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648)

*

뚜벅 뚜벅 뚜벅.

한 남자가 저택의 응접실로 걸어갔다.

고급진 응접실에는 이미 남자 두 명이 앉아있었다.

"다 모였구나."

"… 무슨 일로 모이라고 한 거지?"

"얘기해줄 테니까 기다려."

둘을 소집한 남자는 천천히 상석에 앉았다.

학생회 부회장 신동민이었다.

"너희들도 들었겠지. 이호연이 내일 친목 파티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당연히 들었지."

"… 예. 들었습니다."

신동민은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거대 마법사 길드의 후계자인 김현도.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마법 연구부의 부장을 맡고 있다.

평소에 신동민과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그리고 A클래스의 도진혁.

신동민만큼은 아니지만, 꽤 거대한 길드의 자식이다.

이 자리에 있는 셋의 공통점은 좋은 집안의 자식이면서 이호연에게 악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난 이호연을 정말 싫어해. 어떻게든 복수할 거고, 나락으로 떨어뜨릴 거다. 그 과정에서 너희들에게도 도움이 필요하다. 너희들 모두 내일 있을 친목 파티에 참여할 테니 말이야."

"내일 파티와 이호연이 무슨 상관이지? 설마 파티에서 정치질을 하자는건가?"

김현도가 의문을 꺼냈다.

무력은 물론이고 평판도 이호연이 유리하다.

인맥이야 이 셋을 합치면 이호연보다 많겠지만, 굳이 그 인맥들이 이호연을 저버리고 자신의 편을 들어줄까?

지금 이호연의 상승세를 생각하면 모든 인맥이 이호연과 적대할 거라고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아니, 목표는 이호연이 아니다. 그 파트너다."

"파트너라면… 백아영 말입니까?"

듣고 있던 도진혁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이호연은 확실히 자기 몸을 지킬 수 있겠지. 하지만 백아영은 알려진 대로 전투력이 전무하다. 이호연이 주변에 없다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어."

"… 연인을 공격하는 건 그렇다 치자. 확실히 타격이 있을거다. 이미지도 깎을 수 있겠지.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할 거지? 내일 파티 중에 백아영을 어떻게 공격할 거냐고."

김현도는 신동민이 답답했다.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대니, 왜 이 자리에 자신을 부른 건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급 정보를 입수했다."

"특급 정보?"

"내일 있을 파티에 판데믹의 테러가 있을 예정이다."

신동민의 말을 듣던 두 명은 판데믹이라는 단어에 흠칫했다.

"…!"

"판데믹이라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나름대로 정보를 얻는 곳이 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 이건 아니야. 난 빠지겠어. 판데믹의 테러라면 백아영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생길 거야. 일단 테러는 알리고 다음 기회를 찾는 게…."

판데믹의 위험성을 아는 김현도는 작전에서 빠지려 했지만, 그를 바라보는 신동민의 충혈된 눈은 광인(狂人) 그 자체였다.

"이미 이 자리에 온 순간 너는 늦은 거다."

신동민은 김현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지금까지 마법 연구부를 운영하면서 받은 특혜들과 다른 동아리에게 가한 불법적인 압박. 그것에 대한 증거를 다 내가 가지고 있어."

"… 협박이냐? 나도 네가 학생회에서 한 비리들은 다 파악하고 있다."

"정말 같이 죽고 싶어? 난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지만, 넌 아직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잖아. 그걸 포기할거라고?"

"…."

김현도는 이호연에게 원한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임솔 교수를 빼앗겼다는 개인적인 원한이다.

신동민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게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있으면 돼. 너한테 사람을 죽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테러가 일어날 때 백아영의 위치를 파악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응?"

김현도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침묵은 긍정인 법.

신동민은 다음 타자인 도진혁과 눈을 마주쳤다.

"후배는 어떻게 생각하지? 후배도 김현도처럼 거절할 건가?"

"아니요. 저는 찬성입니다."

도진혁은 아직도 밤마다 이호연의 꿈을 꾼다.

이호연이 자신에게 창피를 준 순간이나 남이 이호연의 칭찬을 하며 자신을 깎아내리던 순간들이 매일같이 떠오른다.

이런 감정은 어쩔 수 없이 이호연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 그래. 그럼 이제부터 자세한 사항을 알려주지."

신동민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내일의 동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얘는 언제 일어나?"

"글쎄…."

"아마 곧 일어날 것 같습니다.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나와 릴리아나,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스칼렛은 거실 침대에 누워있는 남다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감금당해있던 남다은의 동생이라는 설명은 끝내놨다.

불쌍한 남다은의 상태와 바이어 길드의 악행까지 설명하자 릴리아나도 감정을 이입했다.

"참 딱한 아이군요… 이 나이에 감금 생활이라니."

스칼렛도 강효린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돌아와서 같이 설명을 들었다.

"근데 자기 자신은 감금 생활인 걸 몰라. 그러니까 자기가 납치당한 줄 알고 놀랄 거야."

이게 문제다. 남다희는 자신을 구해준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우리를 나쁜 악당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걱정 마. 깨어나면 내가 열심히 달래볼게."

릴리아나가 가슴을 내밀며 씨익 웃었다.

"네가 할 수 있겠어?"

"응. 전에 우는 아이 달래기 시뮬레이터를 했는데, 엄청나게 잘한다고 시청자들한테 칭찬받았거든."

