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 (157/648)

*

바이어 길드 본부의 어두운 방 안.

다리를 꼰 채 소파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남성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

"우리 다은이가 분명 1등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다희랑도 한 번 더 보지 않았나?"

"그, 그건…."

남다은은 무릎을 꿇은 채 바이어 길드장 박민규를 올려다봤다.

"흐음…. 다은아. 변명할 게 있니?"

"… 죄송합니다. 아저씨.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무릎을 꿇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남다은을 바라보며, 박민규는 고민했다.

계약상으로는 남다은을 자퇴시킬 수 있다.

그 후에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 정도의 부정계약이 남다은과 박민규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남다은을 자퇴시키는 건 효율이 좋지 않다.

남다은의 이름값이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를 졸업시키는 게 베스트고, 그게 안 되더라도 최소 1학년은 마쳐야한다.

그래야 남다은의 몸값이 더 오르고, 바이어 길드의 명예도 오를 테니까.

지금은 거대 길드의 뒤처리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이 그 자리를 꿰찰거라고 박민규는 굳게 믿고 있었다.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은이는 아직 쓸모가 있으니까 다희라도 사창가로 넘겨야 하나?"

"다희를 건드리면… 정말 참지 않을 거예요."

"그게 싫다면 네가 열심히 해줘야겠지? 응?"

"… 네."

"이번에 한국의 대형 길드와 헌터끼리 파티가 있는데, 네가 내 파트너로 나와라. 널 위해 드레스도 준비했거든."

"…."

남다은은 무릎을 꿇은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동생이 위험해지는 것보단 자신이 추해지는 게 나았다.

"왜, 싫어? 다희를 생각해야지. 네가 잘해주면 절대 안 건드려."

"… 네. 알겠습니다."

박민규는 입꼬리를 끝까지 끌어올렸다.

'이렇게 천천히 조교 하는 거지.'

언젠가 남다은이 직접 자신에게 다리를 벌리게 만들기 위해 박민규는 웃음을 지었다.

어릴때부터 키워온 여자아이를 무릎 꿇린 것 만으로도 이렇게 흥분되는데, 발가벗고 내게 매달리게 하면 얼마나 흥분될까.

그걸 기대하기에 아직까지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남다은이 자신에게 직접 다리를 벌리는 그 날을 생각하면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마지막에 뱉은 말로 목숨을 건진 줄도 모르고, 박민규는 남다은을 보며 추악한 욕망에 빠져들었다.

"어서오세요. 바이어 길드입니다."

"안녕하세요. 바이어 길드에 의뢰를 맡기고 싶어서요."

"네.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어요?"

"…어 잠시만요. 놓고 왔네. 잠시 차에 갔다 올게요."

"스마트 워치로 대신하셔도 괜찮습니다. 고객님. 고객님?"

나는 바이어 길드의 로비를 빠져나와 가까운 카페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카페에 앉은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이게 될 리가 없지."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해본 건데, 역시 안 됐다.

나는 카페에서 바이어 길드의 건물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에 별 특색 없는 작은 빌딩.

저기에 남다은이 있을 확률이 높다.

마냥 스칼렛을 기다리기 싫어서 기숙사에서 뛰쳐나왔는데, 진짜 할 게 없었다.

룬의 결계를 이용해 잠입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그렇게 쉽게 뚫리는 곳이었으면 의뢰권을 쓰지도 않았을 거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뚫어져라 건물만 쳐다봤다.

진지하게 그냥 길드 정문으로 들어가 때려부술까 고민하던 순간.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호연 님."

"… 스칼렛이구나."

익숙한 금발의 여성이 아닌 처음 보는 흑발의 안경녀였다.

"네. 밖에서 같이 있는 게 걸리면 안 되니까요."

"잘했어. 그래서 조사 결과는?"

"중소길드치고 말도 안 되는 방비가 되어있습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조사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남다은 생도의 흔적은 찾았습니다."

"… 정말?"

