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648)

*

띠링-

루미와 헤어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 스카웃 이거 뭐…

안쪽에서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리길래 또 스칼렛이 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인지 둘 다 스마트 워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둘이 하나씩 잡고 보면 될 텐데, 굳이 스칼렛 걸로 같이 보느라 얼굴도 딱 붙은 상태였다.

얘는 그냥 우리 집에 살기로 한건가? 너무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아있네.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보고 있어?"

나는 겉 옷을 벗으면서 둘에게 말을 걸었다.

"호연 님. 오셨군요."

"마침 잘 왔어. 여기 네 이름 나온다길래 보고 있었거든."

스칼렛과 릴리아나는 한 인터뷰의 다시보기를 보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스마트 워치의 화면을 쳐다봤다.

- 성녀님께서 이번 협회의 친목 파티에 참여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아카데미로 이적한 후에 처음 나서는 외부활동이시죠?

- 네. 맞아요.

화면에는 한 여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백아영의 모습이 보였다.

누가봐도 긴장한 게 티가 나는 얼굴이었다. 

귀엽긴한데, 이 사람 왜 이러고 있지?

갑자기 무슨 인터뷰야.

- 약간 민감한 질문이지만, 파트너에 관한 질문이 너무 많더라고요. 솔로인지, 누군가 대동하는 건지, 말이 엄청나게 많은데 혹시 이에 관련해서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 사실 같이 갈 파트너는 이미 정해져 있어요. 여러분들도 다 아실 거예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천재 마법사 이호연 생도.

- 잠시만요. 이호연 생도하고 같이 파티에 참여하신다고요? 잠시만. 카메라. 이거 잘 돌아가고 있지? 성녀님, 이거 지금 단독 인터뷰에서 처음 공개하시는 거 맞죠?

- 네. 맞아요. 

- …여, 여러분들! 엄청난 소식이…!

"아니 이게 뭐야."

아영 씨. 이런 말 없었잖아요.

왜 이래 우리 사이에.

"혹시 호연 님하고 관계없는 일이면 빨리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요?"

스칼렛이 당황한 내 모습을 걱정하며 물었지만… 허위 사실이 아니다.

"어… 사실 파트너가 맞긴 해. 갑자기 공개해서 문제지."

"아…."

"파티? 나도 데려가면 안 돼? 나도 너랑 파트너 할래."

"… 안돼. 사람들 엄청나게 많이 와서 서큐버스인 걸 들키면 그대로 해부당할걸."

"헉. 그건 좀 무서운데. 그래도 파티는 가고 싶어."

파티에 가고 싶어 하는 릴리아나의 볼을 만져주며 달래줬다.

그 와중에도 영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떠들고 있었다.

지금은 나를 어떻게 만난 지에 관해 물어보고 있길래, 집중해서 영상을 지켜봤다.

- 아, 던전 실습 테러에서부터 친해지셨군요.

- 네. 그 이후로 개인적으로 만나다가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유지하는 중이에요….

- 오, 오! 그 말은 혹시…?

- 후후… 더 얘기하진 않을게요. 이호연 생도의 입장도 있으니까요.

- 아아아!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에요!

"아니… 장난하나 이 사람들."

저렇게 말하면 누가 봐도 연인관계잖아.

이건 진짜 허위사실 유포인데?

"이 영상. 언제 거야?"

나는 스칼렛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 시간 전 쯤에 공개됐어요. 공개되자마자 난리가 나긴 했지만."

"와… 좆됐네."

다행히 릴리아나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뭐… 엘리스나 남다은, 임솔도 크게 반응하진 않을 거다.

남다은은 이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고, 엘리스는 아직 날 좋아하지 않는다.

임솔은 뭐… 백아영에게 직접 연락해서 물어보겠지.

문제는 따로 있는데…

띠링-

- 수린 누나 : 호연아, 백아영 선생님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 같은데, 바로 아카데미 측에서 고소를 진행할게. 