말 한마디로 내 기대감을 바닥까지 낮춰버렸다.

대단한 능력이다.

"저도 아이를 돌보는 데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호연 님."

다행히 우리에겐 못 하는 게 없는 스칼렛이 있었다.

"오… 스칼렛. 너만 믿을게."

"나도 자신 있다니까?!"

"으우웅…."

너무 시끄럽게 한 건지, 남다희가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야, 쉿."

이미 늦었다.

남다희는 기지개를 피며 눈을 떴다.

"하으… 어?"

그리고 처음 보는 방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남다희는 우리 셋과 눈이 마주치고, 주변을 둘러봤다.

"다희 양. 놀랐겠지만 진정하고 저희의 말을 들어주세요. 남다은 양의 요청으로 다희 양을 데려왔어요."

스칼렛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남다희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유도했다.

"딸랑딸랑. 자 여기 보세요~."

그리고 릴리아나는 어디서 구해온 건지 아이용 딸랑이를 흔들며 남다희의 시선을 끌었다.

아니, 얘는 신생아 키우기 시뮬레이터를 한 건가?

딱 봐도 중학생은 돼 보이는 애한테 무슨 딸랑이야.

나는 스칼렛만 믿으며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남다희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잘생긴 오빠… 언니 친구 맞죠?"

"어?"

얘가 나를 어떻게 아는거지?

"언니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같이 카페 간 이야기랑 밥 먹은 이야기, 영화 본 이야기랑 대련 한 이야기랑…."

남다은이 동생에게 내 얘기를 한 건 그렇다고 쳐도… 대련 빼고는 다 처음 듣는 얘긴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다닌거야.

"… 제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네요. 호연 님의 얼굴이면 여자아이들은 한 방에 설득 끝인데."

"아니, 내 얼굴 때문이 아니잖아."

"딸랑딸랑…. 왜 안 봐주지?"

"릴리아나. 기다려봐."

릴리아나는 흔들던 딸랑이를 집어던지고 시무룩한 듯 입술을 내밀었다.

일단 지금은 남다희가 우선이다.

"어…. 다희야. 맞아. 다은이가 너를 구해달라고 해서 너를 빼낸 거야."

"저를 왜 구해줘요? 얼마 전에도 언니랑 만났는데."

"천천히 설명해줄게."

남다은은 현재 바이어 길드 건물 안에 있었다.

남다희를 구해냈지만 접촉할 방법이 없다. 내일 파티 때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겠지.

나는 남다희에게 천천히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친목 파티는 당장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에, 에… 민규 아저씨가…?"

"… 응. 그게 끝이 아니야. 네가 입원했을 때부터, 다은이는…."

아직 어린 애라서 추악한 진실을 알게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박민규가 널 핑계로 남다은의 몸을 요구했다.' 정도의 무게감이 아니면 남다희를 납치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별것도 아닌 거로 입원하고 있는 아이를 데려온 꼴이 돼버릴 테니까.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스칼렛이 남다은을 협박하는 길드장의 증거를 몇 가지 가져오니 남다희도 납득했다.

결국 모든 걸 들은 남다희는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언니… 흑. 민규 아저씨를 믿었는데…. 훌쩍."

"… 스칼렛."

우는 여자아이는 달래주기 힘들다.

내 특기가 아니라서 아이 돌보기의 달인인 스칼렛을 불렀다.

"다희 양. 괜찮아요."

토닥토닥.

"치킨 먹을랭?"

릴리아나는 닭다리를 들고 와서 남다희에게 쥐여줬다.

앙. 

"…맛있어요."

닭다리를 든 남다희는 약간 표정이 밝아졌다.

"그칭? 이건 리뉴얼 치킨이야."

다행히 예쁜 언니들 덕에 조금 안심한 모양이다.

남다희가 진정할 동안 릴리아나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얘는 어떻게 할 거야?"

"잠시 여기서 지내야지."

바이어 길드에서도 곧 남다희가 사라진 걸 눈치챌 거다.

그 전에 남다은을 바이어 길드에서 빼내고, 동시에 강효린이 가져올 증거들을 터트리면 된다.

그 다음은…. 솔직히 생각 안했다.

남다은이랑 지내게 하면 되지않을까? 물론 내 기숙사에서 이대로 지내는 게 안전하긴하지만…

릴리아나와 스칼렛이 아이 정서에 좋지 않을거다.

'어떻게 된 게 점점 기숙사에 사람들이 많아지는 느낌이네.'

집이라도 새로 구해야하나.

일단 집은 나중에 생각하고, 제일 큰 걱정거리가 사라졌으니 나는 내일 파티를 준비했다.

파티를 위해 특별 주문한 정장.

백아영과 같이 가는 파티인 만큼 무시당하기 싫어서 꽤 비싼 옷으로 주문했다.

문수린도 온다고 했으니 더 신경 써야지.

- 나 : 아영 씨. 내일 어디서 만날까요?

준비는 끝났으니 약속만 잡으면 된다.

백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백아영 : 파티장 앞에서 만나자. 내일은 엄청나게 복잡할 거야.

- 나 : 알겠어요. 내일 봐요.

흐음.

백아영과 약속도 잡았고, 내일 파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뭔가 불안했다.

일단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해야지.

"스칼렛. 이리 와봐."

"네?"

남다희와 놀고 있던 스칼렛을 불렀다.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은 해놨지만, 혹시 모르니까 보험을 들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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