이러면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네. 길드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안쪽은 너무 마법진이 두터워서 조사하지 못했어요. 남다은 양은 눈이 충혈되어 있긴 했지만, 옷도 단정해서 벗긴 흔적이 없었고 폭행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하아, 다행이네. 알았어. 일단 기숙사로 돌아가자."

지금 당장 남다은을 어떻게 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확신은 아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만약 스칼렛이 없었다면 정말 막무가내로 길드로 쳐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남다은을 공략 못한다면 내 목숨도 없다.

안 쪽의 정보를 모르는 내 입장에선 신중하기보단 일단 행동할 수 밖에 없다.

낮은 확률이라도 배드 엔딩은 무조건 피해야 하니까.

그렇게 카페에서 일어나 기숙사로 돌아가려는데, 바이어 길드 건물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남다은을 발견했다.

평소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죽어있었고, 조각한 듯한 이목구비는 힘이 빠져있었다.

"스칼렛. 너 먼저 돌아가 있어."

"네. 릴리아나 님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응. 치킨 시키라고 말하고."

나는 스칼렛을 보낸 뒤에 남다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다행히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아카데미 쪽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남다은의 뒷모습을 보며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카데미 앞 쪽에서 남다은과 우연히 마주치도록 크게 돌았다.

"어? 남다은?"

잠시 후 남다은과 마주쳤고, 남다은은 내 목소리를 듣고 바닥을 보던 눈을 살짝 올렸다.

"…."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내 얼굴을 보자 얼굴에 약간 생기가 돌아왔지만, 아직 상태가 좋지 않았다.

"… 미안. 오늘은 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나중에 얘기하자."

남다은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 비척비척 가던 길을 걸어갔다.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57 ]

- [ 성욕 : 12 ]

- [ 식욕 : 42 ]

- [ 피로도 : 89 ]

현재 상태 : 이호연만 아니었다면… 아니지. 내 잘못이잖아. 아직, 아직 버틸 수 있어. 나는 괜찮아. 다희는 아무것도 몰라야 해. 토요일 하루만 참으면 돼. 괜찮아….

남다은의 멘탈은 완전히 아작난 상태였다.

'토요일…?'

나는 그중에서 토요일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토요일에 무언가 있나?

하지만 내 기억에 잡히는 건 없었다.

"…."

힘없이 걸어가는 남다은의 뒷모습을 보니 분노가 치솟았다.

'미안해, 미안해… 다희야. 정말 미안해… 언니가 더 잘했어야 하는데.'

남다은 배드 엔딩의 마지막 모습이 불현듯 기억에 스쳤다.

길드원들을 학살한 후에 여동생과 함께 자살하는 장면이다.

쓰레기 같은 바이어 길드의 길드장을 당장이라도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지금 가서 저 새끼들을 다 죽여봤자 나도 역으로 죽는다.

그리고 그렇게 계획없이 싸우면 남다은의 동생인 남다희의 목숨도 위험하다.

바이어 길드의 힘 자체는 대단하지 않다.

당장 남다은 혼자서 무너뜨릴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그 뒷배들이 중요하다.

자신들의 수족을 밟아버리면 가만히 있지 않을 놈들이다.

물론 임솔 교수나 백아영, 문수린등이 도와준다면 내 목숨을 부지할 순 있겠지만, 남다은을 공략하는 데에 다른 히로인들이 개입해서는 안된다.

결국 나중에 하렘 엔딩을 가로막는 행위가 될테니까.

그렇다고 바이어 길드의 치부를 폭로해 버리면 꼬리 자르기가 일어나면서 대형 길드들의 위협은 사라지겠지만, 남다은의 동생이 위험해진다.

돌아버린 바이어 길드장이 남다은이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어떻게든 남다은의 동생을 빼낸 후에 바이어 길드의 치부를 폭로해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대형 길드들도 손을 뗄 거고, 남다은을 협박하려고 해도 동생이 없다면 남다은도 참을 이유가 없다.

'하루면 된다.'

