게 천재 마법사라는 단어로 설명이 되는 수치임?]
[근데 인터뷰나 생존자들 SNS 가보면 진짜인 듯? 거의 이호연을 찬양하고 있던데]
[저 정도는 되야 성녀님이랑 사귈 수 있는거다….]
[울 호연 옵빠 최고 ㅠ.ㅠ 사랑해!]
"하긴 그렇게 보였겠구나."
사실 백아영을 찾으려고 돌아다닌 건데, 백아영이 더럽게 안나와서 겸사겸사 헌터들도 구해진 것뿐이다.
쓸데없이 나를 쫓아오길래 나한테 오지말고 저 쪽에 사람 많은 곳에 가있으라는 말도 잘 포장해놨다.
어떻게든 기삿거리를 만들려는 기자들과 헌터들의 착각이 엮여서 만들어진 오해였다.
댓글들이 날 찬양하는 걸 보니 기분은 좋네.
이미지가 좋아지는 건 언제나 이득이니까.
이 글 말고도 다른 글들도 확인했다.
잘 살펴보니 최근 몇 시간 만에 인터뷰나 반응이 훨씬 많아졌다.
-------------------------
[대형 길드장들 이호연 언급 시작 ㄷㄷ]
이호연 생도가 진짜 엄청난 역할을 하긴 했나 봐….
칭찬도 아니고, 생도인데 장하다 수준도 아님.
그냥 목숨을 살려준 은인 취급인데?
이호연 코인 화성가냐?
-------------------------
[ㄹㅇ. 언론도 안 믿고 이것도 안 믿으면 도대체 어쩔거임?]
[화성, 갈끄니까~]
이번 테러 이후로 확실히 여론이 달라졌다.
아카데미 천상제에 있던 유명인들이 이번 테러에서 내게 구해지면서 다시 언급하는 경우도 생겼고, 그 외에 나한테 구해진 사람들이 나를 대변하기도 했다.
--------------------------
[속보!! 아카데미 천상제 테러 현장에 있었던 태백 길드 1팀장이 폭로했다.]
[영상]
이거 진짜면 시발 협회에서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리 나라가 이렇게 부패한 곳이었음?
어떻게 된 게 태백 길드 정도의 팀장도 말을 못 하냐.
--------------------------
"이건 또 뭔데."
나는 여러 글을 구경하다가 한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에서는 한 남자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반갑습니다. 태백 길드 1팀장 전영수입니다. 저는 빅토리아 아카데미 천상제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길드의 압박으로 인해 말하지 못했습니다.
"허어…."
아마 살해 협박에 가까운 협박을 받았을 텐데 저렇게 말을 꺼내다니 엄청난 용기네.
- 어차피 죽을 목숨을 구원받았는데, 은인에게 이럴 순 없죠. 모두 말하겠습니다. 저는 신영 길드에게 협박받았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협박을 받았을 겁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는데, 주인공 옆에서 멍청하지만 착한 사람 역할을 맡은 조연 관상이다.
"그러니까 왜 까불어. 쯧."
이걸로 신영 길드는 꽤나 고생일거다.
수습하는 동안에는 좀 조용하지 않을까?
기다리다보면 강효린 박사가 신영 길드에 대한 정보도 가져올테니, 시간 날 때 터트리지 뭐.
이 영상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헌터들이 나를 자진해서 보호해줬다.
이게 단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여론을 파악하는 동안에도 실시간으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또 눈에 띄는 영상이 있었다.
다른 글보다 유독 추천 수가 많은 글이었다.
--------------------------
[파티장 CCTV 일부 복구되었을 때 영상 공개됨. 진짜 이호연 대박….]
[영상]
진짜… 이러니까 성녀님이 뻑이 가지.
존나 멋있다.
하… 그냥 말이 안 나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