- 나 : 누나. 잠시만요. 허위 사실이 아니라 단순 파티 참여일 뿐이에요. 친목 파티에 가고 싶었는데 같이 갈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급발진하는 문수린을 진정시켰다.

갑자기 고소를 왜 해요 누나.

- 수린 누나 : 나도 파티 참여하는데,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아…."

생각을 못 했다.

임솔과 만나고 백아영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연속에서 문수린의 존재를 까먹었다.

근데 문수린한테 초대장이 가면 나한테도 올 만하지 않나?

나정도면 나름 유명인인데.

잠시만. 혹시….

"릴리아나. 기숙사에 초대장 같은 거 안 왔지?"

"초대장?"

릴리아나는 내 손에 얼굴을 비비면서 눈을 감고 무언갈 떠올리고 있었다.

"으음… 사실 주변 식당들 광고지가 너무 많이 있길래 치킨집 광고 빼고 다 버리긴 했는데 다른 건 자세히 안 읽어서…."

"…."

아니겠지. 아닐 거야. 

나 같은 놈한테 초대장이 올리가 없지. 응.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 나 : 죄송해요. 누나. 그래도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 수린 누나 : … 사귀는 사이 아니야?

- 나 : 당연하죠. 

- 수린누나 : 알았어.

"아이 씨… 호감도 깎아 먹겠네."

갑자기 백아영의 돌발 행동 때문에 피곤해지게 생겼다.

다음 위험 히로인들은 루시와 루미다.

그 둘에게도 변명을 해야 하는데, 연락이 오질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연락해서 '성녀님하고는 그냥 같이 파티에 가는 것 뿐이고 이상한 사이 아니야!' 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쌍둥이하고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변명을 하는 건 너무 웃기잖아.

연락이 안 온다고해서 먼저 연락하기도 좀 애매했다.

평소에 연락을 먼저 하는 편이 아니니까.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하자니 이런 일이 터지자마자 먼저 연락을 하는 것 같아서 괜히 신경쓰인다.

"연락 좀 잘할걸…."

쯧.

뒤늦은 후회를 하며 스칼렛에게 말을 걸었다.

"스칼렛. 내가 말한 정보들은 구해왔어?"

"네. 친목 파티에 관한 정보들을 정리해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역시 스칼렛이야. 성능 확실하구만."

책상에 앉아 스칼렛이 정리한 자료를 읽었다.

"친목 파티… 유명인들도 많이 오네."

파티 전까지 남다희를 구하기만 한다면, 사실 파티가 중요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보험이었으니까.

근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참여를 꼭 해야겠네.

백아영이 기대가 큰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가 불참한다고 하면 실망이 클거다.

"쩝…. 남다은 상태는 어떻고?"

남다은은 그날 이후로 아카데미에 얼굴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숙사 침대에서 나오질 않고 있어요. 며칠 동안 밥도 굶은 것 같아요."

"하…."

저번에 교환한 번호로 연락을 해봐도 연락을 받지 않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일단 혹시라도 움직이면 내게 바로 말해줘."

"네. 알겠습니다."

"엘리스는 특이사항 없고?"

"호연 님이 두고 가신 스마트 워치의 영상을 매일 밤 사용중입니다. 사용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첫날에 2시간 15분. 어젯밤에 3시간…."

"… 그것까지는 안 궁금해."

엘리스의 자위 시간까지 디테일하게 듣고 싶진 않다.

"죄송합니다."

"스카웃. 이거 어때? 정글의 맛 정글 치킨."

릴리아나는 어느새 배달 앱을 키고 치킨집을 고르고 있었다.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찬성입니다."

"너도 정글 치킨 좋아?"

내게 매달리는 릴리아나를 잠시 밀어냈다.

"마음대로 해."

지금 머리가 복잡해서 정글 치킨인지 아마존 치킨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였다.

나는 둘이 치킨을 고르는 동안 강효린이 일을 빨리 처리해주길 기도했다.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들을 고민했다.

*

어두운 회의실 안.

거대한 원탁을 둘러싸고 앉아있는 판데믹의 간부들은 마에스트로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인형처럼 정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모습에 레베카는 혀를 찼다.