내일 아이리스 길드와 접촉하면, 남다은의 동생을 구할 방법이 생길 거다.

"… 남다은!"

힘없이 걸어가는 남다은은 내 목소리를 듣고 잠깐 멈추었다.

그 앞으로 달려가 남다은과 눈을 마주쳤다.

"무슨 일이든 상관 없어.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조금만 버텨."

"…."

남다은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슬픈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네가…."

참고 있던 감정이 터지듯 남다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네가아…. 흑."

네가 나에 대해 뭘 알고 있냐고,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긴 하냐고.

말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남다은은 눈으로 묻고 있었다.

"다 알아. 그냥 믿어. 어떻게든 해결할 거니까."

나는 그저 믿으라는 말 밖에 해줄 수 없었다.

지금 바이어 길드니 뭐니 하는 말을 해봤자 소용없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믿기보단 의심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냥 잠시 버틸 실낱같은 희망을 주기만 하면 된다.

그 사이에 일은 모두 끝나있을테니까.

*

"어디로 간 거지?"

엘리스는 방에서 스마트 워치를 손에 얹은 채 침대에 누웠다.

시험 성적만 확인하고 스마트 워치를 돌려주려고 했는데, 이호연이 사라져버려서 스마트 워치를 돌려주지 못했다.

"딱 하나 틀렸는데… 2등이네."

임솔의 마법 필기시험 30번.

단 한 문제를 제외하고 모든 필기를 다 맞혔다.

정말 이기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는데, 이호연은 더한 괴물이었다.

등수가 공개되었을 뿐, 성적이 공개된 건 아니지만 엘리스는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은 임솔 교수의 30번을 제외하면 모든 문제를 맞혔다.

그런데 자신이 2등이고 이호연이 1등이라면, 이호연은 그 문제까지 맞힌 꼴이 된다.

"… 미친 놈. 말도 안되는 놈. 나쁜 놈."

임솔이 공개한 답안지에 따르면 마법안에 마법진이 하나 더 숨어있다고 했다.

미친 난이도에 한숨이 나오지만, 엘리스는 그걸 맞춘 이호연이 더 놀라웠다.

똑똑-

"엘리스 아가씨."

"응. 들어와."

엘리스의 허락에 세바스 찬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호연 생도가 점심 경에 의뢰권 구슬을 열었다고 합니다."

"… 이 타이밍에?"

시험 성적이 공개되자마자 아카데미를 박차고 나가 의뢰권을 사용했다면 그것과 관련된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지부의 지부장과 내일 접촉하기로 했는데 의뢰 내용을 들으시겠습니까?"

"당연히 들어야지."

의뢰권을 준다고 했지, 그걸 듣지 않는다는 약속은 없었다.

이런 정보는 많을수록 이득이다.

"그리고 스칼렛이 곧 좋은 소식을 들고 온다고 하던데, 혹시 영상이 생기면 길드에서 압박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아니아니. 그럴 필요 없어."

엘리스는 그냥 흥분을 위한 재료가 필요했을 뿐, 솔직히 영상으로 협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길드가 전체적으로 압박하는 게 더 효율이 좋을 텐데요."

"괜찮아. 이번엔 내가 알아서 해. 경험을 쌓아보고 싶어서 그래."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식견이 짧았군요."

세바스 찬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휴.'

엘리스는 속으로 안도했다.

이호연을 협박할 마음은 없었는데 갑자기 열심히 일하려는 세바스 찬 덕에 당황했다.

굳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오히려 좀 대충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자신한테 틈이 많이 생길 테니까.

'그나저나 스칼렛은 왜 영상을 안 가져오지? 돈을 그렇게 많이 받으면서 일을 너무 대충 하는 거 아니야?'

엘리스는 괜히 요즘 바쁜지 잘 안 보이는 스칼렛한테 투정을 부렸다.

물론 단순한 장난이었다. 아이리스의 정예길드원인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각 스칼렛은 이호연의 집에서 릴리아나의 가슴을 핥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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