"어휴…."

마에스트로의 장기 말같은 새끼들.

자신의 의지나 주장 없이 마에스트로의 명령에만 따르는 인형들이다.

"미안해요. 기도하다 보니 시간에 조금 늦었네요."

'조금은 무슨.'

회의시간보다 두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불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들에게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자리에 앉은 마에스트로가 입을 열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할까요… 그런데 레베카.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죠?"

"나는 언제까지 대기인 거야? 아카데미로 보내준다며."

당장 룬의 일족 후예를 보러갈 마음에 두근대고 있었는데, 잠시 상황을 지켜보라고 내려진 대기 명령이 일주일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음, 테러의 피해가 적었고, 축제와 시험이 끝났으니 곧 긴장이 풀릴 거에요. 아마 한 달 정도면…."

"한 달? 미쳤어? 난 못 기다려."

"레베카! 마에스트로님께 말대꾸라니!"

레베카의 옆에 앉아있던 소머리의 마인이 마력을 내뿜으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레베카는 코웃음을 치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조슈아. 진정하세요. 그리고 레베카. 잠시 제 눈을 바라봐요."

지이잉-

마에스트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주변 공간을 덮었다.

레베카에게 소리를 질렀던 소 얼굴의 마인은 눈동자에 힘이 풀리며 바로 화를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레베카에게 다가간 마에스트로는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레베카. 당신은 한 달 동안 가만히 있어야 해요. 알겠죠?"

눈이 마주친 레베카의 얼굴에서 분노가 점점 사라져갔다.

"… 네. 알겠습니다."

조곤조곤 말하는 마에스트로의 말에, 레베카는 멍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카데미보다 급한 일이 있어요. 마침 레베카가 딱 필요한 일이에요."

마에스트로는 순해진 레베카를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목요일 오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친목 파티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은 루시 루미 쌍둥이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카데미에서 만난 둘에게 백아영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고 그냥 파티에 같이 갈 뿐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래도 직접 얼굴을 보고 변명하니까 의외로 바로 이해해줬다.

쪼옥-

"그게 진짜 맛있어?"

루시가 내가 먹고 있는 연두색 음료를 보며 말했다.

"응. 맛있다니까."

내가 시킨 음료는 끌레르 로즈 라떼.

문수린이 좋아하는 음료다.

솔직히 맛 없지만,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먹고 있다.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무슨 맛인데?"

"음... 장미의 은은함과 민트의 시원함에 매운맛이 더해진 맛이야."

"... 맛없을 것 같아."

루시는 자기 앞에 놓인 초코 프라페를 쪽쪽 빨았다.

"호연 씨, 이거도 드세요."

"고마워. 너도 한 입 먹어."

자신의 케이크를 썰어서 나눠주는 루미에게 나도 끌레르 로즈 라떼를 내밀었다.

"어... 저는 괜찮아요."

"내 마음이야. 먹어줘."

솔직히 혼자 다 먹기에 부담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 네. 쪼옥. 흑."

"울먹거릴 필요까진 없잖아."

루미는 사약을 먹는 것처럼 눈을 꼭 감고 끌레르 로즈 라떼를 빨았다.

울 정도로 맛없진 않은데.

"내 동생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

그 모습을 본 루시는 케이크를 먹던 포크로 나를 위협했다.

"아니야. 루시. 이것도 나름 맛있어."

"그래. 루미가 괜찮다는데 왜 네가 그래."

깜짝 놀란 나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는데, 루미도 내 편을 들어줬따.

"... 뭐야. 또 나만 빼놓고 둘이 팀 하는 거야?"

루시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렇게 루미와 둘이 친한 모습을 보이면 루시의 질투하는 모습이 뻔하게 보였다.

"큭. 미안해. 루시."

역시 다른 히로인들과 달리 쌍둥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다른 히로인과 비교하면 이 정도 질투는 웃으면서 넘겨줄 수 있다.

나와 루미는 삐진 루시를 열심히 달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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